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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이 들려준 ‘변호사 노무현’의 좌충우돌 법정 비화

판사에 반발해 자료 내던지며 퇴장… 서류 한 장도 직접 떼던 성실한 변호사

변호사들이 들려준 ‘변호사 노무현’의 좌충우돌 법정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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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반은 주로 근로자 노임 관련 소송을 했어요. 한번은 해고무효 확인소송 소장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청구 원인이 기재되지 않은 백지인 거라요. 변호사가 소장에 청구 원인을 적는 건 기본 아닙니까. 청구 취지의 원인이 되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하는데, 백지를 냈다니까요. 예를 들어 사업자를 상대로 해고를 당했으면 ‘내가 언제 피고 회사에 취직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사유로 해고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청구 원인을 써서 제출해야 하거든요. 재판이라는 건 청구 원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거잖아요. (청구 원인을) 나중에 보완하더라도 백지로 내는 경우는 없어요. 법정에서 제가 ‘청구 원인을 안 쓴 것을 보니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재판을) 연기하고 다음에 청구 원인을 보완해서 한꺼번에 합시다’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은 노무현 변호사는 법정을 발칵 뒤집어놓았다고 한다.

“(노 변호사가) ‘오늘 꼭 진술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려요. 청구 원인 진술 없이 청구 취지만 진술해서는 어차피 재판이 진행되지 않거든요. 이 양반이 왜 이러나 싶더라고요. 재판을 연기하나 청구 취지만 진술하나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도 막 우깁디다.”

재판 기일도 모른 채 퇴장

정 변호사는 “우기기만 했다면 (이토록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들려줬다.



“(제가) ‘재판을 연기하자’고 하니 눈을 부릅뜨고는 기록 보따리를 땅바닥에 팍 내려치는 겁니다. 그러곤 법정 문을 쾅 닫고 나가는 거라요. 판사들이 모두 당황했죠. 청구 원인이 없는 소장을 냈는데도 판사가 두말없이 연기해줬으면 오히려 ‘감사하다’고 해야 할 판국인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변호사라는 사람이 재판 기일도 모른 채 가버린 겁니다. 말이 안 되잖아요. (제가) 법복을 입은 채 따라 나갈 수도 없고, 너무 어이가 없어…. 이런 경우 판사는 변호사를 법정모독죄로 유치장에 하루쯤 감치(監置)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감치하려 해도 사람이 법정에 있어야 말이지. 참 무례한 행동이었죠.”

정 변호사뿐 아니라 ‘변호사 노무현’을 기억하는 많은 변호사는 한결같이 그를 “자기 뜻대로 안 해주면 고함을 지르거나 기록을 팽개치는 변호사”라고 기억했다.

대구지역에서 향판으로 25년 동안 재직한 여춘동(呂春東·69) 변호사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1985년 이전엔 부산에 고등법원이 없어서 항소사건을 모두 대구에서 처리했어요. (노무현 변호사는) 항소하러 자주 올라왔어요. 오래되어 어떤 사건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스타일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요. 별것 아닌데도 막 이상하게 나오는 스타일이었어요. 화낼 일도 아닌데 벌컥 화를 내고…. 노무현 변호사가 법정에서 고약하다고 소문이 나서 판사들이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변호사 노무현’을 기억하는 김모 변호사는 “(노무현은) 독특한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소송법을 배운 변호사가 어떻게 그런 억지를 부릴까 싶을 정도였어요. 이미 소송대리인으로 선임된 변호사가 참석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선임계도 안 내고 자신이 적법한 변호사라면서 원고석에 들어섰다니까요. 재판부가 ‘그 문제는 직권조사 사항이니 차후 판단하겠고, 일단 대리권이 적법하다는 소명자료가 없으니 이석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끝까지 버티면서 재판부와 옥신각신했어요.”

김 변호사처럼 “노무현 변호사와 재판해봤다”는 판사 출신 변호사들은 당시 사건내용이나 선고결과는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변호사 노무현’의 스타일에 대해서만큼은 하나같이 정확하게 기억했다.

포항에서 활동하는 김동권 변호사의 말이다.

“(노무현 변호사는) 근로자의 임금이 밀린 사건을 많이 맡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깐깐한 재판장도 재판 도중 서류 던지고 나가버리는 변호사에겐 두 손 들 수밖에 없죠. 같이 흥분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어이없으니 멍한 상태가 돼 바라보기만 하는 거죠. (노무현 변호사는) 법정 예절이 형편없었어요. 그래도 법정에선 위아래가 있고 질서가 있는데…(웃음).”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노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인권변호사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81년 부림사건 변론 이후 변호사들이 꺼리는 학원·노동·인권사건 변론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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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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