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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吳)·초(楚) 전쟁의 희비 쌍곡선

전략전술로 압승, ‘복수무정’에 자멸

오(吳)·초(楚) 전쟁의 희비 쌍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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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吳)·초(楚) 전쟁의 그늘진 교훈은 실패작으로 그친 오군의 점령 통치다. 복수심으로 불타던 오왕 합려와 오자서는 초나라에 대한 보복에 광분해 참된 승리를 얻지 못했다. 보복심리는 대국적인 건국이념과 국가이익의 차원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발상의 기조가 될 수 없다.
오(吳)·초(楚) 전쟁의 희비 쌍곡선
복수를위해 쿠데타를 도운 오자서(伍子胥)는 합려왕이 집권하자곧바로 초나라를 칠 준비에 착수했다. 상대는 천하의 강대국이니 전쟁을 하려면 우선 인재들의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초나라에서 백비(伯?)라는 사람이 망명해왔다. 그는 자신이 귀족 출신이자 중신의 가문으로 부친이 간신 비무기의 참언으로 평왕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외국으로 탈출해 복수할 길을 모색하던 중 오나라에 오자서가 있음을 알고 의지하면서 협력하고자 찾아왔다고 했다. 오자서는 백비가 자신과 가문이나 복수 성향이 같을 뿐 아니라 정보통이라고 보고 적극적으로 천거했다. 합려왕은 백비를 대부(大夫)로 중용했다.

그러나 오자서는 백비의 가문과 성향, 지식만 중시했지 근원적으로 중요한 ‘성격’을 도외시했다. 이는 큰 잘못이었다. 이 점을 걱정한, 오자서의 친구이자 벼슬이 대부인 피리(被離)라는 사람이 하루는 자기 집에 연회를 벌여 그를 초대해서는 다른 내객들이 돌아가자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건넸다.

피리 : “경은 백비와 퍽 친밀하게 교제하시는데, 무슨 특별한 사유라도 있으신지….”

오자서 : “소생의 부형이 초나라 왕실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백비도 그 부친이 초나라 왕실에 살해당했습니다. 그러니 보복 성향이 동일하고, 다같이 망명해온 객신입니다.”



피리 : “알겠습니다. 그러나 오 선생을 위해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소생의 눈에는 백비가 경계해야 할 인물로 비칩니다.”

오자서 : “어떤 점을 경계해야 합니까?”

피리 : “관상에 의하면, 백비는 사나운 매의 눈매를 가졌습니다. 애당초 의리나 인정, 충성이나 은덕과는 거리가 먼 자아본위, 수단불문의 잔인한 눈초리입니다. 게다가 걸음걸이를 보니 호랑이 걸음 치고도 보폭이 지나칩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뇌물이건 참언이건 서슴지 않고 무한대의 욕심을 추구하리라고 봅니다.”

오자서 : “그렇습니까? 하지만 소생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요컨대 오자서의 오류는 오직 성향과 가문과 능력에 치중하여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성격, 즉 사람됨의 인격구조를 무시한 데 있었다. 후일 그러한 오류 때문에 오자서는 파멸을 자초하고 만다(吳越春秋, 闔閭內傳 第四).

능력보다 사람됨이 먼저이거늘…

이른바 ‘성향’이 같으면 그만이라고 하여 ‘개혁 성향’이니 ‘복수 성향’이니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가 나중엔 파벌 싸움과 숙청에 골몰한다. 그런가 하면 ‘가문’이 충성을 보장한다며, 소위 ‘가정 성분’이니 ‘계급 성분’을 스탈린식으로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 결과는 소련 붕괴나 세습독재 파탄일 뿐이다.

반면 미국에선 구두닦이 소년이던 존슨이 대통령이 됐다. 영국에선 보수당과 자유당을 왔다갔다해서 ‘변절 시비’에 휘말렸던 처칠이 수상이 되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렇듯 근본적인 문제는 애국심이 굳건한 성격과 능력에 달려 있다. 결코 피상적 성향이나 가문 따위에 구애해선 안 된다. 더구나 현대의 가문 타령은 무능한 자의 우대 요구에 불과하다. 애당초 상대할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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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운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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