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X-파일 사건 때 검찰이 ‘성명불상 언론인’으로부터 입수한 ‘안기부 도청 녹취록 정리본’. 시중에선 ‘여러 버전’의 도청 녹취록이 나돌아다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임씨 부인의 표정이 날카로워지면서 ‘박인회씨 아들이 왜 찾아왔어요’라고 힐난조로 말하면서 거의 쫓아낼듯하여 내가 ‘인사드리면 잘해주실 것이라고 하였는데 섭섭하다’고 말했다. 임씨의 부인이 다시 ‘왜 오셨나’고 그러기에 나는 ‘아버님이 몸도 좋지 않으신 상황에서 이렇게 찾아왔는데 박대하실 수 있느냐’고 말하고 그대로 나왔다. 당시 박인회가 아프다고 말하면 임씨와 대화할 수 있는 거리가 되겠거니 생각한 것인데, 임씨 쪽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어 그냥 나왔다.”
임씨는 공운영씨와 친분은 있었지만 도청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 기자는 임씨가 도청 업무에 관여한 것으로 잘못 짐작했던 듯하다. 임씨를 상대로 한 취재가 이처럼 성과 없이 끝난 뒤 이 기자가 도청 테이프의 출처에 대해 추가 취재를 했다는 정황은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바로 이어지는 이 기자의 관련 진술이다.
“임씨를 상대로 한 테이프 유출 경로 추적 취재에 실패한 후 MBC 내부에선 법률검토를 하자고 하여 법률논쟁이 벌어졌다. 그래서 2005년 5월말부터 MBC 고문변호사들 위주로 법률 검토를 벌였는데, 공익적이고 국민의 알 권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자문 결과를 받았다.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 이학수 부회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 등 3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런데 6월 중순 C변호사에게 자문하니 통신비밀보호법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대법원, 검찰, 법무법인 등 넓게 자문했다. 그러던 중 7월21일 조선일보가 안기부 도청 실태와 X-파일의 대강의 내용을 보도한 것이다.” (X-파일 입수 이후 MBC의 내부 대응 과정은 상자 기사 참조)
이 기자의 검찰 진술은, MBC가 X-파일을 제공받기는 했지만 X-파일 제작경위를 취재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의미로 비쳐진다.
X-파일 녹취록이라고 하더라도 ‘문서의 제작 주체’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선 ‘괴문서’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기자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통신비밀보호법 저촉 문제뿐만 아니라 ‘취재 성과의 부재’가 MBC의 X-파일 보도를 가로막은 또 다른 요인으로 보인다.
2. MBC가 3종류의 ‘녹취록’을 만들었다
MBC측은 박인회씨로부터 도청 녹취록을 제공받은 뒤 이 녹취록을 여러 부 복사했다. 그런데 이 기자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MBC측은 ‘안기부 도청 녹취록’과는 별도로 ‘녹취록’을 만들기도 했다. 이 기자는 “세 종류의 녹취록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기자의 진술 내용이다.
▼ “하나 더 만들고, 가필본도 만들고…”
“2005년 1월 초순경 (MBC 내부의) OOO팀에서 OOO 부장이 조연출들을 시켜 녹취록을 하나 만들었다. 그러나 내용이 부실해 내가 1월 하순경(1월30일~2월2일) 별도의 녹취록을 만들었다. 나중에 보니 또 다른 OOOO팀이 내 녹취록을 토대로 하여 ‘가필본’을 하나 더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기자는 안기부 도청 테이프를 여러 번 듣고 도청 녹취록을 읽어보기도 했는데 본인도 녹취록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렇게 MBC측이 만든 ‘녹취록’은 회사 내에 배포되기도 했다.
이상호 기자는 “진술인(이 기자)이 만든 녹취록은 나중에 몇 부나 복사됐는가”라는 검찰측 질문에 “내가 녹취록 1개를 만들어 가지고 있다가 특별취재팀이 구성된 후 10부를 복사해 나눠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