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건국, 박정희 산업화 뛰어넘을 발전전략 개발 못해
‘집토끼’ 복원 명분에 ‘우파 유튜버’ 의존…‘반향실 효과’
지역구 득표율 49.9% vs 41.5%, 의석은 163 vs 84
코로나 문자·재난지원금 효력…‘정부 친화’ 유권자
보수통합 지연으로 공천 失期, ‘피로도’만 상승
소선거구제의 함정
21대 총선 지역구 정당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49.9%, 통합당 41.5%였다. 20대 총선에선 새누리당 38.3%, 민주당 37%였다. 19대 총선은 새누리당 43.3%, 민주통합당 37.7%였다. 지난 20대 총선과 비교해 통합당은 3.2%포인트 상승한 반면 민주당은 무려 12.9%포인트 상승했다. 민주당은 49.9% 득표로 163석, 즉 63%의 의석을 가져갔다. 반면 통합당은 41.5% 득표로 84석, 33%의 의석만 챙겼다. 민주당 승리는 분명하지만, 소선거구제로 인한 의석수 왜곡이 더 크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통합당은 19대 총선과 비슷한 득표를 하고도 무려 40석을 잃었다(19대 지역구 총 의석은 246석).통합당의 정당득표율은 19대 총선부터 43.3% → 38.3% → 41.5%로 큰 변화는 없었다. 20대 총선에 비해 오히려 상승했다. 반면 민주당은 37.9% → 37% → 49.9%로 12.9%포인트나 상승했다. 여론조사업체인 ‘리얼미터’ 정당지지도 기준으로 보면, 민주당 40%, 통합당 30%에서 각각 10%씩 더 가져간 것이다. 두 당 모두 받을 만큼 받았다. 20대 총선과 비교하면 통합당이 패배했다기 보다는 확장을 하지 못한 것이고, 소선거구제로 인해 의석수 손해를 본 결과다.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승자독식 소선거구제 타파를 주장해 왔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추진을 통해 소수 목소리를 의회에 반영하겠다던 민주당은 소선거구제로 엄청난 이득을 봤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과거 보수정당 호황 시절의 △보수 지지 40~50% : 진보 지지 20~35% 구조가 뒤집혔다는 것이다. 지난 세 번의 총선에서 통합당은 40% 언저리의 지지 기반에 묶여 있는 데 반해,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49.9%의 득표율로 10% 이상의 새로운 지지층을 확장시켰다. 단순하게 보면 21대 총선 투표율(66.2%)이 20대 총선(58.0%) 대비 8.2%포인트 상승한 만큼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에 대한 신뢰도 상승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정부 힘 실어주기’인지는 모르지만, 10%의 중도가 민주당 쪽을 지지했다고 예측할 수 있다. 이 10%가 의석수 두 배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모든 이슈를 삼킨 ‘코로나19’
문재인 대통령이 3월 12일 충남 천안시 충남대구1 생활치료센터에서 운영현황 보고를 받은 뒤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같은 한국갤럽조사 1월 2주차 ‘국정안정론 49% vs 정권심판론 37%’였던 게, 2월 2주차부터 ‘안정론 43% vs 심판론 45%’로 역전됐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에 갈등이 증폭되던 시기였고, 1월 말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되면서 여론은 악화됐다. 더구나 2월 5일에는 통합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이후 코로나 확진자가 서서히 줄어들고, 정부 대처에 대한 해외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다. 반면 통합당은 공천 논란을 일으키며 국정지지도 골든크로스가 일어난 3월 2주차 들어 ‘안정론 43% vs 심판론 43%’ 동률을 이뤘다. 급기야 3월 4주차에는 ‘안정론 46% vs 심판론 40%’, 투표 직전인 4월 13~14일 조사에선 ‘안정론 49% vs 심판론 39%’로 나타났다. 21대 총선 지역구 정당득표율 49.9% vs 41.5%와 거의 일치한다.
코로나19는 모든 이슈를 삼켜버렸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조국 사태, 경제 실정, 탈원전, 안보 파탄 같은 야당 이슈들이 개입할 공간이 없었다. 정권심판론도 사라졌다. 유일하게 재난지원금으로 얼마를 줄 것인지, 누구에게 줄 것인지를 놓고 13일간 논쟁을 벌였다. 집권 여당의 이슈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동시에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통상적으로 국가적 위기가 오면 정부에 의지하거나 힘을 모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려대는 코로나19 안내문자로 평소 느끼지 못하던 정부와 지자체의 ‘보살핌’을 피부로 느끼게 돼 알게 모르게 ‘정부 친화적’이 됐다.
재난지원금의 효력도 보인다. 통계적 분석은 어렵지만 3월 30일 정부의 재난지원금 발표 이후 여의도연구원 자체 조사에서 국정지지도와 민주당 상승세가 포착됐다. 부산의 경우 4월 2일 부산시당이 의뢰한 ‘폴리컴’ 조사에서 부산의 몇몇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확연하게 상승하는 게 포착됐다. 급기야 4월 6일 부산 국제신문이 폴리컴에 의뢰한 조사에서도 △영도 45.8% vs 43.4% △사하갑 49.9% vs 37.3% △북강서을 45.8% vs 42.4% △해운대을 45.2% vs 41.7%로 민주당 후보들이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자체 조사에서도 이들 지역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자당 후보들이 선전하면서 부산의 당선 목표 의석을 10석으로 조정하기도 했다.
투표 하루 전날인 4월 14일에는 경기 고양시, 부산 해운대구 등 여러 지역에서 재난지원금을 공식적으로 통보해 관권 선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재난지원금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했는지 객관적 통계는 없으나 ‘곳간에서 인심 나는’ 이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거에서 승리를 견인하는 법칙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도와 선거를 치른 김종인 전 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은 노인기초연금 20만 원을, 2016년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아 30만 원으로 상향 발표하며 표심을 움직였다.
‘제3자 효과’ 막말 프레임
막말 논란을 일으킨 김대호(왼쪽)·차명진 후보. [뉴스1]
선거에서 막말은 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프레임이다. 많은 사람은 타인의 영향으로 자신의 태도와 행위를 결정한다. 프레임이 개입되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고립되는 걸 염려한 나머지,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고 다수 의견이라고 생각한 것을 따라가게 된다. 표심을 정하지 않은 중도층은 이런 막말 프레임에 쉽게 동조된다. 선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밴드왜건’(Bandwagon Effect·다수가 지지하는 사람을 지지하는 현상)이란 편승 효과는 ‘제3자 효과’의 연장선에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통합당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관련 발언이나 김대호 후보의 3040세대 비하 논란 등 총선 기간 내내 이슈가 됐던 막말은 평상시 같으면 큰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말이 프레임으로 변해 이슈가 되면 13일간의 선거 기간에 해명하는 데 급급하다 선거가 끝나버린다. 막말은 중도 무당층에 영향을 준다. 아직 표심을 결정하지 못한 10% 이상의 중도 무당층에게 ‘제3자 효과’와 ‘밴드왜건’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치명적이다.
선거 과정에서 말 자체만 놓고 보면 “통합당은 쓰레기당”이라고 한 민주당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막말이 훨씬 치명적이다. 하지만 선거 전략상 상대방에 대한 막말은 중도층 유권자에게 오히려 판단의 근거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막말이 박빙 지역의 많은 중도층에게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광범위하게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교롭게도 평소 막말로 물의를 일으켰던 후보들은 대부분 낙선했다.
기만적 공천과 공천 피로도
2월 28일 김형오 당시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천관리위원회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통합당의 공천에서는 전략이 없었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은 “과감한 인재 영입을 통한 공천 혁신을 하겠다”고 장담했고, 민주당 586 운동권 세력 퇴출을 얘기했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공천을 하지 않았다. 통합당은 보수 통합 일정이 늦어지다 보니 단단하고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펼칠 시간이 없었다. 통합당의 공천 실기(失期)는 두 가지에서 두드러진다. 하나는 ‘기만적’ 청년 공천이고 다른 하나는 ‘공천 피로도’다.
3040세대에 취약한 통합당은 청년 인재 영입에 신경 써야 했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 변화와 미래에 대한 어젠다를 선점했어야 했는데 실패했다. 상징성 있는 청년 후보도 없었다. 경기도 지역구 10곳에 ‘청년벨트’를 설정하고 ‘퓨처메이커(미래 창조자)’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청년들을 배치했다. 그러나 김민수 후보(경기 분당을) 외에는 청년 후보들이 아무런 지역 연고가 없었고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인 ‘험지’에 거의 버려지듯 내리꽂혔다. 경험도 전무하고 당의 도움도 없다 보니 보수세가 강한 경기 분당을에서조차 패배했다.
현역의원 11명 중 8명이 대거 불출마 선언해 공천 길을 터준 부산은 오히려 가장 심각한 공천 논란을 일으킨 지역이 됐다. 논란의 핵심은 이언주 의원 공천, 후임 공천, 공천 번복이다. 이언주 의원의 부산 출마는 처음부터 명분이 없었다. 영도구 공천을 놓고 분란만 일으켜놓고 남구을에 안착함으로써 부산 전체 선거판을 뒤틀어버렸다. 불출마를 선언한 몇몇 의원은 자신의 직계 후임들에게 기회를 줬다. 부산시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부산 공천 파동은 통합당 공천의 미비함을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반면 당의 ‘컷오프’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한 4명은 국회로 생환했다. 홍준표, 김태호, 윤상현, 권성동 의원이다. 모두 ‘거물급’이다. 평소에도 막말로 분란을 자주 일으킨 차명진 후보를 공천하고, 민경욱 의원에게 재기회를 주고, 김미균 시지온 대표는 검증 부재 논란으로 하루 만에 공천이 번복되는 등 선거 직전까지 ‘공천 피로도’가 높아졌다. 그 과정에서 개혁 공천은 퇴색했다.
변화 못한 무기력한 보수
21대 총선 승부를 가른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보수의 무기력함이다. 통합당은 젊은 세대 접근과 중도 외연 확장에 실패했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돌발 변수가 있긴 했지만, 3년간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지쳐 있던 중도층과 무당층의 마음을 돌려세우질 못했다. 길게 보면 보수의 몰락 원인은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 보수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진보 쪽으로 운동장이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이명박·박근혜라는 걸출한 리더의 호조건 속에서 ‘친이’ ‘친박’으로 나뉘어 권력다툼을 벌이면서 보수는 서서히 붕괴했다. 그렇게 맞은 20대 총선은 보수 몰락의 서막이었다. 결과도 공개하지 않은 여론조사 경선에 국민은 경악했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당시 보수 여당의 행태에 국민은 철퇴를 내렸다.단정적으로 표현하면, 한 사회 내에서 보수우파는 성장과 경제, 진보좌파는 나눔과 복지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승만의 건국, 박정희의 산업화를 뛰어넘어 새로운 발전 전략과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할 책임이 있는 보수우파는 10년간 갈라져 권력다툼을 벌이며 자신들의 역할을 방기했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비전을 제시하고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편을 갈라 싸우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 세월호 사건으로 국가경영능력에 의심을 받기 시작한 보수우파는 20대 총선을 거치며 신뢰를 상실했고, 급기야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이르렀다.
최근 4년처럼 보수가 무기력한 적은 없다. 20대 총선 패배 이후 서로 남 탓하며 싸우는 데 여념이 없었고, 탄핵 후에도 제대로 된 평가나 전망을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저 이념과 입맛에 맞는 외부인사 몇 명 불러다 한쪽의 일방적 얘기만 듣기에 바빴다. 집토끼를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팽배한 ‘우파 유튜버’에 의존하며 자기 쪽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에 바빴다.
21대 총선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통합당의 ‘맥시멈 지지율’은 한국갤럽 전화면접조사로 보면 20%, 리얼미터 ARS 조사로 보면 30% 수준이다. 20% 이상을 더 가져와야 이길 수 있는 선거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지지자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면 이길 수 있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반향실 효과(Echo chamber effect)’라는 이론이 있다. 주위 소리가 차단된 녹음실에선 자기 목소리만 들린다. 지난 4년간 보수는 반향실에 갇혀 바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순혈주의로 일관하다 충격적인 결과를 맞았다.
민주주의 체제의 의회정치에는 항상 상대가 있다. 민주주의는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한 정치체제다. 그래서 상호 인정, 견제와 균형, 소통과 타협의 원리에 충실하지 않고 독단과 독선, 소모적 갈등, 강(强) 대 강(强) 대결로만 가다가는 민주주의도, 정치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50% vs 40%라는 지역구 지지율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이 청와대와 집권여당에 일방적 지지를 보내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민주당이 절대 오만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통합당은 지지세를 확장하지 못하고 4번의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한 데 대한 반성과 성찰,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