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지성한) 썸네일.
‘선택적 지각에 의한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되고, 함께한 사람과 나눈 인생이 모여 역사가 되었다’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한 남자가 아주 오래 전에 경험한 한국 현대사 권력 스캔들에 대한 것입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같던 그때 그 사건을 그의 관점과 시각에서 다시 곱씹어 본 것입니다.
그 사건은 올해를 기준으로 무려 50년 전인 1973년 3월에 발생했습니다. 유신헌법으로 영구집권의 길을 연 박정희 정권, 그것도 군부 내 ‘쿠데타 모의 스캔들’로 알려졌던 ‘윤필용 장군 사건’입니다.
당시 요직 중 하나인 육군 중앙범죄수사단 단장이던 지성한 대령은 보안사에 끌려가 혹독한 고초를 겪습니다. 국민에게 익숙한 톱스타 심은하의 시아버지 지성한 한성실업 회장 얘기입니다.
윤필용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러야 했던 지성한 한성실업 회장. [동아DB]
“불순한 시대를 순진하게 살았다”
지 회장은 윤필용 장군 사건의 당사자이자 증인으로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사실을 책 ‘반추’에 담담히 기술했습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애 받던 윤필용 장군이 스캔들 주인공이 된 이유를 당시 권력 2인자로 여겨지던 이후락 정보부장과 윤 장군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권력욕에 사로잡힌 박 대통령 주변 측근들이 이후락 정보부장과 윤필용 장군 두 사람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기 위해 권력자의 불안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윤필용 사건’을 일으켰다는 게 지 회장이 내린 결론입니다. 그는 “권력욕에 찬 맹수들이 으르렁거리는 불순한 시대를 순진하게 살았다”고 책 ‘반추’에서 회고합니다.
윤필용 사건으로 군법회의에서 실형을 받은 지 회장을 비롯한 장교들은 대법원 상고를 거쳐 무죄가 입증돼 누명을 벗었습니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였던 윤필용 장군만은 끝까지 상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애를 받은 사람으로서 재판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자신이 모신 분에 대한 불충이라면서요. 지 회장은 “윤필용 장군은 삶과 죽음으로 ‘군신유의’ 정신을 잘 보여줬다”며 “그를 떠올리면 마음이 숙연해진다”고 책에서 회고합니다.
지 회장은 윤필용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 조치가 내려지기까지 1년 반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무죄로 풀려난 뒤 그는 인생의 전부였던 군을 떠나 사업가로 새로운 인생 항로를 개척했습니다. 지 회장과 함께 무죄 선고를 받은 이 가운데에는 4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민정당 대표를 역임한 권익현씨도 있습니다. 권익현씨가 정치가의 길을 걸은 데 비해 지 회장은 사업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죠.
범죄 수사에 거짓말탐지기 최초 도입
1933년생인 지 회장은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암정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서울로 이사해 보성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의 고등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보성중 5학년 재학 때 6.25 전쟁이 터져 제2국민병으로 소집됐습니다.이후 보병학교 시험에 합격, 1952년 소위로 임관했고 헌병학교 교관으로 직업 군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6월 그는 미 육군헌병학교 유학길에 오릅니다. 우리나라에 거짓말 탐지기를 최초로 도입해, 범죄수사에 과학수사 기법을 적용한 이가 바로 지 회장입니다.
크고 작은 범죄수사를 담당한 그는 죄과가 확실하지 않다면 능력 있는 사람은 계속 일하게 두는 것이 좋다는 소신을 밝혔습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윗사람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하거나 사임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공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요. 옥석을 구분해야하지만 중요한 것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특히 그는 리더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리더는 지시한 사항에 대해 끝까지 점검하는 세심함을 가져야 한다. 지시할 때는 관련자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확실하게 전하고, 결과를 꼭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보고서에는 허수만 가득 찰 것이다.”
‘법치 확립’에 대한 그의 소신은 뚜렷합니다.
“법을 정했으면 엄격히 집행해야 한다. 그래야 법이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하며 사회질서가 비로소 자리를 잡는 법이다. 질서는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이론이나 주의로 지켜지지 않는다. 평화도 전쟁을 각오하고 있을 때 지켜지는 것이다.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촉망받던 군인에서 하루아침에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군복을 벗어야 했던 지성한 회장. 그가 굴곡진 삶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며 터득한 남다른 인생의 지혜가 느껴집니다. 지성한 회장은 자신의 인생관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성공의 순간과 실패의 순간을 모두 겪고 끝까지 살아남는 생존이야말로 인생에서 거둘 수 있는 가장 값진 열매다.”
1933년생인 지성한 회장은 마흔살에 윤필용 사건을 겪었습니다. 이후 사업가로 변신해 50년 넘게 성공한 기업가로 ‘생존 신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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