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한나라당이 이 의원의 조선노동당 가입여부 등 당시 사건의 진위를 따져보자며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열린우리당은 조직적인 ‘기획 색깔공세’라고 맞불을 놓으며 과거 정권의 용공조작 및 국가보안법에 따른 인권침해사례에 대한 국정조사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양당이 첨예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중부지역당 총책이던 황인오씨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총선 직전인 2004년 2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공천 결정권을 쥔 모 의원 등 두세 사람으로부터 정치입문 제의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로써 여야공방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황씨는 “정 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자기가 적극 밀테니 한번 만나자고 했다. 정치에 뜻이 전혀 없기 때문에 만나지 않았지만, 우리 같은 전력을 가진 사람도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구나, 이제는 거리낌없이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철우 의원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지금 이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나라당은 이 의원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는 명분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 의원은 황씨의 하부조직원이었다.
그러나 정형근 의원은 황씨의 주장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며 전면 부정했다. 정 의원은 “2월이라면 당장 내 공천문제로 정신없던 때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 신경 쓸 겨를이 있었겠냐”고 반문하면서 “황인오씨와 전화통화를 했고, 한 번 만난 적도 있지만 전혀 다른 일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황씨와 접촉한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민해전 전신은 ‘1995년 위원회’
한편 황씨는 1992년 중부지역당 사건과 관련, “한때 잘못된 판단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분명하고, 그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라며 12년 전 사건이 새삼 재론되는 상황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다음은 지난 12월11일 오후 경기도 부천 외곽의 한 카페에서 황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민족해방애국전선(민해전)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민해전은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의 또 다른 이름인가, 아니면 하부조직인가.
“둘 다 맞다. 자꾸 충돌하는 건 한나라당이 의도한 탓이다. 전 강원도당위원장 최호경씨는 나를 만나기 이전부터 ‘1995년 위원회’라는 조직을 꾸려왔다. (중부지역당 조직을 위해) 평소 친분이 있던 최씨를 만난 후 내가 그 조직의 총책으로 올라앉은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민해전이 중부지역당이지만, 최씨의 조직원들은 중부지역당에 소속돼 있다고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철우 의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황씨 등 관련자들의 재판기록에 따르면 ‘1995년 위원회’는 1991년 7월 최씨가 황인오씨에게 포섭된 이후 민해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중부지역당의 핵심조직이 됐다.
-그렇다면 민해전 조직원이 모두 중부지역당 소속이라는 건데, 중부지역당은 곧 노동당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최상위층 몇 사람만 비밀리에 노동당원으로 가입했을 뿐이다. 나머지 하부조직원들에게는 철저하게 비밀로 했다. 알면 위험한 것 아닌가. 분명한 것은 (민해전이) 중부지역당과 아무 상관 없이 그 전부터 활동하던 조직이라는 점이다. 또 1992년 초 중부지역당이 해체된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그런 점에서 민해전은 중부지역당이라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중부지역당은 언제 어떤 이유로 해체됐나.
“내가 체포된 게 1992년 9월인데, 그 이전인 4~5월경에 이미 내부 보안상 문제가 노출됐다. 자칫 조직 모두가 다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비밀조직 활동을 하는 것이 체질에 맞지 않고, 북쪽에 협조하는 게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최씨, 장모씨 등으로 구성돼 있던 중앙위원회는 사실상 이때 해체됐다. 장씨는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고, 최씨만 기존의 조직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나중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