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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선언 양준혁의 불꽃 야구 인생

“단 한번도 야구를 즐긴 적 없다, 오직 죽자 사자 뛰었을 뿐”

은퇴선언 양준혁의 불꽃 야구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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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삼성라이온즈는 내게 고향, 첫사랑, 오래된 연인”
  • ● “사장한테 큰소리쳤다가 해태로 쫓겨났다”
  • ● 가장 자랑스러운 기록은 최다 안타, 최다 4사구
  • ● 공은 눈이 아니라 오른발로 봐라
  • ● “선수협 안 되면 죽어버리려 했다”
  • ● “감독·코치 안 한다, 청소년 야구리그 만들겠다”
은퇴선언 양준혁의 불꽃 야구 인생
양준혁(41)은 달렸다. 6대 6으로 팽팽히 맞선 9회말 1사 1, 2루. 대타로 나선 그는 원 스트라이크 원 볼 뒤 3구를 노려 좌익수 왼쪽으로 빠지는 안타를 쳐낸 참이었다. 용수철처럼 튀어나간 공이 좌측 펜스를 때리자 좌익수는 따라가기를 포기했다. 승패는 이미 갈린 것이다. 그러나 양준혁은 계속 달렸다. 1루를 지나 2루까지, 뒤늦게 날아온 공을 2루수가 잡아내 더 이상 뛸 수 없을 때까지. 그가 2루 베이스에서 두 손을 번쩍 든 순간 비로소 경기는 끝이 났다. 7월1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롯데전. 삼성은 양준혁의 끝내기 2루타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대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계속 이 경기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타자들은 끝내기 안타를 치면 으레 1루에서 멈춘다. 승부가 결정됐으니 더 이상 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양준혁은 달렸다. 마치 1회 초 첫 타격에 나선 것처럼.

돌아보면 늘 그랬다. 평범한 투수 앞 내야 땅볼을 치고도 모자가 벗겨지도록 달리곤 했다. 188cm 100kg의 거구로 쿵쿵 땅을 구르며,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 뻔한 1루를 향해 악착같이 뛰었다. 프로야구 통산 최다 출장, 최다 홈런, 최다 안타, 최다 2루타, 최다 득점, 최다 4사구…. 양준혁을 수식할 대기록은 많다. 하지만 그를 추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언제나 조금은 우스꽝스럽던 그 뒷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라운드를 떠났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두 번의 트레이드와 선수협 파동의 오랜 여진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남자, 야구팬들에게 신이라 불리던 사나이. 그가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꼭 10일이 지난 8월 초, ‘양신(梁神)’ 양준혁을 만났다.

“내가 못해서 잘린 것도 아니고…”



그는 덥고 습한 대구구장 그라운드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배팅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여러 선수 중에서도 대번 눈에 띄는 큰 덩치, 그리고 선명한 배번 10번. 양준혁의 움직임을 쫓는 건 어렵지 않았다. 후배들의 타격 자세를 지켜보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던 그는 훈련 시간이 끝날 즈음 비로소 타석에 섰다. 방망이는 매서웠다. 왼쪽, 오른쪽, 가운데. 장타와 홈런이 골고루 날아갔다. 경기장을 훌쩍 벗어나는 장외홈런도 쳐냈다.

▼ 컨디션이 좋아 보입니다. 아까 보니 오른쪽 장외홈런이 나오더군요.

“연습구는 실전 공처럼 강한 게 아니니까 별 의미가 없어요.”

▼ 하지만 타구 비거리가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길던데요.

쏟아지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인터뷰에 응하던 그가 잠시 멈칫했다. 눈을 들어 기자를 쳐다보더니 씨익 웃는다.

“은퇴는 했지만 내가 실력이 없어서 잘린 것도 아니고….”

뭐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투다. 사실 양준혁에게 ‘다른 선수보다 잘 친다’는 말은 칭찬이 아닐지 모른다. 18년 프로선수 생활 중 14시즌 동안 3할대 타율을 기록한 그다. 15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홈런, 16시즌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때려낸 대(大)타자이기도 하다. 다른 선수보다 잘 맞히고, 멀리 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한 번 더 묻기로 했다.

▼ 몸 상태가 선수 시절과 다를 바 없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아이고, 어디 봅시다. 1999년 12월31일하고 2000년 1월1일, 뭐가 다릅디까. 카운트다운만 요란했지 날짜 바뀐 거말고는 똑같잖아요. 나도 같아요. 훈련도 똑같이 하고 있고요.”

그는 은퇴 선언과 동시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지만, 시즌이 끝날 때까지 후배들과 함께 팀 훈련을 할 거라고 했다. 그의 한마디에 인터뷰는 순식간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양준혁의 은퇴 발표 후 야구팬들이 가장 궁금해 하던 이야기를 스스로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잘 뛸 수 있는데 왜 시즌 중 돌연 은퇴를 결심했느냐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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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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