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호

“소수 이념이 ‘내 삶이던’ 민주노총 집어삼켰다” [+영상]

노동운동가 이수봉은 왜 국민의힘으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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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4-01-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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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사파가 오염시킨 민주노총 떠나 ‘새정치’

    • 활동가 10명이 10만 명 움직여

    • 자유민주-주체사상 사이 제3당은 표류할 뿐

    • 사분오열하다가는 총선에서 주사파에 참패

    [+영상] 노동운동가가 왜 국민의힘으로



    그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이 그 시작이다. 1982년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1년간 옥살이를 했다. 옥에서 나온 뒤에는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내려놓고 공장 노동자가 됐다. 용접공으로 일했으며 프레스공장, 주물공장을 다니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저변을 닦았다. 이후 민주노총에서 대변인, 정책연구원 원장, 사무부총장을 맡았다. 이수봉 민생연구원장이 걸어온 길이다.

    민주노총 활동가는 이제 전선을 넓혔다. 2023년 12월 5일 서울 여의도 그의 사무실에는 “기득권 타파”라는 글귀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기득권 집단이라면 정파를 막론하고 사라져야 한다는 신념이 물씬 느껴진다. 그는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민주노총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사파 세력이 이끄는 이권단체.” 그가 민주노총에 내린 평가다.

    이 원장은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자칭 ‘진보’라고 하는 세력의 상당수가 주사파의 영향 아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식 때문인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으며 최근에는 국민의힘 합류까지 생각하고 있다. 노동자를 위해 투쟁하던 활동가가 진보가 아닌 보수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이수봉 민생연구원장. [지호영 기자]

    이수봉 민생연구원장. [지호영 기자]

    2001년 9월 ‘군자산의 약속’

    민주노총 이야기부터 해보자. 언제부터 노동계에 주체사상파 세력이 합류했나.

    “1980년대 후반부터 징조가 보였다.”



    그런데도 노동계가 주사파를 품은 이유가 있다면.

    “군사독재 시기였으니 일종의 저항 방식 중 하나로 용인됐다. 이후 1995년 민주노총이 생기며 이들도 민주노총에 합류했다.”

    노동계에서 주사파가 다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활동가 10명이 있으면 10만 명 정도를 좌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소수라 해서 영향력이 작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2001년 9월 ‘군자산의 약속’ 사건을 계기로 주사파가 본색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군자산의 약속은 충북 군자산 보람수련원에서 2001년 9월 22~23일 개최된 민족민주전선 일꾼전진대회에서 채택된 선언이다. 3년 내 정치 세력을 만들고 10년 내 정권을 획득하겠다는 내용이다. 주사파가 장악을 노린 세력 중 하나가 민주노총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처음에는 성실한 활동가라고 생각했으나 조금씩 중앙 조직을 장악해 가더라”라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주사파 탓에 노동계를 떠났나.

    “나는 노사가 협력해 양측이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를 내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사파들은 노동자의 권익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사측과 협력해야 할 때는 파행으로 일관했고, 노동운동보다는 통일운동에만 전념했다.”

    그는 “2005년 민주노총 대의원회 파행부터 노동계에 실망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화 복귀를 안건으로 대의원회의를 열었다. 이날 노사정 대화 복귀에 반대하는 강경파 조합원들이 난동을 부려 회의는 파행됐다.

    당시 상황이 어땠나.

    “소화기를 집어던지고, 시너를 뿌리며 난동을 피우더라. 그때 깨달았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나는 폭력이 싫어서 기득권에 저항해 왔다. 군사독재의 폭력이 싫었고,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폭력이 싫었다. 그렇게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노동운동이 폭력의 장이 돼버리더라.”

    그럼에도 민주노총에 계속 남았다.

    “철학을 바꾸면 폭력 등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노동운동은 자본을 극복해야 할 적으로 생각한다. 전쟁처럼 적과 아군이 있으니 당연히 폭력적으로 번질 위험이 생긴다. 이 구도를 깨야 한다고 봤다.”

    어떤 철학을 도입하려 했나.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본소득 원조는 이재명 아닌 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떠오르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먼저다. 기본소득 관련 연구를 시작한 것이 2007년이다.”

    그는 당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을 맡고 있었다. 연구를 발전시켜 2009년 2월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 등과 함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라는 책을 출간했다.

    왜 하필 기본소득이었나.

    “노동계를 지배하는 철학은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 노동만이 가치가 있다는 사상인 만큼 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구도를 깨고 사람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사람이라면 모두 존엄하고 기본적인 일자리와 생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노동계에 기본소득 논의를 도입하는 일에 성공했나.

    “실패했다. 민주노총에서는 새 철학을 일종의 타협으로 보더라.”

    그는 2012년 민주노총을 떠나 정치에 입문한다. 처음 손잡은 정치인은 안철수 의원. 새정치추진위원회에 합류한 후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민생당 등 제3 정당에서 일했다.

    민주노총과 기본소득이라는 명패만 보면 민주당 계열 정당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2012년 민주노총을 나왔을 때 민주당 쪽에서도 연락이 왔지만 합류한 과거 동료들을 보니 정도가 덜할 뿐 민주노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도 주체사상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인가.

    “크게 분류하자면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칭 진보 세력은 주사파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수라고 불리는 국민의힘이 과거 군사독재 세력이라는 굴레를 벗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제3의 정치세력에 속해 있었나.

    “예나 지금이나 내 목표는 기득권 혁파다. 노동운동을 시작할 때는 자본, 보수 세력만 기득권을 가진 줄 알았다. 그런데 노동자와 진보 세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력이 커지니 기득권이 생기고 이를 지키고자 폭력도 불사하는 모습에 실망했다. 두 기득권을 모두 혁파하려면 완전히 다른 곳에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보수 역시 기득권 세력이지만…

    제3당을 통한 정치 도전은 사실상 실패했다. 2014년 2월 새정치연합이 탄생했으나, 한 달 뒤인 3월 민주당과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이 됐다. 이듬해 12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국민의당이 갈라져 나왔다. 이후 2018년 국민의당은 보수 계열 정당인 바른정당과 합당, 바른미래당을 결성했으나 2020년 1월 분당 사태가 벌어지며 당이 깨졌다. 그는 민생당에 남았으나 21대 총선에서 원외정당이 돼버렸다.

    제3당이 실패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시기상조였다.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의 뿌리를 간과했다.”

    두 정당의 뿌리라면 지지자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양당의 이념 문제다. 남북 대결 때로 돌아가자면 지금 진보의 뿌리는 북한 주체사상에 있고, 보수의 뿌리는 자유민주주의에 있다. 아직 유권자들은 이 두 이념의 안경을 쓰고 정치 상황을 판단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이낙연 전 국무총리, 금태섭 의원 등 다양한 3당 논의가 나오고 있다.

    “당장 눈앞의 총선 결과만 생각하면 시기상조다. 주체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사이에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총선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 지형을 바꿀 생각으로 멀리 봐야 성공 가능성이 생긴다. 양당의 민낯이 드러날 때까지 3당을 유지할 수 있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양당의 민낯이라면.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칭 진보 세력은 사실상 주사파의 영향력 아래 있다. 한국의 성공보다 북한의 성공 혹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바쁘다.”

    그는 KBS 무보직자 1500명이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사례를 언급했다.

    2021년 1월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페이스북에 “KBS 직원 60%가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이 중 73%는 무보직”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KBS는 “1억 원 이상 연봉자는 46.4%이며 이 중 무보직자는 1500명”이라 반박했다. 이 원장은 “무보직자에게 1억 원 이상 연봉이 지출되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이들은 수치가 다르다고 반박한다”며 “진보 세력 일부가 일하지 않으며 돈을 버는 기득권이 됐는데도 자신들은 기득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보수 세력은 어떤가.

    “역시 기득권 세력이다. 다만 이들은 자신이 기득권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것만으로도 자칭 진보 세력보다는 낫다.”

    자칭 진보 세력에 권력의 무게 추 넘어가선 안 돼

    그래서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지지했나.

    “대통령은 검사 시절 늘상 기득권과 싸워온 사람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든 문재인 정권에서든 항상 정권과 싸워온 인물이다. 그의 말보다는 삶에 공감했다. 비록 보수정당에 몸담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보수정당이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1월 신년사에서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기득권 혁파를 이야기하면 인기가 좋을 법도 한데, 대통령 지지율은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개혁을 해야 하는데 인력풀이 개혁의 대상인 보수정당 기득권 세력이다. 그러니 계획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

    보수정당 내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실수도 있고 그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시국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대통령이 무너지고 자칭 진보 세력에 권력의 무게 추가 넘어가선 안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비판보다는 (대통령을) 도와줘야 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다시 주사파를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주사파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주사파 단체인 경기동부와 손잡았다는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주사파 세력에 맞서려면 자유민주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 신당이라는 이름으로 사분오열하다가는 총선에서 주사파 세력에 참패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정당에도 기득권 세력이 있다고 했는데.

    “이들이 스스로 물러나 주는 것이 가장 좋다.”

    정치인이 스스로 물러나는 게 가능할까.

    “정치인이라면 당선만큼이나 역사의 평가가 무섭지 않을까. 지금 물러나지 않는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눈앞의 당선 때문에 굴레를 쓸 인물이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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