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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사기 ‘나이지리아 419’가 당신을 노린다

전직 대통령 부인의 메일 “일확천금의 기회를 드립니다”

국제금융사기 ‘나이지리아 419’가 당신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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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망명한 거물 정치인의 아들입니다. 수백만달러의 비자금을 환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10%의 수수료를….” 이런 내용의 e메일을 받아본 일이 있는가. 그 내용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본 일이 있는가. 한번쯤 ‘이 메일이 사실이라면…’ 하고 상상해본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지구 반 바퀴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남의 주머니를 노리는 국제금융범죄의 목표물이 된 것이다.
국제금융사기 ‘나이지리아 419’가 당신을 노린다
2005년 초 나이지리아 라고스 공항. 비행기 탑승구 앞에 선 김모씨의 심장은 쉴새없이 쿵쾅거렸다. 이제 곧 서울로 출발한다고 계속 되뇌었건만, 팽팽해진 신경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공항 한구석에 몸을 숨긴 채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살폈다. 언제 나이지리아 금융범죄 조직원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쫓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건의 뿌리는 2004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업가인 김씨는 나이지리아의 중앙은행인 CBN(Centural Bank of Nigeria) 총재 명의로 된 영문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퇴출당한 전임 총재의 비자금 7000만달러를 비밀리에 해외로 반출하고 싶으니, 계좌를 빌려주면 수수료 25%를 주겠다’는 요지였다. 비자금이 안전하게 반출되면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얘기도 있었다. 김씨는 반신반의했지만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 구체적인 상황설명을 부탁하는 답신을 보냈다. 몇 개월에 걸쳐 서신과 전화가 오갔고, 마지막 확인차 나이지리아를 한번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기에 이른다.

나이지리아에 도착하자 은행 간부 두 명이 살갑게 그를 맞았다. 경찰 호위까지 준비한 정성에 기분 좋게 호텔로 향했다. 낯선 곳에서 김씨가 행여 불편한 점이라도 있을까 은행 직원 한 명이 24시간 옆에서 그를 보좌했다.

다음날 김씨는 보좌한 직원과 함께 총재를 만나기 위해 CBN 라고스 지점으로 향했다. 총재는 “그간의 도움으로 이곳 상황은 잘 마무리됐다”며 “마지막으로 이 일을 알게 된 정치인에게 줄 자금(뇌물) 1만달러를 부탁한다”고 했다. 중앙은행에서 총재까지 만나고 난 상황이고 보니, 김씨는 별 의심 없이 돈을 건넸다.

그러나 막상 돈을 건네고 나니 상황은 급변했다. 항상 동행하는 직원 때문에 마음대로 외출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그러고 보니 집요하게 따라붙는 직원의 태도가 부자연스러웠다. 묘한 두려움이 김씨를 덮쳤다.



이튿날, 그는 은행 직원이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 몰래 방을 빠져나왔다. 급히 라고스 시내에 있는 한국대사관으로 달려가 사정을 설명했다. 곧바로 경찰을 대동해 호텔로 왔지만 은행 직원이라던 남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확인 결과 그들은 은행 직원도, 총재도 아니었다. 비서와 짜고 총재실 사진을 바꿔 달며 치밀하게 준비한 한 편의 연극일 뿐이었다. 김씨는 “총재라는 사람이 멀쩡히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가짜인 줄 알았겠냐”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는 “돈도 돈이지만 몇 달 동안 살맛 났었는데…”라고 힘 빠진 음성으로 말했다.

교묘한 트릭

김씨가 당한 사기수법은 대표적 국제 금융사기인 이른바 ‘나이지리아 419’의 전형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사기유형으로, 나이지리아에서 사기죄가 형법 419조에 규정돼 있다는 데 착안해 국제수사당국 사이에서 이런 별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해외의 불특정 다수에게 ‘비자금 반출을 도와달라’는 팩스 또는 e메일을 대량으로 보낸 후 회신을 해오는 사람에게서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이 같은 수법이 높은 성공률을 보이자 인근 아프리카 국가들로 전파됐고, 많은 조직이 나이지리아 방식을 ‘교과서 삼아’ 연마해 수법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419가 국내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98년 2월. 국가정보원이 나이지리아의 국영 석유회사인 NNPC를 사칭해 투자 유치를 유도한 전송문을 입수한 것이 계기였다. 국정원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신고건수는 60건, 피해액은 620만달러에 이른다. 2004년의 29건, 335만달러에 비해 두 배나 늘어난 숫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메일을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신고율이 0.3%에 불과하고, 피해를 당하고서도 창피함에 쉬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국정원의 분석이다. 실제 범죄규모와 한국인 피해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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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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