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이명박 개헌 드라이브 내막

이재오가 ‘찔러서 손해 볼 거 없다’ 설득 … 이명박은 ‘정 그러면 총대 메라’ OK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1-02-22 16: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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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헌 안 돼도 남는 장사’ 셈법
    • 친이 결속, 총선 공천권 실리, 레임덕 방어
    • 박근혜 공격은 낚시질, 노이즈 마케팅
    이명박 개헌 드라이브 내막

    (왼쪽부터) 이명박 대통령. 이재오 특임장관.

    연초부터 시작된 청와대발(發) 개헌 드라이브는 잘 짜인 각본과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식·비공식적으로 당의 의견을 수렴한 뒤 신년 방송 좌담회에서 개헌 화두를 던졌다.

    친이계 의원, 개헌 논의 회동(1월18일)→당·정·청 안가 회동에서 개헌 문제 논의(1월23일)→이명박 대통령, 신년 좌담회에서 개헌 필요성 제기(2월1일)→한나라당 개헌 의원총회(2월8, 9일)로 이어지는 과정이 한 편의 시나리오다. 이 대통령은 개헌 필요성을 이렇게 설파한다.

    “그때(1987년)는 민주화를 하다가 개헌을 했는데 디지털 시대, 스마트 시대가 왔다. 거기에 맞게 남녀동등권의 문제, 기후변화, 남북관련에 대한 것을 손볼 필요가 있다. 개헌에 대해 17대 국회부터 연구해놓은 게 많다. 지금 하는 데 여야가 머리만 맞대면 늦지 않다. 새로 시작할 게 없다. 올해 하면 괜찮다.”

    “이제야 홀가분해졌다”

    그는 2009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선거제 및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논의를 정치권에 주문한 바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평소 하고 싶어 했던 말을 이번에 충분히 했다. 청와대가 개헌을 추진할 수 없는 만큼 이제 국회가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당·정·청 회동에서도 “개헌은 당에서 주도하되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이 장관은 MB의 개헌 발언이 나오자 “이제야 홀가분해졌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자신이 꾸준히 개헌론에 불을 지펴왔지만 이를 두고, ‘이심(李心·이명박 대통령 의중)이 담기지 않은 개인플레이 아니냐’는 눈총이 없지 않았다.

    이 대통령 발언 이후 이 장관의 개헌 행보는 거침이 없다. 트위터와 방송 출연을 통해 개헌 단상을 밝힌다. “개헌을 두고 친이와 친박이 다투거나 얼굴을 붉힐 아무런 이유가 없다”, “2007년 4월13일 만장일치로 확정한 당론대로 하면 된다”, “가장 강력한 상대와 맞서겠다. 나는 다윗이고 나의 상대는 골리앗이다”, “여야가 합의만 하면 개헌은 60일이면 끝난다” 등등이다.

    이 대통령이 집권 4년차 돌입 시점에 개헌 추진을 염두에 두고 지난해 8월 이 장관을 발탁하면서 개헌을 ‘특임’으로 맡겼다는 분석이다. 친박계의 서병수 최고위원은 2월10일 “누구나 자유롭게 개헌 의견을 표시할 수 있지만, 이 특임장관은 경우가 다르다. 특임장관이 개헌을 주장하려면 대통령이 개헌 사무를 특별히 지정했는지 여부부터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특임장관이 정략적인 문제로 갈등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한 중진 의원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MB는 대기업 CEO 출신이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일을 직접 챙긴다. 장관에게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한다. 총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총리는 그 시점에 맞는 특별 임무를 수행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초대 한승수 총리에겐 자원외교 임무가 주어졌다. 그 다음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수정이었다. 김태호 후보자의 경우 2010년 지방선거에서 중요성이 확인된 젊은 층과의 소통 필요에 의해 뽑으려 한 것이다. 다른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개헌 드라이브 내막

    이명박 대통령이 2월1일 한수진 SBS앵커, 정관용 한림대 교수와 함께 방송좌담회를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초대 특임장관으로 임명한 불교통 주호영 의원에게는 불교계 다독이기가 특별임무로 부여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임으로 친이계 내 대표적 개헌론자인 이재오 의원을 앉힌 것은 개헌 추진이라는 특임을 수행하라는 의미라고 보기에 별 무리가 없다.

    지금은 이 대통령의 묵시적 동조 아래 이 장관이 여론을 건드려보는 수순이란 관측도 있다. 친이계 한 중진 정치인은 이 대통령이 신년 좌담에서 개헌론을 언급하기까지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대통령이 개헌전선의 컨트롤타워는 아닌 것 같다. 이 장관의 뒤를 받쳐주지는 않고 있다는 의미다. 아마 이 장관은 개헌전선을 확대하는 데 따른 정치적 효과를 제시하면서 이 대통령을 설득했을 테고, 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손해 볼 일은 없다는 판단에서 ‘정 그렇다면 내 이름을 내세워서라도 열심히 해보라’고 OK 했을 수는 있다고 본다. 앞으로 이 대통령은 개헌 문제에 의견을 활발히 내지 않고 국정 운영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이명박 개헌 드라이브 내막

    2월8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개헌 의총.

    이 대통령은 신년 좌담회에서 “개헌은 청와대가 주도할 시간도 없다”고 주문했다. 개헌론의 순수성에 의문을 갖고 있는 친박계의 한 의원도 “MB는 깃발만 쥐어주고 뒤로 빠졌다고 본다. 정치적 논쟁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것 같다. 청와대와 정치권 친이계가 역할분담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뭉쳐 개헌 드라이브를 걸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오 특임장관과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논의를 잘만 이끌어가면 연내 개헌도 가능하다며 소속 의원들을 독려한다. 그러나 청와대의 임태희 대통령실장이나 정진석 정무수석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평도 포격으로 기회 날려”

    이 장관과 김 원내대표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한때 두 사람이 나서서 민주당 지도부와 개헌공론화에 의견접근을 봤다는 소문이다. 정부 정무라인의 실무자는 “이 장관이 지난해 8월 취임 직후 김 원내대표와 함께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개헌논의를 시작하기로 잠정적 합의를 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논의가 무르익기도 전에 11월23일 연평도 포격 사태가 일어나는 바람에 일단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전했다.

    친이계 한 의원은 당시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여야 지도부 사이에 권력 분산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고 들었다. 이는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친이계의 경우 박근혜 전 대표의 집권이 유력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정권탈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차기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데 동병상련했다는 의미다.

    야당의 한 당직자도 “여야 지도부가 개헌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말이 야권 내부에서 나돈 것은 이재오 장관 취임 이전부터”라고 했다. 민주당이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에 강하게 반발할 당시에도 여야 간에는 4대강특위 설치와 개헌특위 설치를 맞바꾸는 내용의 ‘빅딜’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장관과 김 원내대표의 자신감과는 달리 지금은 개헌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 개헌 추진과 맞교환할 이슈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개헌논의는 이미 실기(失機)했음을 들어 등을 돌린 상태다. 한나라당 내 친박계는 현 정부 임기 내 개헌 실현 가능성은 제로임을 잘 알면서도 친이계가 유력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를 흔들기 위해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고 본다.

    “인터벌 갖고 가려 한다”

    친이계 내에서도 연내 개헌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견해는 극소수다. ‘동아일보’의 한나라당 의원 대상 전수조사에서 한나라당 의원의 92%는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77%는 18대 국회 임기 내에 개헌이 성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정부 정무라인 관계자는 “그럼에도 올해 말까지는 인터벌을 갖고 가려 한다”고 했다. 올 한 해는 개헌을 매개로 정치적 효과를 노리겠다는 뜻이다.

    친박계가 보는 친이계 주도 개헌논쟁의 정치적 효과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친이계 결속’이다. 개헌론을 쟁점화해 전선을 형성하면 박 전 대표 진영으로 월박(越朴)하려는 일부 친이계 의원들의 발길을 잡는 명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친이계의 한 핵심 인사는 “개헌이 될지는 두 번째 문제다. 지금은 명분을 쥐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세력이 순식간에 흩어진다. 명분이 서고 내용에 공감하면 뭉친다. 내부 구성원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리트머스도 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개헌 반대자(박근혜 전 대표)를 골리앗에, 자신을 힘이 약한 다윗에 빗댄 것 자체가 강력한 적을 설정함으로써 위기감을 확산시켜 내부단합을 이끌어내는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장관이 차기 당권을 겨냥한 포석으로 개헌 카드를 깔았다는 분석이다. 4·27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하면 안상수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조기 전당대회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안 대표는 ‘보온병 폭탄’‘여성 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올라 입지가 불안한 상태다.

    이 장관이 개헌론을 매개로 친이계를 결집해 당권을 쥘 경우 내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고 대선후보 경선 국면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박 전 대표가 집권하더라도 친이계 지분이 생기고 이 장관이 비주류의 수장으로 자리매김하는 토양이 된다. 혹시라도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에 성공한다면 권력의 반쪽을 차지할 수 있다.

    셋째는 이 대통령의 레임덕(권력누수) 방어 효과다. 이 대통령은 높은 국정운영 지지율을 얻고 있지만 ‘차기’ 논의가 본격화하면 미래권력에 대한 쏠림 현상으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임기 말에 접어든 이 대통령 역시 차기 권력을 견제하면서 레임덕을 방지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를 ‘개헌’으로 판단하고 이 장관에게 개헌 깃발을 쥐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박계 조원진 의원은 “개헌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레임덕을 방지하고 다음 총선 때 공천권을 가져가겠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했다. 박근혜 대세론 차단을 위한 판 흔들기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1987년 체제 헌법은 유신헌법의 독소조항을 그대로 둔 채 권력구조만 바꾸는 데 치중한 면도 있다. 선진일류국가에 걸맞은 헌법을 갖는 것이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썼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잔재’를 청산하는 차원에서라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박 전 대표를 간접 겨냥하고 있다.

    절박한 친이계의 꽃놀이패?

    서병수 최고위원은 “정치적 음모로 당이 파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모 여성 의원의 의총 발언은 개헌을 주도하는 사람의 생각과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강명순 의원이 개헌 의총에서 주제와 상관없이 박 전 대표를 겨냥해 “개발독재시대에 청와대에서 호의호식하지 않았느냐”고 한 말을 상기시킨 것이다.

    이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친이계 핵심의 개헌론 확산은 친박계를 결집시키는 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친박계 의원들은 2월8, 9일 이틀간 열린 한나라당 개헌 의원총회에서 일제히 침묵했다. 이 역시 일사불란한 행동통일이라는 평이다. 조원진 의원은 “개헌을 꼭 하자는 목표로 일을 벌였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일에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 한다”고 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개헌론을 ‘절박한 친이계의 꽃놀이패’로 본다.

    임기 2년을 남기고 개헌 필요성을 제기한 이 대통령은 전임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종료 2년 전 개헌론을 화두로 던졌을 때 이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 대통령은 2006년 1월25일 인터뷰에서 “(개헌)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이 정권 말기에 하는 것은 반대”라고 했다. 또 “각 당이 헌법 개정에 대해 좋은 안을 공약으로 내세워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당선된 이가 1~2년 안에 신중하게 절차를 밟아서 해야 한다. 정권이 자기 편의를 위해 헌법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같은 해 6월 인터뷰에서도 “여당(당시 열린우리당)이 대선을 앞두고 개헌이다 뭐다 정치적 활용을 하려 할 텐데 그걸 견제할 수 있는 ‘야성(野性)’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당은 남북문제, 헌법 개정 같은 걸 내놓겠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은 경제 살리기다. 경제를 잘 살려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서민이 살 수 있게끔 하는 게 더 절박한 문제”라고 질타했다.

    이 장관도 5년 전에는 꾸준히 개헌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2005년 9월3일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대연정을 제안한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는) 대통령 말씀은 결국 내각제 개헌과 이를 통해 새로운 판을 짜는 정치적 거사를 치르려는 것 아니냐. 개헌은 어떤 형태로든 당신의 임기 내에 이뤄질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또 2006년 2월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이 장관은 김한길 열린우리당 신임 원내대표가 국회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하자 “현 정권 임기하에서는 어떤 개헌 논의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친박계 한 의원은 “친이계의 개헌 추동은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명박 개헌 드라이브 내막


    “링에 오르지 않겠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야당 때는 개헌을 반대했는데 지금은 여당이 됐고 국회의원 선거 떨어진 후 외국에서 1년 정도 공부를 해보니 이대로는 정치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가 소신”이라고 해명했다.

    이 장관은 2월11일 “(대통령선거) 2년 전부터 대통령에 나온다든지,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일하는 것은 국민을 많이 피곤하게 한다. 2년 동안 계속해서 그 프레임 속에 국민이 시달린다”고 박 전 대표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도 개헌론과 관련해 “유력한 대통령후보라는 분이 ‘내가 반대하는데 왜 나의 동의 없이 논의하느냐’고 얘기하는 것은 답답하고 한심하다”고 박 전 대표의 심기를 건드렸다.

    박근혜 정치의 요체는 ‘침묵’과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 파괴력은 과거 개헌정국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2007년 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임기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하자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일갈해 종지부를 찍게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이 장관이나 정몽준 전 대표의 공격에 묵묵부답이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는 이학재 의원은 “친이계의 비난에 한마디도 없으셨다. 이미 개헌에 대해 입장을 밝힌 까닭이다.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 필요성을 수차 이야기했고,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았느냐”고 설명한다. 개헌 시기도 그렇지만 방식에서 ‘4년 중임’보다는 ‘권력분산’에 방점을 찍는 친이계의 주장에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장관 등 친이계의 원색적 공격이 ‘낚시질’임을 잘 알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했다. 친이계가 박 전 대표의 반발을 유도해 ‘개헌 링’에 끌어들이려고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데 대한 대처법이란 설명이다. 친이계의 ‘노이즈 마케팅’에는 무시 전략이 최상이라는 게 친박계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은 이슈를 요란스럽게 치장해 구설에 오르내리도록 하거나 이목을 집중시켜 인지도를 높이는 기법이다. 친박계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국민적 관심을 개헌으로 모으기 위해 박 전 대표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전 대표는 ‘한국형 맞춤복지’를 화두로 던지며 정책행보를 이어가는 것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박 전 대표는 이 장관이 라디오에 출연해 자신을 공격한 날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 171명 가운데 67%인 114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에 서명했다.

    개헌 추진 세력은 박 전 대표의 침묵을 두고 “여론조사를 하면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데 개헌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직무유기”(특임장관실 관계자)라고 비판한다. 이 대통령도 신년 좌담회에서 분권형 개헌이 차기 유력 주자인 박 전 대표 등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누구한테 불리하고, 유리하고 그런 생각이 전혀 없다. 대한민국이 미래지향적으로 국운이 융성할 기회에 고치자는 것”이라고 진정성을 강조했다.

    이 장관은 “개헌카드로 세를 결집한다고 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대통령 한 번 더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선진국적인 헌법을 만들어서 물려주겠다는 것이 정치적 의도라면 의도”라고 주장했다. 특임장관실 관계자는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시대가 바뀌면 시대정신에 맞는 헌법이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표가 미래 권력이라면 진정성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야당의 한 당직자는 개헌논의에 대해 “명분론(개헌 필요성)과 현실론(정치 상황)의 중간점에 있다”고 했다.

    개헌론 이후 다른 카드

    그런데 친이계 중진 정치인은 “개헌 동력이 소진되면 다른 어젠다를 내놓을 것”이라고 해 관심을 끈다. 박 전 대표의 냉담한 반응이 이어지고 민주당이 계속 참여하지 않을 경우 여권 주류는 새로운 이슈를 발굴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해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돼온 ‘판도라의 상자’인 수도권 규제 철폐로 알려진다. 수도권 규제는 공장, 학교,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인구집중유발시설이 수도권에 과다하게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증설 총 허용량을 정해 이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국토균형발전을 최우선 시책으로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에서 한층 강화됐다.

    그러나 현 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앞세워 이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이르면 2013년에 이를 전면 폐지키로 한 상태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박 전 대표의 지지기반인 영남권과 충청권 등 지방의 극심한 반발을 사게 된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도 마찬가지다. 반면 수도권에서는 고용이 창출되고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다.

    한나라당 수도권 국회의원의 대다수는 친이계다. 대부분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여파를 타고 2008년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된 이른바 ‘명박돌이’다. 이들은 수도권의 한나라당 인기 하락으로 지금 낙선 위기에 몰려 있다. 수도권 유권자에게 어필할 ‘빅 카드’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감안해 이들이 실제로 수도권 규제 조기철폐를 어젠다로 제시할 경우 정치권에 회오리를 몰고 올 수 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국면까지 흔들 수 있는 또 다른 화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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