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는 90년대 초반부터 홈스크 광구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어떻게든 한국 자본을 이곳으로 끌어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비록 사할린에서 자고 나란 러시아인이지만, 부모님의 나라 한국에 대한 집착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1991년경 현대그룹이 사할린 유전 개발에 참여하면서 그는 정주영 명예회장 등 현대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는 1992년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대통령선거에 동원하면서 유전 사업을 중단했다. 1998년 다시 한국을 찾은 최씨는 정부와 기업을 찾아다니면서 사할린 자원개발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지만 진지한 관심을 드러내는 곳은 드물었다.
그러던 중 2000년 7월 발틱연구소 이동호 소장을 만나면서 그의 꿈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동호 박사는 독일에서 러시아와 주변국을 연구한 러시아 전문가로 최씨가 내민 자료의 정확성을 인정하고 미국의 아더앤더슨사와 일본·독일 등 여러 연구기관의 자료와 비교 검토하는 절차를 거쳤다. 이박사는 사할린 프로젝트를 검증하기 위해 정부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현장을 답사하고 참여할 업체를 찾아나섰다.
이 과정에서 연결된 국내업체가 (주)대현자원개발이다. 석유개발은 엄청난 투자비가 들어가는 사업이다. 대기업이 들어간다 해도 한 두 기업 차원으로는 힘들고 정부와 여러 기업이 컨소시엄을 형성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사업이다.
생소한 중소기업체인 (주)대현자원개발이 석유개발같은 엄청난 사업에 초기 사업자로 뛰어든 데는 뒷배경이 있다. 대현자원개발의 전신은 대현농수산이라는 회사인데, 이 회사의 회장이 바레인·아랍에미레이트·리비아 대사를 지낸 최필립씨다. 최필립 회장은 중동에서 대사를 오래 지냈기 때문에 석유 사업에 대한 전문지식과 애착이 있었다.
물론 이 사업은 (주)대현자원개발 차원에서도 감당할 수 없고, 한국 정부 차원에서 참여해야 가능한 사업이다. 그런 탓에 성패 여부는 해당 광구에서 원유가 터져나오는 것 뿐 아니라, 우리 정부의 결정이 어느쪽으로 나느냐에 달렸다. 현재 이 사업에는 초기 주체인 (주)대현자원개발 이외에 대기업인 SK와 동원산업, 석유공사 등이 관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의 최종 결정에 따라 참여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말하자면 정부가 이 사업 성사 여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산업자원부 당국자는 “관심을 갖고 추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 차원에서 조사할 가치가 있다. 권리와 의무, 러시아 제도 등을 정밀 조사해서 분쟁 소지가 없는지 따져보겠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서사할린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유전 개발 사업에 뛰어들 때는 단계적으로 투자할 기회가 있다. 첫번째는 탐사 단계 때 투자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초기 시추 단계에 투자하는 것이다. 일단 시추공 하나를 뚫어서 원유가 나온 것을 확인한 다음 투자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경제성있는 원유가 안정적으로 산출되는 것이 입증되었을 때 투자에 참여하는 것이다.
유전 사업은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자체가 도박성 짙은 사업이다. 위험성은 크지만 이 세 단계 중 첫째 단계에서 투자하면 산출물에 대한 권리도 가장 많이 가질 수 있고, 당연히 수익도 커진다. 지금까지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시행했던 유전 사업은 모두 두번째와 세번째 단계였다.
최초의 탐사단계 투자
그런데 이번 서사할린 건은 첫번째 단계다. 그런만큼 참여해서 원유만 솟아오른다면 우리 정부와 기업이 거의 전적으로 이곳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곳에 대해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곳의 입지 조건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해상이 아닌 지상 유전이라 해상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시추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러시아쪽 회사인 코스트로마테프트가스사가 주장하는 광구권과 한국의 지분 확보를 법적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러시아무역대표부와 산업자원부는 이 사안을 놓고 긴밀히 협의 중이다. 사할린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특히 정부가 못박고자 하는 사항은 한국측 사업 주체가 광업권, 조광권을 전부 또는 60%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생산물인 원유나 가스에 대한 권리를 한국측이 가질 수 있느냐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지하자원을 개발한 사례를 보면 산출물의 80%를 러시아가 가져가고, 20%는 개발한 외국 회사가 갖는 식이었다.
이에 비해 사할린 프로젝트는 생산량의 75%를 한국에 반입하고 나머지 25%를 국제원유가격의 3분의 2 조건으로 러시아 국내에 판다는 것이다. 이같은 조건은 형식적인 개발주체가 러시아법인이고, 러시아법인의 주식을 한국 기업이 60%이상 소유해서 사실상 지배하는 모양새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정부는 이러한 사안들이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와 연방정부 에너지청에서 승인받는 것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 모든 사항들은 구두로 합의되어 있는 상태다.
현재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개발참여 추진일정을 잡았다. 먼저 3월부터 6월까지 투자 환경을 정밀 분석하게 된다. 세부 내용을 보면 정부는 3월 안에 러시아 연방 정부과 사할린 주정부의 공식의견을 외교공관을 통해서 확인할 예정이다. 또한 오는 4월에 있을 한·러 자원협력위원회에서 이 건을 공식 논의할 계획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러시아의 자원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간 채널을 통해 러시아 정부의 견해를 들어보고 명확한 권리관계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산자부와 석유공사는 이 기간에 러시아 자원 개발과 투자에 관련된 제도와 법령, 세제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산자부 김동원 자원개발국장은 “러시아 자원개발 관련 제도는 변화가 잦고 복잡하기 때문에 최근 제도 현황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6월 중으로 해외 석유 메이저의 입장도 확인할 태세다. 이 광구에 대한 미쓰비시와 쉘 같은 해외기업의 시각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4월 안으로 광구 정보를 재확인할 계획이다. 이 광구에 대한 계약에 따라 우리가 어느 정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 원유가 터져나온다면 이를 국내에 얼마만큼 반입할 수 있는 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또 국내기업과 더불어 매장량에 관한 추가자료를 8월까지 확인할 계획이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1차 시추 분석 결과도 사업 타당성 판단에 활용된다. 이런 모든 수순을 밟아 정부는 하반기에 참여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런 결정 사항을 국내 기업들에 통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가 확인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미 대부분 이 프로젝트의 한국측 관계자들이 검증한 사항들이다. 사할린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지난 1월 러시아 변호사 면허를 가지고 있는 이원형 변호사를 모스크바와 사할린 현지에 파견해 러시아측 개발 회사의 존속 여부, 재정 상황, 사할린 지역 내 석유·가스 관련 광업권 취득 여부를 조사했다. 또 한국 당사자가 러시아측 개발회사의 주식을 취득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조사했다. 이변호사의 보고서를 보면 정부가 우려하는 사안은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검증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엔 러시아 정부도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주한러시아대사관과 주한러시아무역대표부가 이 건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또 지난 1월19일 러시아 외교부 발레리 B 수이닝 한국과장은 “한국의 서사할린 유전 개발 참여는 러시아 연방 정부로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러시아쪽 회사의 권리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이 서사할린 유전 개발에 참여하면 최대한 돕겠다”고 말했다.
6월15일 첫 산출물 기대
이 모든 것은 정부 차원에서 움직이는 일정이지만, 현재 러시아쪽 개발 주체인 코스트로마네프트사와 한국쪽 파트너인 (주)대현자원개발은 이미 홈스크 라이센스 지역(KLA, 606평방m)에 51m 높이 시추탑을 세워놓고 한 구멍을 시추하고 있다. 5월16일까지 1500m를 뚫고, 6월15일까지 2400m까지 파내려갈 계획이다.
이 정도를 파면 광구의 규모를 판단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탄성파 조사를 한 상태다. 7월부터는 홈스크 라이센스 지역의 다른 곳에도 시추를 하며 2002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 사할린 프로젝트는 사안 자체의 경제적 의미를 떠나 여러가지 파급 효과를 가지고 있고, 정치적 의미도 크다. 우선 이 프로젝트는 극동러시아 개발이라는 원대한 계획과 맞물려 있다. 극동러시아 개발 계획에는 몇가지 축이 있는데, 그 첫째가 연해주 식량개발이다. 연해주의 광활한 땅에 한반도의 면적과 맞먹는 농장을 개발해, 장기적으로 식량을 자급하고 북한에 지원 식량까지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러시아의 농지와 남한 자본, 북한 노동력을 한데 묶는다는 합영농장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이미 농림부 산하에 발해사업단을 만들어 실행에 옮기고 있다.
둘째가 에너지 개발이다. 석유개발과 가스개발이 있는데 바로 사할린 프로젝트가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는 동북아 물류 유통망 건설이다. 이는 한반도 횡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해 동북아의 유통 질서를 새로 만드는 계획이다.
넷째는 북해와 오오츠크해 어장의 수산자원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이 모든 사업에 자금을 댈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하는 것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국가는 남북한과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등 6개국이다. 말하자면 중국과 일본, 미국 등 3개국은 현금을 출자하고, 한국은 러시아 차관을 투자로 전환하고,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 운영권을 현물로 출자하며, 북한은 경의선, 경원선 운영권을 현물로 출자한다는 안이다. 현재 정부는 이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민관합동기구로 극동러시아개발위원회를 조직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곳 사할린에는 이미 외국 석유회사들이 유전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사할린의 자원에 대한 관심은 일본과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앞선 상태다. 일본과 미국 회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곳은 북사할린의 해저 유전. 현재 마라톤(Marathon), 미쓰이(Mitsui), 쉘(Shell), 미쓰비시(Mitsubishi) 등 4개 회사가 공동 투자하여 석유와 가스 수중탐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이 추진하는 사할린 프로젝트는 현재 사할린Ⅰ에서 사할린Ⅵ 프로젝트까지 6단계 개발전략으로 알려져 있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