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156조 ‘공짜자금’ 7대 의혹 밝혀라

한나라당 공적자금 조사특위 위원장의 직격 고발

  • 글: 박종근 한나라당 의원·공적자금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입력2002-11-05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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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행의 난맥상
    • 국민부담의 실상
    • 상환계획과 이자 규모
    • 공자금 비리와 금융사고의 진상
    • 국부(國富)의 헐값 매각 실태
    • 재벌에 특혜 준 배경
    • 누가 돈잔치 벌였나
    156조 ‘공짜자금’ 7대 의혹 밝혀라
    1997년 11월 이른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발생했다. IMF사태는 흔히 ‘외환위기’라 칭한다. 외환위기란 대외 달러지급 불능상태를 뜻한다.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경제운용이 잘못된 나라가 경험하는 사건이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IMF가 소방수로 출동한다. 평소에는 경제의 자유화, 특히 금융의 자유화, 국제 자본거래의 자유화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어느 국가가 외환위기를 맞으면 긴급 구제자금(물론 달러차관이다)과 위기극복 처방을 들고 출동한다.

    그런데 필자가 대외 지급불능 사건을 굳이 ‘IMF사태’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복합적 요인에 의해 이런 일이 터졌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금융감독 기능 실종



    첫째는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이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고도성장을 추구해온 정부 주도 개발정책은 정경유착의 관행을 뿌리내리고 관치금융체제를 구축했다. 금융권은 국가의 개발정책과 산업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책적인 금융지원을 수행했다. 기업의 사업성, 채산성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돈을 빌려줬다. 그러다보니 이런 기업이 부도가 나면 은행이 그 빚을 몽땅 뒤집어쓰는 구조였다.

    둘째 원인은 기업의 과잉 차입과 문어발식 팽창주의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고속 성장해온 국내 기업은 ‘크게 벌여놓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왕성한 투자의욕을 보였다. 부채비율이 몇백, 몇천%씩 되는데도 채산성을 감안하지 않고 차입을 통한 팽창을 서슴지 않아 여차하면 대형 부실사고가 불거질 위험을 안고 있었다.

    셋째로는 국제 금융자본의 단기 유출사태를 들 수 있다. 한국은 외자도입 정책으로 경제개발에 성공했다. 때문에 기업들도 외자 차입에 익숙했고, 정부의 자본자유화 정책이 진전됨에 따라 종금사 등에서 거액의 단기 외채를 차입, 대기업 회사채를 대량 인수해줌으로써 장기 자금을 원활히 공급했다. 이런 상황에 외채가 급속히 회수되거나 만기연장을 거절당하면 외환지급 위기가 오는 것이다.

    넷째로 우리 정부의 부실한 금융감독 기능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당국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항시 점검하면서 금융기관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감독해야 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적절한 시정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감독기능은 미흡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었다고 해야 옳을 지경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부실의 증가, 단기 외자 차입에 대한 과도한 의존, 채산성을 무시한 무모한 대출관행 등을 전연 통제하지 못했다. 필자는 외환위기 징후가 드러나던 1997년 10월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금융기관의 건전성 감독을 위해 경영정상화 시정조치를 수행하고 있는가” 라고 질의한 바 있는데, 단 한 가지도 하고 있는 게 없다는 답변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섯째로 정책당국의 정책대응 미숙 또는 외환지불 준비부족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사실 1997년 봄부터 우리 금융기관이 접촉하던 국제금융 시장에선 금리상승과 자금조달의 어려움 등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여러가지 금융여건이 오래 누적된데다, 이러한 원인을 단기간에 제거하기엔 관치금융 관행에 젖은 각계각층의 저항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호황과 국제수지 흑자를 경험한 우리 경제는 경제의 과열·거품현상과 과잉·중복투자가 두드러지면서 고비용 저효율로 빠져들었다. 과열현상은 좀체 진정되지 않아 국제수지가 급격히 악화됐는데, 1994∼97년의 4년동안 무려 430억달러의 적자가 쌓였다.

    정부는 1980년대 초부터 자유화·개방화 정책을 추진했으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선진국형 자유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다 보니 실물경제와 자유화 정책간에 조화를 제때 이루지 못해 필연적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했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당시 자유화·개방화 정책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이해됐다. 즉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 관치경제 구도의 타파, 재벌 및 노동계의 저항 등을 일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유화·개방화 정책을 통해 국제시장에서 경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이러한 정책적 접근이 실패로 돌아간 대표적 사례가 외환위기 직전에 노동법 개정안과 금융개혁법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된 것이다. 이들 두 법안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못한 것은 한국 경제가 국제적 수준의 경제운용 체제로 옮겨가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고비에서의 좌절이었다. 또한 이는 외국 투자가들이 한국에 투자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을 철수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IMF사태와 공적자금 투입은 우리 경제의 총체적 난맥상에서 기인했다. 구시대 경제의 유산, 자유화·개방화를 통한 경제체질 개선과 경쟁력 회복을 기하고자 한 정책적 노력의 실패, 재벌·근로자·농어민 등 각계각층 이익집단의 저항, 보수와 혁신 그리고 기득권층과 민주화 세력간의 이념적 갈등으로 인한 개혁의 마찰과 지연, 시장경제 원칙을 살릴 경제운영규칙의 미정착, 부정부패 고리 등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한데 엉켜 있다.

    결론적으로 정부, 은행, 기업, 노동계, 정치권 등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누군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IMF사태를 수습하고 경제파탄을 막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금융기관을 살리는 일이었다. 금융기관이 무너지면 예금자가 돈을 못 찾게 되고, 기업의 자금줄이 끊어져 기업이 연쇄 도산하며, 대외지불이 어려워지면서 수출입 등 국제거래가 중단되어 경제대공황이 오게 된다. 따라서 은행의 파산을 막고 금융거래를 정상화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긴급한 자금을 공급해 주는 것이 불가피하다.

    은행, 종합금융회사, 투자신탁회사, 보험사, 증권사,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여러 금융기관이 필요로 하는 막대한 자금을 조성,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정부밖에 없다. 외국에서도 이런 경우에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는 게 상례다. 이런 연유로 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 조성된 자금이 이른바 공적자금이다.

    은행이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받지못해 누적된 부실 채권(무수익채권) 때문에 파산지경에 이르렀거나 앞으로 부실화할 ‘잠재 부실’이 많아 파산위험에 처할 경우 정부는 공적자금을 출자해 자본금을 확충해 주거나 부실 채권을 매입해 부실을 없애주는 등의 방법으로 금융기관 영업을 정상화한다.

    이 경우 기업의 부실은 은행이 떠안고, 은행의 부실은 정부가 떠안고, 정부의 빚은 국민의 세금으로 갚기 때문에 결국은 기업의 부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는 결과가 된다.

    더욱이 부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은행은 워크아웃제도를 통해, 법원은 법정관리나 화의를 통해 금융자금을 지원하는데, 이 과정에 생겨난 은행의 부실도 공적자금으로 메워준다.

    이처럼 공적자금은 은행과 기업을 다같이 살리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므로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과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이 적절하게 되고 있는지 양쪽을 다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기업의 부실, 은행의 부실, 정부의 빚이 국민의 세금 부담과 직결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하루 속히 끊어야 한다.

    기업이 채산성이 낮거나 빚이 너무 많아서 벌어들인 이윤으로 이자도 못 갚는다면 기업의 부실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분식회계나 부실경영으로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부실이 대형화해 대형 부도사태로 이어지며, 은행이 철저한 여신심사로 예방조치를 취하지 못하면 금융부실도 늘어난다.

    이 모두가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되고, 이를 방치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을 메우는 일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부실의 쳇바퀴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도록 강력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156조 ‘공짜자금’ 7대 의혹 밝혀라

    한 시민단체 회원이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공적자금의혹 규명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IMF사태가 발생한 와중에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 김대중 정부는 4대 개혁과제를 내걸고 출범했다. 작은 정부 실현, 공기업 민영화,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가 그것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5년 임기가 끝나가는 현시점에서 돌이켜볼 때 4대 개혁과제는 어느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이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이다. 이를 통해 외환위기를 수습하고,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회복하고, 성장잠재력을 배양해 또 다시 고도성장의 길로 나아갈 것을 목표로 했지만, 오늘도 금융 부실은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구조조정 작업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을 위해 공적자금 156조원을 조성해 사용했다. 1년 예산의 1.5배, GDP의 35%나 되는 규모며 나라 빚으로 조달된 돈이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2월 출범하면서 금융기관의 부실규모를 112조원으로 추정하고, 64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부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후 5년간 투입된 공적자금이 156조원이나 되는데도 아직 금융부실 규모는 6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이닉스 등 워크아웃, 법정관리에 들어간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 답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내수 진작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금융팽창 정책을 편 결과 가계대출이 급증, 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 앞으로도 가계대출 부실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이런 잠재 부실과 세계적 경제불안에 따른 우리 경제의 회복지연 등을 감안하면 향후 2∼3년 내에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더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적자금의 과다한 투입, 관리의 난맥상, 회수의 불투명성과 상환부담의 과중 등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은 아닌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닌지, 아직도 얼마나 더 투입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의구심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이런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내년은 공적자금의 본격적인 상환이 시작되는 해다. 따라서 공적자금 집행실적을 재평가하고 향후 대응전략을 새로 수립하는 일이 시급하다.

    정부·여당, 국정조사 기피

    국회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해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추진해 왔으나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정부와 여당은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하자고 합의해 놓고도 증인채택과 심문방식 등 사소한 문제로 트집을 잡아 두 번이나 무산시켰다. 정부·여당은 수많은 정책 오류와 특혜, 비리의 실상이 밝혀지면 국민으로부터 질타를 받을 것이 무서워서 국정조사를 기피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 밝히지 못하면 다음 국회에서 반드시 밝혀낼 것이다.

    국회가 공적자금 집행에 관한 자료를 요구해도 정부가 제대로 제출하지 않기 때문에 문서나 자료를 통해서는 그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정부에서 발간하거나 제공하는 자료에는 공적자금이 정부에서 금융기관까지 어떻게 흘러들어 갔는지에 대한 내용은 있으나, 금융기관이 그것을 부실기업에 어떻게 지원했는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공적자금 집행 기준이나 실사결과 등의 평가보고서, 각종 운영위원회 회의록 등을 제출하지 않기 때문에 집행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미 밝혀진 자료만 가지고도 공적자금 운용의 난맥상이 일각이나마 드러나고 있으니 전체를 제대로 조사해보면 엄청난 오류와 비리가 드러날 것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정부와 여당에 공적자금과 관련한 7대 의혹을 밝히라고 요구한다.

    첫째 의혹은 공적자금 집행의 난맥상이다. 국민들은 “공적자금은 공짜자금”이라고 하며, 심지어 권력 주변의 인물들을 위한 눈먼 돈이라고 일컫는다. 공적자금 집행과 관련한 정책 실패, 과다 투입, 관리·감독소홀로 인한 낭비, 각종 비리,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국민의 의혹은 날로 커지고 있다. 출자, 출연, 부채탕감, 추가융자 등의 형태로 부실 은행과 부실 기업에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으나, 경영 정상화를 통한 구조조정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재정을 빚더미에 올려놓고 국민의 세금부담만 가중시켰다.

    둘째, 회수 불능분에 대한 실상과 이로 인한 국민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밝혀야 한다. 정부는 6월28일 공적자금 상환대책을 발표하면서 69조원의 공적자금이 회수 불능한 손실로 확정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이토록 어마어마한 액수의 손실이 발생했는지, 회수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 87조원의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셋째 의혹은 상환계획과 이자부담의 실상이다. 정부는 69조원의 확정 손실분을 재정에서 49조원, 금융기관이 20조원씩 분담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재정은 국채를 발행해서, 금융권은 특별보험료를 신설해서 부담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회수 가능한 부분도 회수될 때까지는 국채로 만기를 연장해줘야 하기 때문에 25년에 걸쳐 연차적으로 갚는다면 이자만 113조원에 달해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할 원리금합계액은 200조원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국민 1인당 400만원, 1가구당 1500만원의 세금을 부담시킨다는 얘기다.

    국채 발행을 통한 25년 간의 원리금 상환계획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재정에서 매년 얼마씩 염출해야 하는가, 그리고 상환기간을 25년보다 짧게 잡아야 하는가 길게 잡아야 하는가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국민의 조세부담률, 적정 재정규모, 사회보장적 재정지출 규모, 국가부채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문제다.

    국가 채무 현황을 살펴보면 1997년 이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1997년에는 국가 채무 65조6000억원과 국가 보증채무 13조원을 합해 78조6000억원의 채무가 있었다. 이는 GDP의 17.4% 수준이다. 그러던 것이 2001년 말에는 국가 채무 122조1000억원, 국가 보증채무 106조8000억원, 합계 228조9000억원으로 GDP의 42%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 정도 GDP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복지비용 지출부담이 큰 선진국 수준(50∼60%)에 비하면 낮다. 하지만 복지비용 수요, 노령화 사회에 대비한 수요, 남북협력비용 수요, 정보화 및 지식사회 기반조성을 위한 과학기술 투자, 교육 투자 그리고 아직도 부족한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을 고려할 때 재정지출 수요는 크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적자금 상환은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재정의 운신 폭도 좁아질 것이다. 외환위기는 이제 재정위기로 얼굴을 바꿔 우리앞에 다가서고 있다.

    넷째 의혹은 공적자금 비리 규모가 도대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우선 감사원 감사에서 정책판단 및 관리감독 소홀로 31조9000억원이 과다 투입되거나 오남용됐음이 지적됐다. 공적자금을 받은 부실 기업주가 7조원의 기업 자금을 유출한 사실도 밝혀졌다. 또한 검찰 수사에서 성원건설은 대통령의 친·인척을 개입시켜 3300억원의 부채를 탕감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이 외에도 각종 권력형 비리와 연관된 금융사고 등 많은 사건이 은폐돼 있다.

    특혜용으로 투입된 공적자금

    다섯째 의혹은 헐값 매각으로 유출된 국부가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헐값 매각 사례는 제일은행이다. 17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빚을 다 갚아주고도 단돈 5000억원을 받고 해외 자본에 팔아넘겼다. 대우자동차는 포드와 10억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는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15년 외상이라는 희한한 거래로 팔아버렸다. 또한 외자도입이란 명분 아래 알짜배기 기업들을 주식 양도 형식으로 매각했는데, 그 구체적인 실태와 거래조건 등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여섯째 의혹은 왜 특정 재벌에 특혜를 줬느냐는 것이다. 현대그룹에 33조원에 달하는 금융지원을 해 끝간 데 모를 부실을 막아주고,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라는 변칙수법을 통해 긴급수혈을 해주면서까지 현대 살리기에 나선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빅딜정책의 대표적 실패작이라 할 수 있는 하이닉스 반도체는 10조원 이상을 투입하고도 아직 정상화의 길이 요원해 공룡 부실기업이 됐다.

    대우그룹에 대한 특혜지원도 귀를 의심할 정도로 대규모였고,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외환위기 당시 대우는 부실 경영과 해외 사업의 무리한 확장으로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있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워크아웃에 포함시켜 구조조정작업에 들어가야 했지만, 1998년부터 1999년 8월 대우그룹이 쓰러질 때까지 불과 1년반 동안 30조원의 금융지원을 강행했다. 권력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한 특혜금융이었다.

    대우는 결국 이 30조원을 포함해 100조원이라는 엄청난 부채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쓰러졌다. 김대중 정부는 왜 구조조정도 제대로 시키지 않으면서 60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현대와 대우에 퍼주었는지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일곱째 의혹은 누가 공적자금으로 돈잔치를 벌였는가다. 공적자금 정책과 관리의 난맥상은 관련 책임자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책임추궁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나 이것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부실 기업주의 돈 빼돌리기, 부실기업 연명수단으로 악용되는 기업재생 제도, 퇴직금 잔치, 과도한 임금인상 등과 관련된 부실 책임자의 도덕적 해이 실태를 명백히 밝혀 그 책임을 묻고 공적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공적자금 예비조사 과정에 공적자금 비리와 정책 오류에 관한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어 언론에 대서특필된 바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국회의 국정조사를 부실화·무력화하기 위해 정부와 여당이 조직적으로 자료제출을 지연하거나 거부함으로써 국회의 기능과 권위를 무시하는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내부 자료’라면서 공문서 제출을 거부했고,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공적자금집행과 관련된 기관들은 “자료를 집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금융기관 통폐합 과정에 없어지거나 너무 오래된 자료라서 찾을 수가 없다” “개인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라는둥 갖가지 이유를 달아 자료 제출을 방해하면서 비리 은폐에 급급했다. 또한 민주당은 핵심 증인의 출석을 거부하고, 특히 대통령 주변인물의 출석을 반대하면서 국정조사를 무산시켰다.

    그런 중에도 공적자금 집행의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내용이 폭로되면서 물의를 빚었다.

    4억달러 대북 비밀지원 의혹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에 4억달러가 뒷거래로 지불됐으며, 이 돈은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불법으로 대출해준 4900억원으로 조성됐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즉시 계좌추적을 통해 그 실체를 밝히라고 요구했으나 이근영 금감원장과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은 계좌추적이 불가하다는 주장을 고수해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현대상선은 현대상선대로 이 돈을 썼느니 안썼느니, 계열사 지원에 썼느니 회사채를 갚는 데 썼느니 하면서 갈팡질팡해 의혹을 더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자산관리공사의 파행 운영이다. 자산관리공사는 부실 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 채권을 매입해 금융기관의 부실을 해소하고, 이렇게 매입한 채권을 재매각해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38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그런데 자산관리공사는 매입한 부실 채권을 되파는 과정에 헐값매각, 임직원 담합, 수수료 과다 지급, 특정업체 몰아주기 특혜의혹 등으로 ‘복마전’이란 별명이 붙었다. 특히 아더앤더슨, 삼정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 3개사가 자산관리공사 및 예금보험공사가 지불한 수수료의 70%를 독식해 특정업체 몰아주기 특혜의혹을 뒷받침한다.

    종금사 구조조정 과정에도 공적자금이 낭비됐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27개 종금사를 퇴출시키면서 16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대한종금과 나라종금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가, 다시 죽는 과정에 3조원의 추가 공적자금이 투입된 사실이다. 부실로 영업이 중지되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왜 유독 이 두 종금사만 영업을 재개시켰을까.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한종금과 나라종금의 경우 재실사 과정에 회계법인이 자산과 자기자본을 잘못 평가했는데도 금감원이 이를 묵인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두 종금사는 다시 살아나서 1∼2년 더 영업하다가 부실만 키워놓고 다시 죽었다. 그 짧은 기간 영업하면서 3조원이라는 엄청난 부실을 기록한 것은 의도적으로 자금을 유출해 경영을 악화시켰기 때문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았다. 부실 내용을 살펴보면 그런 의심을 받을 만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하이닉스 처리 방향

    이른바 빅딜정책의 대표적인 실패작인 하이닉스반도체도 ‘공적자금 먹는 하마’로 변했다. 현대의 무리한 LG반도체 인수는 자금사정과 경영을 더욱 악화시켰으며, 곧이은 세계 반도체 가격하락과 겹쳐 부실이 더욱 가속됐다. 그 결과 2000년과 2001년 두 해 동안 3조8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10조원이 넘는 금융지원에도 정상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하이닉스는 해외 매각이든, 국내 P&A(자산부채인수) 방식의 구조조정이든 간에 엄청난 금융부실을 발생시킬 것이며, 그만큼 공적자금을 깎아먹을 것이다.

    그런데 하이닉스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이닉스의 미국 현지 생산법인인 HSA사의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현대상사 등이 HSA사에 이행보증약정을 많이 해놓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는 국내의 손실 규모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이닉스 문제는 전장사업 부문이 분리되어 매각된 현대오토넷과 연계해 검토해야 한다. 이 회사 주식이 상장됨에 따라 현대 계열사 및 현대 패밀리의 득실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계열분리라는 명분을 내걸고 알짜배기 회사는 패밀리들이 나눠갖고 부실한 기업은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부실을 은행에 떠넘기려는 교묘한 재테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너 및 경영진의 책임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지난 5년간 공적자금과 관련해 저질러진 실정과 비리는 투명하게 밝혀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두 번 다시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시장경제원칙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사적 자치의 원칙도 존중돼야 하지만, 이러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시장규칙(Rule of Game)을 새로이하고,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제도적 불균형(Institutional Disequilibrium)을 끊임없이 시정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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