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 의장직의 매력은 2005년 4월 상황을 감안하면 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당대회 직후 치러질 재·보궐선거의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수도권 민심은 매우 비관적이다. 행정수도 이전 등의 재료가 쟁점이 되면서 수도권, 특히 서울의 여론은 대구 부산 등 한나라당의 텃밭과 대동소이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 당내 지분을 지닌 핵심인사들은 지금까지 전당대회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섣불리 총력전을 펴기도, 그렇다고 나 몰라라 방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당 의장 자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차기’에 관심을 가진 인사들이 섣불리 덤벼들기에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2006년 지방선거까지는 노무현 대통령 집권 3년차에 해당하는 해다. 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긴 했지만 당내 어느 세력도 ‘독자행보’에 나서기에는 시기상조다. 2006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노 대통령의 힘이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당권을 쥐고 흔들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차기 당권은 지방선거까지 구심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당을 안정시켜야 하는 ‘통합관리체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당내 복잡한 역학구도와 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 저하는 어떤 체제가 들어서든 당 ‘관리’가 힘든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지방선거라는 ‘빅 이벤트’를 치르기 위해서는 2006년 초 또다시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 2006년 전당대회는 올 전당대회와는 판이할 것이다. ‘포스트 노무현’에 대한 그림이 본격적으로 그려지는 시점이라 당권 장악은 ‘충분조건’은 아닐지언정 ‘필요조건’ 정도는 된다.
그렇다고 올 전당대회를 무시할 수도 없다. 라이벌 계파가 당권을 쥐게 되면 향후 대권가도에 적신호가 켜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까지 4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나 당내 각 계파의 수장들이 의도적으로 언급을 회피하는 것은 복잡한 현실에 대한 계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상부는 조용, 하부만 바쁜 당권파
현재 열린우리당에선 계파별로 암중모색이 이뤄지고 있다.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연합’을 주축으로 한 당내 최대 계파인 ‘범 당권파’에서는 아직 마땅한 주자가 떠오르지 않고 있다. 신기남 의원이 명예회복 차원에서 출마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지만 주위사람들이 모두 만류하고 있다. 그러나 부친의 친일 전력으로 당 의장직에서 물러난 신 의원은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 의원은 오랜 동지인 천정배 원내대표 및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관계가 서먹해졌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범 당권파의 핵심인물인 김한길, 이강래 의원도 신 의원의 출마에 부정적이다. 신 의원이 출마할 경우 당권파가 당선을 목적으로 밀 후보와 표가 갈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계파의 중심인물인 신 의원이 나섰다가 기대 이하의 표를 얻을 경우 계파의 망신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천·신·정’을 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던 김한길 의원은 2000년 총선 당시 한솔로부터 1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당권파의 행보가 ‘친노(親盧)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정 장관의 한 핵심측근은 당권과 관련, “우리는 ‘무현이즘’(노무현 노선)을 충실히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내 광범위한 친노세력을 업고 당권은 물론 대권까지 바라보는 ‘전략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 중 정 장관이 노 대통령과 가장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당권파에게는 ‘비빌 언덕’이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상대적으로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하다는 점을 당권파는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