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료 중용 첫 조각, ‘일하는 장관’ 고른 것
- ‘약속 지키는 지도자’가 최고의 홍보상품
-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는 자전거 앞뒤 바퀴
- ‘인생 마일리지’ 풍부한 창조인재 키울 터
대선 후보가 주연급이라면,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진 지난 한 해를 누구보다 뜨겁게 보낸 조연으로 조동원(56) 전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을 빼놓을 수 없다. 정치권에서 두고두고 맛볼 수 있는 영욕을 딱 1년 만에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총선과 대선 승리를 가져온 ‘빨간색 새누리당’을 만든 수훈갑이라는 칭송도 받았지만, TV 토론에서 “저는 모르죠”라고 했다가 네티즌의 융단폭격을 받았다.
그가 대선 이후 정치 무대에서 홀연히 내려온 지 반 년이 지났다.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취임 100일을 넘긴 박근혜 대통령과 새 정부에 대해 홍보전문가로서 어떤 평가를 내릴까. 설득과 고사(固辭)를 반복한 끝에 어렵사리 6월 12일 그와 마주 앉았다. 빨간색 바지에 빨간색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그와 빨간 서랍장을 옆에 두고 빨간 테이블에 앉아 인터뷰를 했다. 온통 빨간 소품으로 둘러싸인 그에게 문득 ‘빨간’이란 순우리말 아호를 선물하고 싶었다. ‘빨간 조동원’.
▼ 옷도, 주변 소품도 빨강 일색이네요.
“원래 빨간색을 좋아했어요. 빨간색은 열정, 헌신, 사랑을 뜻하죠. 제 안에 열정이 넘치나봐요, 하하.”
“미투 전략은 성공 못해”
▼ 새누리당을 온통 빨갛게 물들인 게 평소 취향과 무관치 않은 셈이군요.
“고정관념을 깨뜨리려면 망치로 깨뜨리는 것처럼 파격적이어야 해요. 조금씩 바꿔서는 고정관념이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빨간색은 ‘빨갱이’의 어감처럼 오랫동안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 굳어 있었죠. 그런데 2002년 월드컵 때는 어땠습니까. 국민 모두가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광장에 모여 흥겹게 열정을 불사르지 않았나요. 정치권에서만 빨간색을 금기시했을 뿐, 국민은 다르게 받아들였던 거죠. 새누리당이 상징색을 빨강으로 바꾸면서 정치권과 국민의 인식 간극을 메우고 빨간색의 이미지를 열정과 희망의 이미지로 통합한 거죠. 결과도 좋았고요.”
▼ 민주당에서는 과거 한나라당 상징색인 파란색으로 당의 색깔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인 모양입니다.
“미투(me too) 전략은 성공하지 못하죠. 파란색은 이성적인 색깔이긴 하지만 차가운 느낌을 주잖아요.”
▼ 6월 4일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습니다. 지난 100일을 어떻게 지켜봤습니까.
“박 대통령은 상식의 정치를 하고 계시죠. 그래서 새 정부 국정운영이 과거 정부에 비해 한결 편안하고 예측 가능해졌죠.”
▼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불통’ 논란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말을 아끼는 것은 말을 앞세우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려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느 대통령처럼 말 한마디에 민심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잖아요. 박 대통령은 정제되고 절제된 소통을 하는 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한동안 보좌한 터라 후한 평가를 내놓으리라곤 예상했지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거의 ‘박(朴)비어천가’ 수준이었다. 전직 여당 홍보기획본부장이 아니라 현직 청와대 대변인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 너무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 아닌가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보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얘기하는 겁니다.”
▼ 첫 조각에서 관료 출신을 지나치게 중용했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5년 단임의 대통령에게 정권 출범 1년차는 임기 전체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해입니다. 박 대통령이 초기 내각에 관료 출신을 많이 임명한 것은 업무 파악이 필요 없을 만큼 부처에 대한 이해가 높고, 관료를 움직여 성과를 낼 수 있는 ‘일하는 장관’을 골랐기 때문이에요. 관료 중용 인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정치인 장관도 나름의 장점은 있죠. 하지만 정치인의 속성상 정치행위를 앞세우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어요. 제가 정치나 행정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역대 정부에 비해 초기 국정운영이 안정된 것은 인사가 잘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모르죠”에 숨은 의도
▼ ‘잘은 모르지만’이라는 말을 들으니 지난해 ‘100분 토론’에서 민간인 사찰 관련 질문에 대해 “저는 모르죠”라고 했다가 네티즌들로부터 맹공을 당했던 게 생각납니다.
“그때는 누구도 토론에 나가기를 꺼렸어요. 토론을 책임진 홍보기획본부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제가 나간 겁니다.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긴 했지만, 제 발언이 화제가 되는 바람에 민간인 사찰 파문이 한풀 꺾이면서 토론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요. 이제 와 얘기지만 그런 상황을 의도한 측면도 있습니다.”
▼ 의도한 발언이었다? 의외인데요.
“‘저는 모르죠’라는 말은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온 말입니다. 실제로 제가 민간인 사찰에 대해 알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고요. 다만 나쁜 쪽으로만 보려는 시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놔야 하겠다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제가 조롱거리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죠.”
얘기는 다시 박 대통령의 첫 조각으로 돌아왔다. 조 전 본부장은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내정됐다가 정부조직법 국회 통과가 지연되면서 자진 사퇴한 김종훈 씨의 낙마가 안타깝다고 했다.
“보수는 ‘지킬 보(保)’에 ‘지킬 수(守)’ 아닙니까. 그만큼 변화를 가장 늦게 받아들이는 특성이 있어요. 공직 사회도 보수 성향이 강한 곳이죠. 대통령이 김종훈 장관 임명으로 공직 사회에 변화의 물꼬를 트려 한 것 아닌가 싶어요.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건 어렵지만, 핵심 분야에 변화를 상징할 인물을 앉혀 다른 분야로 변화를 확산하려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제 사견이지만.”
조 전 본부장은 “박 대통령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처럼 변화의 지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며 과거 한나라당(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인적 구성을 예로 들었다.
“이준석 비대위원은 젊은층, 김종인 비대위원은 경제민주화, 안대희 정치개혁위원장은 검찰 및 정치개혁의 상징이었죠. 박 대통령은 비대위원장 시절에도 각 분야를 대표할 만한 인물을 영입해 국민에게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 함께 일해본 박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 만남에서부터 울림이 있었어요. 새누리당에서 많은 정치인을 만나 함께 일했지만, 박 대통령만큼 일관되게 진심으로 대하는 분은 못 봤어요. 처음 당에 들어갈 때만 해도 총선 전까지만 일하고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박 대통령의 진심에 끌려 대선까지 줄곧 일하게 됐습니다.”
“의원님이 힘들어하시잖아요”
▼ 계기가 있었나요.
“당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지난해 1월 중순쯤엔가 의원총회에 참석했어요. 당시 한나라당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상황이었죠.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졌어요. 비공개 의총에서 발언한 내용을 의총 끝나고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쏟아내며 더 강하게 당을 비판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것 아닌가요? 저런 게 정치인가 싶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박 비대위원장은 꼿꼿하게 앉아 의원들의 얘기를 모두 듣고 난 뒤 ‘당명을 바꾸겠다’고 선언했어요. 의총이 끝난 뒤 ‘왜 당명을 바꾸려느냐’고 물어봤어요. 과연 당명을 바꾸는 게 가능할까 반신반의했거든요. 박 비대위원장은 ‘의원님들이 힘들어 하시잖아요’라고 하더군요.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진심으로 당을 위하고, 소속 의원을 위하는 분이라면 끝까지 갈 수 있겠다고 확신했습니다.”
▼ 진심이란 게 겉으로 잘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안철수 후보가 ‘진심캠프’라고 이름 지었죠. 박 대통령이라면 캠프 이름에 ‘진심’이란 말을 못 쓰게 했을 겁니다. 말수가 적은 박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답답하다고 느낄 수는 있어요. 하지만 말이 앞서는 정치보다 묵묵히 실천으로 보여주는 정치를 하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지켜보면 진심은 자연스레 드러납니다.”
그는 “새누리당에서 보낸 1년은 광고홍보 전문가로서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1월 20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오른쪽)과 조동원 전 본부장(박 위원장 왼쪽).
▼ 박 대통령과 경쟁했던 다른 대선 후보들을 광고홍보 전문가로서 평가한다면.
“문재인 후보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용기 잃은 사자’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들은 사자로 보는데 정작 스스로는 사자로 느끼지 않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눈물도 그렇잖아요. 참모와 대선 후보의 이미지가 제각각이다 보니 일체화한 상(像)을 만드는 데 실패했죠.
치밀하고 계획적인 안철수
안철수 후보는 자기애가 무척 강한 사람 같아요. 일종의 나르시시스트죠. 회사 이름도 자기 이름으로 짓더니, 재단도 자기 이름으로 지었잖아요. 그런 점이 국민의 눈엔 자기중심적으로 비쳤을 겁니다. 고집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요. 정치인은 민심을 담는 큰 그릇이 돼야 하는데, 자기 이름을 자꾸 앞세우니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만드는 면이 있죠.”
▼ 대선 이후 안철수 의원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본질적인 면에서는 아직 그대로라고 봐요. 정치 자체는 맑은 물이 아닙니다. 다만 정치는 자정(自淨) 기능을 발휘해 (사회가) 썩지 않고 맑아지도록 기능하죠. 그런데 안 의원의 행보를 보면 정치의 자정 기능은 간과하고 ‘맑은 물’만 고집하는 것 같아요. 아수라장 같은 정치라는 진흙탕 속에 뛰어들어 역기능과 순기능을 분리해내고, 자정능력을 어떻게 키워 맑게 만들지 고민하고 실천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여전히 ‘새 정치’라는 맑은 물 타령만 하는 것 같아요.”
▼ 차기 대선주자로서 안철수 의원의 상품성을 어떻게 봅니까.
“여론의 향배에 따라 달라지겠죠. 제가 관찰한 바로는 의사, 컴퓨터 전문가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지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보여요. 처음에는 국민의 의사를 따르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나를 따르라’로 흐르지 않을까요. 지난 대선 때도 자신이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아 결국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좌절했고요. 정치를 생물에, 정치인을 민심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각배에 비유하지 않습니까. 정치인이 격랑에 휩쓸리거나 급류를 타고 내려갈 수는 있어도 민심의 바다를 거스를 수는 없는 겁니다. 공학적으로 정치에 접근해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는 게 그 때문이죠.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여론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조동원 전 본부장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 ‘호감이 전략을 이긴다’(로버트 바르가바 저)를 소개했다.
“이 책은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5가지 요소로 진정성 관련성 이타성 단순성 타이밍을 꼽습니다. 지금은 진정성의 시대입니다. 박 대통령이 상식과 이성의 정치를 하기에 국민이 편안하게 느끼는 겁니다. 과거 민주당처럼 감정과 분노의 정치를 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습니다. 트위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할지 몰라도 국민 여론을 움직이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감정과 분노는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줘요. 감정의 정치, 분노의 정치에 지친 국민이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원칙과 신뢰를 선택한 거죠.”
창조인재로 창조경제 뒷받침
얘기가 돌고 돌아 다시 박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 박근혜 정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창조경제’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창조경제는 누가 정권을 잡았어도 해야 할 일입니다. 미국 영국 일본 모두 창조경제를 향해 일찌감치 뛰고 있어요. 우리가 한발 늦은 겁니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에 집중하느라 국가의 미래 어젠다가 실종됐잖아요. 지금 이대로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 속에서 창조경제가 나왔습니다.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는 자전거의 앞뒤 바퀴와 같습니다. 경제민주화로 가진 이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음으로써 상생 생태계를 복원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미래를 개척하려는 것이 창조경제입니다.”
▼ 아직 창조경제의 구체적인 상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창조경제의 목표 아닐까요. 제가 앞으로 하려는 일도 창조경제와 관련이 깊어요.”
▼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붉은 글씨로 ‘confidencial’이라 쓰인 몇 장짜리 서류를 건넸다. ‘사회적협동조합 WALKERS’. ‘창조인재 양성, 채용’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WALKERS는 창조적 인재 육성에 관심 있는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회로 돌아온 뒤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봤어요. 정치권에 들어가기 직전에 한 일이 ‘후불제 아카데미’였어요. 돈을 받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잘 가르쳐서 취업이 되면 돈을 내는 후불제 교육방식이죠. 1995~2002년엔 150명의 젊은 친구에게 광고를 가르치기도 했고요. ‘그래, 내가 행복하게 잘할 수 있는 일은 가르치는 일이구나’ 싶더군요. 그 일을 행복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 전 본부장이 선보일 인재양성 프로그램은 독특한 참가 제한을 두고 있다. ‘SKY’로 대표되는 소위 명문대 출신과 스펙이 뛰어난 사람은 사절한다고 한다. 좋은 대학 나오고 능력 있는 이들은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뜻을 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그가 원하는 인재상은 도전적 인생을 살아오며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이를 극복해온 지혜의 경험치가 풍부한 사람이다. 이른바 ‘인생 마일리지’가 풍부한 창의적 인재다.
“학력이 부족하고 스펙이 달려도, 인생 마일리지가 풍부한 사람을 모아 창의적 인재로 키워내려고요.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제 역할은 흙 속에 묻혀 있는 보석을 흙 밖으로 파내는 일이에요.”
8월경에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원시장에 강의실을 열 계획이다.
“강의실이 서울 도심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보고 싶어요. 시끌벅적한 시장 상인들 속에서 창의적 인재가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