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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중국어선 179척 나포한 해경 최유란 경사

“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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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전자충격기로는 약해 모래탄으로 제압
  • ● 동료가 중국 선원에게 살해된 후 더 세게 단속
  • ● 불법 중국 어선들, 서너 번 조업하면 1억 벌어
  • ● 연애는 적성에 안 맞지만 결혼생활은 자신 있어
  • ● ‘영예로운 제복상’ 상금 전액 기부, “내 돈 아냐”
“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강한 해경’ 최유란 경사. 때론 ‘여성’이고 싶다.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을 179척이나 나포한 여경(女警)이라기에 선입관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아마도 드세 보이고 덩치도 클 거라고.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선입관은 여지없이 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무지 힘이라곤 쓸 것 같지 않은 여리고 앳된 모습에 덩치도 작아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도대체 저 몸으로 어떻게 그 흉포하기 짝이 없는 중국 어선을 잡았다는 거야! 나는 속에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의구심을 짓누르며 멀리 목포에서 상경한 그녀를 의례적인 웃음으로 맞이했다.

그녀의 소속은 해양경찰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다. 이름은 최유란. 계급은 경사. 나이? 그게 뭐 대수라고. 이따 물어보자.

최 경사는 지난해 말 동아일보와 채널A가 주관하는 ‘영예로운 제복상’을 받았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 경찰, 해경, 소방관의 노고를 기리려 제정한 상이다. 국방부와 경찰청, 해양경찰청, 소방방재청 추천을 받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거쳐 선정한다. 이번 제3회 수상자는 모두 6명. 상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경장인 그녀가 이 상을 받자마자 경사로 특진했으니.

그녀가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얘길 안 했다면 나의 의구심은 실망감으로 바뀌었을 테고, 어쩌면 인터뷰를 요청한 것 자체를 후회했을지 모른다.

“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상하게도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인가. 과연 여장부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녀는, 중국 어선을 단속하던 동료가 중국 선원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두려움보다는 분노에 휩싸였다고 당차게 말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인터뷰이의 손가락을 훔쳐봤다. 새끼엿가락 같은 그녀의 손가락은 사나운 바다에서 거친 중국 선원들과 몸싸움하기엔 지나치게 곱다. 눈망울은 송아지처럼 큼지막하다.

▼ 여자로서 꽤 험한 일을 하는데, 적성에 맞아서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힘들다는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진짜로, 거짓말 안 하고. 시험 봐서 (해양경찰학교에) 입교한 후 고된 체력훈련을 받았어요. 그걸 마치고 임무를 부여받고 나서는 ‘내가 남자 직원들한테 짐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정말 노력을 많이 했고 힘들어도 내색을 안 했어요. 지금은 남자직원들보다 제가 (배도) 더 잘 타고 (중국 어선을) 더 잘 잡는다고 생각하니 진짜 힘들지 않아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 중국 어선 상대하는 게 무섭지 않나요.

“현장에 투입되면 다른 생각 안 들어요.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동료가 다치는 경우엔 더욱 그래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생각뿐입니다.”

▼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지난해 10월 중국 선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로 체포한 적이 있어요. 그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어떤 상황이었죠.

“조업 허가를 안 받은 배였죠. 우리가 접근하자 거칠게 반항하더라고요. 칼을 던지고….”

지난해 10월 7일 중국 어선 120t급 기풍어(冀豊漁) 60015호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북서쪽 해상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 해경에 적발되자 흉기를 휘둘러 문모 경사 등 4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목포해양경찰서는 선장을 비롯한 선원 13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로 구속했다. 올 1월 26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은 선장에게 징역 4년에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하는 등 관련자 모두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도주한 종선(從船) 선장에게는 벌금 1억 원을 선고했다.

당시 최 경사는 동료 10명과 함께 고속단정에 올라타 중국 어선에 접근했다. 길이 20m가 채 안 되는 단정은 어선보다 덩치가 작았다. 중국 어선이 자꾸 밀어냈다.

“큰 배가 계속 밀어내니 붙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단정이 거의 뒤집힐 뻔했어요. 해수가 차 침몰 직전까지 갔거든요.”

당사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런 무용담은 정말 흥미롭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급하고도 급박한 상황에서 기어이 ‘해적선’을 나포하다니…. 그녀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내가 시집도 못 갔는데 이렇게 죽는구나.’ 갑자기 정적이 흘렀어요. 저희가 헬멧을 쓰고 헤드셋으로 서로 통화하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 다들 아무 말이 없었던 거예요. 그 일을 겪은 후 내가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위급한 상황에서 ‘시집 못 간 것’을 생각하다니. 이건 휴머니티와 리얼리티의 극치다. 만약 그녀가 그 순간 가족이나 동료들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면 나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 선원들의 저항은 단순하면서도 거칠었다. 배 안의 모든 쇠붙이가 흉기로 변해 해경에 날아왔다. 쇠파이프, 쇠꼬챙이, 칼…. 최 경사를 비롯한 해경 대원들은 방패로 막으며 기어이 중국 어선에 올라탔다. 당연히 뭘 쐈겠지.

“모래탄이 든 12게이지 샷건을 쐈는데, 다리에 4, 5발 맞고도 쓰러지지 않더라고요. 우리가 갑판에 올라가니 그제야 아프다면서 쓰러지더라고요. 도와달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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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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