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월10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이명박대통령이 제기한 ‘강도론’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정현 의원.
일각에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 전 대표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선 특별히 거부감을 표시한 적이 없다. 언론창구인 이 의원은 이러한 차이점을 언론에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은 “4대강 사업의 필요성과 부작용에 여러 가지 생각이 있겠지만 사업 자체에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고 정부의 국책사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 주민들도 대체로 달성군을 통과하는 낙동강 정비 사업이 지역발전에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친박계의 대언론 창구가 단일화 돼 있지는 않다. 다른 친박계 의원들이 박 전 대표의 말을 들어 직·간접적으로 언론에 흘리는 경우도 많다. 또 의원이 개인의견을 피력한 것이 ‘박심(朴心·박 전 대표의 심중)’이거나 친박계 전체의 견해처럼 보도되기도 한다.
이정현 의원은 “일부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을 언론에 설명하는 바람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 전 대표가 계파정치 자체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른바 ‘(전체) 친박계의 입장’이란 것은 있을 수 없고, 나도 다만 박 전 대표의 말씀을 언론에 전하는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자 배치하고…
박 전 대표의 코멘트만 전하는 데 충실하려는 이 의원은 때로는 상당한 순발력을 발휘한다. 미디어법 대치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19일 이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본회의 표결에 참석한다면 이는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미디어법 표결 처리 방침을 밝히며 “박 전 대표도 표결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한 반박이었다.
이런 일은 박 전 대표 본인이 웬만하면 언론에 나서기를 꺼리는 데서 발생한다. 언론 입장에서 보면 박 전 대표는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여전히 ‘칩거 중’이다. 현재 그의 유일한 출근처가 국회의원회관이지만 아무리 자주 가도 만날 수가 없다. 경선 이후 개별 언론과 공식 인터뷰를 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다른 정치인과 달리 각사 편집국이나 보도국 간부들과의 사적인 자리도 되도록 피한다.
각 언론사에 ‘박근혜 전담 마크’ 기자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도 박 전 대표와 직접 대면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돼 있다. 각사 한나라당 출입기자의 ‘반장’이나 전담 기자들이 바뀌었을 때 그들이 면담을 요구하면 가끔 시간을 내서 티타임이나 식사 자리를 갖기도 하지만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또 대화 내용도 기자들이 먼저 민감한 정치현안을 꺼내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담 기자들이 자리를 마련해놓고 박 전 대표를 초청한다. 가령 박 전 대표의 해외 방문 때 동행 취재했던 기자들이 귀국 후 친목 모임을 갖기도 하는데, 이 자리에 박 전 대표와 당시 수행했던 친박계 의원들이 간혹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때도 정치현안을 두고 질문과 대답이 오가기보다는 방문 당시의 후일담이나 가벼운 정치·사회 문제가 화제로 오른다.
각 언론사는 ‘박근혜 취재’가 쉽지 않자 다양한 접근 방식을 짜냈다. 박 전 대표와 좀 더 수월하게 교감을 나눌 것으로 기대해 여기자를 전담으로 배치하고,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를 담당했던 기자를 다시 전담기자로 복귀시키기도 했다. 경선 이후 박근혜 캠프 담당 기자 가운데 상당수가 정치부를 떠나거나 야당 담당 등으로 옮겨갔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큰 선거가 끝난 뒤의 통상적인 인사이동이지만 친박계 안에서는 이명박 캠프를 담당했던 기자들이 청와대를 출입하거나 한나라당에 그대로 남았던 것과 비교해 “차별을 받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박 전 대표의 해외 방문 때 언론사들이 큰 기사거리가 없음을 알면서도 적지 않은 출장비를 지출해가며 기자들을 동행취재에 나서게 하는 것도 그만큼 깊숙한 ‘박근혜 기사’에 목말라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