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우 정상회담, 팍스아메리카나 포기한 외교 참사
트럼프, 지지자 여론 따라 젤렌스키 맹공
“국민, 항상 정부보다 분별력 있진 않아”
탄핵 두고 다툴 시간에 美 설득 방안 고민해야

2월 28일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가 망연자실한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CNN
2월 28일, 백악관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브라이언 글렌 리얼아메리카보이스 기자가 한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젤렌스키가 정장 대신 티셔츠를 입고 있던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중요한 자리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왔으니 결례라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젤렌스키가 입고 있던 옷차림은 단순한 티셔츠가 아니었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민과의 유대감을 강조하기 위해 젤렌스키는 공식 석상에서 군복 혹은 작업복을 입어왔다. 그러니 그 옷을 예의에 어긋난다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가 화려한 정장을 갖춰 입었다면 고국에서 피 흘리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군인들에 대한 결례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젤렌스키 양복 논란’이 의아한 이유는 또 있다. 양복을 입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을 늘 만나는 사람을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이스 X, 테슬라, 스타링크를 창업한 일론 머스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머스크는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선출직 공직자가 아니다. 그런 머스크도 청바지에 티셔츠, 야구 모자 차림으로 백악관을 들락거린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정장을 입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상식적 일이다.

2월 11일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AP뉴시스
반전 시위하다가도 참전으로 돌아서는 여론
우리는 이 자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알고 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로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였다. 트럼프는 젤렌스키를 향해 “당신에게는 카드가 없다”며 미국이 제시하는 휴전안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종용했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세계 초강대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합심해, 두 번째로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의 침략을 받고 있는 약소국의 대통령을 윽박지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으니 말이다.
이것은 외교 참사다.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젤렌스키만의 참사가 아니다. 트럼프와 밴스, 더 나아가 미국 전체에도 뼈아픈 타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지켜온 ‘합리적 제국’의 위상을 단번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J D 밴스 미국 부통령, 마코 루비오 미국 외교장관(사진 앉은 줄 왼쪽부터)이 2월 28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가 운영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다수의 결정이 꼭 다수에게 이롭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는 대세가 아닌 어떤 현상을 대세로 보고 추종하는 오류, 이른바 ‘집단 착각’이 벌어지기도 한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서 모든 것을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이유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가 그렇다. 과거를 잊고 평화롭게 교류하며 상호 이익을 모색해야 할 때 국민이 적개심에 불타올라 상대국에 대한 무차별적 복수를 원한다면, 그것을 ‘민주적’으로 따르는 것은 과연 올바른 일인가. 칼로 무 자르듯 명쾌한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국가적 의사결정에 민주주의를 절대선(善)으로 여길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원로 외교관이자 학자인 조지 케넌은 흔히 ‘냉전의 설계자’로 불린다. 1946년 2월 22일, 미 국무부 직원 신분으로 소련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보낸 내부 보고서 ‘긴 전문(Long Telegram)’을 통해 미국의 소련 봉쇄정책을 입안하고 기획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 1951년 4월 ‘포린 어페어스’에 게재됐다.
조지 케넌이 볼 때 민주주의란 섬세한 외교정책과 잘 맞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대중의 감정에 따라 정치권력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대중의 감정은 종잡을 수 없다. 가령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제1차 세계대전 반전 시위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반전 시위대가 순식간에 애국자로 돌변해 전쟁 찬성 시위를 하던 모습을 목격하고 글로 남긴 바 있다.
전쟁 겪어도 분별력, 타협 배우지 못해
대중의 감정은 변덕스럽기만 하지 않다. 때로는 너무도 고집스러워서 문제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과 전범국들의 배상금을 책정하던 협상에서 연합국, 특히 프랑스가 보여준 비이성적 복수심이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올 것이라 경고했다.
물론 승전국들은 그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독일이 낼 수도 없는 배상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함으로써 기껏 성립한 바이마르 공화국을 뒤흔들었고, 독일은 나치의 수중에 떨어져 두 번째 전쟁을 벌였다. 프랑스와 영국 등 승전국의 대중 정서에 따라 정치가 움직이고 대외정책이 결정된 결과, 유럽과 세계는 예측 가능했던 두 번째 전쟁을 피하지 못했다.
시카고 대학의 찰스 R 윌그린 재단 강연에서 두 번의 세계대전이 발생한 이유와 교훈에 대해 강연한 조지 케넌은 “선동꾼들이 대중 정서를 부채질하고 원한과 의심과 불관용의 씨앗을 뿌린 탓에 유럽과 전 세계는 전쟁의 불구덩이로 끌려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1916년에 유럽 사람들은 아직 이 점을 배우지 못했고, 오늘날 미국의 많은 사람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1차 대전을 거치면서 교전국 국민들은 분별력이나 겸손함, 타협의 정신 등을 얻지 못했습니다. 전쟁 행위가 계속됨에 따라 증오가 굳어지고 국민들이 자국의 선전을 믿게 됐으며, 온건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박당하고 평판이 떨어지고, 도처에서 전쟁의 목표가 확고해지고 더욱 극단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민주주의는 권력에 합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독재보다 안정적이지만, 대중의 심리가 급변하거나 요동치는 상황에서 정치적, 정책적, 외교·안보적 연속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한번 정해진 대중 정서가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거나, 국가적 도약을 해야 할 시점에 국민 정서에 가로막혀 일을 추진하지 못하는 사례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비일비재하다. 조지 케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최근 벌어진 두 전쟁의 경험에 입각해서 인간 본성에 관해 일정하게 유감스러운 판단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중 하나는 인간이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반드시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 하나는 국민이 언제나 정부보다 분별력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러-우 종전, 트럼프보다 지지자들이 원한다
다시 2025년의 백악관으로 돌아와 보자. 왜 트럼프는 이렇게 조급하게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막무가내 휴전 협상을 이끌어내려 하는 걸까. 다양한 각도의 해석이 가능하다. 어떤 이야기는 자칫하면 음모론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만을 논해 보자. 트럼프와 밴스의 ‘젤렌스키 정상회담 사건’은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미국인 중 일부, 혹은 상당수에 퍼져 있는 반(反) 국제주의적 정서가 트럼프와 밴스를 통해 미국의 외교정책에 여과 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렇다. 2024년 12월 현재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조기 종전론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 회복을 지지하는 여론은 48%인 반면, 우크라이나가 빼앗긴 영토를 다 회복하지 못해도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의견은 50%에 달하고 있다.
조기 종전론은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세를 이룬다. 2024년 12월 현재 공화당 지지자의 74%가 조기 종전론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같은 시기 30%만이 조기 종전론을 지지하고 있다. 요컨대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급발진’은 미국의 대중 정서, 특히 공화당 지지층의 정서가 반영된 현상인 것이다.
그러한 대중 정서에 합리적 근거가 없지는 않다. 미국은 서쪽으로 태평양, 동쪽으로 대서양이라는 자연 장벽을 끼고 있는 나라다. 식량 생산량은 세계 1위이며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에서도 2024년 현재 세계 1위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달리 미국은 다른 나라의 자원이나 기술 없이도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대외 의존성이 매우 낮다.
그렇다고 미국에 우방국이 필요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인들이 현재 누리는 평화와 풍요는 미국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질서, 그 위에 성립해 있는 국제 경제구조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만드는 아이폰을 떠올려 보자. 설계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이뤄지지만, 제조는 중국의 팍스콘이 아니면 해내지 못한다. 또한 그 속에 들어가는 부품 및 원자재는 전 세계에서 공급돼야 한다.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팍스아메리카나’의 질서 속에서 안정과 풍요를 누리는 것처럼, 미국도 현행 국제질서 없이 지금과 같은 풍요를 누릴 수는 없다.
미국의 풍요와 평화 역시 결국 안정적 국제정세 및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국제질서 위에 성립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것은 자원봉사가 아니라 수익사업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트럼프나 밴스가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담의 외교 참사를 야기했다. 한국은 이 사건을 국제 소식 중 하나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젤렌스키가 겪은 일은 ‘남 일’이 아니다. 트럼프라는 정치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 혹은 상당수의 여론이 세계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원치 않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한미동맹을 반대한다면, 이마저도 흔들릴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 탄핵 주제만으로 논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대한민국의 미래를 걸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미국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초당파적으로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