3월 6일 조정호 보유 주식 평가액, 이재용 뛰어넘어
금융사 물려받고 2005년 계열분리 후 고속 성장
전문경영인 영입과 성과주의…내부통제는 보완해야
‘공격적 경영’ 후과는 정리해야할 숙제
![메리츠증권은 이화그룹(현 이그룹)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및 매각과 관련해 부정 거래 행위를 했다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메리츠증권 본사. [뉴스1]](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d3/dd/a4/67d3dda40e13d2738276.jpg)
메리츠증권은 이화그룹(현 이그룹)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및 매각과 관련해 부정 거래 행위를 했다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메리츠증권 본사. [뉴스1]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은 메리츠금융지주 주식 9774만7034주를 가지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메리츠금융지주 51.25%에 해당한다. 이것이 조 회장의 주식 재산 전부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전자(9741만4196주), 삼성전자 우선주(13만7757주), 삼성물산(3388만220주), 삼성생명(2087만9591주), 삼성SDS(711만8713주), 삼성화재(4만4000주), 삼성E&A(302만4038주)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주가가 부진하면서 지분가치가 12조~13조 원 수준을 유지했다.
2022년 4분기 당시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2만 원대에 불과했다.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탔고, 올해 2월 하순에는 어느덧 12만 원 선을 넘었다. 이때부터 조 회장의 주식 재산은 국내 주식 부호 1위였던 이 회장에 거의 근접하기 시작했고 격차는 점점 줄어들었다.
2년여 만에 메리츠 주가 2만→12만 원 껑충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3월 6일 종가 12만72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날 종가 기준 조 회장의 주식 가치는 12조4334억 원으로 기존 1위였던 이 회장의 주식 재산(12조1666억 원)보다 2.2% 높았다. 국내 주식 부자 1위가 바뀌는 날이었다.
물론 조정호 회장의 주식 재산이 1위에 등극한다고 해서 국내 부자 순위에서도 1위라고 볼 수는 없다. 메리츠금융그룹은 금융그룹 지주사이고 삼성그룹은 지주사 체제가 아니기에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 메리츠금융그룹은 메리츠금융지주를 정점으로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 메리츠대체투자운용 등 3개사가 100% 자회사로 있다.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이 양대 축이며 메리츠증권은 메리츠캐피탈도 완전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비상장 계열사가 월등히 많다. 자산만 놓고 봐도 2024년 기준 삼성그룹 자산은 567조 원이고, 메리츠금융그룹은 116조 원이다. 하지만 국내 주식 재산 1위 자리에 삼성가가 아닌 사람이, 그것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볼 수 없는 조정호 회장이 등극한 것은 대한민국 경제 역사는 물론이고 후대에도 널리 기억될 만한 이정표로 남게 됐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메리츠금융그룹]](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67/d3/dd/ea/67d3ddea1c95d2738276.jpg)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메리츠금융그룹]
4남 조정호 회장은 당시 막내라는 이유로 동양화재(현 메리츠화재),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증권), 한불종합금융 등 사세가 가장 미약했던 금융 3사를 물려받았다. 여기에 유산상속 과정에서 형제들은 소송전을 벌이며 사이가 틀어졌다.
2005년 계열분리 당시 메리츠금융그룹의 자산은 3조3000억 원에 불과했다. 2009년에도 셋 중 가장 큰 회사였던 메리츠증권이 국내 증권사 가운데 자기자본 기준 16위, 순이익 30위권의 증권사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조차 모르던 중소형 증권사였다.
하지만 2009년 최희문이라는 월가 출신 전문경영인을 영입한 이후 메리츠금융그룹은 본격적인 도약을 시작했다. 2010년 메리츠증권과 메리츠종금(한불종금)을 합병해 메리츠종금증권을 출범했고, 메리츠화재를 인적분할해 2011년부터 지주사 체제로 변경했다.
이후 메리츠종금증권은 2011년부터 미분양을 담보로 대출을 보증해 주는 미분양담보대출확약(미담확약) 사업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비약적 도약을 이뤄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3년까지 건설사, 저축은행 등 부동산 금융 제공자들이 부실로 무너져 사라졌고, 종금사 경쟁사였던 동양종금증권마저 몰락하면서 메리츠종금증권은 시장에서 경쟁자 없이 입지를 빠르게 넓힐 수 있었다.
종금사 합병은 메리츠 도약의 결정적 원동력이었다. 증권사는 미담확약 금액 100%를 영업용순자본비율(NCR)에서 차감해야 하기에 부동산 금융을 무한대로 펼치기에는 자본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메리츠종금증권은 합병 이후 종금업 라이선스 덕분에 8%만 반영됐고, 메리츠종금증권은 대형 증권사 대비 월등히 작은 자기자본에도 부동산 관련 사업을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다.
주가 급등 원인은 ‘비과세 배당’
종금사 라이선스는 합병할 경우 10년간만 유지된다. 그래서 지난 2020년 메리츠종금증권은 종금업 라이선스를 반납했고, 사명도 메리츠증권으로 바꿨다. 메리츠증권은 10년이라는 기한 내 최대한 성장하겠다는 베팅을 했고 실제로 부동산 금융사업을 통해 대박을 냈다. 메리츠증권은 2017년에는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당기순이익 3위를 기록했고 2022년에는 8281억 원의 당기순이익으로 사상 최초로 증권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메리츠화재 역시 지난 2015년부터 2023년 11월까지 전문경영인 김용범 부회장이 대표를 맡아 비약적 성장을 거뒀다. 메리츠화재 역시 철저한 성과주의 경영이 자리를 잡으며 당기순이익 기준 2020년 4334억 원, 2021년 6631억 원, 2022년 8683억 원, 2023년 1조5670억 원, 2024년 1조7105억 원 등 매년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메리츠금융그룹은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라는 양 날개가 고공 행진하며 실적이 우상향하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3년 처음으로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이 2조 원을 넘어선 데 이어 2024년에도 역대 최대인 2조3334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지난해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3.4%에 달한다.
기업이 실적만 좋다고 주가가 급등하지는 않는다. 메리츠금융지주 주가 급등은 실적 성장과 더불어 국내 최고 수준의 주주환원이 원동력이다. 메리츠금융지주 주가 급등은 지난 2022년 11월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의 완전 자회사 편입 결정이 시발점이었다.
당시 메리츠금융지주는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한 포괄적 주식교환을 발표했다.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이 메리츠금융지주가 지분 100%를 가진 완전 자회사가 되면서 메리츠금융그룹은 계열사 간 자본을 자유자재로 이동시킬 수 있는 ‘원메리츠’로 바꾸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같은 기대가 반영되며 메리츠금융그룹 3사 주가는 완전 자회사 편입 발표 다음 날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를 또 한 번 끌어올린 계기는 2023년 발표한 감액배당이다.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기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주주들을 대상으로 신주를 발행했는데 메리츠금융지주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은 기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주주들을 대상으로 2만7132원에 발행됐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주식초과발행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해 배당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배당하면 주주들이 받는 배당금은 이익으로 번 배당이 아니라 출자금에서 돌려받는 것으로 해석되기에 배당소득에 포함되지 않고 전액 비과세가 된다. 그래서 15.4%의 배당소득세가 부과되지 않고 연간 이자 및 배당소득이 2000만 원을 넘을 때 부과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에서도 제외된다. 대중에게는 쌍용C&E를 인수한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한앤코)가 지난 2021년 선보인 투자 회수 기법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메리츠금융지주 주식을 사면 금액에 상관없이 배당금을 전액 비과세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손들이 메리츠금융지주 주식 매수에 적극 나섰고, 지금도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를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를 본 국내 증시에서도 메리츠금융지주처럼 감액 배당으로 선택하는 기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반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들에게 배당하면 배당소득세 부과 대상이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이 돈을 배당하지 않고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사용하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4년 7월 ‘밸류업 공시’를 통해 2023∼2025년 회계연도 기준 당기순이익의 50% 이상을 주주환원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에만 1조 원 가까운 금액을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사용했다. 배당금은 비과세로 주고 이익금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에 사용하니 주가 상승세가 지속되는 것이다.
여기에 임직원들이 메리츠금융지주 주식 매수도 지속되면서 수급을 한층 타이트하게 만들고 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지난 2011년부터 주식저축장려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직원이 본인 계약 연봉의 최대 6% 한도 내에서 자사주를 매입하면 매입 금액의 절반을 회사가 지원해 주는 복지제도다. 연봉 1억 원이라면 600만 원까지 주식저축장려제를 통해 자사주를 살 수 있고, 금액의 절반인 300만 원을 회사가 지원해 주는 방식이다.
다른 기업들은 성과급으로 자사주를 지급하면 직원이 주식을 팔아 현금화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메리츠금융그룹 같은 주식저축장려제도는 직원들이 자기 돈을 들여 자사주를 산다. 과거에는 주식 가격이 오르면 차익실현에 나선 직원도 많았다. 하지만 메리츠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이 끝나고 주가가 꾸준히 우상향하면서 최근에는 차익을 실현하는 임직원은 사라지고 대부분 장기보유를 선택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임금이 높은 임원들의 경우 임금에 비례해 지원 금액이 늘어나기에 한층 더 적극적으로 자사주 매수에 나서고 있다.
고금리 이자 수입, 내부통제 강화 필요성
메리츠금융그룹의 경영 방식 놓고 ‘미국 기업 같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전문경영인 체제, 철저한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인재 영입에 적극적인 모습이 국내 다른 회사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조 회장 스스로 “메리츠는 사람과 문화가 전부인 회사” “인재의 몸값은 절대 흥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메리츠금융그룹은 성과에 대해 파격적 보상을 하는 회사다.
조 회장도 국내 다른 재벌과 다르게 지난 2022년 11월 콘퍼런스콜에서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조 회장은 지난 2023년에는 “대주주의 1주와 개인 투자자의 1주는 동등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며 “우리의 모든 주주환원 행보의 기저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메리츠금융그룹에 대한 악평도 존재한다. 특히 지난 2020년 메리츠증권의 종금업 라이선스가 만료된 이후 부동산 비중을 축소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을 상대로 한 고금리 대출이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실제로 메리츠증권은 자금 사정이 급한 기업들이 마지막에 찾아가는 증권사로 유명하다. 메리츠증권은 벼랑 끝에 선 기업들을 대상으로 확실한 담보를 잡고 선순위로 고금리 대출을 함으로써 높은 이자를 챙기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도 M캐피탈과 고려아연에 고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면서 수백억 원대의 이자 수입을 챙겼다.
선순위로 대출해 주니 자금 회수에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낮다.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홈플러스의 경우 펀드를 통해 투자했던 사업자들은 손실이 우려되고 있지만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 메리츠캐피탈 등 메리츠금융 3사는 5조 원대 자산을 담보로 잡고 선순위로 1조2000억 원을 대출해 줬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담보권이 확실하고 선순위라 회수에는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종금업 라이선스 만료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과정에서 메리츠금융그룹은 ‘돈이 되면 다 한다’는 마인드로 성과주의를 추구했다. 이런 이유로 내부통제에 다소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그치지 않고 있다.
2023년에는 메리츠증권 IB본부 임직원들이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코스닥 기업의 사전 정보를 활용해 수십억 원의 사익을 취한 사실이 금융당국 감사에서 적발됐다. 2024년에는 부동산 PF 대출 관련 메리츠증권 소속 임직원 7명과 메리츠증권 전 본부장 박모 씨 등이 기소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