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 채택에서 중국은 예상과 달리 ‘불참’이나 ‘기권’을 택하지 않고 ‘찬성’ 쪽에 손을 들었다. 1948년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래 유엔에서 중국이 북한을 제재하는 데 찬성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9월 들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하 ‘김정일’로 표기)의 방중(訪中) 계획설이 계속 나오면서 북중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대북 금융조치 이후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북 간의 정세가 과거에 비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미중 간 이해관계의 공통분모도 많아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8월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에 변화가 와도 미국이 한반도에서 상황변화를 주도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이는 한반도 문제를 중국과 동격의 지위에서 논의하겠으며, 북한에 변화가 있을 때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는 발언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따라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북한 문제이며, 그 가운데서도 북중관계가 과연 어떻게 변화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황장엽(黃長燁·83) 북한민주화동맹 위원장은 북한에서 당 중앙위원회 국제비서를 지냈다. 중앙당 국제비서는 북한 외교의 전반적인 노선을 지도하는 직책이다. 북한의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에 집중된다. 1991년 이후 한러, 한중 수교로 남한에서도 중국, 러시아 전문가가 과거에 비해 많아졌고 유능한 전문가도 늘었다. 그러나 ‘북중관계’를 깊이 아는 사람은 아직 드문 편이다. 무엇보다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사이의 협력과 갈등의 역사를 이론과 실천 양측면에서 깊이 있게 알아야 하는데, 남한에서는 근 50여 년 동안 이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황장엽 위원장은 북중, 북러 관계를 깊이 있게 알고 있는 남한 내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북한에서 일하는 동안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비롯한 많은 중국 고위층 인사와 교분을 쌓았다. 1997년 망명 때 그를 도와준 중국측 인사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북중관계를 비롯한 북한 문제 전반에 관한 그의 이야기에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와 최근의 북한 미사일 발사, 유엔 안보리 결의로 촉발된 북중관계의 이상신호를 그는 과연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8월28일 그는 탈북자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에 출연해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황 위원장은 이날 방송에서 “요즘 북한을 보면 김정일 정권이 망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정권이 어느 시점에 제거되겠는가 하는 문제는 예측하기 곤란하다”면서도 “김정일 정권이 망한다는 것은 탈북자들이 자꾸 나오는 것만 봐도 명백하다”고 언급했다.
이날 그의 언급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그동안 황 위원장은 북한 정권 붕괴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해왔다. 그러나 이날 “나는 지금까지 김정일이 빨리 망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왔다”면서 그러나 “요즘 북한 정권의 행동을 보면 어느 때 어떻게 될지 예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정일 정권이 예상보다 빨리 붕괴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