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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崔·朴·탄핵 쇼크 이후

“김기춘, 3인방에 당한 뒤 비선실세 그룹과 타협”

국정농단의 방조자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김기춘, 3인방에 당한 뒤 비선실세 그룹과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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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4년 8월 국정원 ‘고추전쟁’
  • ● 우병우와 비선 그룹은 ‘공생 관계’
  • ● “김기춘, 3인방 무시하다 험한 꼴”
도대체 어쩌다 나라가 이 꼴이 된 걸까. 무엇보다 정보·사정기관의 잘못이 크다. 국가정보원,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검찰, 경찰 등 정보 수집과 사정 및 민정을 다루는 기관에 경보음이 처음 울린 때는 박근혜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13년 말이다.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누군가가 3주에 한 번꼴로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했다. 처음엔 박지만 EG 회장일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박 회장의 동선(動線), 일정과 맞지 않았다. 박 회장을 직접 만나 물었는데, ‘청와대에 들어간 적이 없다’면서 ‘정윤회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때만 해도 최순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윤회라는 이름이 수면으로 떠오른 것은 ‘시사저널’이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제하 기사를 보도한 2014년 3월이다. 박지만 회장은 청와대, 국정원 쪽 인맥을 통해 정씨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박 회장과 면담한 것으로 지목된 당시 국정원 인사의 회고는 이렇다.

“박지만 회장에게 내가 조언한 것처럼 박 회장이 분명하게 치고 나가 3인방을 잘라내는 상황을 만들었으면 국정이 이렇게까지 밀려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 회장은 내막을 잘 알면서도 치고 나가지 않았다. 최순실·정윤회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침묵한 것. 박 회장이 목소리를 냈거나 국정원, 대통령비서실 등이 제 역할만 했어도 나라가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특히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추○○ 전 국정원 국내보안국장은 국정농단에 참여하거나 묵인 혹은 방조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국정 농단을 몰랐다면 직무를 방기했거나 무능한 것이다.  



“알자회? 코미디 같은 일”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6년 8월 최순실 씨 관련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 국정원은 최씨의 동향이나 비리 등을 담은 보고서 및 정보 문건을 단 한 건도 만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동아일보 12월 2일자 참조). 경보음을 울려야 할 정보 시스템이 비선실세 앞에서 마비된 것이다.

국정원 내에서 최순실 씨 비선실세 그룹을 비호한 것으로 지목된 추○○ 전 국장은 경북고, 육사 41기 출신이다(박정희, 전두환 정부 때 국정원은 사관학교 출신을 충원 인원의 10% 넘게 뽑았다. 대위 3호봉이면 근무 평가와 무관하게 5급으로 선발했다).

추○○ 전 국장은 최근 인사에서 국내보안국장에서 보직 해임돼 현재 ‘퇴직 대기’ 신분이다. 3개월 내에 국정원에서 퇴직한다. 국정원 전직 고위 인사는 “추○○ 전 국장은 국정원을 똑바로 세우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의지나 생각은 옳은데, 너무 자기 위주로만 사고해 보편성이 떨어지는 게 약점이다. 가령 지금 국정원 간부들은 하나같이 애국심이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다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추○○ 전 국장이 맡은 국내보안국은 국내 정보 수집을 총괄하는 곳이다. 국내 파트에서 수집한 주요 정보가 지나는 길목을 추 전 국장이 장악한 것이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장 내정 직후인 2013년 3월 초 민정수석실로 파견 돼 있던 추○○ 전 국장과 독대했다. 육사 25기인 남 전 원장이 41기인 추 전 국장과 독대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았으나 청와대 인사가 만나라고 요청해서 응했다. 추 전 국장은 이 자리에서 국정원 운영에 대한 ‘훈수’를 둬 남 전 원장을 당황케 했다. 남 전 원장은 추 전 국장과 독대한 후 국정원 고위직으로 내정한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걔부터 잘라”라면서 욕을 했다.

‘신동아’가 2005년 2월 보도한 육군본부의 ‘사조직 관련자 진출관리’ 문건(인사참모부 작성)에 따르면 추○○ 전 국장은 육군 내 사조직 ‘알자회’ 출신이다. 알자회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배출한 ‘하나회’의 후신 격이다. 육사 출신 A씨의 설명은 이렇다.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된 후 하나회를 없앴다. 박지만 회장의 한 기수 위인 36기까지만 하나회가 있다. 끊어진 것을 기점으로 37기의 3년 선배인 34기 처지에서는 후배가 없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알자회를 만들었다. 34, 35, 36기에 하나회, 알자회가 중복되는 이유다. 진급에서 불이익을 받은 사조직 연루자가 성공한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



눈엣가시 박지만

조현천 국군기무사령관(38기)은 추○○ 전 국장의 알자회 3년 선배다. 기무사와 국정원 국내 파트는 동선이 일부 겹친다. 기무사령관 인사에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정보당국 관계자는 “조현천 씨가 기무사령관이 된 데는 친박 핵심 C의원의 후원회장 추천이 작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 기무사령관은 C의원의 대구고 3년 후배다.    

TV조선은 11월 8일 “최순실 씨의 수족 역할을 한 정호성 전 비서관이 추 국장과 함께 군 인사에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면서 “추 국장의 승승장구는 추 국장의 누나와 최씨의 두터운 친분 관계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국군 내 인사 농단은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령부가 감독할 사안이다. 조현천-추○○ 관계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까닭이다.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이 ‘특정 고교 인맥이 군 인사에 전횡을 휘두른다’고 청와대에 보고한 후 취임 6개월 만에(2013년 10월) 해임된 것과 비교된다.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의 후임은 박지만 회장의 육사 동기인 이재수(37기) 전 기무사령관이다. 군 관계자는 “이재수 장군이 기무사령관이 된 것은 박지만 씨의 영향력이 미친 게 아니라 군이 알아서 긴 것이다. 생도 때 박 대통령을 ‘누나’라고 불렀다는 인연이 도대체 언젯적 얘기냐. 생도 때 이후로는 박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1년 만에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좌천된 배경에도 최순실 그룹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전 기무사령관 후임이 알자회 출신의 조현천 기무사령관이다.

최순실 그룹에 박지만 회장 쪽은 눈엣가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전 경정, 고○○ 국정원 전 국장 등 박 회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인사들은 하나같이 찍혀 나갔다.

국정원 전직 고위 인사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에게 뻣뻣하던 남재준 전 원장이 경질되고 이병기 전 원장이 취임한 후 비선실세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고 말했다.



‘고추전쟁’ 내막

채널A는 지난 11월 14일 “추 국장이 국정원장을 무시하고 우병우 전 수석에게 직보했다” “국정원장이 교체될 때마다 살생부를 내밀었다”는 등의 의혹을 보도했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2014년 8월 국정원 인사와 관련해 “내 뜻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급 간부 인사 때 청와대가 특정 인물을 지목해 교체하라고 요구했다는 것. 국정원 1급 인사가 1주일 만에 뒤집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청와대가 교체를 요구한 인물은 총무국장으로 발령받은 고○○ 전 국장이다.

고○○ 전 국장은 추○○ 전 국장과 마찬가지로 국내 정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국내보안국장을 맡게 되리라던 고 전 국장이 총무국장으로 발령받은 것은 “국내 정보 업무에서 배제하라”는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것. 결국 이 자리엔 추 전 국장이 임명됐다. 전직 국정원 인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병기 전 원장 청문회 준비 멤버로 추○○ 전 국장이 못 들어갔다. 친박 핵심 C의원이 이 전 원장에게 천거해 추 전 국장이 뒤늦게 청문회 준비 멤버가 됐다. 추 전 국장은 이 원장에게도 남 전 원장한테 보인 것과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원장님 이래야 합니다, 저래야 합니다’ 하니, 이 전 원장이 기가 막혀 했다. 그래서 결국 추 전 국장을 쳐내고 활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인사가 뒤집혀버린 것이다.”

국정원 안팎에서는 2014년 8월의 이 인사 파동을 추○○, 고○○ 전 국장의 성(姓)을 따 ‘고추전쟁’이라 일컫는다. 추 전 국장이 승리하면서 고 전 국장은 국정원에서 쫓겨났다. 추 전 국장은 2016년 2월 인사에서 국정원 2차장 물망에도 올랐으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단으로 분류되는 최윤수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게 밀렸다. 우 전 수석과 최 차장은 대학 동기다.

고○○ 전 국장은 조응천 전 비서관이 김성호 국정원장(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장 특보로 일할 때 국정원장 정보비서관으로 호흡을 맞췄다. 조 전 비서관은 1994년 박지만 회장이 마약 투여 혐의로 구속됐을 때 피의자와 담당 검사로 인연을 맺었다. 박지만-조응천-고○○으로 연결되는 인맥은 알려졌듯 최순실 비선 그룹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검증’ ‘감찰’ 장악한 禹

고 전 국장이 찍혀 나간 것은 정윤회 씨 쪽과 각을 세워서다. 3인방과 관련한 부정적 보고서도 작성했다. 고 전 국장은 ‘내가 정윤회, 박지만 씨 등과 연결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언론에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추○○ 전 국장은 12월 14일 국정원 부대변인을 통해 “언론에서 제기하는 의혹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국정농단을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김 전 실장은 비선실세와 박 대통령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3인방과 타협했다. 다만 최순실 씨의 존재를 한동안 몰랐다는 발언은 사실일 수도 있어 보인다. 다음은 국정원 전직 고위 인사의 설명이다.

“김 전 실장은 처음엔 3인방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비서실장 교체설의 실체를 알아보라고 지시해 ‘정윤회 문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 전 실장도 이런저런 일에서 3인방에게 황당한 꼴을 당했다. 결국 김 전 실장은 스스로를 배신했다. 비선실세 그룹의 힘을 알게 된 후 타협한 것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비선실세 그룹은 ‘공생 관계’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찍혀 나간 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검증, 감찰 권한을 민정비서관실이 가져갔다. 민정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의 균형추가 사라진 것이다.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온 우 전 수석은 2015년 1월 민정수석으로 영전했다.

이렇듯 비선실세의 암약을 견제할 만한 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국정농단에 타협하거나 공생하거나 묵인, 방조한 이들만 남은 상황에서 2015년 10월 미르재단, 2016년 1월 K스포츠가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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