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행, 잠입, 침투, 그리고 암살. 냉전시대 스파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을 법한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이 중동의 현실이다. 1월19일 발생해 2월 하순 전세계 언론을 장식한 두바이에서의 암살사건은 그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고위 간부가 사고사를 위장해 살해된 이 사건의 뒤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건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뒤에 놓인 이스라엘과 이슬람 세력 사이 살육전의 역사를 하나하나 해부했다.
1월19일 살해된 하마스 고위 간부 마흐무드 알마브후흐가 알부스탄로타나 호텔에서 객실로 들어가기 직전 폐쇄회로 TV에 찍힌 화면. 뒤쪽에 알마브후흐가 예약한 방을 확인하기 위해 테니스복 차림으로 미행해온 살해 용의자 2명이 보인다.
오후 8시24분, 새 신발이 들어 있는 비닐 백을 들고 호텔로 돌아온 그는 다음날 오후 1시20분 자신의 방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체크아웃 시간이 돼도 그가 방에서 나오지 않자 호텔 직원들은 비상열쇠로 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처럼 침대에 다소곳이 누워 있는 시체. 호텔 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일단 자연사로 추정했다.
사인(死因)은 9일이 지난 후에야 밝혀졌다. 두바이 경찰청 소속 검시관 파우지 빈 오므란 박사는 사체를 부검하고 각종 검사를 실시한 끝에 살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27년 경력의 오므란 박사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살인 방법이 교묘했기 때문이었다.
부검 결과 피살자는 귀와 다리, 가슴, 성기 등에 전기충격을 받은 흔적이 있었다. 오므란 박사는 피살자가 전기쇼크에 따른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위장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피살자가 숨져 있던 침대의 전등이 분해돼 있었고, 피살자는 심장질환으로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심장질환이 있는 고혈압 환자가 전기충격을 받을 경우 사망할 수 있다. 오므란 박사는 전등을 잘못 조작해 전기 충격으로 자연사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피살자의 진짜 사인은 누군가 얼굴을 베개로 덮어 질식케 한 때문이라는 것. 베개에는 피살자의 코에서 나온 혈흔이 남아 있었고, 피살자의 몸에는 수술 마취제로 자주 사용되는 근육이완제 숙시닐콜린이 투여된 것으로 밝혀졌다.
‘Do not disturb.’
사인이 살인으로 판명되자 두바이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가장 먼저 확인된 사실은 피살자의 이름과 여권이 모두 가짜였다는 점이었다. 피살자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고위 간부 마흐무드 알마브후흐(50)였다. 알마브후흐는 1989년 이스라엘 병사 두 명을 납치하고 살해한 사건으로 이스라엘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물이다.
하마스 군사조직 알카삼 여단의 창설멤버였던 그는 가자지구에 무기를 밀반입하는 총책이었다. 그가 두바이를 방문한 목적은 이란의 무기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경호원조차 대동하지 않은 채 극비로 두바이에 온 그는 독살을 우려해 항공기에서는 물론 공항이나 호텔에서도 물이나 음식물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이처럼 조심스러운 행보에도 불구하고 그가 암살됐다는 것은 범인들이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했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두바이 경찰은 범행수법이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과거 암살사건들과 유사하다고 보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두바이 경찰은 호텔과 공항에 설치된 CCTV를 토대로 범인들의 윤곽을 좁혀갔다. 두바이 경찰이 공개한 CCTV를 보면, 암살단은 알마브후흐가 두바이에 도착하기 전 두바이 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왔고 알마브후흐의 방 건너편인 237호에 투숙했다. 알마브후흐가 체크인할 때는 테니스 라켓을 든 반바지 차림 암살자 2명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따라붙어 직접 투숙 객실을 확인했다. 알마브후흐가 외출했다가 다시 호텔 방으로 들어간 지 3분 후 복도에서 여성 암살단원이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 잡혔다.
알마브후흐의 방은 카드로 개폐가 되는데, 오후 8시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카드로 방을 열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암살자 4명은 알마브후흐의 방에 미리 들어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알마브후흐가 방에 들어간 후 이들이 알마브후흐의 방에서 나와 호텔을 떠난 시각은 오후 8시46분이었다. 암살에 걸린 시간은 20분 정도였다. 이들은 ‘방해하지 마시오(Do not disturb)’라는 표지를 방문 앞에 걸어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알마브후흐의 부인이 오후 9시께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 때는 알마브후흐가 이미 살해된 후였다. 범인들은 암살이 성공하자마자 두바이 국제공항을 통해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홍콩 등으로 잇달아 출국했다.
하마스 간부 암살에 참여한 아일랜드 국적의 여성 게일 폴리어드의 수배사진. 모사드의 암살전문조직 키돈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두바이 경찰이 밝힌 모사드의 암살단은 최소 26명이나 된다. 2월24일 발표한 용의자 공개수배 내용을 보면, 암살단이 사용한 서방국가의 여권은 영국이 12개로 가장 많고 아일랜드 6개, 프랑스 4개, 호주 3개, 독일 1개였다. 이들 가운데 남성은 20명, 여성은 6명이다. 두바이 경찰은 이들이 모두 UAE에 들어올 때 비자를 받지 않아도 되거나 입국시 정밀검사 등을 거칠 필요가 없는 국가의 여권을 이용했다며 사건 발생 수개월 전 두바이에 들어와 잠복하면서 암살 작전을 사전에 준비하거나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여권 분실한 적도 없다”
암살단이 위조한 여권에 기재된 인물들은 대부분 실존하는 사람들이며 이스라엘 국적이 있는 이중국적자들이었다. 영국 외무부는 암살사건 용의자들이 사용한 영국 여권은 모두 실제 살아 있는 인물의 신상정보와 여권을 도용해 정교하게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아일랜드와 독일 정부도 범행에 사용된 자국 여권이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에 이름이 적혀 있는 바람에 졸지에 ‘킬러’가 된 실제 인물들은 “여권을 분실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영국 켄트 출신의 폴 킬리는 두바이를 방문한 적도, 여권을 잃어버린 적도 없었다. 킬리는 15년 전부터 이스라엘의 한 키부츠(집단농장)에서 거주하고 있다.
모사드는 그동안 해외 암살임무 등에 외국 여권을 자주 위조해 외교 분쟁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 요르단에서 발생한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마아샬의 암살 기도 사건이다. 가짜 캐나다 여권으로 요르단에 잠입한 모사드 암살단은 당시 마아샬의 귀에 독극물을 주사하는 수법으로 죽이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마아샬의 경호원들이 암살단 중 두 명을 현장에서 붙잡는 바람에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에는 심각한 외교적 갈등이 빚어졌다. 캐나다 정부도 강력히 항의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당시 이스라엘 총리는 할 수 없이 요르단 정부에 해독제를 제공했으며 수감 중이던 하마스 조직원 22명을 풀어줘야 했다. 석방된 인물 중에는 하마스의 창시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도 포함됐다. 당시 모사드의 최고책임자였던 대니 야톰 국장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반면 죽음 직전에 살아난 마아샬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로 부상했다.
눈웃음 흩뿌린 미녀 비밀요원
이번 암살 사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모사드가 여성요원들까지 작전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CCTV를 보면 게일 폴리어드(26)라는 이름의 아일랜드 국적 여성은 암살대상인 알마브후흐와 호텔 복도에서 단둘이 맞닥뜨렸을 때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하며 지나쳐 갔다. 캐주얼 정장 차림에다 금발머리인 게일의 표정에서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호텔 체크인 당시 호텔 직원들과 밝은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는 등 시종일관 환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모습은 암살단원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녀는 평범한 여행객처럼 호텔 수영장과 레스토랑을 드나들었고, 복도에서 호텔 직원과 마주치면 먼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2월21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그녀가 모사드의 암살·납치 전담 부서인 ‘키돈(Kidon)’의 일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키돈은 히브리어로 총검(銃劍·소총에 꽂아 사용하는 단검)을 뜻한다. 키돈의 여성단원들은 2년간의 훈련에서 각종 무기와 폭발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을 배운다. 또 미행기법, 호텔 객실 침입방법, 속옷 안에 권총을 은폐하는 기술, 위장술 등도 교육받는다. 이와 함께 성(性)을 이용한 작전도 서슴지 않는다. 모사드는 키돈 여성요원의 역할과 중요성과 관련해 “여성은 남성이 가지지 못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다”면서 “여성은 남녀 사이의 잠자리 대화(pillow talk)를 통해 정보를 얻는 데 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키돈은 48명의 소수정예로 구성돼 있다. 현재 이스라엘 야당인 카디마당의 대표인 치피 리브니(52) 전 외무장관도 젊은 시절 키돈의 파리 지부에서 활동한 바 있다.
키돈 여성요원의 존재는 이스라엘의 핵 기술자 모르데차이 바누누를 납치하는 과정이 2004년 세상에 알려지면서 드러났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 사실을 폭로한 바누누는 1986년 런던 도피 중 신디라는 암호명의 키돈 여성요원에게 유혹당해 로마로 밀월여행을 떠났다. 그가 신디와 탑승했던 항공기에는 모사드 요원 5명이 동승했고, 로마의 호텔 방에도 이미 모사드 요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마취주사를 맞은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을 이스라엘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이번 암살작전을 승인한 것으로 전해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 끝)와 작전의 최고책임자로 추정되는 메이르 다간 모사드 국장(작은 사진).
두바이 경찰의 실력
암살단은 공항 대기조, 호텔 정찰조, 암살 실행조 등으로 나뉘어 각자의 임무를 수행했다. 호텔에서는 여러 팀의 2인1조 정찰조가 동원됐다. 테니스복 차림의 남성 2명이 알마브후흐를 미행해 객실번호를 알아내자 얼굴 노출을 우려한 듯 이후 호텔 정찰 임무는 곧바로 남녀 2인1조의 정찰조에 넘어갔다. 암살 실행조에도 건장한 체구의 남성 4명이 동원됐다. 알마브후흐를 완력으로 완벽하게 제압해 다른 투숙객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암살단은 범행이 이뤄진 호텔 이외에도 알마브후흐가 두바이에서 머물 때 자주 이용했던 호텔에도 여러 명의 요원을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에 따라 제2, 제3의 작전 시나리오까지 준비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사드는 과거 암살 작전에도 수십 명씩 동원한 사례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8년 튀니지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군사지도자 칼릴 알 와지르 암살사건이다. 당시 30여 명으로 구성된 암살단은 배편으로 튀니지 해안을 통해 침투, 알 와지르를 살해했다. 일부는 관광객으로 가장해 알 와지르의 집을 포위했고 일부는 튀니지 군복을 입고 거리를 봉쇄했다.
모사드는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지만, 타살 흔적을 남긴 데다 암살단의 모든 동선이 CCTV에 노출되면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두바이에 설치된 CCTV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두바이 정부는 치안유지를 위해 시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장소에 CCTV를 설치해두었다. 모사드도 두바이 전역에 CCTV가 설치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두바이 경찰이 이를 분석할 능력이 없거나 최소한 분석에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타밈 경찰청장은 “암살단의 움직임은 CCTV에 1초 단위로 찍혀 있다”면서 “암살단이 우리를 얕잡아 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당신들을 믿고 있다”
모사드의 비밀공작을 폭로한 책 ‘이스라엘의 은밀한 작전’의 저자인 로넨 베르그만은 “짧은 시간 내에 수많은 출입국 정보와 CCTV 화면을 추려내고 짜 맞춰 큰 그림을 그려낸 두바이 경찰의 분석능력은 예상외로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특히 범행에 사용한 여권들이 유럽 국가와 호주 국민의 명의를 도용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관련국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이스라엘은 외교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됐다. 이스라엘 정부는 모사드가 이번 사건에 개입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며 사태를 수습하려 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과연 이렇듯 대담한 암살 작전은 누가 지시한 것일까.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2월21일 모사드의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작전의 최종 결정권자가 네타냐후 총리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네타냐후 총리가 1월 초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 외곽의 모사드 본부 미드라샤를 방문해 알마브후흐 암살 작전을 브리핑 받았다고 전했다. 당시 메이르 다간 모사드 국장이 브리핑했으며 현장에는 네타냐후 총리 외에 장성 1명과 일부 암살단원들이 있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다간 국장에게 “이스라엘은 당신들을 믿고 있다”고 격려까지 했다는 것이다. 암살단은 텔아비브에 있는 유사한 호텔에서 호텔 관계자들 몰래 암살 작전 예행연습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2008년 12월27일부터 2009년 1월18일까지 22일간 전쟁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당시 하마스가 무장을 잘 갖춘 데다 이란과 시리아로부터 밀반입한 카튜샤(Katyusha)와 그라드(Grad) 로켓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사거리 20~40㎞인 이들 로켓은 이스라엘 인구의 10%가 거주하는 남부지역을 공격할 수 있었다.
모사드는 이때부터 이란에서 무기를 몰래 들여온 인물이 누구인지 추적해왔고, 알마브후흐가 가자지구에 이란으로부터 로켓을 밀반입하는 임무를 맡아온 것으로 파악했다. 알마브후흐는 1960년 가자지구의 제발리야 난민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다가 20대 중반에 하마스의 모태가 된 무슬림형제단 가자지구 지부에 가입했다. 1986년 무기소지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던 그는 1987년 제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봉기)가 일어나자 하마스의 군사조직 알 카삼 여단의 창립멤버가 됐다. 이스라엘 병사 납치·살인 사건으로 수배된 그는 이집트를 거쳐 시리아로 망명했다.
타고난 전사
이후 그는 은밀하게 두바이를 드나들면서 이란과의 무기 밀거래를 주도해왔다. 하마스 지도부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그의 비밀활동을 알고 있었다. 모사드는 그가 이란 측과 접선하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요원들을 두바이로 파견해왔다. 두바이 경찰은 이와 관련해 암살 용의자 가운데 8명은 지난해부터 네 차례 이상 두바이를 드나들며 사전 작업을 벌였다고 밝혔다.
알마브후흐의 행적이 꼬리가 잡힌 것은 올해 초다. 그는 가자지구에 있는 친척에게 휴대전화를 걸면서 두바이에 간다는 사실을 무심결에 얘기했다. 또 인터넷으로 자신이 숙박할 호텔을 예약하기도 했다. 모사드는 사실 확인을 위해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의 앙숙인 파타당 협력자들로부터 추가정보까지 입수했다.
게임의 다른 한쪽에는 암살 작전을 전체적으로 지휘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간 모사드 국장이 있다. 두바이의 타밈 경찰청장은 관영 일간지 ‘에마라트알윰’과 한 2월27일자 인터뷰에서 다간 국장에 대해 “범행을 인정하거나 스스로 혐의를 반박해야 한다. 겁내지 말고 남자답게 진실을 말하라”고 압박했다. 타밈 경찰청장은 “확증을 잡으면 국제 체포영장에 다간 국장과 네타냐후 총리의 이름을 제일 먼저 올리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다간 국장이나 모사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올해 65세인 다간은 모사드 역사상 최장수 국장이다. 다간 국장의 사무실 벽에는 나치 독일 SS 친위대원이 그의 할아버지 머리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다. 그는 항상 이 사진을 바라보며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온 강경파다. 그를 모사드의 수장으로 발탁한 인물 역시 강경파인 아리엘 샤론 전 총리다.
2002년 제10대 국장으로 취임한 그는 “이빨 사이에 칼날을 문 것처럼 일하라”고 요원들에게 지시하는 등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의 군사전문기자 아미르 오엔은 그를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거리의 싸움꾼)’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의 이력을 보면 한마디로 타고난 전사라고 할 만하다.
1945년 옛 소련 시베리아의 한 기차 안에서 태어난 그는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던 부모를 따라 1950년 고향인 노보시비르스크를 떠나 텔아비브 인근의 바트 얌이란 조그만 도시로 이주했다. 1963년 입대한 그는 공수부대에서 근무했으며, 1967년 ‘6일전쟁’ 때 중대장으로서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에서 전투를 지휘했다. 1970년대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특수비밀부대장을 역임한 그는 1982년 레바논전쟁 때 여단장으로 참전했다. 이후 그는 정보수집과 특수작전을 주요 임무로 하는 ‘유닛504’의 부대장을 지내다 1995년 예편한다.
1년이 지난 후 다시 현역에 복귀한 그는 대(對)테러본부장을 거쳐 이스라엘군 총참모부 작전참모와 참모총장 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모사드 국장으로 발탁된 그는 2007년 퇴직할 예정이었지만, 에후드 올메르크 당시 총리의 지시로 임기를 두 차례 연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도 지난해 8월 그의 임기를 올해 말까지 연장하는 조치를 내렸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그의 취미는 의외로 그림 그리기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마을을 비롯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광경을 화폭에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그림 그리기에 대해 ‘군인세계와 실제 삶 사이의 균형을 맞춰주는 수단’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텔아비브 대학에서 그림과 조각을 공부한 그의 실력은 직업화가로 나서도 될 만큼 수준급이다.
젊은 시절 작전 중 다리 부상을 당했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 않는다는 그가 이례적일 만큼 오랜 기간 모사드 수장을 맡고 있는 것은 탁월한 업무능력 때문이다. 특히 그는 이란 핵 문제의 최고전문가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 때문에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매우 우려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가 다간을 중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신임이 두터운 그는 불도저처럼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암살 작전을 실행에 옮길 때도 외국의 눈치를 보거나 외교관계가 잘못될 것을 의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과감하고 단호하게 적을 제거하라는 것이 그의 모토다.
죽느냐 죽이느냐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2008년 2월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발생한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사령관 암살 작전이다. 당시 이마드 무그니예 사령관은 자신이 탄 지프 승용차의 머리받침대 부분에 설치돼 있던 폭발물이 터지면서 머리가 잘려 숨졌다. 2007년 9월 시리아가 북한과 이란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건설 중이던 핵 시설을 이스라엘 공군이 폭격, 파괴한 것도 모사드가 결정적인 단서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당시 모사드는 런던의 한 호텔에 투숙 중이던 시리아 고위관료의 노트북 컴퓨터에서 핵시설에 관한 정보를 빼냈다.
시리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심복이자 시리아 안보정책의 총책인 모하메드 술레이만 준장의 지휘로 이스라엘의 해외공관에 테러공격을 준비해왔다. 정보를 포착한 모사드는 2008년 8월 술레이만의 별장이 있는 시리아 타르투스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던 술레이만을 암살한다.
다간은 그동안 모사드를 자국의 안보위협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으로 개편해왔다. 그는 특히 신분을 위장해 도청과 침투급습, 범인추적 등에 전문기술을 갖춘 일종의 ‘기동타격대’ 같은 작전팀을 새롭게 만들었다. 그의 재임기간 중에 모사드가 자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암살사건이 급증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국제사회에선 모사드가 살인집단으로 변모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모사드의 활동은 국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모사드는 지금도 새로운 목표를 제거하기 위해 치밀한 암살 작전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