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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브실 고택 애일당 지키는 處士 강기욱

저녁엔 노을빛이, 밤엔 달빛이 가슴속에 들어오니…

너브실 고택 애일당 지키는 處士 강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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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장성 너브실의 가장 큰 고택 애일당에서 사는 강기욱씨는 단 한번도 직장을 가져본 적 없는 ‘프로백수’다. 강씨는 집을 관리해주는 대가로 매달 50만원을 받으며 생활한다. 집 관리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그는 부인, 두 딸과 함께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연 속 넓은 고택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강씨의 한 폭 산수화 같은 인생.
너브실 고택 애일당 지키는 處士 강기욱

강기욱씨는 자기를 팔지 않고도 세상을 살 수 있다며 백수로서의 삶을 예찬했다.

바야흐로 백수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의 유행은 ‘백수시대’의 진입을 알리는 북소리다. 이 북소리는 월급쟁이들의 종말을 알리는 공포의 소리인가, 삶의 낡은 모델이 퇴조하고 새 모델이 등장함을 알리는 출발의 소리인가.

전남 장성의 고택에서 유유자적하는 처사(處士) 강기욱(姜基旭·43)씨는 이를 새 출발의 북소리라 한다. 그는 대학졸업 후 단 한 번도 직장을 가져본 적 없는 ‘프로백수’다. 그렇다면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을 정도로 재산을 모아놓았을까. 그건 아니다. 그는 가진 것도 거의 없다. 그런가 하면 독신도 아니어서 부인도 있고 자식도 둘이나 된다. 그렇다면 농사짓고 사는가. 아니다. 하루종일 논다. 자본주의의 원칙을 배신하면서 사는 것이다. 돈도 없고, 직장도 없고, 처자식마저 딸린 그는 사지육신이 멀쩡하게 생존해 있다. 아니 생존차원을 넘어서 마치 ‘백수의 제왕’처럼 삶을 음미하면서 산다. 마치 백수시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도대체 그는 어떤 인생관을 가졌을까.

3500평 전망 좋은 고택에 기거

백수의 제왕이 기거하는 곳은 품격 있는 대저택이다. 호남선 장성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10km 정도 가면 ‘너브실(廣谷)’이라는 곳이 나온다. 동네 앞에 나주평야가 넓게 펼쳐 있다고 해서 ‘너브실’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 동네는 행주 기씨(幸州奇氏)의 집성촌으로 40~50가구의 기씨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퇴계와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을 벌인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1527~72)의 후손들이다.

강기욱씨가 머무는 곳은 너브실에서 가장 큰 고택 애일당(愛日堂)으로 고봉의 13대 후손인 기세훈 변호사가 소유주다. 고봉의 6대 후손인 기언복(奇彦復)이 숙종 때 터를 잡은 이래 3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집이다. 대지만 3500평의 저택으로 닭장 같은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대문 앞에 서면 대궐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랑채 뒤쪽으로는 700평 넓이의 대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예로부터 대나무숲 그늘은 번뇌의 열기를 식혀주는 효력이 있다고 했다. 마당에는 주먹만한 목련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노란 창포꽃이 소복이 피었다. 조그만 연못에는 붉은 색 금붕어 5~6마리가 꼬리치며 노닌다. 봄볕은 따사롭고 꽃향기는 코를 간질인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정답 아닌가! 이처럼 유서 깊고 전망 좋은 고택에서 강기욱씨 일가는 삶을 누리고 있다.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 이런 저택에서 산단 말인가! 그것도 백수신분에.



-어떻게 이런 호화저택에서 살게 되었나.

“원래 이 집은 비어 있었다. 후손들이 모두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들어와 살겠다고 하니 집주인이 흔쾌히 허락했다. 한옥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망가진다. 사람이 살아야 오래간다. 물론 집세는 없다. 공짜로 살면서 집을 관리해주는 셈이다. 오히려 집주인으로부터 관리비를 받는다.”

한 달 네 식구 생활비 50만원

-도대체 뭘 먹고사는가.

“서울에 사는 집주인이 빈집을 청소하고 관리해준다고 해서 매달 50만원씩 보내준다. 그게 공식적인 수입의 전부다. 간혹 광주지역 문화답사단체에서 단체로 답사를 떠날 때 안내를 맡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약간의 사례비를 받는다. 우리 네 식구 한 달 생활비는 50만원으로 1년에 600만원이면 충분하다. 아이들은 딸만 둘이다. 큰애는 초등학교 3학년이고 작은애는 1학년이다. 시골이라서 과외비가 들어갈 일이 전혀 없다. 김치를 비롯한 채소와 우리 식구 한 달 먹는 쌀 두 말은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부모님 집에서 가져다 먹는다. 돈 들어가는 부분은 10년 된 중고차를 움직이는 기름 값과 가끔 광주에 나가서 가족들과 함께 영화 보는 것밖에 없다.”

-외롭지 않은가. 하루종일 뭐하고 지내는가.

“사람들이 내게 묻는 질문이 거의 늘 똑같다. 뭘 먹고사느냐는 것과 외롭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 집에 들어온 후 처음 3년은 외로웠다. 때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나는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외부사람과의 교제도 거의 없다. 어떻게 보면 무위도식의 삶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열등감이었다. ‘내가 사회로부터 완전히 낙오되었는가. 나는 낙오된 인생을 사는 것인가’ 하는 열등감 말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데 3년이 걸렸다. 누구보다도 집사람이 큰 위안이 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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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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