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아이 같은 아저씨’ 김창완이 말하는 삶과 행복, 그리고 음악

“‘나이 든 나’가 ‘젊었던 나’를 더 좋아할 순 없어요”

  • 구가인│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9-02-04 18: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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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완씨 어떨까요?” “산울림 김창완?” “이번에 새로 젊은 애들이랑 ‘김창완밴드’라고 만들어서 음반도 내고 콘서트도 했는데….” 아이돌에 관심이 많은 스물 몇살 기자가 조심스럽게 김창완을 인터뷰하겠다고 하자, 요즘 연예인 얘기엔 통 시큰둥한 쉰 살의 편집장이 웬일로 흔쾌히 허락한다. “재밌겠다, 해봐.” 김창완은 20대와 50대 모두에게 궁금한 인물인가 보다.
    ‘아이 같은 아저씨’ 김창완이 말하는 삶과 행복, 그리고 음악

    1월12일 목동 SBS스튜디오에서 방송 중인 김창완. ‘라디오 스타’이기도 한 그는 현재 SBS 라디오‘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쉰여섯이 된 김창완은 ‘아저씨’로 통한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만이 아니다. 30대 매니저도, 20대 방송국 작가들도 모두 그를 ‘아저씨’라고 부른다(한편 많은 남자 후배들에게 그는 ‘형님’이기도 하다) . 이제는 ‘전설’이 된 그룹 ‘산울림’의 아우라를 배제한다손 쳐도, 통상적으로 그 정도 나이와 경력이라면 ‘선생님’ 으로 불리는 게 맞다. 그런데 아저씨라니?

    김창완에겐 왠지 ‘선생님’보다 ‘아저씨’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본인도 아저씨라 불리는 것에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사실 그는 데뷔 때부터 줄곧 ‘아저씨’였다. ‘오빠’라는 말이 어색했던 1970년대의 10대 팬들은 20대의 산울림을 아저씨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좀 다른 ‘아저씨’다. 우리가 품은, 최소한 기자 나이 또래의 고정관념 속에 있는 40~50대의 권위적이거나 기름진, 혹은 그렇고 그런 남자 어른의 상(像)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거장’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본인은 ‘거장’이라는 말에 대해 거부감을 표했지만) 가요계의 존경받는 ‘어른’이지만, 아들뻘 되는 후배 뮤지션 에픽하이와의 공연에선 세대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지난 연말 서울 홍대 앞 클럽에서 열린 김창완밴드 공연도 “아저씨 멋져요”를 외치는 젊은 팬들로 가득했다는 후문. 인터넷에서는 10대 혹은 20대가 올린 듯한 “가수인지 몰랐는데 음악을 듣고 좋아하게 됐다” 유의 글이 많다. 대중문화 속에서 희화화되며 인기를 얻고 있는 여타 중년들과는 다른 모양새로, 고유한 자신의 색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 홈페이지를 봤는데 최근엔 10대와 20대가 올린 글이 많더군요. 어린 팬이 많은가요?



    “아직 낯설어요. 물론 음악적으로 항상 만나고 싶은 사람은 하이틴이에요. 틴에이저 때 들은 음악이 평생 음악이 된답니다. 물론 그걸 알아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쩌면 저 스스로 데뷔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렇게 나이 들어서도 늘 새 음악을 하고 싶고, 내 아들보다 어린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하고 그래요.”

    ▼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나 요?

    “글쎄, 내가 노력해서 될 만한 것이 있을 거고 노력으로 다가갈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 사람 우리 아빠 또래인데 내가 팬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들의 선입관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게 깰 수 있는 것인가, 산울림 30년 역사가 세월의 보증서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게 혹시 원로라는 족쇄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 안 할 수가 없죠. 근데 이렇게 됐던 저렇게 됐던 창작력은 순수함이나 무모함, 이런 것들을 내포하지 않고는 생겨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 창작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새로운 시도라는 것은 얼마만큼의 무모함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걸 지향하는 한 뭐랄까, 거부감 내지는 하이틴이 나에게 갖고 있는 ‘저 사람 어른 아니야’라는 식의 의혹의 눈초리에서 자유롭진 않겠지만…. 하여간 몸으로 부딪쳐서 해야죠.”

    ▼ 무모함은 아저씨하고는 안 맞는 단어 아닐까요?

    “왜요? 친구들도 제가 새 앨범을 내고 새로 데뷔하는 사람처럼 인터뷰를 하고 방송하는 것에 대해 은근히 갈채를 보내요. 그런데 이런 두려움이 있죠. 신체적으로 목이 빨리 쉰다든지 회복기간이 오래 걸린다든지…. 심지어 아이들이 생각하는 스타는 밴을 타고 다니고 갤러리들이 우르르 쫓아다니고, 이런 모습이기 십상인데, 김치찌개 집에서 몇 안 되는 사람끼리 초라하게 식사하는 모습을 들킨다든지 해서 스타에 대한 환상이 화들짝 깨지면,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을 스타 상을 내가 훼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러면서도 내심 진정한 스타의 모습이 꼭 그렇게 환호나 이런 것에 싸여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픈 마음도 있고. 그런 것도 무모함일 수 있는데, 걔네들 환상이 깨지거나 제가 상처 입는 게 두렵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상당히 이중적이죠.”

    ‘아이 같은 아저씨’ 김창완이 말하는 삶과 행복, 그리고 음악
    THE HAPPIEST

    오랫동안 김창완은 ‘조금은 나른하고 마냥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돼 있었다. 그러나 앞서의 많은 인터뷰에서 그는 줄곧 자신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오해라고 말해왔다. 자신은 사실 무척 치열하게 살고 있으며, 무엇보다 ‘뼛속 깊이 비관주의자’라는 것. 그런데 지난해 말 나온, 그 개인으로는 1997년에 발표한 산울림 13집 이후 11년 만에 낸 음반이자 김창완밴드의 첫 번째 앨범 제목은 ‘THE HAPPIEST’다.

    “전에는 그런 얘기 많이 했어요. 그런데 나이 쉰이 넘으면서 점차 그게 참 철없고 교만한 태도구나 하고 느끼게 됐어요. 이제 비관주의자라는 얘기는 함부로 못해요. 안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게 됐고.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나는 과연 비관주의자인가, 그럼 나를 살게 했던 힘은 뭔가, 그건 어쩌면 내가 숨고 싶어하는 자기방어적인 태도가 강조된 건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 외에도 지난해 뜻하지 않은 사고(동생 창익 씨의 죽음)를 당하면서 다시 한 번 생명을 생각하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그동안엔 생명을 조롱하는 우를 범했는데, 이제는 정말 생명이란 것이 나에게 무얼 요구하더라도 나는 그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살아 있는 존재가 불행하다’ 식으로 생명을 비아냥거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명령이란 건 다른 게 아니고 ‘너 스스로 기뻐하라’는 거 같은데…. 이게 어마어마한 꾸짖음같이 느껴졌어요.”

    ▼ ‘너 스스로 기뻐하라’는 말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인가요?

    “난 노력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생명의 주인이라면 너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는 의미예요.”

    ▼ 동생의 사건이 영향을 줬나요?

    “아뇨, 그렇진 않을 거예요. 그 사건 자체가 (이런 생각을) 격발시킨 건 맞지만 나에게 일어난 이러한 어마어마한 변화에 모든 계기가 된 건 아니에요. (중략) 이전에는 내 삶이 그대로 너무나 완전해서 어떤 것에도 수단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 그게 다 무너졌어요. 이제는 도구로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음악을 하면 그렇게 행복하니 음악의 도구로 쓰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나아가 행복의 도구로 쓰이면 좋겠다, 더 나아가 생명의 도구로 쓰였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해요. 어쨌든 내가 나를 이렇게 ‘대상’처럼 보기는 처음이에요.”

    ▼ 대상이요?

    “나에게 있어 나는 나의 주인이다, 이런 생각을 많이 갖잖아요. 그런데 요즘엔 그게 별 의미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인간은 워낙 이기적이기 때문에 이 ‘자기’라는 것을 구축해나가요. 자기 것을 확보하고, 자기 사고에 자기를 옹립하고, 자기 사고의 주인으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섬기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래서 생겨난 자기라는 것은 기억의 적분, 기억과 경험의 누적 이외엔 아무것도 아닐 텐데…. 그거 모아봐야 한 줌 모래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잡고, 자기 조정에 내맡기고 삶을 살잖아요? 그런데 이제 저는 생이, 삶이 순간에 완성된다고 믿게 됐어요.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앉아서 이런 얘길 하고, 생이 무엇일까 어리둥절하면서 말을 이어가고, 그 사이에 구 기자도 생이 뭘까 생각하고.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안다고 하면 거짓이죠. 하지만 이런 상태, 내 눈앞에 펼쳐져 시야가 다가가는 것, 내 이전의 경험과 나를 관통하는 시간들. 이 순간이 아니면 나를 완성하는 시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그렇다면 행복이란 뭔가요?

    “‘삶은 순간에 완성된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통하는 것 같아요. 제목이 ‘The Happiest’인 건 이 순간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는 희망일 수도 있고, 행복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일 수도 있어요.”

    화석이 된 청춘, 산울림

    ‘산울림’을 빼놓고 김창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로 구성된 삼인조 밴드 산울림은 1977년 ‘아니 벌써’로 데뷔한 이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너의 의미’ 등 ‘파격’과 ‘서정’을 오가는 음악을 내놓으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1984년 10집을 발표할 무렵부터는 두 동생의 취업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김창완 혼자 하는 프로젝트’가 됐고, 1987년과 91년, 97년 11, 12, 13집을 발표하며 뜸하게 활동해왔다. 그리고 지난 2008년 1월 막내였던 드러머 창익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김창완은 산울림의 ‘종언’을 선언한다.

    김창완밴드의 앨범에는 ‘forklift’라는 곡이 있다. “I hate the forklift, I don‘t like the machine”이라는 후렴에는 사고로 동생을 잃은 형의 슬픔이 배어 있지만, 역설적으로 너무나 아름답다. “슬픈 노래가 되지 않길 바랐다”는 김창완은 이 노래를 만들며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동생을 잃고 그가 겪은 큰 변화는 뭘까.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생겼다는 거, 그게 가장 큰 변화일 거에요. 여태 살면서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없었어요.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어요. 그래서 사람 눈이 앞에 달린 게 기가 막힌 신화다, 그랬는데 내 눈이 뒤통수에 달린 삶을 살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 “산울림은 내 마음의 화석이 됐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막내 없는 산울림은 싫었어요. (막내) 없이 한다면 그 자체가 훼손이라고 생각했어요. 산울림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제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산울림을 지켜준 사람들(팬)에게 검증받아야 할 문제고, 제 주장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런데 제가 미리 선언적으로 얘길 해서 너무 공격을 당하고 시끄러웠어요. 그럼 산울림은 없는 거냐, 산울림의 존재를 부정해도 되냐…. 그건 말이 안 되는 거고, 가능하지도 않아요. 산울림의 많은 레퍼토리가 있고 보컬리스트도 그대로 있으니까. 김창완밴드는 산울림 30년을 알릴 거고 더 발전시킬 거예요.”

    ▼ 산울림의 음악은 대중에게 어떤 의미였다고 보세요?

    “글쎄, 당시엔 우리도 틴에이저였고 감상자들도 틴에이저였어요. 첫 만남이 여태까지 가는 거죠. 그러니까 뭐, 산울림의 노래는 청춘이다, 그렇게 풀 수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새로운 세대가 접하는 산울림에 대해선 저도 잘 몰라요. 그들이 (산울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떤 느낌을 받는지, 어떤 향기를 맡는지 모르거든요. 다만 우리와 같이 청춘을 보낸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산울림은 청춘이지요.”

    쉰은 유치원생이다

    ▼ 쉰여섯의 김창완은 여전히 ‘아이’ 같습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일상에서 발견하는 미물을 넋 놓고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도 그렇고요.

    “아이들은, 제가 경험한 것 이상으로 아주 신기한 존재예요. 저는 아이들을 보면 내 과거로 보이는 게 아니라 꼭 미래로 보여요. 그러니까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음악세계가 있잖아요. 마치 그거 같아요. 아이는 미래로 보여요.”

    ▼ 나이 드는 걸 별로 못 느끼시나요?

    “나이 드는 거? 나이 들죠. 그런데 봄이 오면 큰 구멍이 뻥 뚫리고, (팔을 벌리며) 뿌리가 이만하고, 큰 느티나무에 파 색깔 같은 연초록 잎이 돋을 거예요. 그 느티나무가 200년이 넘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새싹이 돋으면 그 나무가 그렇게 젊어 보일 수가 없어요. 신체적 나이는 뭐, 그렇게 중요한 거 같지 않아요.”

    ▼ 어떤 분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좋다고 하시던데 정말일까요?

    “오죽하면 그렇게 얘기하겠어요(웃음). 옷은 날개예요. 하지만 나이가 날개는 아니에요. 근데 나이가 들면 보통 옷을 입어요. 그리고 옷을 입은 것처럼 하는 데 익숙해져요.”

    ▼ 나이를 유쾌하게 들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객관적으로 보면, 나이 든 나보다 건강하고 나이 안 든 내가 좋겠죠. 하지만 나는, 나이 든 내가 젊었던 나를 더 좋아할 수는 없어요. 지금의 내가 최선이니까.”

    쉰은 유치원생이다. 이들은 다시 정장을 하고 주말을 기다린다. 그들은 모든 것을 새로 경험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새로운 것은 없다. 당신이 처음 입은 양복이 체크무늬였다면 체크무늬 양복을, 처음 입은 한복이 감잎 물들인 색이면 그 빛의 한복을 다시 입으리라. 그들은 인생을 새로 쓰고 싶어한다. 하지만 종이는 바랬고 잉크의 색은 묽다. ‘김창완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사랑하라 중’

    ▼ 쉰 즈음에 많은 분이 이 글과 비슷한 생각을 할까요?

    “어르신네들 손을 만져보면 처음에는 체온이 나보다 낮다는 생각이 들고, 살집이 덜 잡힌다, 앙상하다, 만질만질하고, 보기엔 질겨 보이는데 여리다…. 이런 느낌을 갖게 돼요. 손에서 드는 느낌이 정신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렇게 사오십 즈음에는 그악스럽게 지내다가 나중엔 창호지같이 이렇게 돼서 돌아가는데 나이 들면 안 그럴 수 없을 거예요. 예술가뿐 아니라 모든 삶에 공통된 거라고 생각해요.”

    ▼ 1997년 13집 이후로 한동안 앨범을 안 내셨잖아요. 언젠가 ‘록 하기엔 너무 늙었다’고 말씀한 인터뷰를 봤어요.

    “Too Old to Rock‘n Roll, Too Young to Die라는 팝송 제목을 인용한 말이에요. 당시엔 너무 바쁘기도 했고. 그땐 의욕이 없긴 했어요.”

    ▼ 최근엔 굉장히 의욕이 느껴져요.

    “그렇죠. 많이. 저를 특히 의욕적으로 만든 건 우리 팀이에요. 면면이 대단하고, 무엇보다 너무 재미있게 연주를 하고 있어요. 두고 보세요. 정말 뭐, 저지를 거예요.”

    김창완과의 인터뷰는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하루는 서울 목동 SBS의 라디오부스에서, 다음날은 목동 SBS와 합정동의 대구탕집, 홍대 앞의 카페, 그리고 그 사이를 지나는 길 위에서 기자는 산울림과 나이 듦에 대해 물었고, 그는 자신의 음악의 힘과 행복,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와중에 그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로 자전거 타기를 꼽을 만큼 자전거를 사랑한다는 사실과 회사원인 서른 살 아들이 얼마 전 기타를 잡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가 매일 밤 음주를 즐기며 “술처럼 쿨한 것도 없다”고 말하는 술 예찬론자라는 것 등 소소한 사실도 알게 됐지만, 이것만으로 그를 안다고 하기엔 충분치 않았다. 두 번의 인터뷰가 끝난 뒤, 김창완은 그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술 먹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면서 다시 홍대 앞의 연습실로 돌아갔다.

    인터뷰로 김창완을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몇 쪽짜리 기사에 그를 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은유와 상징이 많은, 그러면서도 철학적인 그의 이야기는 때로는 흥미로웠고 때로는 어려웠다. 다만, 그저 -김창완식 표현대로- ‘그 시간 동안 느꼈던’ 쉰여섯의 로커 김창완은 여전히 청춘이었다. 때로 장난스러웠고, 일상의 작은 것들을 진지한 호기심을 갖고 대했으며, 새로운 것에 열의를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태도, 혹은 재능은 아마도 지금의 ‘남다른 아저씨’ 김창완을 이끌어온 힘일 것이라는 짐작만이 남았다. 그래서 하나 확신하게 된 것. 그러니까 안심해도 좋다, 산울림은 화석이 됐지만 우리는 김창완에게서 더 새로운 음악을 얻게 될 것이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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