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녹색성장 기수 김진선 강원지사

전국 최고 수준 ‘강원도 명품 산소’팔겠다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입력2009-06-05 16: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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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의 한’을 ‘강원도의 힘’으로
    • “신재생에너지 비중 15%까지 확대하겠다”
    • “지방경쟁력의 총합이 국가경쟁력이다”
    • “선진정치는 정책으로, 후진정치는 사람으로 승부”
    녹색성장 기수 김진선 강원지사

    ● 1946년 강원 동해 출생<br>● 동국대 행정학과 졸업<br>● 제15회 행정고시 합격, 강릉시장, 부천시장, 강원도 행정부지사<br>● 現 강원도지사(3선), 중국인민대학 객좌교수<br>● 저서:‘21세기 강원의 선택’, ‘새 농어촌건설운동’‘지방의 비전과 도전’

    요즘 ‘녹색’이 화두다. 녹색성장, 녹색전략, 녹색펀드, 녹색기술, 녹색뉴딜…. 녹색이 들어간 조어(造語)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구글 검색창에 ‘녹색성장’을 넣었더니 235만건이 올라왔다. 구글의 영어 검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green growth(녹색성장)’는 4700만건, ‘green strategy(녹색전략)’는 3억1100만건이 검색됐다. ‘녹색의 글로벌화’를 보여주는 숫자다.

    4월27일 김진선 강원도지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을 출발해 강원 춘천으로 향하면서 기자는 ‘녹색’을 떠올렸다. 도로 옆에 줄 지어 선 산들은 연초록빛으로 눈이 부실 만큼 찬란했다. 김 지사를 만나자마자 ‘녹색’에 대해 물었다.

    ▼ 녹색성장이란 말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 미국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강원도는 어떤 전략을 갖고 있나요.

    “현재 풍력발전은 강원도가 세계 15위입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강원도 전체 에너지 소비의 7.4%입니다. 참고로 전국 평균은 2.4%입니다. 강원도의 신재생에너지 생산량은 현재 전국 1위입니다. 2012년까지 온실가스를 2003년 대비 6% 감축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5%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강원 녹색성장 프로젝트’라는 뜻에서 3G 프로젝트(Gangwon Green Growth Project)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세계 최대규모의 태양광 도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디자인한 풍력발전단지도 조성합니다.”

    강원도는 녹색도시다.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강원도는 대부분이 산지로 형성된 산악도(山岳道)다. 녹색성장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김 지사의 답변은 막힘이 없었다.



    “백두대간 중심축에는 생태공간으로 그린존(Green Zone)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강원도에 많은 숲을 활용해서 탄소배출권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지난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강원도를 방문했을 때 녹색시범도시를 만들 것을 직접 제안해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강원도가 산소 농도가 제일 높다는 점을 이용한 아이디어도 구상 중입니다.”

    기자는 지역에 따라 산소 농도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이날 처음 들었다.

    ▼ 산소 농도가 지역에 따라 다르나요.

    “다르지요. 강원도는 공기 중 산소 농도가 21% 정도에 달합니다. 서울 지하철 내부는 산소 농도가 이보다 훨씬 낮습니다. 앞으로 산소를 팔려고 합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수계, 백두대간, 동해안, 비무장지대(DMZ) 접경지를 따라서 삼천리 길을 만들려고 합니다. ‘산소길 삼천리’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동해안 자연환경이 얼마나 좋습니까. 독일에 가면 ‘로만틱 로드’가 있지 않습니까. 그와 비슷한 것을 구상 중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녹색성장 프로젝트에 포함될 수 있지요.”

    패러다임 변화가 강원도를 ‘기회의 땅’으로

    ▼ 평소 ‘강원도의 한’을 ‘강원도의 힘’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요.

    “강원도 지형지세가 원래 산이 많고 높고, 지리적 지형적으로는 동쪽에 위치해 있어 ‘산다고동위(山多高東位)’ 표현을 많이 씁니다. 오지가 많아 개발이 더딥니다. 척박하게 살아온 세월이었지요. 강원도는 환경이 좋으니까 보존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개발 우선순위에서 늘 밀렸어요. 그래서 무대접, 푸대접, 소외, 낙후 이런 말들이 나왔습니다. 이것이 강원도의 한이었어요. 그런데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이 바뀌었어요. 과거의 제약과 한계가 새로운 가치로 변환되는 시대지요. 이제 강원도는 생동하는 도시로 바뀌고 있습니다. 기업도 들어오고, 강원도 관광이 세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원도민이 이제는 한계의식에서 벗어나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강원도의 힘입니다. 도민 구단인 강원FC를 보세요. 도민이 47억원을 모았어요. 그것도 강원도의 힘이지요.”

    ▼ 강원도를 보면 미국 콜로라도주를 떠올리게 됩니다. 비록 미국 주택시장이 최근 몇 년 동안 좋지 않았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콜로라도주의 주요 도시 주택가격이 미국 평균에 비해 많이 올랐습니다. 아스펜 음악제도 유명하지요.

    “지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강원도에 집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이사도 많이 옵니다. 터 잡고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강원도를 꼽고 있어요. 아스펜 음악제를 보고 착안해서 대관령 국제음악제를 만들었는데, 3억명 이상이 라디오로 청취하고 있습니다.”

    ▼ 2007년 지방분권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등 지방분권 논의를 선도해왔습니다. 한국의 지방분권은 현재 어디쯤 와 있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녹색성장 기수 김진선 강원지사

    강원도 지도를 보며 강원도 개발계획을 설명하는 김진선 지사.

    “정보화시대에 한 곳에서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분산에너지’ 이론이 있습니다. 분권, 분산을 통해 발생하는 에너지를 다 모으면 가장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권한과 책임을 분산시키면 각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창의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냅니다. 중앙정부 권한도 지방 특성에 맞게 과감하게 분권화해야 국가경쟁력이 생깁니다.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하면 힘이 낭비됩니다. 분권, 분산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아직 진척도가 충분치 못합니다. 선진국은 경찰자치, 교육자치를 일원화했는데 우리의 경우 경찰은 완전히 국가업무로 되어있고, 교육자치는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지방경쟁력의 총합이 국가경쟁력입니다. 앞으로는 대권과 통치의 시대가 아닌 분권과 협치의 시대가 대세가 될 것입니다.”

    ▼ DMZ와 관련해 DMZ한민족 평화지대화 및 세계 명소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같은 구상의 계기는 무엇인가요.

    “DMZ는 분단, 단절, 정지의 공간이었습니다. 남북관계는 어떤 형태건 교류협력이 피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최고의 목표는 평화체제의 정착입니다. DMZ를 거기에 맞는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런 제안을 했습니다. 작은 노력이지만 우리부터 꿈을 갖고 해나가면 남북관계는 변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고성에 DMZ박물관을 구상해서 만들었고, 철원에는 평화산업단지와 평화문화광장도 착공했습니다. 아직은 남북 간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지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남북이 상생할 수 있고 영구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어요.”

    ▼ 최근 북한의 로켓발사와 개성공단 문제로 남북관계가 장기간 경색되고 있는데요.

    “북한은 체제유지가 제일 큰 목표인 것 같습니다. 체제붕괴를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체제유지 수단으로 주체사상과 함께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 강화에 몰두하고 있어요. 북한이 그런 경계심을 풀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압박하는 원칙을 세워놓으면 대화가 잘 안돼요. 요즘은 북한에 대해 더 권고하고 싶어요. 이명박 정부는 공개적으로 북한에 조건 없이 대화하자고 했어요.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으면 전 정부와 다른 여러 가지 상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 뒤 대화를 해야 하는데, 북한이 너무 전략적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북쪽이 조건 없는 대화에 응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민간교류협력의 상징인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볼모로 잡으면 안 돼요. 이런 식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북쪽에 (대화에 응하라고) 과감하게 권고하고 싶어요.”

    한나라당 계파갈등, ‘친박’이 우선적으로 협력해야

    ▼ 한나라당은 몇 년째 ‘친이’ ‘친박’으로 나뉘어 고질적인 계파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보는 국민이 짜증을 내는 것 같습니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감정에 의해 좌우됩니다. 감정적 앙금이 자꾸 쌓이나 봐요. 또 하나는 향후 권력구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차원도 있다고 봅니다. 계파는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고착화되면 안 됩니다. 정치란 무엇입니까. 정치의 본질은 단순한 권력싸움이 아닙니다. 우선 이 원칙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의 싸움입니다. 이해와 믿음은 신뢰의 시작입니다 신뢰는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는 만큼 생긴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경쟁했지만 두 사람 간 갈등이 고착화돼 병이 되지는 않았잖아요. 선진정치는 정책으로 승부를 가리고 후진정치는 사람으로 승부를 가립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안정성, 신뢰성, 지속성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위험수위에 왔어요. 계파갈등과 관련해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굳이 순서를 정해서 해야 한다면 친박쪽에서 무조건적으로 협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지난해 촛불시위 때에는 10%대까지 추락했다가 최근 40%에 근접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지지율 40%를 국정운영 성패의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요.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함께 광우병 파동, 유가 상승, 원자재값 상승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가 결국은 난관을 극복하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정치권 출신으로 국가지도자가 된 분은 대체로 추상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리고 시종이 분명치 않아요.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래서는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이 대통령은 기업경영자와 서울시장 경험 등으로 구체적이고 행동이 있는 결말을 원합니다. 이 때문에 실용주의를 표방해서 가고 있습니다. 실용주의는 목표가 아니고 수단이지요. 그런데 실용주의가 너무 강조되고 보완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경제제일주의 시장만능주의로 갈 가능성이 있어요. 이런 점을 경계해야 하지요.”

    10년 이상 같은 이름 정당 몇 개 안 되는 현실 개혁해야

    ▼ 한국은 아직도 선거가 끝나면 이합집산하는 후진적인 정치구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경제가 화두인데, 사실 제일 급하고 중요한 게 정치선진화입니다. 정치선진화를 위해서는 정당정치의 정착이 중요합니다. 정치의 고유한 기능은 경세(經世)에 있습니다. 소통과 타협은 정치의 보편적인 기술이자 만국 공통입니다. 평상정치라는 말이 있어요. 은나라 시대에 탕왕이 있었는데, 당시 7년 넘게 가뭄이 오고 인심이 흉흉해지니까 탕왕은 상복을 입고 올바른 정치, 충분한 일자리 제공 등 6가지 정책을 폈어요. 나는 이것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평상정치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정당은 실체를 들여다보면 영남 중심, 호남 중심 등 지역정당이에요. 그 구조가 1960~7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돼왔어요. 여기서 벗어나서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정당에 희망이 없습니다. 10년 이상 같은 이름으로 있는 정당이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이것을 고치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 ‘박연차 게이트’가 노무현 전 대통령 비리의혹으로 번지면서 ‘진보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보수도 철저한 자기혁신을 하지 않으면‘진보의 위기’에 못지않은 ‘보수의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습니다. 2009년 한국의 보수는 뭘 해야 하나요.

    녹색성장 기수 김진선 강원지사

    자신이 촬영한 소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진선 지사.

    “보수세력은 지난 10년간에 대해 우리나라가 진보, 좌파 방향으로 갔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최선의 방어는 곧 공격’이라는 태도를 취해왔지요. 현 정권을 굳이 잣대를 놓고 구분하자면 보수정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보수건 진보건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이 가장 필요한 요소입니다. 보수는 또 상대방을 배려하고 어려운 것을 함께 하고 양극화도 줄여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 보수가 돼야 생명도 길어집니다.”

    ▼ 본인의 성향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굳이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사회적 합리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개혁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정책적으로 어느 정도 넘나들 수 있어야 건강한 보수, 합리적 진보가 가능합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연아 선수,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로 임명

    ▼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국내 후보도시로 다시 선정됐습니다. 일각에서는 “왜 평창에 3차례나 기회를 주느냐”는 반론도 내놓고 있습니다.

    “평창은 두 차례나 국민적 성원을 입었지만 아쉽게 실패했습니다. 그런 국민의 성원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올림픽은 다른 국제행사와 달라서 대단히 생산적이고 효과가 높습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다면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는 상징적 이벤트가 될 수 있지요. 국민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세판’이라는 말이 있지요. 이번을 마지막 기회로 삼고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김연아 선수가 홍보대사로 위촉됐습니다.”

    녹색성장 기수 김진선 강원지사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로 위촉된 김연아 선수(오른쪽)와 김진선 지사.

    ▼ 7월에 서울~춘천고속도로가 개통되면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강원도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교통망입니다. 저는 강원도 교통망을 ‘길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길이 제대로 되지 않고서는 강원도 발전이 없다. 길이 강원도 발전의 시작이고 끝이다’는 각오로 다 걸기 했습니다. 길을 그냥 확장하고 포장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시간거리’를 줄여야 합니다. 도내를 2시간 생활권으로 만들기 위해 교통망의 고속화, 첨단화, 광역화를 내세웠고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었습니다. 과거에는 춘천 기점으로 태백이나 삼척까지 4시간 정도 걸렸어요. 근데 지금은 2시간대에 들어갑니다. 이제 춘천에서 강원도 전역이 2시간대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7월에 경춘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춘천에서 서울 가는 길이 한 시간 정도로 단축됩니다. 도지사 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에 올라가면 요즘도 부산, 경남에서 오신 분들이 제게 ‘아주 멀리서 오셨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서울~수원보다 가까워졌는데도 그렇습니다.”

    ▼ 개인적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고교시절에 한일회담 반대데모를 주도한 경력 때문에 육군사관학교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공직의 길을 밟게 된 계기는 뭔가요.

    “저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소작농에 공장노동자였습니다. 지금 같으면 닭 사료에 해당하는 것을 먹으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일본에 대해 유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제가 한일회담 반대데모를 주도했던 데에는 한학자였던 할아버지 영향이 컸어요. 단발령을 거부한 할아버지는 일제로부터 면장 제의가 들어오자 역시 거절했어요. 그런 얘기를 듣고 자라서 저는 반일정서가 강했어요. 그래서 서울에서 6·3사태가 일어났을 때 고등학생이었지만 혼자 산에 가서 단식을 하고 그랬어요. 데모 주동자가 돼서 3학년 때 무기정학을 받아 학교를 못 나갔어요. 당시 군인이 좋아 보여 육사에 가고 싶었는데 이 때문에 그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강원도를 위해 일을 하자는 취지였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웅변 글짓기 대표선수로 서울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새벽 5시에 완행버스를 타고 출발해 춘천에 도착하니까 오후 7시였어요. 거기서 밤차로 서울에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9~10시간이었어요. 그때 강원도의 현실을 느꼈습니다. 강원도를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공무원인줄 알았어요. 고시 합격하고 내무부를 선택했고, 그래서 강원도에서 일하게 됐어요.”

    ▼ 별명이 ‘사진 찍는 도지사’일 정도로 사진촬영이 수준급이고, 특히 소 사진을 좋아한다면서요.

    “강릉시장 시절 강릉단오제가 열렸을 때 윤주영 전 문공부 장관이 단오제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오신 적이 있어요. 정부 고위간부로 있던 분이 은퇴한 뒤 권력 주변을 맴돌지 않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지요. 거기에 매력을 느껴 나도 취미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1993년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일반 사람들의 생활상을 찍으려 했는데, 공직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피사체로 놓고 찍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소를 본격적으로 앵글에 담기 시작했지요. 소는 한결같고 우직하고, 그런 동물이잖아요.”

    ▼ 3선 연임 도지사로서 12년 도정을 평가한다면 어떻습니까. 그동안 강원도가 많이 발전했나요.

    “뭐 발전했다기보다는 발전시키려고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지방 이전하는 수도권 기업의 35%가 강원도로 오고 있습니다. 3년 연속 1위입니다. 지표상으로 보면 농촌의 경우에는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강원도는 2007년 말에 128명, 2008년 말에 5667명 늘었습니다. 줄어들던 인구가 늘었으니까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강원도 지역총생산(GRDP) 절대액은 아직도 하위권입니다. 하지만 신장률은 4위입니다. 특히 보람을 느끼는 것은 강원도의 가야 할 길과 비전에 대한 공감대입니다. 강원도 사람들이 한숨소리만 내던 과거의 한스러움을 떨쳐내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하고,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이루지 못한 것도 많고. 성과와 업적을 떠나서 저는 대충 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열심히 했어요. 도민들이 ‘열심히 일한 도지사’라고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녹색성장 기수 김진선 강원지사

    스크립스 연구소 유치에 성공한 김진선 지사 (오른쪽에서 두번째).

    아시아 최초로 바텔과 스크립스 연구소 유치에 성공

    ▼ 평소 ‘글로벌 강원의 세일즈맨’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성과는 어땠나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바텔연구소가 있어요.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스크립스연구소가 있지요. 아시아에는 아직까지 바텔이나 스크립스연구소가 들어온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두 연구소를 춘천에 유치했습니다. 대단한 평가를 받을 일입니다. 바텔코리아, 스크립스코리아를 춘천에 유치할 수 있다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춘천은 이제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예요.”

    ▼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뭔가요.

    “공직생활 경험상 성실, 책임, 공평, 청렴 4가지 덕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종 책임은 최고 리더에게 있습니다. 리더는 조직 전체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판단력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앞서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 다음에 조직원들이 자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 평소 좌우명은 뭔가요.

    “심지기위의(心之起爲意)입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뜻이 된다는 뜻입니다. 뭐든지 마음에서부터 출발하잖아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뜻이 돼서 성취되는 일이 없어요. 가훈은 ‘바르게 살자’입니다. 아버님이 가훈을 정한 건 없는데,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내년에 퇴임한 뒤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야인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에요. 계획적인 진로, 정치적인 진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과욕하고 그러면 안 되는 겁니다. 하여튼 지금은 그런 마음이고, 앞으로 제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쭉 추이를 보면서 가야지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지금까지 대통령에 당선되신 분 중에 바닷가 출신이 유독 많던데요”라고 운을 떼봤다. 그러자 강원도 동해 출신인 김 지사는 “저는 그 말에 안 걸리겠습니다”라며 큰 소리로 웃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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