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호

“재산 중 제일 큰 게 집…제대로 지으면 삼성 이미지 바뀔 것”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 ‘래미안’ 주역 이상대 전 부회장의 ‘이건희式 안전사고 대응법’②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5-04-0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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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등에 직접 ‘폭포수 강의’

    • 도곡동 타워팰리스, 된장찌개 끓이게 한 뒤 배기(排氣) 체크

    • 덕트 표준화해 전선 차지 공간 줄여…“10cm를 아껴라”

    • 국내 최고 목공, 석공, 미장공 이름 다 알아

    • ‘손끝 기술’위해 외국 건설회사 연수 프로그램 도입

    • 1990년대부터 환경문제 강조…“지구와 자연에 역행 안 돼”

    • “사람이라는 존재가 지구에 해(害) 끼쳐서는 안 된다”

    삼성물산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위치한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할리파’를 준공했다. 삼성물산

    삼성물산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위치한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할리파’를 준공했다. 삼성물산

    선진국이 된다는 건 뭘까. 결국 ‘사람값’이 높아지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늘어난다는 것도 그만큼 사람의 값이 올라간다는 걸 말한다. 안전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 사회가 여기에 쏟는 관심이 높아간다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의 가치’를 높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이건희 회장의 사람 존중, 생명 존중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앞서갔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먼저 소개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있고 난 2년여 뒤인 1995년 제일모직의 한 공장에서 있었던 이 에피소드는 당시 우리 사회가 사람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없었는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신경영 실천집’에 실린 강우성 당시 제일모직 여천공장장(이사)의 증언이다.

    안전보건 초일류 기업 첫걸음은 ‘여사원 안전모 쓰기’

    “1995년 12월 공장장으로 부임한 후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검토한 끝에 ‘여사원이 안전모를 쓰게 하자’는 결론을 냈다. 당시 공장에는 각 부서의 서무를 담당하는 여사원이 20여 명 있었는데 모두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사정은 그룹 내외의 다른 사업장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곧 안전환경팀장을 비롯한 스태프를 모았다.

    ‘내일부터 현장 부서에서 근무하는 전 사원은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안전모를 착용해야 합니다. 여사원도 예외는 아닙니다.’

    공장장으로서 안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일이라 내심 스태프들의 즉각적인 지지와 호응을 기대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갑자기 여사원에게 어떻게 안전모를 쓰게 합니까? 그것도 내일부터 당장이라고요?’ ‘젊은 여성인 점을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사원의 반발이 심할 텐데요, 노사문제로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하셔야지요.’ ‘당장은 곤란합니다. 시간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모두 평지풍파가 일어날까 염려하는 눈치였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 사업장의 안전은 여사원이 모두 안전모를 착용할 때 비로소 확보됩니다. 이것은 공장장으로서 중대 결심이자 저의 경영 방침입니다.’

    회사 내에서 이러쿵저러쿵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여사원 모임인 여사원회가 긴급 회의까지 열어 ‘안전모는 죽어도 쓰지 않겠다’는 집단 의사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고참 여사원이나 현장에서 마주치는 여사원을 일일이 설득했고, 현장의 위험성을 설명하면서 왜 안전모가 필요한지를 주지시켰다.

    얼마 후 조금씩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급된 안전모를 아예 개인 사물함에다 모셔두거나 마지못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나 하나둘씩 안전모를 착용하는 여사원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전 여사원이 모두 안전모를 쓰게 됐다. 이것이 습관화되기까지는 6개월여의 긴 시간이 소요됐다. 지금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여사원 안전모 쓰기’는 안전경영대상 수상과 안전보건 초일류 기업 지정의 감격을 맛보게 한 출발점이었으며, 신경영 실천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다시 전편에 이어 이상대 전 삼성물산 부회장의 증언으로 돌아가자.

    철도 역사상 최악의 사고였던 구포열차 사고가 수습된 뒤 이상대 전 부회장은 인력개발원으로 자리를 옮겨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철학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일을 하게 된다.

    그는 당시 기억에 남는 일로 30여 년 전에 처음 시작한 온라인 비대면 회의를 들었다.

    “신경영 선언이 이뤄지면서 인력개발원의 변신도 상당히 중요할 때였지요. 그때 도입된 것이 사이버 교육이었습니다. 지금 비대면, 온택트(ontact·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에 온라인을 통한 외부 연결을 더한 개념) 교육이라고 하는 것을 이미 30년 전에 시작한 거죠.

    신경영 선언 이듬해 프랑크푸르트, 도쿄, 런던, 뉴저지 등을 연결해 현지 지사장들과 본사 사장들 간 화상회의를 시작했습니다. KT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해서 직원들을 직접 미국 애틀랜타의 중계 회사에 보냈습니다. 이때 ‘정보화’라는 게 뭔지를 체험한 직원 가운데 아예 대학원에 진학해 교수가 된 사람도 있답니다.”

    신경영 선언이 나왔을 때 정치인이나 공무원들도 연수를 받으러 온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여당이 민주자유당이었는데 당직자들이 교육을 받고 싶다고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외부 강연을 듣는 건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석·박사도 많았는데 한 200여 명 왔던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교육을 받겠다고 온 일부 당직자들이 ‘자기들은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왜 돈 버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야 하느냐, 삼성에서 교육받는 것 자체가 민자당 위상이 기업보다 못하다는 걸 만천하에 보여주는 거 아니냐’며 보이콧을 하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사전에 내부에서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안 됐던 거죠.

    저희로서는 난감했습니다. 이왕 교육받으러 오신 분들인데 돌아가게 할 수는 없으니 설득 작업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다. 산업계의 실상과 세계의 변화를 현장 경험 삼아 들어보시는 것도 국가 발전에 도움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동안 일하시느라 쉴 틈도 없었을 텐데 연수 시설에 오셨으니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쉬어가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 등 여러 얘기를 드렸어요.

    사무총장이던 강삼재 전 의원이 ‘삼성에서 저렇게 얘기를 하니 한 번 들어나 보자’고 해서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강사진은 비서실 배종렬 사장,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 나중에 초고속인터넷협회 회장이 되는 삼성물산 이금룡 부장, 인력개발원 부원장으로 신경영 실천팀장을 했던 고인수 부원장 등이었는데 정말 강의를 잘하셨어요.

    여당 당직자 교육이 성공적으로 끝나니까 교육부 내무부 장차관, 시·도 교육감, 전국 각지 시장·도지사·군수들까지 교육을 받겠다고 줄을 서는 겁니다. 최형우 당시 내무부 장관이 오셨을 때는 회장님이 직접 강의하셨어요. 본래 빨리 걸으시는 분이 아닌데 그날은 타다닥 계단을 올라가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회장님이 평소에는 전혀 말씀이 없다가 한번 나오면 무섭게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분 아닙니까. 1시간가량 혼신의 힘을 다해 강의를 하셨는데 청중이 ‘와~’ 하면서 박수를 치니까 기쁘게 웃으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전 부회장은 강의 후 최 장관과 마주 앉은 이 회장이 담배를 꺼내 드는 최 전 장관에게 직접 불을 붙여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회장님이 인력개발원 건물을 둘러보던 어느 날 어떤 방에 들어서시더니 ‘이 방 공기 좀 알아봐’라고 하시는 거예요. 방을 쓰고 있던 사람들도 전혀 뭔가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매일 체크하는 저도 이상하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회장님 말씀이 있고 나서 알아보니 그 방에 들어오던 공기청정기 밸브가 막혀 있었습니다. 회장님이 당시에 환경이나 공기 질(質)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많았는데 그걸 딱 예민하게 느끼신 거죠. 하여튼 정말 놀랐습니다. 그날 이후 건물 전체 배기, 급기 밸브를 전부 다시 점검했습니다.”

    공기를 디지털화하라

    신경영 이후인 1994년 10월 27일 삼성그룹은 그룹장기발전계획에 따라 사업구조를 전자, 화학, 금융, 기계 4개 소그룹으로 뭉뚱그려 나누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삼성건설은 1995년 12월 31일 삼성물산에 합병된다.

    2년 뒤인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거대한 파고에 휩싸인다.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되면서 건설 수요가 급감하고 고금리 고환율에 따른 자금 사정 악화로 수많은 건설업체가 부도로 쓰러졌다. 공사 발주 물량이 크게 줄면서 건설사 간 경쟁도 격화되는 등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전 부회장은 바로 이 시기인 1997년 12월 삼성물산 건설부문 주택개발 부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발령받는다.

    “현대건설까지 부도가 나잖아요. 우성, 우방, 건영 등 대한민국 최고 아파트 업체들이 차례차례로 나가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파고를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데 회장께서 아파트에 본격적으로 마케팅 개념을 도입하라고 했습니다.

    아파트도 시장과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 거기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자는 거였죠. 지금이야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당시만 해도 건설업계가 시장분석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던 때였습니다.

    회장 말씀이 ‘큰 부자 빼놓고 개인 재산 중 제일 큰 게 집이다. 그러니 집을 제대로 지어준다면 그 자체가 굉장한 그룹 홍보가 될 것이다. 삼성 전체 이미지가 바뀔 것’이라고 하셨어요. 여기에 텔레비전과 냉장고는 가전, 시큐리티는 에스원, 조경은 에버랜드가 모두 합쳐서 복합화를 하자고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노·장·소(노인, 장년, 소년)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꾸며라’고 하셔서 문화시설과 커뮤니티 시설을 들이고 디자인도 강조하셔서 여성 인력을 중심으로 ‘크리에이티브(creative) 팀’도 만들었습니다. 주부들을 모아서 인테리어, 주방, 옷장과 신발장 배치까지 어떻게 하는 게 편한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친환경’을 하도 강조하셔서 선진국들이 쓰는 시멘트, 벽지, 페인트를 꼼꼼하게 분석하는 것은 물론 배기, 급기를 통해 집안 공기도 디지털화하라고 했습니다.”

    공기를 디지털화한다는 게 재미있네요.

    “하와이에 직접 가서 공기 질을 분석해 그걸 아파트 실내에 재현할 수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보라고 하셨어요. 한번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내부를 함께 둘러보는데 된장찌개를 실제로 끓여보게 한 뒤 배기 체크까지 하셨습니다. 이런 노하우를 토대로 나중에 저희가 집 안 공기 질에서부터 방음까지 표준화한 ‘주택성능 기준표’라는 것을 만들어 국토교통부에 제안을 했고 실현되기도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건물 내 덕트(물·전선·가스가 지나가는 관) 표준화도 회장 지시로 시도했다고 한다.

    “천장을 뜯어보면 여러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다 들어가 있잖아요. 회장님은 이것도 규격화·표준화해서 전선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라고 했어요. 이른바 ‘10cm를 아끼라’는 거였죠.

    우리는 건물의 높이는 제한하지만 층수를 제한하지는 않아요. 만약 천장 내 공간을 절약해서 층별로 10cm씩만이라도 줄이면 100층이면 10m, 50층이면 한 층이 거저 생기는 겁니다. 또 덕트를 표준화하고 규격화하니 뜯어내면 누구라도 금방 고쳐낼 수 있게 정리가 잘됐어요. 이후 건설업계에 일반화됐을 겁니다.
    에너지 문제도 관심이 많으셔서 유럽 선진국들을 둘러보게 하셨습니다. 실제로 둘러보니 어떤 나라는 이중창, 삼중창으로 열을 뺏기는 걸 막는 나라가 있었고, 어떤 나라는 에너지를 자체 생산해 남은 걸 팔기도 하는 걸 현장에서 배웠지요. 우리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경기도 용인에 우리나라 최초로 에너지 하우스 연구소를 만들었는데 장관들과 지자체장, 단체장들이 다 보고 가기도 했습니다.”

    아파트 정보화도 처음 시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1999년에 시도한 정보화 특등급 아파트가 그겁니다. 당시 PC 열풍이 불자 초고속 정보통신 인프라가 구축된 사이버 아파트를 개발했습니다. 단지 내에 로컬 서버를 설치하고 각 세대를 광케이블로 연결하는 통신 인프라를 갖추게 한 거죠. 저희가 제안하고 정보통신부가 광케이블을 깔아줘서 서울 옥수동과 돈암동 삼성아파트에 처음 적용했습니다.”

    실제로 기사를 찾아보니 1999년 4월 8일 입주에 앞서서 옥수동 삼성아파트에서 정보통신부 장관과 건설교통부 장관이 서로 다른 동에 있는 아파트 거실에 앉아 화상통신을 하는 시연회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상전화, 최초의 데이터 송수신이었다면서 말이다.

    최고를 만들려면 최고를 데려와라

    이건희 회장의 인재관은 건설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건설 기술은 ‘경험 기술’입니다. 일반적인 공산품을 만드는 것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하나하나 공정을 따라 하면 되는 건데 건설 현장은 다 다르니 공장이 다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경험이 많은 인재들이 경쟁력의 ‘키’죠.

    회장님은 국내 최고 목공, 석공, 미장공들 이름까지 다 알고 계셨어요. ‘그건 누구한테 물어봐라, 거기에는 그 사람 데려다 쓰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죠. ‘건설 현장에도 대한민국 최고 인재를 데려와 최고로 교육을 해서 S급, A급으로 길러라, 이게 기본이다’라며 말이죠.

    그런 철학으로 만들어진 게 ‘엑스퍼트(expert)’ 명장 제도입니다. 건설은 학력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방수나 타일 전문가라고 하면 고졸 출신도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을 찾아서 엑스퍼트, 또는 마스터로 해서 임원급 대우를 해줬어요. 우리나라 최초로 제도화된 기술자들이 그렇게 양성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유능한 현장소장을 키우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공장에서는 공장장이 제일 중요하고, 건설 현장에서는 현장소장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건설 현장은 지역마다 다 다릅니다. 기후, 교통, 주변 환경이 다 다른데 똑같은 현장소장이 관리 감독을 할 수 없잖아요. 지금은 인터넷으로 많이 하지만 그때만 해도 많은 회사가 현장소장한테 ‘알아서 하라’고 그냥 맡기다시피 하는 회사가 많았어요.

    그래서 소장 교육을 따로 했는데 공정 관리, 새로운 건축 기법 등을 가르쳤지요. 프로젝트 도면을 딱 주고 공정 계획을 전부 세우게 했어요. 그렇게 해서 혼자 머리로 다 끝낼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소장이 안 되는 거죠. 여기서 5%는 무조건 탈락시켰어요. 그렇게 현장소장들을 키웠습니다.

    회장님은 계열사 사장들을 고르듯 유능한 현장 소장을 집중해 선별하셨어요. 소장이 누구냐에 따라 공사 컬러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소장 양성, 지명 과정까지 꼼꼼하게 챙기셨습니다. 혹여 제가 친밀도에 따라 현장소장을 임명하는 것은 아닌지까지 보셨으니까요.”

    그는 초기에 ‘손끝 기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선진 외국 건설회사 연수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이게 큰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사장이 알아야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방침에 따라 각 분야 하도급업체 사장들과 기능장 200명을 일본으로 직접 보내 배우게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체계적으로 건설사 직원 연수를 할 수 있는 곳은 없었어요. 회장님이 일본의 선진 회사들을 직접 연결해 주셨습니다. 대규모 개발 사업을 하는 디벨로퍼 회사인 모리, 미쓰이(三井) 회장과 친분이 깊었는데 이 가운데 삼성건설(현 삼성물산)을 오늘날 기술 수준으로 만들어준 회사가 다이세이건설(大成建設)입니다. 토목, 건축 대졸 기술자들을 현장에 파견해서 교육을 했는데 이것도 회장님이 중간에 다리를 놔주셔서 가능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일본이 호황이어서 사람이 모자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1년 연수로 갔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어도 금방 배우고 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죽기 살기로 하니까 일본 현장소장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그쪽에서 먼저 ‘1년 갖고는 안 되겠다, 교육을 연장하자’는 거죠. 우리 입장에서는 월급을 받아가면서 기술을 배우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 사람들이 오늘날 삼성물산의 중추 인력이 됐어요. 소위 ‘손끝 기술’을 안정화하는 품질관리가 가능하게 된 배경입니다.

    이렇게 남의 나라 가서 기술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부르즈 할리파를 지을 때 전 세계 우수 인재들이 너도 나도 ‘삼성에서 일해 보고 싶다’고 몰려와 격세지감을 느끼며 감개무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장을 둘러보던 회장님이 정말 흡족해하시며 미소를 짓던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공사 기간 5년, 관련 근로자만 850만 명으로 대규모 다국적군이 투입된 부르즈 할리파 공사는 기술 수입국에서 수출국이 된 대한민국 건설 기술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일대 사건이었다. 이를 진두지휘한 김경준 소장도 삼성건설 사사에서 이렇게 뿌듯함을 전하고 있다.

    “우리 현장 기술자들은 과거 중동에서 한국인 노무자가 선진국 기술자의 지시를 받으며 공사하던 때와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감격했다. 30년 만에 한국인 기술자가 선진국 기술자와 기능공을 지휘한 것이다. 세계 최고 높이 건물을 성공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데서 오는 엄청난 스트레스,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 속에서도 한국인이 야근을 불사하고 견디는 걸 보며 외국 기술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1990년대부터 환경문제 강조해

    지금이야 환경문제가 기업 경영에서 매우 중차대한 이슈로 등장했지만 이건희 회장은 이미 30여 년 전인 1990년대부터 환경문제를 강조해 왔다는 것이 생전의 생생한 어록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단순히 기업 경영을 위해 환경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지구와 자연에 방해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소위 인류를 위한다, 국민을 위한다 하면 자선사업가나 하는 일인 줄 알고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인류에, 세계경제에 그리고 지구와 자연에 역행하거나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1993.6.20. 프랑크푸르트 회의)

    “석탄을 파서 쓰다가 경제성이 없어지니까 석유로 넘어왔다. 그런데 석유를 쓰다 보니 공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인간이 더 잘 살려고 한 건데 그게 멸망을 재촉하게 됐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가. 오존층이 파괴되면 멸망하고 만다. 죽을병이라는 에이즈야 접촉을 피하면 예방이 되지만, 오존층의 파괴로 발생하는 피부암은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한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문제다. 조금 더 잘 살고 돈 좀 벌어보자고 프레온 가스를 자꾸 만들어왔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1993.6.7. 프랑크푸르트 회의)

    “미국의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에서 최고로 우수하다는 두뇌들이 증권가에 투신한다. 연구소에 가서 인류 환경에 도움이 되는, 자동차와 공장이 뿜어내는 매연을 과학적으로 처리하는 등 지구를 깨끗하게 하는 연구를 하지 않고 주식을 사고팔아 횡재하는 연구를 한다니 인류에게 큰 손해가 아닌가.” (1993.6.19. 프랑크푸르트 회의)

    “여론, 국민, 세상의 소리를 무서워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자기 혼자 잘났다고 해서 절대로 잘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그룹의 이미지는 절대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고 공해 없는 지구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농민을 보호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기업이 돼야 한다. 국민에게 도움을 주고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활동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야 한다.” (1994.8.9. 도쿄 출장)

    “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이 ‘가난과 부족한 자본축적’을 지적한다. ‘기술 낙후’를 문제 삼는 사람도 있다. 또 변변한 ‘인프라’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문제로서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해 두고자 한다. 첫째, 교육과 제도의 후진성이다. …둘째 급격한 도시화와 환경문제다. 아시아는 지금 귀중한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면서 산업화의 열풍 속에 빠른 속도로 도시화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남아 지역은 얼마나 좁은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만큼 많이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느냐를 실험하는 역사의 시험 무대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삶의 터전인 이 지역의 환경문제가 서양인에 의해 지적되고 있음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95.5.18. 닛케이 포럼 기조연설)

    그러면서 이 회장은 회사 내에서 환경문제를 중차대하게 인식하고, 이를 꼼꼼하게 관리할 것을 틈날 때마다 주문했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페놀 사고가 아니더라도 그룹 내에서는 일체의 환경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원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사회에 이바지하는 방안까지를 적극 검토해 추진해야 한다. 공해물질인 전지의 수은과 카드뮴이 10~20%만 회수되고 나머지는 그대로 방치되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환경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그룹 차원의 공해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1992.4.18. 전화 지시)

    “환경보호에 대해 연구소와 팀을 구성해 문제가 되는 것을 철저히 조사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무슨 이유로 강이 오염되는지 근본 원인을 찾아내고 연구 결과는 신문에 발표하고 세미나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쓰고,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이다. 환경에 제일 신경 쓰는 회사가 그룹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1992.6.4. 일본 출장)

    “공해 방지를 위해 각사별로 공해 유발 사업을 줄여가는 대책을 세우되, 내년 봄쯤 각사별로 환경보전을 위해 무엇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실천해야 한다. 각 관계사는 환경문제만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또한 환경보호는 그룹 차원에서 적극 추진해야 한다. 비서실은 실무 경력이 있는 환경 전문가와 기술자를 각 1명씩 채용해 각사의 환경 안전 문제를 전면적으로 점검, 지도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또한 환경 전문가를 불러 교육도 받고 외국과 비교도 해야 한다.” (1992.6.22. 일본 출장)

    “환경을 위한 기금을 조성해 연구소도 만들고 국제 전문가를 초빙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환경보호 측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한두 번 일과성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리더라도 법과 제도가 바뀌고 설득될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한다. 매립, 소각, 교육, GNP 대비 쓰레기 양 등 쓰레기 관련 자체 비교도 하면서 근본적인 오염 대책을 수립하고 방향 제시도 하라.” (1994.6.9. 한남동)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은 신제품 개발의 단초가 된다고도 했다.

    “물이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가. 1970년대에 투자를 했어야 했다. 그때 안 해서 탈이 난 것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공기 갖고 야단이 날 것이다. 선진국에서 그랬다. 공기청정기, 정수기 개발을 해보자고 해도 아직 에어클리너 하나 개발을 못 하고 있다.” (1994.1.17. 전자부문 사장단 회의)

    “앞으로 불량 없는 물건, 편리한 물건은 당연한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팔린다. 물건을 만들 때 그리고 소비자들이 쓸 때 공해를 유발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 폐품 처리할 때도 공해가 없어야 팔리는 물건이 된다.” (1994.1.17. 전자부문 사장단 회의)

    “그룹 내 모든 사업이 환경 사업에 관심을 갖고 리사이클링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전담팀을 구성하고 화학, 물리, 전자, 전기 등 전자부품도 사전에 회수 가능 여부의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1995.8.12. 본관 집무실)

    안전문제는 작업자의 안전과 근무 환경 질을 높이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강조도 많다.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작업장 조도가 낮거나 소음이 심하고, 작업대 높낮이가 불규칙하거나 작업 환경이 불량하면, 근무 의욕이 떨어짐은 물론 생산성도 오를 수 없다. 즉시 개선해야 한다.” (1988.8.12. 비서실 임원 오찬)

    “지난번 반도체 공장에 갔을 때 계단이나 바닥 타일을 보니 비뚤비뚤하게 해놓았다. 단가를 쥐어짜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인건비를 더 주더라도 공사하는 사람들을 특급으로 써달라고 하자. 미크론(1미크론은 1m의 100만분의 1) 이하를 다루는 반도체업인데 벽이 비뚤비뚤하고, 거기에 먼지가 깔리고 90도로 돼야 될 계단이 비스듬하게 되어서 미끄러진다. 구석구석이 깔끔해서 먼지가 떨어지면 금방 알 정도로 청결한 습성을 들여야 한다. 벽돌이 꾸불꾸불하고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제품에 영향이 간다.” (1988.12.20. 비서실 임원 오찬)

    “1등 회사는 무언가 다른 게 있다”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 지역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별도 완장을 차게 하든지, 수당을 따로 주든지 해서 근무 강도를 높여 철저하게 근무하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면 근무시간도 단축시켜 주어야 한다. 잘못돼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건물 벽에 금이 간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나중에는 이게 옳고 그른 것이 뭔지 모르게 된다. 안전에 대해선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1년 만에 공들여서 잘 지어놓고, 사고가 나면 공들인 게 다 헛일 아닌가. 안전하게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주저 없이 시행해야 한다.” (1989.10.27. 제일모직 여천공장 방문)

    “모든 합리화의 출발점은 바로 작업자의 안전이다. 생산성만을 강조하면 사고가 늘어나고 작업자의 의식만 나빠지기 때문에 안전 우선으로 작업자의 호응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개선이 이루어진다.” (1991.2.26. 고문과 오찬)

    “어떤 분야에서든 1등을 하는 회사는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다. 오쿠라 호텔은 대졸 사원이 입사하면 먼저 화장실 청소를 시켜 호텔에서 청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고 한다. 향후 각 공장 책임자는 화장실에서 자고 먹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화장실의 변기를 깨끗이 하고 완벽하게 해놓아야만 종업원에게 청결을 강조할 수 있고 종업원들도 청결해진다.” (1994.11.2. 본사 집무실)

    “수년 전부터 공장의 소음, 진동, 먼지 등을 강조했는데 아직도 전달이 안 된 것 같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원인 규명을 해야 한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당시 공장 짓는 기본에 대해 약 80%는 얘기했을 것이다. 광주는 1라인에 이 정도이니 3라인까지 들어오면 굉장할 것이다. 소음 벽, 천장, 바닥 등을 보완해야 한다. 화장실, 식당, 소음 문제 등은 초기에 건설비의 20~30%만 더 쓰면 몇 년 후에는 본전이 될 것이다. 공장이 그런 분위기면 일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효율이 나게 되어 있다.” (1995.9.19. 광주전자 방문)

    “고장도 나지 않아야 하지만 최악의 경우 고장이 났을 때 수리를 얼마나 편하게 하는가 이것도 중요하다. 또 환경도 생각해야 한다. 비디오테이프레코더(VTR)나 텔레비전이 10~15년 후에 폐기될 때, 어떻게 잘 분리해서 유리는 유리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철은 철대로 분리할 수가 있겠는가. 앞으로는 기획 단계부터 이런 개념이 들어가야 된다.” (1993.6.16. 프랑크푸르트 회의)

    한편 자동차 사업에도 몰입했던 이 회장은 교통사고와 관련해서도 매우 깊이 있는 안전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지금 곱씹어 봐도 새로운 상상력이 담겨 있어 새겨들을 말이 많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응급처치만 잘 하면 목숨을 건질 수도 있다. 우리가 헬기를 제공해 이동시간을 단축시켜 준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이나 일본의 응급처치 시스템이나 노하우를 도입해 사고 현장에 적용하면 생명을 존중하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도로공사, 경찰 등과 협의해 보도록 하고, 의료원과 비서실이 공동으로 연구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환자, 그룹 이미지, 헬기의 필요성 절감 등 일석삼조 효과를 얻는 것이다. 강북에 헬기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기회도 될 것이다.” (1994.11.13. 본관 집무실)

    “그룹 내 운전기사들을 용인 레이스장에 불러 의무적으로 연간 몇 주 정도 교육을 하고 또한 드라이빙 스쿨(Driving School) 진행 상황도 파악해 보고 일본의 잘된 곳도 조사, 방문해 보는 것이 좋겠다. 1~2주 정도 합숙교육을 하면서 차종별, 각종 노면 상태하의 기본 안전 개념과 스피드 감각 및 타이어 공기압, 서스펜션의 중요성 등을 교육해야 한다. 또한 외국의 VTR 필름을 입수하고 사고 사례, 충돌 실험 자료 등을 벤츠 홍보실 등에 취재 가면 모두 입수할 수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로 연간 1만2000명이 사망하는데 성수대교 30명 사망으로 10일간 떠들썩했다. 교통사고로는 매일 30명 이상이 사망하고 300명이 다치고 있다.” (1994.11.27. 본관 집무실)


    “공해는 살인이고 과실치사다”

    이건희 회장은 공해를 살인이라고까지 말했다.

    “공해는 살인이고 과실치사다. 전자제품은 폐기할 때 쉽게 분리 수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는 기획 단계부터 이러한 개념이 들어가야 한다. 폭스바겐에는 폐차장이 따로 있다. 여기로 갖고 오면 자기네가 알아서 폐차 처리한다. 자동차는 폐차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1993.6.16. 프랑크푸르트 회의)

    “비상용 벨 같은 것을 손목에 차고 있다가 사고가 났을 때 누르면 자동으로 위치가 표시되거나,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삼성화재에 연락하면 보험, 의사, 세콤까지 자동으로 연락이 되도록 패키지화해서 멤버십 제도로 가져가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 삼성자동차 보험에 들면 애프터서비스(AS)는 물론 분쟁 해결, 사고처리, 경찰 연락, 병원까지 자동적으로 연락해 주더라는 인상을 주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에게 정확히 알아보고, 관계 기관을 설득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 그룹뿐 아니라 사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만약 이 분야에 세계적 수준이 되면 역으로 경찰 용역도 받을 수 있다. 안전을 삼성에 맡기는 것이 미덥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1995.1.4. 본관 집무실)

    “벤츠, BMW, 도요타 등에서 자동차 안전 규칙에 관련된 VTR을 모두 모아서 우리 나름대로의 안전 교재를 만들어 보자.” (1994.10.25. 용인)

    “자동차 방음재로 종이를 이용해서 방음, 방습, 방온, 해체를 쉽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최근 EC본부 빌딩 내에서 암 유발 건축자재 사건을 비롯해 공해와 건강 문제는 계속 국제적 이슈가 될 것이므로 선진국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 등을 모두 모아 분석해서 지금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1994.1.3. 신년 하례식)

    “1960년대에 일본 도요타는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 난 차량을 사서 원인 분석을 하는 좋은 자료로 이용했다고 한다. 우리도 물론 실내에서 정·측면 충돌 등을 시험한다고는 하지만 각종 상황에서의 시뮬레이션은 안 되니 향후 이런 방식을 채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 방법은 아직 국내 어떤 회사에서도 채용하지 않고 있다.” (1995.1.10. 본관 집무실)

    “볼보나 벤츠 같은 곳은 사고 발생 시 1시간 내에 본사에 연락하면 2~3시간 동안 현장에 가서 원인을 분석해 설계에 반영한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체제를 가져가면 좋을 것이다.” (1995.2.18. LA)

    “자동차는 품질 불량에 대한 것을 죄악으로 규정해 부정보다 더 엄하게 다루는 전통을 세워야 한다. 나머지 경영은 경영자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회장으로서 품질만은 제대로 보겠다. 한 대가 고장이 나도 전 종업원이 깜짝 놀라는 그런 분위기가 돼야만 한다. 품질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는 제품 출시가 1년이 늦어져도 된다. 초기의 상용차처럼 가져가야 한다. 팔고 난 뒤 고장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하려면 차라리 팔지 않는 것이 낫다. 자동차는 남의 재산과 생명을 보관하는 것인 만큼 우리 자동차가 사고가 났을 때는 반드시 우리 직원이 찾아가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안전과 환경 관련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벤츠 등을 20대 정도 구입해서 그대로 만들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1995.8.22. 본관 집무실)

    “자동차 사고 원인의 50%는 타이어 때문이라 한다. 우리 차의 성능에 타이어까지 맞춰야 하겠다.” (1996.4.4. 멕시코 티후아나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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