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뉴욕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기다릴 만큼 기다린 것 같지 않아요?”
“무슨 말인지….”
“6자회담 말입니다.”
7월, 밤 깊은 링컨기념관은 후텁지근했다. 기념관 앞 길게 뻗은 호수 위로 워싱턴 모뉴멘트의 불빛이 어른거렸다. 여러 번 졸라도 만나기 쉽지 않았던 그가 산책이나 하자며 먼저 연락을 해왔을 때부터 예감이 심상치 않았다. 기념관 계단에서 만난 그가 의미심장한 침묵 끝에 던진 말이 ‘6자회담’이었다. 3차회의가 열린 지 1년이 넘었고, 미 언론에서 이야기하던 ‘6월말 데드라인’도 넘긴 시점이었다.
“다음주에 빅터 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이 서울과 베이징, 도쿄를 방문합니다. 내일이나 모레쯤 본국으로 연락이 갈 겁니다. 그동안 김 참사관과 쌓은 신뢰 때문에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의제는 생각하시는 대로입니다. ‘뉴욕’이죠.”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주미 한국대사관 김지혁 참사관의 뇌리를 스쳤다. 백악관 NSC에서 일하는 그의 입에서 ‘뉴욕’이라는 말이 나왔다면 미국이 북핵문제를 (뉴욕에 본부가 있는) 유엔안보리에 가져가기로 결정했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그날 밤, 김 참사관은 서울 외교통상부 본부로 전문을 타전했다. 이튿날 서울의 NSC는 워싱턴 NSC로부터 공식 연락을 받았다. 7월17일 일요일이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담당하는 강동혁 빈 주재 국제기구 대표부 대사가 케네스 브릴 미국대사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1주일 뒤의 일이었다. 다음달 초 IAEA 사무국이 특별이사회를 소집할 예정이며, 이를 준비하기 위해 이사국과 옵서버 국가가 함께 모이는 우방국회의를 미국대표부 사무실에서 열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7월31일, 대덕연구단지 국가원자력관리통제소의 백병흠 박사는 소장의 긴급호출을 받았다. ‘일요일에 웬 전화람.’ 외교부에서 협조요청이 왔으니 오스트리아 IAEA본부로 출장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때마침 TV에서는 “IAEA가 북핵문제를 다루는 특별이사회를 8월3일 소집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잘하면 여름 휴가가 날아가겠군.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게 생겼는 걸.’
북한 핵문제를 안보리에서 논의하기 위해서는 회원국이나 산하기구인 IAEA가 이를 의제로 회부해야 한다. 공식적으로 북핵문제는 이미 유엔에 계류된 상태다. 우라늄 농축 의혹이 불거지고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한 직후인 2003년 2월 IAEA 이사국들은 만장일치로 이 문제를 안보리에 상정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다만 6자회담이 가동됨에 따라 움직임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