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수비는 축구협회 투톱은 중앙고와 현대

정몽준의 파워 인맥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2004-08-31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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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체는 미미하다. 하지만 뿌린 씨앗은 무궁무진하다. 정몽준(MJ)의 인맥은 어딘가 허전하면서도 무서운 잠재력을 갖고 있다. 10년 전 대선을 치러본 현대, 절치부심 때를 기다려온 중앙고, 용의 탄생을 고대하는 정씨 문중, 정의원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축구협회…. 2대에 거쳐 힘을 길러온 MJ사단은 과연 두번째 도전에 나설 것인가. 아니면 기회도 잡지 못한 채 거품처럼 사라질 것인가.
    정치인에게 인맥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하나는 ‘돈줄’이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이 된다는 점에서다. 돈과 조직은 한국정치에서 중요한 변수다. 한국에서 선거에 출마하려면 가장 먼저 돈과 조직을 챙겨야 한다. 보통의 정치인이라면 돈보다 조직을 중시한다. 일단 조직이 꾸려지면, 자연스럽게 돈이 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돈과 조직을 보완관계로 볼 수도 있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의 경우는 조금 얘기가 다르다. 그는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금 루트인, 후원회를 가장 적게 연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988년 13대 총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을 때부터 단 한번도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다. 이런 까닭에 정의원의 조직은 여느 정치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가 장차 대통령후보로 나선다 해도, 그런 성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몽준 의원에 대해 오해하는 게 있다. 그의 뒤에는 엄청난 ‘브레인 그룹’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다. 이것은 정의원이 국회의원, 현대중공업 고문, 대한축구협회장, 월드컵조직위원장,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 울산대 이사장 등을 겸임하면서도 대선주자로서의 면모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야당의 한 중진의원은 “누군가 치밀하게 전략을 짜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의원의 주변에서 비밀 캠프나 브레인 집단은 보이지 않는다. 광화문 신문로빌딩 후원회 사무실은 이미 공개된 장소이고, 아침마다 축구협회에서 열리는 참모회의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따금씩 정의원이 시내의 호텔 등에서 지인들을 만나는 것이 기자들에게 목격되기도 했지만, 그것을 ‘캠프’나 ‘브레인 그룹’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겉모습만 놓고 볼 때 그는 여전히 단기필마인 셈이다.

    정의원은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아침 일찍 대한축구협회 6층에서 회의를 연다. 여기에서는 주요 일정을 체크하고, 언론 보도내용 등을 점검한다. 고정 참석자는 국회에서 이달희 보좌관, 축구협회에서 김상진 부회장, 임삼 홍보위원장, 정종문 자문위원, 조중연 전무, 남광우 사무총장, 유영철 홍보국장 등이다. 이들은 모두 정의원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이다.



    이달희 보좌관은 정회장의 일정을 거의 대부분 수행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2년 국민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민당 정책위의장은 윤영탁 현 한나라당 의원이었고, 정의원은 정책위 부의장, 이보좌관은 정책실장을 지냈다. 이보좌관은 늘 가방을 갖고 다니는데, 그 속에는 정의원에 관한 각종 자료가 담겨 있다. 정의원이 인터뷰 도중 필요한 자료를 언급하면, 이보좌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복사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보좌관은 국회 의원회관과 신문로빌딩 후원회 사무실에도 자주 들른다. 이곳에서 주로 기자들과 정의원의 지인들을 만난다. 그는 좀처럼 자기 생각을 털어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로 남들이 정의원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관심을 둔다. 이보좌관은 월드컵 이후 후원회원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어차피 정의원의 대선출마 여부는 국민여론에 달려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상진 부회장은 경남 거창 출신으로 ‘한국일보’ 정치부장과 문공부 해외공보관을 지냈다. 그는 정회장이 축구협회장에 취임한 직후부터 부회장으로 일해왔는데, 일부 축구인들은 “비축구계 인사가 요직에 앉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언론사 정치부장 출신답게 정의원의 정치행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정의원이 언론사에 글을 기고할 때도 여러 모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부회장 외에 축구협회 부회장은 다섯 명이 더 있다. 이 가운데 오완건 이종환 문정식씨 등은 축구인 출신이다. 장영달 부회장은 3선의 국회의원으로 현재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고1 때까지 축구선수로 뛴 경험이 있다. 이갑진 부회장은 해병대 사령관 출신이다. 두 사람이 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은, 축구선수들의 병역문제 해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월드컵 대표선수들의 병역특혜를 적극적으로 주장한 사람이 장의원이고, 육·해·공군과 해병대에 6개의 축구팀을 만들자고 제안한 사람은 이부회장이다.

    임삼 홍보위원장은 금강기획 상임고문과 ‘문화일보’ 비상임이사를 맡으면서 현대그룹과 인연을 맺어왔으며, ‘한국일보’ 도쿄특파원을 지낸 일본통이기도 하다. 2002한일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대회였기 때문에 양국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했다. 임고문은 월드컵을 전후해 일본에서 들어온 각종 문서 등을 번역하고, 일본어 연설문 등도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고 입이 무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종문 자문위원은 비교적 최근에 합류했다. 그는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는데, 남북관계와 외교문제 등에 해박하다. 정자문위원은 미국에서 정의원을 처음 만났는데, 당시 정의원은 유학 중이었고, 정자문위원은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정자문위원은 김대중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데, 정의원은 통일 안보문제 등과 관련해 정자문위원의 자문을 받고 있다.

    조중연 전무와 남광우 사무총장은 대한축구협회에서 각각 축구인 그룹과 현대중공업 인맥을 대표한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 사이는 가깝고도 멀다.

    조중연 전무는 프로축구 현대 감독과 KBS 축구해설위원을 지내다가 김정남 전무의 후임으로 축구협회에 들어왔다. 외형적으로 볼 때 그는 대한축구협회 서열 2위다. 하지만 축구인들 가운데, 조전무를 ‘넘버2’로 보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그는 정회장을 대신해 ‘악역’을 도맡았다는 지적이 많다. 98프랑스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의 경질을 주도한 것이나, 이번 월드컵에서 포상금 차등지급을 주장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사람이 바로 조전무다.

    남광우 사무총장은 축구협회의 살림꾼으로 정회장의 신임이 두텁다. 정회장이 처음 축구협회를 맡았을 때는, 1년에 많게는 수십억원을 지원하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한국이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많은 스폰서가 붙었고, 이제는 축구협회가 자체적으로 이윤을 내는 상황으로 변모했다. 남국장은 이 과정에 남다른 수완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는 정회장과 마찬가지로 ROTC 출신이며, 현대중공업 총무부장을 지냈다.

    유영철 홍보국장은 정의원이 초선이었던 13대 국회에서 국회 보좌관을 지냈다. 그는 이후 현대자동차로 복귀했다가,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세계박람회(여수 해양엑스포) 유치위원회에서 홍보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유국장은 현재 정회장의 공식일정과 언론 인터뷰 등을 책임지고 있다.

    가삼현 국제부장과 김동대 월드컵조직위원회 사무총장보도 정회장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가부장은 오완건 부회장과 함께 축구협회의 대표적인 국제통이다. 그는 현대중공업 해외영업을 담당한 적이 있으며, 정회장을 FIFA 부회장으로 만든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또한 히딩크 감독의 영입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정회장의 총애를 받았다. 가부장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는, 정회장이 그룹 차원의 지원을 당부한 일까지 있었다.

    김동대 사무총장보는 1993년 현대건설 사우디아라비아지사에 근무했다. 당시 정회장은 축구협회장을 맡은 이래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했는데, 김사무총장보는 지원팀장으로 남다른 솜씨를 발휘하며 신임을 얻었다. 국내 축구인들은 그를 정회장의 숨은 브레인으로 평가하며, 외국에서는 ‘DD KIM’으로도 불린다.

    이밖에도 축구계에는 정회장과 밀접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현대중공업 출신이다. 대표적 측근으로는 오규상 프로축구 울산현대 부단장, 김원동 프로축구연맹 사무국장, 김정만 사업부장, 진형섭 지원부장, 이연정 ‘축구가족’ 편집실장 등을 들 수 있다.

    축구협회 내에서는 한때 정회장이 대통령후보로 나설 경우, ‘현대맨’들이 대거 대선캠프로 이동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난 뒤엔 정회장이 대선출마와 관계없이 축구협회장직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 경우 축구협회의 ‘MJ인맥’은 외곽 지원세력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정몽준 의원 후원회 사무실은 신문로빌딩에 있다. 정의원이 최근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후원회 사무실은 단출하다. 정의원이 아직까지 공식 출마선언을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의 지역구가 울산이라는 점과도 관계가 깊다. 그동안 정의원의 후원활동은 울산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게 사실이다.

    사무실 입구에는 ‘청운연구회’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청운동은 정의원의 아버지 고 정주영 회장의 자택이 있던 곳이다. 후원회 사무실에서 상근하는 사람은 3명,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하루 평균 2∼3명씩 드나들지만, 정작 정의원은 이곳을 찾는 일이 드물다. 이달희 보좌관이 후원회 소식지 발송과 신규 후원회원 접수상황 등을 점검하고 있으며, 홍윤호 전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도 가끔씩 들른다.

    후원회원은 월드컵 이후 급증하는 추세다. 월드컵 기간을 전후로 하루 평균 100∼200명씩 늘어 이젠 1만5000명에 이르렀다. 후원회 관계자는 “모두가 자발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했지만, 정의원이 지방행사에 나설 경우엔 후원회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후문이다. 최근 후원회에 가입했다는 대학생 A씨는 “먼저 가입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권했다. 전국적으로 MJ 지지자들이 활발하게 뛰고 있다. 머지 않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12월부터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정의원의 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 전총리는 정의원을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이 전총리는 정의원이 미국 MIT에서 수학하던 시절 예일대 교수였는데, 당시 정의원에게 “정치학을 공부하려면 존스홉킨스 대학에 들어가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이 전총리는 또한 정의원이 축구협회장을 맡자 2002한일월드컵축구유치위원회 명예위원장에 취임해 정의원을 지원했다.

    정의원의 공식 홈페이지(www.mjch ung.pe.kr)에도 이홍구 후원회장의 각별한 사랑이 묻어 있다. ‘뛰어난 국제감각과 경제마인드, 강인한 추진력과 소박함을 지닌 MJ, 전세계인의 축제인 2002월드컵으로 우리나라의 자부심을 세계에 드높인 힘 있는 외교관 MJ…. 이홍구 올림’

    정의원의 홈페이지는 여느 국회의원의 홈페이지와 비교할 때 고급스럽고 화려한 점이 특징이다. 정의원이 TV에 출연한 프로그램을 동영상 파일로 재구성한 것이 인상적이고, 정의원의 삶을 정치인, 축구인, 글로벌리더 등으로 3등분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가장 공이 많이 들어간 것은 역시 정의원을 글로벌리더로 부각시킨 부분이다. 정의원의 측근들도 “국제감각에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한다.

    정의원은 MIT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그는 일찍부터 아버지를 도와 수행하며 88서울올림픽 유치에 관여했고, FIFA 부회장 자격으로 세계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정의원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수상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경주로 안내한 적이 있으며,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과도 막역한 사이다. 이밖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 등과도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다.

    정의원이 국제적으로 유명인사가 된 데는 고급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능력이 큰 도움을 주었다. 2002한일월드컵의 명칭 문제를 놓고 일본이 약속을 위반했을 때, 정의원은 FIFA 공식회의에 참석해 영어로 계약내용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진 적이 있다. 그러자 FIFA 집행위원들이 “No more speaking(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정의원의 손을 들어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정의원의 부인 김영명씨도 국제화 마인드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정의원은 MIT 유학 시절 자매학교인 웨즐리여자대학에 다니던 김씨를 만났다. 김씨는 바로 주일대사 주미대사 외무장관 등을 역임한 김동조씨의 딸이기도 하다. 김씨는 네이티브에 버금가는 영어실력을 갖고 있는데, 이따금씩 정의원과 동행할 때마다 호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정의원의 지역구인 울산 동구에서는 김씨의 조용한 내조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정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은 현대그룹 또는 정주영 회장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다. 고려대 총장서리로 선임된 한승주 교수는 현재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 상임이사와 울산대 재단이사를 맡고 있다. 또한 강신옥 전의원은 현대중공업 사외이사와 울산대 재단감사로 선임돼 있다. 이밖에 박태준 유창순 전국무총리(정계), 김경원 현홍주 전주미대사(관계), 작가 김수현 박경리씨, 가수 조영남씨(문화계) 등도 정주영 회장 때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정의원은 1992년 정주영 회장을 도와 국민당을 창당했다. 이때 정의원은 외부인사 영입을 총괄하면서 각계 인사들을 두루 접촉했다. 이런 이유로 정의원이 대선행보를 본격화하면 구국민당 인사들이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민련 정우택 의원, 김정남 전의원,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탤런트 최영한(예명 최불암)씨 등이 그들이다.

    잇따른 예언으로 정치권에서 유명인사가 된 설송 스님. 그는 얼마전 야당의 한 원외 인사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회창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정몽준밖에 없다. 박근혜는 기울고 정몽준이 뜨고 있다. 정몽준이 반(反)이회창 후보로 나서면 승산이 매우 높다.”

    설송 스님의 얘기는 민주당내 이인제 지지그룹이나 동교동 구파의 생각과 유사하다. 이미 민주당에서는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급격하게 꺾이면서 ‘정몽준 대안론’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8·8 재보선 결과에 따라서는 민주당이 쪼개지는 사태도 예상할 수 있다.

    정몽준 의원은 정치권에서 정적이 없기로도 유명하다. 무소속으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여야의 정쟁을 피할 수 있었으며, 축구협회장을 지내면서 의원들에게 점수를 딸 기회도 많았다.

    정의원은 김영삼 전대통령을 여러 차례 만나 신임을 얻었으며, 김종필 자민련 총재(JP)는 오래 전부터 정의원을 대안으로 지목해왔다. JP는 월드컵이 끝나자 이례적으로 축하 논평을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이밖에 일찍부터 반이회창 연대에 관심을 표해온 김윤환 민국당 대표도 “이젠 정몽준밖에 없는 거 아니냐”며 ‘영남후보론’에 불을 지피는 모습이다.

    정치권 밖에서도 정의원은 각계 인사들을 두루 접촉한다. 그는 한국대표팀 경기에 저명인사들을 초청하거나, 축구 외적인 행사에 참석하는 방식으로 외연을 넓혀왔다. 오연천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박건우 전 UN대사, 이승훈 리인터내셔널 대표, 박진원 변호사, 박준영 이화여대 교수 등은 지인 또는 친구로서 부담없이 만나는 사람들이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 정주영 후보는 낙선했다. 그후 국민당은 내리막길을 걷다가 깃발을 내렸고, 정후보는 정계를 은퇴한 뒤 시련의 세월을 보냈다. 현대그룹도 잇따른 악재로 재계 1위에서 밀려났고, 정몽준 의원도 초원복집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다. 이런 이유로 현대그룹 사람들에게 1992년 대선은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현대는 정몽준을 도와줄 것인가. ‘왕자의 난’ 이후 현대가(家) 형제들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래서 정몽준 의원이 대선에 나서더라도 예전처럼 그룹 차원의 지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른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고위 관계자는 “정의원의 지지도가 급등하면서, 현대가 형제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7월4일 정몽구 회장은 정몽준 의원의 대선 출마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정몽구 회장은 세계박람회 유치활동을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생겼다. MIT 대학원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대통령감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형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의원도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말씀 잘하셨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두 사람의 이런 교감을 주시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한번 결정하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고, 그렇게 되면 현대·기아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대중공업에는 과거 국민당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하지만 정몽구 회장의 발언을 단순한 ‘립서비스’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형으로서 동생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던졌을 뿐이라는 얘기다.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몽구 회장은 1992년 현대그룹의 상처를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하고 있다. 정의원도 확실한 상황이 아니면 나서지 않을 것이다. 정의원은 아버지와 달리 신중한 사람이다. 설사 그가 출마하더라도 예전처럼 기업을 선거조직으로 활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중앙고 인맥은 정의원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중앙고는 고교평준화 이전까지 경기고에 이어 전국 2위를 다투던 명문고였다. 정의원은 바로 이 무렵(61기·1970년 졸업) 중앙고를 다녔다. 정의원의 동기생들은 중앙고에서도 엘리트그룹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의원은 중학교까지 중앙중을 나와 동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중앙고 졸업생들은 자부심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설립 초기부터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했던 데다 3·1운동과 6·10만세운동 당시 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김성수 송진우 이희승 윤치영 채만식 서정주 변영로 나운영 등이 중앙고에서 교편을 잡았거나, 공부한 인물들이다.

    정의원이 대선주자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중앙고 동문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중앙고 동문들이 정의원을 최초로 지원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77명의 동문들이 자체적으로 후원회를 만들었는데, 회장은 김봉은 전 장기신용은행장이었다. 정의원은 모임이 열릴 때마다 꼭 참가했는데, 최근에는 자주 회합을 갖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의원은 중앙고 동문회에 참석해 “아버지를 도와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 중앙고 동문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중앙고 교우회의 한 관계자는 “MJ의 일이 아니었기에, 총력전을 펴지 않았다. MJ가 직접 나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중앙고 교우회 관계자에 따르면 정의원은 드러내지 않고 모교를 지원해왔다고 한다. 1980년대 초 축구부에 1억원을 기증해 숙소를 마련한 것이나, 교우회 사무실을 20년 가까이 무료로 임대해준 것이 단적인 예다. 정의원은 중앙고 동문행사에 참석하면 아무리 바빠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고 동문들은 각계에 널리 포진해 있다. 사회 원로급으로는 채문식 전국회의장, 김각중 전경련 회장, 김찬국 전 상지대 총장, 정진석 대주교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밖에 남궁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 조성준 의원(정계), 이우주 유석춘 연세대 교수, 라종일 경희대 교수(학계), 김봉은 전 장기신용은행장, 이철우 롯데리아 대표이사(금융계), 이상혁 임광규 변호사(법조계), 김병관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 고학용 신문방송편집인회장, 이인용 전 MBC 뉴스데스크 앵커(언론계), 가수 김창완씨, 영화인 하명중씨, 출판인 한만년, 조치흠씨(문화계) 등이 중앙고를 졸업했다.

    정회장과 함께 공부한 중앙고 61기도 막강한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61기는 졸업생의 30% 이상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직 대학교수만 수십여 명에 이른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 김성주 성균관대 교수, 이인원 서울대 교수, 최완진 한국외대 교수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밖에 송문섭 현대캐피털 사장, 이재성 현대선물 사장(재계), 김섭 김동재 심학무 변호사, 조승곤 서울지법판사(법조계), 이정욱 문화일보 편집부국장, 강일중 연합뉴스 뉴욕특파원(언론계) 등이 61기다.

    중앙고 동문들이 결성한 각종 소모임도 정의원의 우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게 정의원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계산비즈니스 포럼(KBF)’이다. ‘계산’은 중앙고가 계동에 있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KBF는 중앙고 출신 벤처기업인과 대학교수들이 주축을 이룬 모임인데, 정의원의 1년 선배인 60기와 61기 62기 등이 대거 포진해 있다. 현재 회원은 160여 명에 달한다. 이밖에 교수와 기업인들이 만든 ‘KBF포럼’, 계관회(고시출신), 계산회(전자통신), 계공회(공직자), 계법회(법조인) 등이 눈길을 끈다. 중앙고 교우회 백순지 상임부회장은 “1984년부터 1만5000여 명의 졸업생들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해왔다. 중앙고 동문들은 결집력이 강하기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반면 박근혜 의원과 동기동창이라서 화제가 됐던 장충초등학교 인맥은 ‘실전’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역의 초등학교 동창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다만 장충초등학교는 MJ와 박근혜 의원을 연결하는 상징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은 최근까지도 운동을 함께 하고, 생일파티에도 초대하는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 중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은 17명으로 김씨 이씨 박씨에 이어 네번째로 많다. 이 가운데 하동 정씨는 정몽준 의원과 정동채 의원 두 사람이다. 한국에서 정씨들은 ‘정도령’에 관한 구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더군다나 하동 정씨 문중에서는 ‘기이한’ 설화가 전해진다. ‘옛날 중국의 황허에서 용들이 놀았는데, 그중 한 마리가 한반도로 날아와 하동에 자리잡았다. 그래서 하동지방에서 왕이 나올 것이다.’

    MJ는 정씨 문중에도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현재 정씨종친회중앙회 총재는 정호용 전의원인데, 그는 정몽준 의원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의원 후원회에 참석해 “훌륭한 후배를 적극 밀어주겠다”는 말도 했다. 하동 정씨는 크게 세 파로 나누어지는데, 전라도 광주를 근거지로 한 정승공파 추선문중이 가장 두드러진다. 고 정성태 국회부의장, 정호선 전 국회의원, 정석종 전남대 총장 등이 바로 추선문중 사람이다. 한편 정의원은 예부사공파 자손이다.

    정호선 전의원은 최근 ‘정사모(정몽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결성하기 위해 바쁘게 뛰고 있는데, 특기할 점은 하동 정씨들이 많이 사는 호남지역에서 호응이 높다는 점이다. 광주지역 하동 정씨 종친회의 한 관계자는 “정의원의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대로 가면 호남에서 노무현 후보를 추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몽준 의원은 ROTC 인맥에도 은근히 기대를 걸고 있다. 이것은 엄삼탁 ROTC중앙회장과의 친분 때문이기도 하다. 2000년 12월 프라자호텔에서 ROTC송년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임창열 당시 경기지사는 “차기는 정몽준 같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ROTC 인맥은 MJ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ROTC 인맥이 출신학교와 지역을 뛰어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일부 언론은 정의원이 시민운동 그룹이나 재야인사와 가깝다고 보도했다.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총선연대가, 정의원을 낙천·낙선후보로 지목하자, 정의원이 총선연대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부족한 점을 지적해줘서 고맙다”고 답한 것은 유명한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선 국면에서 시민단체가 정의원의 우군이 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원은 한때 환경신당 창당을 검토한 일이 있다. 이것은 여야가 경선국면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 내놓은 복안이었다. 그러자 일부에서는 정의원이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임삼진 녹색평화당 공동대표 등과 의기투합해 신당을 만들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이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최총장은 “나와 정의원은 환경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사이다. 정의원이 환경에 관심을 쏟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현실적으로 2002년 대선 이전에 환경신당이 탄생하기는 어렵다. 설사 그런 정당이 나오더라도, 나는 옆에서 도울 뿐이지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임대표도 “정의원과는 같이 비행기를 탄 게 전부다. 신당에 대해서는 한번도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한가지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일부 언론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을 정의원의 지인으로 분류해 눈길을 끌었다. 심지어 ‘백소장이 고 정주영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는 기사도 실렸다. 두 사람이 월드컵을 앞두고 ‘동아일보’가 기획한 특별대담에 자리를 함께 하고, 정의원이 백소장을 월드컵경기장에 초청하면서 이같은 소문은 널리 퍼졌다.

    하지만 백소장은 “광복이 되고 나서 정주영 회장의 맏아들인 몽필씨(1982년 교통사고로 사망)가 농민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런 인연으로 정주영씨 집에 놀러가서 몇 번 밥을 먹었을 뿐이다. 그때는 정주영씨가 재벌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백소장은 “정몽준 의원이 한국축구 발전에 기여한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평생 진보의 길을 걸어온 내가 보수세력을 도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의원은 월드컵에서 놀라운 결집력을 발휘한 W세대에도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사이버상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트러스트(www.mjlove.new21.net)와 몽준러브(www.mjlove.pe.kr)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한 측근은 “인터넷 세대들이 정의원의 차별화된 이미지에 호감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원은 겉으로 월드컵과 정치의 분리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필연적으로 월드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월드컵이 성공했기 때문에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올랐고, 월드컵의 감동이 지속돼야만 대선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정의원이 최근 전국적으로 조직돼 있는 조기축구회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의 열기가 12월 대선까지 이어진다면 거스 히딩크 감독이 정의원의 구세주로 등장할 수도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미 히딩크 감독을 기술고문으로 선임한 상태이며, 히딩크 감독도 “가능한 한 자주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선언했다. 히딩크 감독과 정몽준 의원의 정치적 결합? 한때 인터넷 유머에 등장해 관심을 모았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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