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소금융은 마라톤…‘속도전’은 금물”
- “대상 신용등급 올리면 서민 구제 못해”
- 찾아가는 서비스로 효율 높이고, 비용 줄이고
- 영업 인생 39년…미소금융도 ‘영업 마인드’로!
●1945년 경북 포항 출생<br>●부산상고·부산대 경영학과 졸업<br>●1972년 유공 입사<br>●유공 영업이사·유공가스 영업상무<br>●SK텔레콤 수도권마케팅담당 상무<br>●SK텔링크 사장, SK가스 사장, SK㈜ 사장<br>●2008년 1월~ SK에너지 부회장
“나름의 중장기 스케줄에 따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한 달에 150㎞를 소화하는 게 목표예요. 하루 5㎞꼴이죠.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꾹 참고 10㎞를 뛰었으니 내일과 모레 5㎞만 더 뛰면 돼요.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기다림, 준비, 인내…. 간결한 답변에서도 오롯하게 드러나는, 평생 몸에 밴 그의 덕목들이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다. “스물여덟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 코흘리개 동생들과 사회안전망의 맨 밑바닥으로 팽개쳐졌다”고 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참고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습관처럼 익숙했다.
기다림과 우회(迂廻)는 청년기에도 계속됐다. 얼른 학교를 마치고 은행에 취직할 요량으로 부산상고에 들어갔으나 교사들이 “성적이 아깝다”며 대학 진학을 권해 진로를 바꿨다. 하지만 입시운이 안 따랐다. 3수를 하느라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군대라도 일찍 다녀와야겠다 싶어 복무기간이 2개월 짧은 해병대에 자원했는데, 제대 4개월 전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습격을 기도한 1·21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8개월 연장복무를 해야 했다.
마라톤도 늦깎이였다. 50대 중반에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고 나서 조심스럽게 뜀박질을 시작했는데, 벌써 20여 차례나 풀코스를 완주했다(뛸 때마다 지인들에게서 1만원씩 후원금을 받고, 그 총액만큼의 매칭펀드를 내놔 기부한다). 정교한 체력 배분으로 레이스 초반의 오버워크를 피하고 찬찬히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마(魔)의 30㎞ 고비를 넘긴 뒤 막판 뒷심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다.
2008년엔 보스턴마라톤 완주의 꿈도 이뤘다. 보스턴마라톤의 60~65세 참가자 기준기록은 4시간. 그는 50대가 다 가도록 4시간2분 벽을 넘지 못하다가 62세 때인 2007년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58분23초를 기록, 이듬해 보스턴마라톤 출전자격을 얻었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민들레 홀씨와 토종 잔디
이런 면모를 지닌 신헌철 이사장이 본격 출범 9개월째를 맞은 미소금융사업 일각의 조급증과 ‘속도전’ 조짐을 경계하면서 착실한 기초 다지기를 강조한 것은 예상했던 바다. 오랜 경험칙에서 비롯된 비즈니스 감각이 엿보이는 듯했다. Slow and steady wins the market이랄까.
미소금융은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금융소외계층에 창업·운영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빌려주는 사업. ‘아름다운 소액대출’이라는 뜻에서 ‘美少’라는 이름을 붙였다. 6개월~1년의 거치기간 후 5년 동안 상환하는데 이자율이 연 2.0~4.5%로 낮다. 창업 희망자를 위한 사업타당성 분석과 경영 컨설팅,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부채상담과 채무조정 연계 등을 지원하기도 한다. 정부 주도로 향후 10년간 활용할 2조원을 확보한 뒤 지난해 12월15일 경기 수원에 지역법인 1호점을 내면서 사업을 본격화했다.
2조원의 재원은 휴면예금 7000억원, 은행권에서 출연한 3000억원, 대기업들이 기부한 1조원(삼성 3000억원, SK·현대차·LG 각 2000억원, 포스코·롯데 각 500억원)으로 마련됐다. 이들 기업은 각기 미소금융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SK미소금융재단(www.skmiso.or.kr)은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재래시장 등을 찾아 현장점검과 홍보활동에 나설 만큼 적극적이다. 신헌철 이사장은 민들레 홀씨와 토종 잔디에 비유하며 미소금융의 미래를 낙관했다.
재래시장을 찾아 미소금융 홍보활동을 벌이는 신헌철 이사장(오른쪽).
“홍보와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미소금융은 넓게 보면 서민을 돕는다는 면에서 서민금융회사들이 판매하는 ‘햇살론’과 비슷해요. 하지만 미소금융이 저소득층의 창업과 사업운영에 중점을 두고 컨설팅 등 사후관리까지 하며 자활을 돕는다면, 햇살론은 긴급생활자금 지원 위주라 사후관리를 해주지 않죠. 그런데 미소금융사업 초기엔 이런 사정을 모르는 고객들의 생활안정자금 대출신청이 대부분이어서 대출을 거절당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간 미소금융 지점 수가 충분하지 못해 고객의 접근 편의성이 떨어진 것도 실적 저조로 이어졌습니다. 단기간에 사무공간과 인력을 확보해 많은 지점을 설립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또 한 가지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은 다소 까다로운 대출자격입니다. 7등급 이하의 개인신용등급, 일정 금액 이하의 보유재산, 일정 조건의 자기자금 유지비율 등 엄격한 요건을 적용하고 있거든요. 이는 미소금융의 근본적인 취지를 감안해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초기의 시행착오가 정비되고 각 부문의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사업이 안전하게 궤도로 진입하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미소금융이 진출한 몇몇 재래시장에선 고리(高利)를 챙기던 일수업자들이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SK미소금융은 지난 6월말까지 135명에게 13억원을 대출했는데, 오늘(9월8일) 현재까지는 299명에게 29억원이 나갔어요. 상반기 6개월 누적 대출액의 약 120%가 2개월여 만에 나간 겁니다. 지점도 지난 8월에만 4곳이 문을 여는 등 8곳(서울 영등포·금천·송파, 인천, 대전, 울산, 경기 광명, 제주 서귀포)으로 늘었어요. 올해 안에 서울 강북, 전북 군산에 지점을 열면 10개가 됩니다. 서서히 속도가 붙고 있어요.
제도권 금융을 대하는 시각으로 미소금융을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은행 문턱도 넘기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새로운 금융의 꽃을 피워보겠다는 것 아닙니까. 정말 미소금융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자립 의지가 강한 서민들을 잘 가려내 지원하고, 이들이 5년 동안 대출금을 잘 갚고, 이들이 갚은 돈을 또 그런 서민들이 빌려가고…이렇게 선순환의 바통을 주고받으며 끝없는 장거리 계주를 하는 겁니다. 이걸 보고 ‘왜 빨리빨리 못 뛰냐’고 힐난해서야…. 하찮아 보이는 민들레 홀씨 하나가 마침내 들판을 뒤덮고, 더디 자라는 토종 잔디가 양잔디보다 억세게 뿌리를 내리잖아요.”
“교도소 비었다고 하숙 칠 수야…”
▼ 그렇지만 일부 미소금융재단에선 ‘대출 실적이 부진하니 대상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압니다. 미소금융이 저신용자만 지원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사람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요.
“미소금융이 태어난 목적을 되새긴다면 동의할 수 없습니다. 6등급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햇살론의 경우 사업 개시 한 달 남짓 만에 대출액이 1000억원을 넘어서면서 벌써 속도조절론이 제기될 정도예요(더욱이 햇살론의 총 재원은 35조원으로 미소금융 재원의 16배가 넘는다). 우리나라 절대빈곤층을 인구의 5%로 잡으면 270만, 3%로만 잡아도 140만입니다. 우선 이들부터 살려내야죠. 지금의 미소금융 재원으로는 7~10등급에 두루 혜택을 주기에도 벅찹니다. 이들이 점점 더 많이 미소금융을 찾아오게 해야지, 먹고살 만한 5, 6등급에 사업을 더 키우라고 돈 빌려주는 게 미소금융의 목적이 아니거든요. 명색이 SK에너지 부회장이라는 저도 신용조회를 해보니 5등급이 나옵디다. 경제활동을 하느라 여기저기 대출을 열어놓으면 갚을 능력이 있든 없든 등급이 내려가게 돼 있으니까.
누군가는 ‘사업도 잘하고 은행에 피해 준 적도 없는 사람은 연리 7, 8%에 돈을 빌리는데, 뭔가 잘못돼서 거꾸러진 사람이 미소금융에서 4.5%에 돈 빌려가는 건 문제 아니냐’고 하더군요. 이건 관점의 차이라고 봅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죄짓고 교도소 간 사람은 나라가 먹여주면서, 교도소 안 간 사람에겐 왜 밥을 안 주냐’는 논리 같아요. 교도소가 좀 비었다고 거기에다 하숙을 칠 수야 없는 노릇이죠.”
다만 신용등급 기준으로 대출자격을 따지다 보면 저소득 고신용자가 미소금융 대출을 못 받게 될 수도 있다. 가령 아들이 가끔 쥐여주는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 은행빚을 착실하게 갚은 할머니는 재산도 소득도 변변치 않지만 신용등급이 5등급에 이르기도 한다. 반면 멤버십 골프장에서 두둑한 뱃살을 출렁이며 연신 ‘나이스샷’을 외치는 이들 중엔 8, 9등급이 수두룩하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은 이런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8월 초부터 소득액, 건강보험료 납부액 등 몇 가지 변수를 입력하면 5, 6등급 중에서도 대출 대상자를 선별할 수 있는 새 신용등급 시스템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눈에 띄는 것이 SK미소금융의 특화상품인 ‘용달사업자 자립지원 대출’이다. 1t 이하 용달사업자들을 위한 대출상품으로, 용달협회와 협약을 맺고 소속 회원들에게 용달화물차 구입 자금을 최대 2000만원까지 연리 4.5%(올해까지는 2.0%)로 빌려준다. 연 20%에 가까운 자동차 할부이자에 비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라 인기가 높다. 그런데 7만9000명이나 되는 1t 이하 용달사업자 중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실소득과 무관하게 신용등급이 5, 6등급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분들은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에 못 미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에요. 그래서 미소금융 지원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집단 중 하나라고 판단했습니다. 소득 등 여러 변수를 적용해보니 예상대로 5, 6등급 중에도 혜택을 볼 수 있는 분이 많더군요. 워낙 반응이 좋아 서울에 이어 각 지역 용달협회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재단이 커버하지 못하는 지역을 위해서는 다른 기업 재단들과도 협업할 생각이고요. 아닌 게 아니라 다른 재단에서도 이 상품에 착안해 화물차량 관련 지원상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찾아가는 미소금융’의 힘
▼ 앞으로도 이런 특화상품에 초점을 맞출 건가요.
“그럴 생각입니다. 자, 보세요. SK에너지는 기름을 팔고 SK텔레콤은 이동통신을 팔죠. 기름과 이동통신은 다른 경쟁사들도 똑같이 판매하는 상품이에요. 그런데도 이들 두 회사가 월등한 실적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요인이 뭘까요. 아이디어죠. 기본적인 몇몇 상품의 타깃을 특정 고객층에 맞추는 전략이 바로 그겁니다. 미소금융도 이렇게 끌고 가야 차별화할 수 있어요. 이를 위해 은행지점장 출신 등 금융권 베테랑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다양한 특화상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용달사업자 상품도 그 산물이죠.”
SK그룹의 대표적 ‘영업통’다운 포석이다. 신 이사장은 1972년 SK에너지 전신인 ㈜유공에 입사한 이래 39년에 달하는 근무기간 대부분을 영업부문에서 뛰었다. 그는 미소금융 또한 다분히 ‘영업 마인드’로 접근하는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미소금융 영업’의 과실(果實)은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서민의 자립이라는 것.
예나 지금이나 영업맨의 기본은 발품이다. 스스로를 ‘장돌뱅이’라 일컫는 신 이사장은 미소금융에서도 발품을 차별화의 주무기로 삼으려 한다. 이른바 ‘찾아가는 미소금융’을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대부분 혼자 힘으로 가게를 꾸려가는 영세상인들은 화장실 한번 마음 놓고 못 가는 형편이에요. 아직 몇 곳 안 되는 미소금융 지점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저희는 미소금융 최초로 재래시장 이동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장 상인회 사무실에 자리를 마련하고 일일이 영업장을 방문, 상담을 한 뒤 적격 여부를 판단합니다. SK텔레콤과 연계한 스마트폰으로 현장에서 신용조회를 하니까 방앗간 주인이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뽑아내면서도 미소금융 업무를 볼 수 있어요. 큰맘 먹고 어렵사리 지점을 방문했다가 막상 대출 자격이 안 된다고 하면 실망이 얼마나 크겠어요. 부적격 판정을 받더라도 생업 현장에서 받으면 마음이 덜 상하죠.”
이 서비스가 상인들에게서 호응을 얻자 SK그룹은 수억원 상당의 현장 상담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넷북을 미소금융중앙재단에 기증했다. SK미소금융은 대도시 재래시장뿐 아니라 지점을 설립하기 어려운 전국의 군(郡)단위 이하 소외지역에서도 5일장이 열리는 날 등을 활용해 이동상담 서비스를 할 수 있게끔 해당 군청들과 협의하고 있다.
▼ 뜻은 좋지만 문제는 결국 돈이겠죠. 지점도 늘리고 이동상담 서비스도 확대하려면 비용이 계속 늘어날 텐데, SK미소금융의 재원은 ‘10년간 2000억원’으로 한정돼 있지 않습니까.
“10년 재원이 2000억원이니 1년 재원은 200억원인데, 그중 운영비 상한선이 10%(20억원)입니다. 여기에다 20%의 대손충당금을 설정하는 데 또 40억원이 듭니다. 200억원 에서 운영비와 대손충당금 60억원을 빼면 순수하게 대출금으로 쓸 수 있는 돈은 140억원이라는 얘기죠. 운영비는 고정비와 변동비로 나뉘는데, 변동비는 어떻게든 발생하는 거니까 줄일 수 있는 건 고정비뿐이에요.
저희가 ‘찾아가는 미소금융’을 확대하려는 데는 고정비를 최소화하려는 목적도 있어요. ‘재래시장 같은 곳에 지점을 많이 내서 대출 실적을 높이라’는 목소리도 있는데, 무턱대고 지점을 늘리는 게 상책이 아닙니다. 웬만한 시장에 지점을 내면 2, 3개월 안에 그곳 상인 중 돈 빌려갈 사람은 다 빌려가요. 그러면 나머지 9, 10개월 동안 지점은 그냥 놉니다. 이게 다 고정비로 날아가는 거죠. 따라서 지점은 지하철역 부근 등 대중교통 접근성이 높고 너무 번화하지 않아 임대료 수준도 적절한 요충지에 신중하게 개설해 보다 넓은 권역의 주민들이 찾아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런 지점을 주요 거점으로 확보한 다음, 고만고만한 상권은 직접 찾아가서 출장소처럼 일을 봐드리는 게 편리하고도 효율적이죠.”
선순환 시스템을 돌려라
고정비를 줄이려고 마른걸레 쥐어짜듯 하는 신 이사장에게 지방자치단체의 협조로 공공기관 사무실을 무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복음과도 같았다. 신축 건물 이전으로 쓰임새가 마땅찮게 된 옛 동사무소 같은 곳은 미소금융 사무실로 아주 맞춤하지만, 지자체가 이를 내주고 싶어도 민간기업 재단에 무상 임대해줄 법적 근거가 없었다. 그러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자 이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공공건물을 서민금융을 위해 활용할 경우 무상으로 빌려줄 수 있도록 관계 법령을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관련 법안이 만들어져 국회에 계류돼 있다.
SK미소금융은 그 이전인 지난 3월, 이미 울산시로부터 시 소유인 울산대공원 내 상업시설 사무실을 무상으로 빌려 울산지점으로 개설한 바 있다. 울산시가 박맹우 시장의 지시로 온 시청을 이 잡듯 뒤진 끝에 ‘기부채납한 시설에서 특정 사업을 영위할 경우 무상으로 빌려줄 수 있다’는 시 조례를 찾아낸 덕분이다. 울산대공원은 SK가 1000억원을 들여 조성해 2006년 울산시에 기부한 곳이다.
▼ 이런 비용절감 노력이 계속된다 해도 전체 재원을 확충하지 않는다면 보다 많은 서민에게 도움을 주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 확보된 재원이 모자랄 수도 있다고 보고 운용을 해야지, 초기 대출 실적이 좀 성에 차지 않는다고 대상 신용등급을 올리네 마네 해선 안 된다는 얘깁니다. 무작정 올렸다가 ‘아차’ 싶어서 다시 끌어내리는 혼란은 없어야죠.
알뜰하게 꾸려간다면 아직은 좀 여유가 있습니다. 현재 SK미소금융 대출 실적이 월 10억원쯤 되는데, 앞서 말씀드렸듯 운영비를 뺀 1년 대출 가능액이 약 140억원이니 월 12억원 정도까지는 감당할 수 있어요. 또 몇 달 뒤부터는 거치기간이 지난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상환하기 시작하므로 이 부분에서도 숨통이 좀 트일 거고요.
뭐, 정 안 되면 돈을 당겨 쓸 수도 있겠죠. 올해 140억원으로 모자라면 내년 것에서 좀 당겨오고, 내년에 모자라면 후년 것에서 당겨오고…. 이처럼 유연하게 운용하는 건 기업의 의지와 능력에 달렸다고 봐요. 꼭 1년 단위로 맞추느라 5, 6년 뒤의 일까지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때 가서 재원이 모자란다면 기업이 더 내놓든지, 정부가 지원을 해주든지 무슨 특단의 조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미소금융의 선순환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도록 안정된 틀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신선하고 풋풋하다’
▼ 서민에게 든든한 자립 기반을 마련해주려면 그저 대출을 해주는 데만 그쳐선 안 되겠죠. 미소금융의 차별화 요소로 ‘사후관리’를 강조하셨는데, 현장에선 어떤 형태의 ‘AS’가 이뤄지고 있습니까.
“일회성, 시혜성 지원만으로 지속가능한 자립을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실질적인 자립이란 대출 고객이 사업장을 잘 운영해 대출금을 무난히 상환하고, 고객의 가정이 그 사업을 기반으로 온전히 일어서게 되는 것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SK그룹 내 전문지식·기술 보유자로 구성된 SK프로보노 자원봉사단 멤버들을 미소금융 희망봉사단에 참여시켜 대출 고객들의 사업 운영을 돕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이 영업의 기본 요소부터 차근차근 습득할 수 있도록 판로 개척에서 경영 컨설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죠. 대출 고객의 영업장을 홍보하는 팸플릿과 전단지를 만들어 나눠주기도 하고요.”
▼ 기업이 막대한 돈을 기부해 미소금융사업 같은 것을 한다는 게 일방적인 시혜나 베풂으로만 볼 것은 아닌 듯합니다. 기업도 이런 활동을 통해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귀중한 무형의 소득을 얻을 텐데요.
“SK는 기업문화 개선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자원봉사활동의 비중이 높죠. 자원봉사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하면서 조직 내 팀워크가 탄탄해지고 다른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생산성도 오르고 있어요. 내부 조사에서도 자원봉사에 적극적인 직원들이 긍정적인 기업관과 높은 삶의 만족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업의 사회공헌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어요. 특히 미소금융이나 사회적 기업 같은 친서민 지원활동은 SK 구성원들로 하여금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다니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 애사심을 키워줍니다. 물론 기업의 대외 이미지도 크게 향상되고요. 저희는 SK에너지 주유소 등 고객과의 접점이 많아 그들의 반응을 거의 실시간으로 체감하는데, 요즘은 ‘신선하고 풋풋하다’ ‘좋은 일 많이 하더라’ ‘돈만 아는 회사가 아닌 것 같다’라는 등의 우호적인 피드백을 자주 접합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물이 스며들듯 촉촉하게 고객의 가슴으로 젖어드는 게 ‘진짜 PR’ 아니겠습니까.”
신헌철 이사장은 지난 1월 출범한 SK사회적기업단의 초대 단장을 맡아 사회적 기업 설립, 사회적 기업 지원 및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회적 기업 인프라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서울에서 설립되고 9월 부산에서 프로그램이 시작된 방과후학교 ‘행복한 학교’는 지자체, 교육청 등과 함께하는 다자간 협력 모델로 사회적 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주축으로 SK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신 것 같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 쌀농사에 빗대면 못자리 잘 살펴서 모가 안 뜨도록 똑바로 심어놓는 것까지가 제 본분이죠. 그러면 후배들이 피 뽑고, 김 매고, 참새도 쫓아줄 거고…. 여덟팔(八)자 2개를 넣어 쌀미(米)자를 만든 건 쌀농사에 사람 손이 88번 가기 때문이라는데, 저야 8번만 손을 대면 나머지 80번은 후배들이 잘해줄 겁니다. 아무튼 지난 39년 동안은 돈을 벌기만 했는데, 이젠 그렇게 번 돈을 잘 써보라고 하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