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철(姜基哲·80) 비교문명연구소 소장이 70여 년간 소중히 간직해온 항일화를 오는 10월 개관할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고(故) 춘천(春泉) 이영일(李英一) 화백의 ‘응추백로도’(1929년 작)가 그것. 이 그림은 100호가 훨씬 넘는 대작으로, 세 마리 백로를 공격하는 매의 모습을 통해 삼천리강산을 강점한 일제의 침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영일 화백은 1920~30년대 선전(鮮展)에서 5년 연속 특선작을 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이후 ‘화필보국(畵筆報國)’을 강요하는 일제에 저항하는 뜻으로 작품활동을 중단했다. 그런 연유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이 얼마 되지 않기에 이 작품의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강 소장은 망국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줄 이 그림을 지켜내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엔 이 그림이 결코 공개될 수 없었어요. 이 화백이 제 매부와 친분이 있었고, 독립운동을 하던 선친을 잘 알기에 우리 문중을 믿고 그림을 넘겨준 거죠. 일본경찰의 탄압도, 6·25전쟁도 이 그림을 해치진 못했습니다.”
통일된 조국에 이 작품을 헌사하고자 기다려왔다는 강 소장은 “비록 통일은 되지 않았지만, 일본이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미화하는 작태를 일삼고 있어 계획했던 것보다 일찍 내놓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