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먼지보다 작은 나노, 천하를 주무르다

  • 류현정 전자신문 기자 dreamshot@etnews.co.kr

    입력2006-06-08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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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보다 작은 나노, 천하를 주무르다
    ‘원자와 분자를 조립하는 기계만 있다면 자동차도 비행기도 단돈 5달러에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초등학생의 천진난만한 상상이 아니다. 에릭 드렉슬러라는 과학자가 1980년대 중반에 펴낸 저서 ‘창조의 엔진’에서 던진 화두다. 요즘 자고 나면 듣게 되는 새로운 나노기술이 바로 이 원대한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나노란 10억분의 1을 뜻하는 접두어다.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아 10만개로 쪼개면 그 크기가 1나노미터(nm), 즉 10억분의 1m쯤 된다. 1nm는 원자와 분자의 중간 크기. 나노학이란 이렇게 작은 단위를 다루는 ‘슈퍼 울트라’ 초극미세 가공과학이다. 어떤 물질이든 나노 크기로 작아지면 전기, 광학, 자기적 특성이 모두 달라진다. 물질을 나노 단위로 쪼개 자유자재로 주무를 수 있다는 드렉슬러의 발칙한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에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된다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생각해보라. 다이아몬드 성분은 탄소로 흑연과 같다. 나노기술을 이용, 흑연의 결정구조를 바꿀 수 있다면 고가(高價)의 다이아몬드 시대는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연금술의 서막이 이렇게 열리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신(神)이라면 나노기술은 제우스’라는 비유도 그래서 나왔다. 기존 상식을 파괴하고 진실을 뒤집는 게 나노다.

    이미 일상생활에 나노기술이 적용된 사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바닥재 등에 쓰이는 은 나노. 항균성이 높은 은을 아주 잘게 쪼갠다. 쪼갤수록 은 입자 표면적이 늘어나 쓸 수 있는 양도 많아지고 흡착력도 강해진다. 요즘 화장업계에선 ‘나노 리포좀’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비타민C 등 미백에 탁월한 성분을 피부세포(리포좀)보다 작은 크기로 캡슐화해 판매하는 것이다. 순금, 산삼, 와인 등을 모공보다 작은 나노 크기의 분말로 만들어 피부 흡수력을 높였다는 특수 화장품도 나왔다.



    반도체 분야만큼 나노기술이 절박한 분야도 없다. 집적도를 더 높였다가는 물리적 저항 때문에 전기가 아예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물리적 저항을 하나씩 깨뜨려나가는 데 나노 공정은 필수적이다.

    정보기술, 바이오기술, 나노기술이 결합한 학문인 의학기술 분야는 나노기술이 무병장수 세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점친다. 혈관을 청소해주는 1nm 로봇, 몸속에 직접 침투,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나노 치료 입자가 앞으로 20년 안에 상용화된다는 것이다. 금을 만들겠다는 인간의 의지는 결국 21세기 나노기술로 현실이 될 것인가. 기대도 크지만, 한편으로 떨리고 두렵다.

    나노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끔, 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과학에도 나노기술을 적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거철이 되면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개개인의 삶과 정서, 이해관계를 꿰뚫고 헤아려주는 초극미세 인문학이 나온다면 나노 의학 못지않게 인류 행복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으니 쉬운 일은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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