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호

2012년 전반기는 도발 후반기는 평화공세 가능성

2012 북한 대남전략 분석

  •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bsj@mnd.go.kr

    입력2011-12-20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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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6개월마다 대남전략 변화: 도발→평화공세→외곽공세(6자회담)
    • 대남정책은 3각 경쟁…김양건의 통일전선부, 김정각의 군부, 김계관의 외무성
    • 북한 도발과 대선 함수…KAL기 폭파, 1차 핵위기, 연평해전, 정상회담
    • 대남역량 집중해 북한에 우호적인 국회, 대통령 만들 것
    •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FTA로 인한 반미감정 활용 유혹
    • 대남 ‘컨트롤 타워’ 역할 김양건 주목해야
    2012년 전반기는 도발 후반기는 평화공세 가능성

    2002년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북한 응원단이 인공기를 앞에 내세운 채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11년 6월15일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은 북한의 대남정책 주도권 경쟁과 관련해 의미 있는 보도를 했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조선노동당 공작기관인 통일전선부 대신 외무성이 향후 한국과 일본을 담당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북한은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2012년을 앞두고 2011년 외교정책을 크게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전선부 대신 외무성이 한국과 일본을 담당한다. 한국이 미국에 종속된 것으로 보고 대남정책을 대미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해 왔지만, 앞으로는 이 방침을 바꾸어 별개로 대응하는 것이다.”

    산케이신문 보도 이후 이용호 외무성 부상이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가 돼 북미회담 전면에 나섰고, 북핵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북측 입장을 밝혔다. 남북정상회담 실무 접촉이 폭로된 직후, 한 북측 인사는 “남한 당국이 왜 북측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우회해 국방위원회 사람들과 남북관계를 다루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산케이신문의 보도내용,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에 대해 북측 내부의 다른 목소리 등을 감안하면 북측 내부에 대남정책과 관련한 정책 경쟁, 파워 경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내부에서 대남정책과 관련한 경쟁은 세 집단 사이에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김양건이 이끄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겸 국방위원이 이끄는 군부, 김계관 제1부상이 이끄는 외무성이 그 축이다.

    이들은 대남정책과 관련해 자신들이 파악한 정세와 정책구상을 가지고 북한지도자(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충성 경쟁, 신임 경쟁을 한다. 경쟁 결과는 지도자의 신뢰변화를 통해 나타난다.



    북한지도자는 대남 정책의 주도권을 주었다가 다시 거두어들이는 방식으로 신뢰를 표시한다. 2010년 연속적인 고강도 대남도발은 김정각을 중심으로 한 군부의 대남정책을 북한지도자가 신뢰했고, 군부에 기회를 주었음을 의미한다. 2011년 초반 대남 평화공세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기회를 잡았기에 가능했다. 2011년 대남 평화공세가 일정한 성과가 없자, 북한지도자는 외무성의 김계관-이용호에게 기회를 주어 6자회담 재개를 추진하도록 했다.

    물론 이들 각 집단에 대해 왜 신뢰를 주었는지, 실제로 기회를 주었는지는 북한지도자와 직접 인터뷰하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다. 직접 인터뷰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해 대답한다면, 그 진실을 아는 데는 제한적이다. 결국 지금까지의 정보와 진행 상황을 통해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2012년 한반도 정치지형은 큰 변화가 예정돼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남한의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다. 총선 결과와 대선 결과는 대북정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당연히 새로운 지도자의 대북관, 그리고 의회의 태도다. 북한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한국 국회와 대통령이 북한에 얼마나 우호적이냐는 남북관계와 북한체제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2012년 북한은 모든 대남역량을 집중해 북한에 우호적인 한국 국회, 한국 대통령을 만들려 할 것임은 분명하다.

    2012년 대남정책 이슈는 대통령선거

    이미 북한은 그동안 남한에서 대선이 있는 해에 다양한 대남도발과 대남정책을 수행해왔고, 대남정책 유형별로 남한 대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실제 경험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7년 대선 직전에 북한은 공작원을 통해 KAL 858기를 폭파했다. 테러는 성공했지만, 신속한 수사로 오히려 노태우 대통령 당선을 도와준 결과를 만들었다. 1992년에는 1차 핵(核)위기를 조성해, 당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대통령후보의 당선에 일조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통 받던 1997년에는 그동안 해왔던 고강도, 대형 도발을 절제했다. 북한의 태도가 대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검증하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배려와 협력’을 강조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2년에는 도발과 협력의 메시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6월에는 연평도에서 군사적 도발(제2 연평해전)을 했고, 10월에는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하고 미녀응원단을 보내 남북협력의 진전을 과시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1차 핵실험(2006년 10월)을 통해 북한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남북 화해 효과’를 과시하려 했지만, 1차 핵실험의 충격을 상쇄하지 못했다. 한국 국민은 보수정권을 출범시켰다.

    그렇다면 2012년은 어떨까. 판단자료가 매우 제한적인 만큼 제대로 된 분석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국내외 연구와 필자의 분석을 바탕으로, 2012년 북한의 대남정책을 주도하는 3개 기관의 정세분석 경쟁을 예상하면 다음과 같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콩트 형식으로 재구성한다.

    2011년 12월24일, 김정일 최고사령관 추대 30주년 기념행사가 있은 직후, 평양 중구역 특각(김정일 개인 별장)에서 김정은 북한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주관하는 정세평가회의가 열리고 있다. 참석자는 김양건 당 대외연락부장,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먼저 김양건 부장이 입을 연다.

    2012년 전반기는 도발 후반기는 평화공세 가능성

    김양건 통전부장.

    김양건 | “먼저 남조선 정치형세부터 설명하겠습니다. 현재 남조선의 모든 정치일꾼과 국민의 관심은 2012년 4월 총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남조선의 중요한 정치일정은 하늘이 우리 대장 동지에게 준 기회입니다. 북한에 우호적인 정치일꾼들이 남조선 국회를 장악하게 하고, 그런 일꾼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것이 2012년 대남정책의 제1목표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1997년, 2002년 같은 군사적 자극은 자제되어야 하며, 평화공세로 남조선 일반인민의 맘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김정각 | (얼굴을 붉히며) “우리 내부의 군사역량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2009년 2차 핵실험, 2010년 선제적 타격(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을 통해 우리 조선인민군은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남조선 인민들이 우리 군을 두려워하도록 해야, 북조선에 우호적인 정치세력을 지지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준비된 3차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조속히 해야 합니다. 남조선 인민들이 우리를 두려워하면 할수록 우리 조선에 대해 협력을 강조하는 정치일꾼을 지지할 것입니다. 대장동지의 결심만 있다면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는 군사적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김계관 | (손사래를 치며) “현재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 우리의 입장이 잘 먹혀들고 있습니다. 미국과 직접 대화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두 차례 핵실험을 한 것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미국은 우리 조선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강조하고 있는데, 2011년 11월에 미국 학자들(스탠퍼드대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 등)을 초청해서 우리 입장을 설명했더니 상당히 수긍하는 분위기였습니다. 6자회담 조기 재개를 통해 국제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6자회담이 제대로 진행되면, 우리가 보유한 핵에 대해 남조선 인민의 경계심도 없어질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정치구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날 회의를 주관한 북한지도자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자신 있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잘 들었소, 천천히 생각합시다. 아버지가 잘 결심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회의를 마쳤다. 최종선택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게 될 것이다.

    최근 나타나는 대남정책, 대외전략의 가장 큰 특징은 중심기조 변화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2010년 9월 북한 노동당 당대표자 대회를 전후해 김정각을 대표로 하는 군부에 힘을 실어주었지만, 이후 6개월간 김양건의 대남 평화공세에 힘을 실어주었고, 현재는 6자회담을 주도하는 김계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거의 6개월 만에 대남전략 기조가 고강도 도발→평화공세→외곽공세(6자회담)로 바뀌고 있다.

    2012년 2~6월 도발 가능성

    이러한 변화는 북한 내부 정세와 맞물려 있다. 김정일-김정은 승계구도를 조속히 정착시키기 위해 다각도의 대남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과 그 측근은 대남정책을 통해 국내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 한국민의 태도를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분석으로는, 2012년 초 북한의 대남정책은 2011년 정책의 연속국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6자회담 재개를 주장했고, 북한과 미국의 협상을 권유하는 조엘 위트(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연구원) 등 미국 학자를 불러들여 핵의 평화적 활용가능성을 강조했다. 동시에 한국 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11년 11월 연평도 포격 1주년을 맞자 ‘청와대 불바다’ 등 거친 표현으로 한국을 압박하기도 했다. 적어도 2012년 2월 이전에는 김계관의 구상에 힘을 실어주면서, 김정각의 입장을 고려하는 모양새를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2012년 2월에서 6월까지는 북한지도부가 새로운 모험에 유혹을 느낄 것이다. 2002년 6월29일 서해에서의 도발이 한국 대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억할 것이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춘궁기로서 북한 내부의 불만이 극대화될 가능성이 높다. 내부불만을 통제하는 데 유용한 긴장을 만들고 강성대국의 축포를 쏘는 차원에서 도발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2012년 전반기는 도발 후반기는 평화공세 가능성

    1987년 11월27일 북한공작원 김현희씨가 미얀마 근해 상공에서 폭파한 대한항공기의 잔해와 승객들의 유품이 1990년 5월22일 김포공항을 통해 도착한 모습.

    2012년 7월 이후에는 북한은 1987년 KAL기 폭파, 1997년의 대남 정책,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참가결정,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등의 공과(功過)를 중심으로 유화적인 대남정책을 고려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대남정책 조율과 관련해 2012년에 관심 있게 지켜볼 인물은 김양건이다. 그는 당 중앙위 비서국 비서이며 당 통일전선부장, 조선아시아 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직을 갖고 있다. 당 대표자 대회 이후, 김정일의 현장지도를 가장 많이 수행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단독 회동 때에도 배석할 정도로 한국 국내정치에 관해 해박한 정보를 갖고 있다. 2010년 도발과 2011년 6자회담을 다루는 과정에서 그의 역할은 부각되지 않았지만, 2012년 한국 국내정치에 적극 관여할 수밖에 없는 북의 대남정책 과제를 고려할 때, 김양건의 역할이 매우 클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부상한 이후 김양건이 대중국 정책에 활발하게 관여하는 점을 고려할 때, 그가 대외·남정책에서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2012년은 한반도 정치지형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이 예고되어 있고, 북한은 강성대국의 깃발 이후 새로운 체제 슬로건을 내걸어야 한다. 북한 내부의 대남정책 결정구도를 고려할 때, 2012년 전반기에는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할 가능성이, 후반기에는 대담한 평화공세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선택할 대남정책 모델은 2002년 모델이 될 것으로 본다. 2002 한일월드컵 기간 중에 서해도발을 자행했는데, 2012년 봄 서울에서는 50여 개국 정상이 참가하는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 북한은 핵정상회담을 전후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고강도 도발을 시도해 북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집중시킬 가능성이 있다.

    또한 북한은 2002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발생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점화된 반미감정이 한국 국내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안다. 따라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불거진 반미감정을 증폭하는 데 일조하고 싶어 할 것이다. 2012년 후반기에는 부산아시안게임 미녀 참관단 같은 초대형 화해 메시지를 보내 협력적 남북관계를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내 보수 세력의 위축 내지 고립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사이버공간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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