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먼데이 모닝 쿼터백’, 결과는 글쎄?
손실 커지면 “시장이 왜 이리 안 끝나지” 울상
‘주관적 시간’이 주는 압박감 이겨내야 돈 벌어
투자 성과, 주어진 3초에 최선을 다하느냐로 갈려

증권시장이 개장하면 장이 마감할 때까지 모두에게 동일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투자자마다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는 다르다. Gettyimage
투자를 하다 보면 도처에서 먼데이 모닝 쿼터백이 보인다. 주가가 하락하면 뒤늦게 화려한 도표와 현란한 수식을 들고 와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이들이다. 주가가 상승하면 과거 자신의 발언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들고 와 예측이 맞았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추종자는 이들을 ‘현인(賢人)’으로 믿고 따르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그들의 말은 다 맞는데 왜 따라 하면 잘 안 될까”라고 자책하지만 원인은 다른 데 있다. 타인의 시간은 나의 시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시간이 주는 이익’을 얻을 수 없다.
투자자마다 다르게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
투자는 시간을 무대로 한다. 투자자는 ‘과거’를 살피고 ‘미래’를 예측한 다음 ‘현재’에 투자한다. 이때 시간은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증권시장이 개장하면 장이 마감할 때까지 모두에게 동일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투자자마다 시간의 속도를 다르게 체감한다. 손실이 커지고 있는 사람은 “시장이 왜 이리 안 끝나지”라며 힘들어하고, 뭉칫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오늘은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며 즐거워한다. 삶에서 기쁜 순간은 금방 지나가고, 힘든 시기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천천히 흘러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투자자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자 인생에서 기쁜 순간을 늘려가야 한다. 그래야 시간을 압축적으로 보낼 수 있다.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은 주어진 순간에 몰두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느 일처럼 투자 역시 몰두할 때 좋은 선택을 하게 된다. 투자의 순간이 고통스럽기만 한다면 회피하고 싶을 것이고, 그 결과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시간의 양이 아닌 질에 투자 성공 여부가 달려 있는 셈이다. 투자의 승패는 “시간을 나의 편으로 만들었는가”에 달렸다.
흔히 “시간은 돈이다”고 말한다. 농민은 땀 흘리며 곡물을 수확하고, 노동자는 시간을 들여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만든다. 농민과 노동자에게 시간은 가치 창출의 출발점이다. 이렇게 창출한 가치가 쌓여 자본이 된다. 시간이 자본으로 변환되는 셈이다. 부를 이루려면 자본을 쌓고 잘 다뤄야 한다. 자본은 시간의 가치를 이자로 바꿔내기 때문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자와 이윤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자본을 가진 이에게 이자는 이윤이 되지만, 자본이 없는 이에게 이자는 비용으로 다가온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윤은 노동착취, 즉 노동자의 시간을 착취해 발생한다고 보지만 투자자의 시각은 다르다. 이들은 착취가 아닌, ‘미래를 위한 기다림’에서 이윤이 나온다고 여긴다. 당장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 입고 싶은 것을 입지 않으며, 미래를 위해 돈을 아끼며 견디는 이에게만 이자가 이윤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역행해야 자본을 나의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기다림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1년 뒤 100만 원을 받기보다 당장 100만 원이 지갑 안에 있는 걸 원하다. 하지만 1년 뒤의 110만 원과 당장의 100만 원 가운데 선택해야 할 경우 문제가 까다로워진다. 여기에 투자자들의 성서가 등장한다. “미래에 발생할 소득 흐름은 ‘할인’을 통해 현재 시점의 뭉칫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어떤 금융자산이든 미래 현금흐름에 적절한 할인율을 적용하면 현재의 가치를 구할 수 있다. 특정 자산을 매입했을 때 앞으로 나에게 들어올 현금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것이 그 자산의 진정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채권(이자)과 주식(배당)은 물론 부동산(임대료)마저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수입의 흐름을 자본으로 환원할 수 있다.
현금흐름을 어떠한 할인율로 낚아챌 것인가

금융자산은 시시각각 변하는 현금흐름과 할인율에 따라 현재가치가 매겨진다. Gettyimage
채권은 현금흐름이 정해져 있다. 정해진 시기가 되면 이자를 지급받고, 만기가 도래하면 원금을 받는다. 국채의 경우 국가가 부도가 나지 않는 한 대부분 지급받는다. 회사채 역시 마찬가지다. 채권은 이자와 원금 상환이 보장되는 자산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할인율이 낮다. 특히 국가가 발행하는 국채는 사실상 무위험 자산으로 간주되며, 할인율 혹은 요구수익률이 가장 낮다.
반면 주식은 잔여청구권의 성격을 가진다. 채권자의 몫을 제외한 나머지를 투자자가 나눠 가지는 구조다. 회사가 잘되면 더 많은 몫을 챙겨가고, 회사가 위기에 처하면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다. 채권과 달리 현금흐름이 ‘불확실성’을 강하게 띤다. 주식투자자는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만큼 채권투자자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금융자산의 가치는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결과며, 이때 적용되는 할인율은 자산의 위험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큰 자산일수록 투자자는 더 높은 할인율을 요구하고, 이는 자산의 현재가치를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이를 ‘위험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불확실성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가령 A라는 기업이 한 해 1000만 원의 순이익을 낸다고 가정하자. 이 기업이 내년에도 1000만 원을 벌지, 아니면 2000만 원을 벌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순이익을 배당으로 지급할지, 재투자하는 데 사용할지도 불확실하다.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는 미래의 현금흐름을 예측하려 하지만 이는 매우 어렵다. 엑셀 파일 등으로 정리해 놓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 검증해 보면 실제와 차이가 크다.
결국 금융자산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불확실성을 얼마나 반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할인율은 높아지고, 자산의 현재가치는 낮아진다. 더 높은 수익을 원할수록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다.
불확실성만 제대로 계산한다면 곧잘 수익을 낼 수 있을까. 투자는 간단치 않다. 지난 10여 년간 미·중 무역전쟁,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예상할 수 없었던 미래가 툭툭 떨어졌다. 모든 투자자가 동일한 시간의 강을 건너왔지만, 어떤 이는 시간을 나의 편으로 만들었고, 어떤 이는 허송세월했다. 이처럼 시간이 이윤을 만들지만 이를 얻을 수 있을지 여부는 투자자에게 달려 있다. 시간이 만드는 가치를 잡아내는 것은 결국 각자가 매순간 내린 선택에 따른다.
고통의 시기가 닥치면 투자자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장의 고통을 피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하지만 고난의 시기 대다수 투자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투자 성과의 차이로 이어진다. 투자는 할인된 자산을 구매해 ‘시간의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고, 이를 방해하는 것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주관적 시간’이 주는 압박감이다. 반대로 말하면 투자자가 시간의 압박을 느끼고, 이를 이겨내야 성공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당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피하고 싶겠지만 그렇다면 수익 역시 볼 수 없다.
투자자는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각종 사건사고가 전부인 것처럼 느낀다. 그럴 때마다 반걸음 떨어져 생각해 보자. 당장 심각해 보이는 문제도 한 달 뒤, 적어도 1년 뒤를 생각해 보면 그리 큰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는 오늘만이 아닌 더 긴 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이 가치를 만들 거란 믿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지금 이 순간’이 투자의 모든 것
막막하게 느껴질 때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사할 때를 생각해 보자. 집 안 가득 찬 짐과 가구들을 볼 때면 막막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오자마자 하나씩 짐을 포장하고 쌓고 옮긴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집 안 가득했던 살림살이가 차에 실려 있고, 그 차를 타고 가면 된다.
투자 역시 유사하다. 일단 미래를 위해 돈을 아끼고 모으자. 돈을 모았다면 자본이 스스로 돈을 벌게 만들자. 투자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시간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지루할 때나 누구를 손꼽아 기다릴 때는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흐른다. 기분이 좋고 즐거울 때는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차근차근 해결해 가다 보면 어느덧 ‘투자의 시계’가 빨리 돌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우리의 중요한 임무는 멀리 있는 희미한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는 분명한 것을 실천하는 일이다”라고 했다. 핑계를 대며 결정을 미루면 안 된다. 투자자로서 성공하려면 지금 당장 행동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투자자의 시간은 ‘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현재를 기준으로 계획해야 한다. 과거 설명에만 열심인 먼데이 모닝 쿼터백의 말만 들어서는 투자에 성공할 수 없다.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다. 현재란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과거 기억을 들춰보고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데 소요되는 3초 남짓한 단기 기억의 순간이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고민해 결정을 내린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현재의 선택’이 누적된 결과다. 이 3초를 지배하는 사람만이 투자자로서 생존할 수 있다. 미래나 과거가 아닌 지금 바로 이 순간이 투자의 모든 것인 이유다. 투자의 미래는 ‘지금이 쌓인 결과’며 우리는 그 끝을 알지 못한다. 단지 주어진 투자의 순간에 집중하면 된다.
다시 미식축구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는 프로 미식축구의 세계를 다룬 스포츠 영화다. 선수와 코치, 그리고 구단주와의 협상 등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경기 자체에 있다. 특히 마지막 5분을 남긴 작전타임에서 토니 디마토 감독 역을 맡은 알 파치노가 선수들에게 한 명대사는 지금도 생생하다. “승리와 패배의 차이는 결국 1인치의 차이다. 우리는 오직 1인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릴 뿐이다.” 미식축구는 1인치를 더 나아갈 수 있는냐 없느냐로 승패가 좌우되듯, 투자 역시 3초라는 현재에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지 여부로 성과가 갈린다.

● 1967년생
● 前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저서: ‘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