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기피증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1-03-22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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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변한 기자회견 한 번도 없어
    • 개별 인터뷰·개별 취재도 봉쇄
    • CEO 시절 부하에 군림하던 습관 그대로
    • 언론자유·민주주의 후퇴 우려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2010년 11월12일 이명박 대통령이 G20정상회의 성과를 설명하는 목적의 기자회견 도중 기침을 하고 있다.

    질문: “대통령은 왜 (질의응답을 하는) 기자회견을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많다.”

    대답: “설날이 지나고 국회도 열리고 하면 기자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도 생각하고 있다.”

    지난 2월1일 이명박 대통령의 방송좌담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정관용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기피증’을 은근히 찔렀다. 이 대통령은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기회를 만들어보겠다”고 넘어갔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그 기회가 이번에는 실현될 것으로 믿었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시점은 2월25일 이명박 정부 출범 3주년쯤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취임 1, 2주년 때와 마찬가지로 3주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대신 2월20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을 출입기자들과 함께 오른 뒤 오찬 간담회를 하는 것으로 대체해버렸다. 그것이 이 대통령이 생각한 ‘기자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인 셈이었다.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간담회

    이 대통령이 질문 받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이라는 점은 이 간담회에서도 드러난다. 청와대 부속건물인 충정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집권 3년의 소회 등을 간략하게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거나 원론적인 언급만 했다.

    동남권 신공항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같은 각 지역이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안에 대해 “법적절차를 밟아 진행을 해서 상반기 중에는 정리가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자신의 대선 공약사업이기도 한 이 두 가지 현안이 극심하게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음에도 책임 있는 설명은 없었다.

    당시 정치 이슈로 떠오른 개헌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이 자리에서 할 얘기가 아닌 것 같다. 등산 갔다 와서 그런 딱딱한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분위기에 안 맞다”고 피해갔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이럴 줄 알았으면 기자회견을 한 번 할 걸 그랬다”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 이후에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는 사전에 질문을 5개로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4개의 질문만 받고 간담회는 끝났다. 답변을 하던 이 대통령이 직접 “이상으로 기자간담회를 모두 끝내도록 하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정리해버렸다. 구제역, 물가급등, 전세대란 등 서민생활과 직결된 현안이 적지 않지만 대통령의 입을 통해선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이 대통령은 산행 도중 쉬는 시간에도 기자들과 건강 문제 등에 관한 가벼운 담소만 나눴다고 한다.

    출입기자단 산행의 원조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국회의 탄핵을 받아 직무정지 상태이던 2004년 3월12일 첫 산행을 한 데 이어 매년 봄이면 출입기자들과 북악산을 올랐다. 그때마다 깊은 대화가 오갔다. 중간 중간 쉼터와 산 정상에서 ‘간이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산을 내려와서는 식당(주로 효자동 삼계탕집인 ‘토속촌’)에서의 오찬간담회로 이어졌다.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이명박 대통령이 2월20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북악산 산행 중 휴식을 취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민감한 사안들을 피해가지는 않았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파장이 예상되는 발언에 대해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요청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산중 발언 가운데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대통령의 말을 기사로 다 쓰지 못했다고 불만을 갖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대통령으로부터 상세하게 배경 설명을 듣게 된 데 대해 만족했다.

    청와대 뒷산은 경호 문제로 일반의 출입이 통제돼 사실상 대통령의 전용 등산로다. 이 대통령은 테니스를 즐기고 등산은 잘 하지 않는 탓에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노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해 처음으로 출입기자들과 산행을 했다. 그러나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 이 대통령의 언론 기피증을 재확인하는 결과만 낳은 셈이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시절로 되돌려놔

    이 대통령은 취임 3년 동안 20여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외국 국가원수와의 정상회담을 끝낸 뒤 결과를 설명하는 의례적인 회견을 빼면 6차례만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그나마 국정 현안 전반을 놓고 기자들과 열띠게 일문일답을 벌이는 제대로 된 기자회견은 사실상 한 번도 없다. 미국·일본 순방(2008년 4월13일), 미국산 쇠고기 파동(2008년 6월19일), UAE 원전 수주(2009년 12월27일) 때와 G20정상회의 유치 관련 세 차례(2009년 9월30일, 2010년 11월3일, 2010년 11월12일) 등 모두 특정 주제에 한정됐다. 이를 두고 “자랑할 일이 생기거나 해명할 때만 대통령이 직접 나선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21일 해군 특수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우리 선박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이 성공한 직후 국민담화를 통해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것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신년 기자회견을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2009·2010·2011년 초 ‘신년 특별연설’로 대체했다. 기자회견과 연설은 차이가 크다. 기자회견은 쌍방향이고 연설은 일방통행이다. 3년 연속 질문을 일절 받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말하고 끝냈다. 미리 준비한 원고를 기계적으로 읽는 것으로는 국민의 가슴에 다가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의 신년 연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초기에 있었던 ‘대통령 연두교서 발표’나 전두환 전 대통령 때의 ‘신년 국정연설’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새해가 시작되면 대통령이 한 해 동안 국정운영의 방향을 설명했는데 그 내용은 사실상 국민에게 지침을 내리는 수준이었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8년부터 ‘연두 기자회견’이란 명칭으로 시작됐다. 미국 백악관식처럼 질문이 자유롭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청와대가 미리 질문 내용을 기자실에 내려보내 기자에게 배당했다. 대개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평가해달라” “북괴의 위협에 대비한 안보 태세 강화 방안은 무엇인가” 등 정권 홍보성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이었다.

    권위적 통치를 계속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국회에서의 신년 국정연설로 대체했다. 여당인 민정당과 ‘관제 야당’인 민한당·국민당 의원들을 의사당에 앉혀놓고 일장 훈시를 하는 듯 비쳤다. 전 전 대통령은 1985년부터 연두 기자회견으로 환원했다. 당시 언론기본법에 따라 언론사가 통·폐합돼 있는 상태여서 청와대 출입기자가 불과 10명 남짓했다. 잘 짜인 각본에 따라 회견이 이뤄졌다.

    되도록 언론접촉을 꺼렸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신년 회견만은 거의 빠짐없이 했다.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국민설득이나 여론조성에 적절히 활용했다. 이때도 사전 시나리오가 없는 신년 기자회견이 열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군사정권 때와는 수위가 달랐다. TV로 생중계되는 만큼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질문순서를 정하고 질문내용이 중복되지 않도록 기자실 내에서 자체 조정한 뒤 이를 비서실에 통보하는 방식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되도록 사전 시나리오를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기자실에서 질문순서와 간단한 질문요지만 받아갔다. 중대 현안이 발생하면 몇 시간 전에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에 통보한 뒤 기자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사전에 질문내용이 거의 조율되지 않은 노무현식 기자회견은 말할 것도 없고 사전에 질문내용이 조율되는 기자회견도 외면하고 있다. 몇 차례 방송으로 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 자리를 가졌지만 긴장감 있는 질의·응답이 오가지 않았다. 출입기자가 아니라 청와대나 방송사가 선정한 패널들이 질문에 나선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말실수 잦고 어휘 부정확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4월29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 때도 다른 후보들에 비해 언론과의 접촉을 되도록 최소화했다. 당시 각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이명박 후보’를 담당했던 기자 대부분은 이 후보에 대한 직접 취재에 애를 먹었다. 대신 이 후보는 몇몇 기자와는 자주 만나 속내를 드러내곤 했다고 한다.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들을 ‘독수리 5인방’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대통령이 취임할 때 이들은 모두 청와대로 출입처를 옮겼다.

    이 대통령이 언론을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권의 한 인사는 “대기업 CEO는 부하에 군림하는 경향이고 언론을 잘 만나주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경우도 현대건설 CEO 시절의 그러한 습관이 이어져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한다. 이 인사는 “이 대통령은 비판적인 질문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기자에게 질문할 기회 자체를 주지 않는 건 언론자유와 민주주의의 후퇴를 부를 수 있는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 홍보라인에 있었던 한 인사는 “주변의 핵심 참모들이 대통령을 그렇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말문이 터지면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자유롭게 말하도록 놔두면 말실수를 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런 설화(舌禍)를 뒷수습하는 데 애를 먹고 또한 아무리 뒷수습을 잘해도 여론이 나빠지기 때문에 참모들이 아예 언론과의 접촉을 차단한다는 설명이다.

    한 언론사 청와대 출입기자도 “참모들로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이 때문에 되도록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만류하고 싶어하더라.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일문일답식 기자회견에 나서지 않는 것도 참모들이 말리고 있기 때문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부적절한 표현이나 정확하지 않은 어휘를 종종 구사하는 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여러 번 설화를 일으켜 곤욕을 치렀다. 2007년 8월28일 일간지 편집국장 10여 명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특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고를 때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한다고 하더라. 인생의 지혜다”라는 취지의 농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마사지 걸’ 발언이다.

    ‘샐러리맨과의 대화’ 자리에선 “존경하는 지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해외에선 간디고 국내에선 도산 안창호씨를 존경한다”고 답했다. 영화 ‘마파도 2’에 출연한 여운계 김수미 김을동씨에 대해선 “한물 살짝 간 중견배우들”이라고 했다. “아기가 불구로 태어날 것으로 예상될 경우 낙태가 용납될 수 있다” “(민주화 인사들을 지칭한 듯) 70, 80년대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 “나처럼 애를 낳아봐야 보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는 발언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정동영 예비후보 측 김현미 대변인은 “인간의 생명과 가치, 역사와 민족이 이명박 후보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것” “이 후보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돈과 땅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읍니다. 번영된 조국,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모든 것을 받치겠읍니다”(2007년 6월6일 방명록), “국민을 섬기며 선진일류국가를 만드는 데 온몸을 바치겠읍니다”(2008년 2월25일 방명록) 등 종종 맞춤법이나 문법에 맞지 않게 문장을 구사한다.

    “사안에 대한 이해력 부족도 원인”

    질문 받는 것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 스타일

    청와대 춘추관 전경.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 대통령이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기자회견을 꺼리는 데 대해 “사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력 부족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사안에 대해 설명하다가 잘못 이해하고 말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어 최 교수는 “이 대통령은 전임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싶어한다. 노 전 대통령이 언론에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은 언론과 거리를 두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마련한 언론대응 수칙 두 가지를 이어받는 이중성(?)도 보이고 있다. 개별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극히 제한하고 청와대 출입기자의 청와대 방문취재를 금지한 일이 그것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때까지 신문사 창간기념일이 되면 중앙지는 2년 주기로, 지방지는 5년 주기로 대통령 단독인터뷰를 특집으로 싣는 관례가 있었다. 편집국장과 출입기자가 대통령을 인터뷰하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데 의외의 특종이 나오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관행을 없애버렸다. 그는 언론사와의 개별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할 말이 있으면 대통령이 춘추관을 찾아가 모든 언론을 상대로 말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이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언론과의 개별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춘추관도 잘 찾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국내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에 응한 것은 지난해 11월 ‘동아일보’ 인터뷰가 유일하다. 대신 국내 언론과 외국 언론의 합동 인터뷰에는 몇 번 응했다. ‘연합뉴스-일본 교도통신’, ‘조선일보-영국 더 타임스-일본 마이니치신문’, ‘중앙일보-미국 워싱턴포스트-중국 인민일보-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각각 조를 짜서 인터뷰했다.

    대신 이 대통령은 외국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에는 열성적으로 응하는 편이다. 2010년에만 해도 미국의 CNN과 워싱턴포스트, 영국의 BBC, 싱가포르의 스트레이트타임스, 인도의 타임스 오브 인디아, 말레이시아의 스타 등 6개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청와대 측은 “해외에 우리나라를 알릴 기회가 되기 때문에 외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적극 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출입기자들의 비서동(棟) 출입을 막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취재시스템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비서진 업무에 지장을 주고 보안이 되지 않는다는 게 주된 이유다.

    그러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때까지는 청와대 비서동 방문취재가 허용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에는 비서동 출입이 완전히 자유로웠고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는 하루 두 차례, 한 시간씩 기자들이 비서동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 등 비중 있는 참모들과 티타임도 자주 가질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많은 기삿거리가 나왔다. 혹은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수많은 고급정보가 전해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한 한 정치권 인사는 “언론과 국민에게 되도록 투명하게 개방하는 것이 정권의 실수를 막고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한다”고 했다.

    최근 일부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우리는 춘추관 출입기자”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한 출입기자는 “상당수 기자의 경우 주요 참모들과는 통화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춘추관에 고립돼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최근까지 청와대를 출입했던 다른 기자는 “지금은 개별취재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면서도 “등록된 기자가 많고 취재장비도 발달한 상황에서 비서동을 전면 개방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했다.

    “편한 기자들 위주로 풀 구성”

    기자들이 이 대통령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풀(pool) 기자’로 들어갈 때다. 풀 기자는 기자실을 대표해 대통령의 공식일정을 취재한 뒤 기자실에 그 내용을 알려준다. 취재기자의 경우 사별로 돌아가면서 2~3명으로 구성된다. 물론 이들이 이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할 기회는 없다. 먼발치서 행사만 지켜볼 뿐이다. 한 출입기자는 “이전에는 순번대로 풀 기자를 짰는데, 요즘은 (청와대가) 편한 기자들 위주로 풀단을 구성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국민과의 소통부족 문제가 거론됐다. 그러자 청와대 홍보라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례 라디오 연설을 기획해 실행 중이다. 월요일 오전 대통령이 라디오에 출연해 정부의 주요 정책을 국민에게 전하고 있다. 2008년 10월13일 첫 방송이 전파를 탔고 여러 가지 논란 속에서 현재 60차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노변정담’(fireside chats)을 본뜬 측면이 있다. 언론학자들에 따르면 루스벨트의 노변정담 라디오 연설은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다는 게 지배적 평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은 국민 사이에서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대통령이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끊다시피 한 만큼 청와대 홍보라인이 이 대통령의 뜻을 간접적으로 언론에 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홍보수석실 내부의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불거진 암투설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동관 홍보수석 밑에 박선규·김은혜 공동대변인이 활동하고 있었다.

    암투의 내용은, 청와대 참모진 개편을 앞두고 박 대변인이 ‘홍보수석실 발전 방안’이란 보고서를 만들어 이 대통령에게 직보했고 이를 눈치 챈 김 대변인이 보고서를 빼내 이 수석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얼굴을 붉히며 격렬한 언쟁이 오갔다고 한다. 이후 세 사람 모두 청와대를 떠나고 홍상표 홍보수석-김희정 단독 대변인 체제가 들어섰다.

    “대통령 증발하고 만다”

    현 청와대 홍보체계는 복잡한 편이다. 역대 정권에선 홍보수석(혹은 공보수석)이 대변인을 겸하는 게 보통이지만 지금은 차관급인 홍상표 홍보수석 산하에 1급 비서관인 김희정 대변인이 있다. 방송기자 출신인 홍 수석과 국회의원을 지낸 김 대변인이 업무상 간혹 부딪친다는 얘기도 들린다.

    청와대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른 김두우 기획관리실장도 정무와 정책뿐만 아니라 홍보에도 폭넓게 간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동관 전 홍보수석도 돌아왔다. 지난 연말 대통령 상근 홍보특보로 임명된 뒤 청와대 인근 창성동 별관에 머물면서 수시로 이 대통령의 호출을 받아 다양한 자문을 한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이 특보는 임명장도 받기 전에 박형준 사회특보(전 정무수석)와 함께 이 대통령의 신년 특별연설 원고 독회에 참석했다고 한다. 청와대 홍보라인 내부의 갈등과 반목은 언제든 재발할 소지가 많다는 시각이다.

    이 대통령의 언론기피증은 임기 말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자신의 기본적인 인식이 바뀌지 않은데다 참모들도 여전히 언론 접촉을 만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 일각에선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국정 전반을 설명하는 것이 낫겠다는 건의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일방적인 연설을 택했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임기를 보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영묵 교수는 “언론을 통한 국민과의 소통이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실수를 감수하더라도 직접 부딪치지 않으면 대통령은 증발하고 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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