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상의 노래’ 이승우 작가 겨냥한 소설 집필 중
- “수상 소식에 ‘세상이…’ 하는 생각 들었다”
- 李 작가 “무의식적 표절 소지조차 없다”
소설가 김주욱(46) 씨는 10월 16일 아침 한 일간지에 실린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발표 기사와 수상자 인터뷰를 읽으면서 ‘세상이…’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승우(53) 작가의 장편소설 ‘지상의 노래’가 올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가는 대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한 문단의 중견이다. 조선대 교수로 후진도 양성하고 있다. ‘지상의 노래’는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폭력성, 구원에 대한 갈망 등을 치밀한 플롯으로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동인문학상 수상작 ‘지상의 노래’ 중 6장 ‘카다콤’이 자신의 소설 ‘허물’ 등을 표절했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이승우 선생님이 동인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지상의 노래’는 최소한 부끄러움이 없다. 이 작품으로 받아서 감사하다’고 말한 대목이 특히 가슴을 후볐다.”
김 씨는 2008년 단편소설 ‘보드게임’으로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올해 9월엔 ‘미노타우로스’로 천강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캐릭터, 모티프, 설정 유사
‘신동아’는 2013년 3월호에서 ‘지상의 노래’와 관련한 표절 시비를 보도한 바 있다(“표절시비 붙은 이승우 장편소설 ‘지상의 노래’” 제하 기사 참조).
지방지 문학상을 받고 등단한 작가는 으레 중앙지 신춘문예를 통해 재등단을 시도한다. 김 씨도 그랬다.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는 최종단계에서 낙선했다. 당시 이 작가가 심사위원이었다. 이 작가는 심사평에서 김 씨의 소설 ‘허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용사를 주인공으로 아름다움과 욕망,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라는 문제를 꽤 집요하게 다뤘다. 낯선 소재에 대한 취재도 성실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주요인물이 만들어내는 갈등이 평면적이고 진부한 데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서술의 지루함도 아쉬움을 주었다.”
김 씨는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때도 ‘허물’을 개작한 연작 형태의 중편소설 ‘핑크빛 허물’ ‘우로보로스’로 응모했다. 이승우 작가는 그해에도 심사위원을 맡았다.
김 씨 주장의 요지는 “이승우 작가가 신춘문예에 응모한 내 작품을 표절해 ‘지상의 노래’ 6장 ‘카다콤’을 썼다”는 것이다.
‘신동아’ 3월호는 김 작가의 소설과 ‘지상의 노래’를 비교했다. 주요 인물 캐릭터와 모티프 설정 등에서 나타난 유사점을 소개하면서 중립적 위치에서 김 씨의 주장과 이 작가의 견해를 게재했다. 또한 교수이면서 문학평론가인 K씨, 소설가 K씨에게 비교분석을 의뢰했다. 두 전문가의 견해는 다음과 같았다.
“신춘문예 때 텍스트를 한 번 읽고 내다버린 뒤 머릿속에 있었던 게 나온 수준이 아니라 ‘지상의 노래’를 쓸 때 그 텍스트를 가져다놓고 다시 읽으면서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모티프와 설정 등을 가져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법적으로는 모르겠으나 도덕적,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상당하다. 문단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안다”(문학평론가 K씨)
“이승우 작가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언론계 은어를 빌리면 ‘우라까이’(남의 기사를 참조해 자신의 기사를 쓰는 행위)라고 봐야 할 듯하다.”(소설가 K씨)
‘신동아’는 3월호에서 김주욱 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이승우 작가의 의견을 200자 원고지 18매 분량으로 게재했다. 이 작가는 “참고, 참조한 적도 없다. 무의식적으로 표절했을 소지도 없다”고 밝혔다.
학술논문과 다르게 문학작품은 ‘표절이다’ ‘표절이 아니다’라고 양단하기 어렵다. 또한 모티프나 설정, 캐릭터 등은 우연의 일치로 비슷해질 수도 있다. 문학평론가 K씨, 소설가 K씨의 견해 역시 주관적인 것일 뿐이다.
이승우 장편소설 ‘지상의 노래’(왼쪽)와 김주욱 씨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들.
“윤리적 문제는 명백하다”
‘신동아’는 10월 29일 김 씨를 다시 만났다. 김 씨는 “‘지상의 노래’ 6장이 내 소설을 표절했다는 믿음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이승우 선생님께 전화, e메일로 항의할 때는 격앙돼 있었다. 올해 2월 ‘신동아’와 인터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분노가 희석됐다고나 할까, 그냥 세상 사는 이치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불혹이 넘은 나이에 습작을 시작한 늦깎이 소설가고, 이 선생님은 한국 문단의 대표선수 중 한 분 아닌가.”
김 씨는 지난해 12월 이 작가에게 e메일을 보내 항의했다. 이 작가는 “내 작품에 어떤 표절의 증거가 있는지 나로서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런 게 있다면 미스터리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승우 선생님께서 ‘당신이 쓴 신춘문예 응모작에서 모티프를 얻어 변주한 것으로 그것은 표절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씀하면서 왜 그런 것인지 설명해 주셨으면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수긍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춘문예 때 당신이 쓴 소설을 읽은 것은 기억나지만, 참조, 참고조차 안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김 씨는 ‘신동아’ 3월호에 실린 기사를 소설가 30명에게 보내 표절과 관련한 의견을 묻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30명 중 겨우 2명이 답장을 보내주셨다. 소설가 지망생의 한탄 정도로 치부한 것 같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표절 시비가 붙은 것을 알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K 작가는 김 씨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썼다.
“심사위원으로서 내용을 반복해 접한 적이 있다면 ‘참조, 참고한 적 없다’라는 말은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내 견해는, 법적 시비는 분량에 대한 기계적 평가가 들어가기에 자신할 수 없으나 윤리적 문제는 명백하다는 정도로, 신동아 기사 중 문학평론가 K씨의 견해와 일치한다. 사전에 김주욱 님과 협의를 거치고 영감을 얻었거나 차용했다고 정식으로 발표하지 않은 것이 윤리적 문제다. 즉 법적 표절에 걸리지 않을 수준에서 아이디어를 베껴가고 모른 척했다는 것으로, 가져다 쓴 것 자체보다 ‘참조, 참고한 적 없다’고 주장한 부분이 문제 지점이다. 다시 말해 지적재산권에 비해 저작인격권의 문제가 더욱 뚜렷하다. 향후 (대응할 때) 이 지점을 강조하는 것이 좋겠다.”
P 작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e메일을 보냈다.
“e메일 잘 받았다. 첨부된 신동아 기사도 꼼꼼히 읽었다. 신동아 기사만을 통해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지극히 부적절한 행위다. (…) 이 일로 (신동아 기사에서 소설가 K씨가 걱정한 것처럼) 김주욱 선생님의 앞길에 무슨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 한국 문단은 어느 한 작가의 입김에 좌지우지될 정도로 작은 동네가 아니다. 혹시라도 그 일로 심란하셨다면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드린다.”
“부끄럽지 않은 작품 내놓겠다”
김 씨는 “P 작가 말씀이 맞는 것 같다. 그간 좋은 일도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9월 천강문학상 소설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또 신동아 기사를 읽은 나남출판에서 소설 출간 제의를 해왔다. 나남출판은 ‘지상의 노래’의 표절 여부와 관련해 나와 생각이 비슷한 것 같더라. 당초에는 ‘허물’ 등이 포함된 소설집을 내는 것을 논의했는데, 기획회의를 거치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중편인 ‘허물’ ‘우로보로스’ 등을 바탕으로 액자소설 형태의 1000매 분량 장편을 새로 쓰기로 했다.”
K씨는 내년 봄 출간할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심판받겠다고 말했다.
“내가 믿고 있는 바와 겪은 일을 변주해 소설화할 것이다. 화만 낸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소설은 이승우 선생님을 직접 겨냥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자전적인 내용을 섞어 문학적인 감동을 주는 게 목표다. 미대를 나와 디자이너로 일하다 사업에 뛰어들어 실패한 후 늦깎이로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작중 화자가 표절 시비를 제기하면서 겪은 일을 문학적 텍스트로 변주한 후 ‘허물’을 보완한 중편소설이 액자소설 형식으로 중앙에 자리 잡는 형태다. 특정인을 겨냥해 작정하고 썼다는 비판에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작품의 수준, 문학적 의미가 중요한 것 아닌가.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내놓을 것이다.”
김 씨가 집필 중인 소설과 관련해 나남출판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승우 작가의 다층적 사유와 문학성에 흠집을 내거나 표절 시비와 관련해 김주욱 씨를 두둔하고자 소설 출간을 제의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 작가가 김 씨 주장 중 일부를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게 개인적 의견이다. 그랬다면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김주욱 씨가 내년 봄 마무리할 작품의 완성도, 문학성을 살펴본 후 출간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