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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崔·朴·탄핵 쇼크 이후

“김기춘, 3인방에 당한 뒤 비선실세 그룹과 타협”

국정농단의 방조자들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김기춘, 3인방에 당한 뒤 비선실세 그룹과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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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쩌다 나라가 이 꼴이 된 걸까. 무엇보다 정보·사정기관의 잘못이 크다. 국가정보원,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검찰, 경찰 등 정보 수집과 사정 및 민정을 다루는 기관에 경보음이 처음 울린 때는 박근혜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13년 말이다.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누군가가 3주에 한 번꼴로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했다. 처음엔 박지만 EG 회장일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박 회장의 동선(動線), 일정과 맞지 않았다. 박 회장을 직접 만나 물었는데, ‘청와대에 들어간 적이 없다’면서 ‘정윤회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때만 해도 최순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윤회라는 이름이 수면으로 떠오른 것은 ‘시사저널’이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제하 기사를 보도한 2014년 3월이다. 박지만 회장은 청와대, 국정원 쪽 인맥을 통해 정씨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박 회장과 면담한 것으로 지목된 당시 국정원 인사의 회고는 이렇다.

“박지만 회장에게 내가 조언한 것처럼 박 회장이 분명하게 치고 나가 3인방을 잘라내는 상황을 만들었으면 국정이 이렇게까지 밀려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 회장은 내막을 잘 알면서도 치고 나가지 않았다. 최순실·정윤회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침묵한 것. 박 회장이 목소리를 냈거나 국정원, 대통령비서실 등이 제 역할만 했어도 나라가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특히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추○○ 전 국정원 국내보안국장은 국정농단에 참여하거나 묵인 혹은 방조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국정 농단을 몰랐다면 직무를 방기했거나 무능한 것이다.  



“알자회? 코미디 같은 일”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6년 8월 최순실 씨 관련 의혹이 불거지기 전까지 국정원은 최씨의 동향이나 비리 등을 담은 보고서 및 정보 문건을 단 한 건도 만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동아일보 12월 2일자 참조). 경보음을 울려야 할 정보 시스템이 비선실세 앞에서 마비된 것이다.

국정원 내에서 최순실 씨 비선실세 그룹을 비호한 것으로 지목된 추○○ 전 국장은 경북고, 육사 41기 출신이다(박정희, 전두환 정부 때 국정원은 사관학교 출신을 충원 인원의 10% 넘게 뽑았다. 대위 3호봉이면 근무 평가와 무관하게 5급으로 선발했다).

추○○ 전 국장은 최근 인사에서 국내보안국장에서 보직 해임돼 현재 ‘퇴직 대기’ 신분이다. 3개월 내에 국정원에서 퇴직한다. 국정원 전직 고위 인사는 “추○○ 전 국장은 국정원을 똑바로 세우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의지나 생각은 옳은데, 너무 자기 위주로만 사고해 보편성이 떨어지는 게 약점이다. 가령 지금 국정원 간부들은 하나같이 애국심이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다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추○○ 전 국장이 맡은 국내보안국은 국내 정보 수집을 총괄하는 곳이다. 국내 파트에서 수집한 주요 정보가 지나는 길목을 추 전 국장이 장악한 것이다.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장 내정 직후인 2013년 3월 초 민정수석실로 파견 돼 있던 추○○ 전 국장과 독대했다. 육사 25기인 남 전 원장이 41기인 추 전 국장과 독대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았으나 청와대 인사가 만나라고 요청해서 응했다. 추 전 국장은 이 자리에서 국정원 운영에 대한 ‘훈수’를 둬 남 전 원장을 당황케 했다. 남 전 원장은 추 전 국장과 독대한 후 국정원 고위직으로 내정한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걔부터 잘라”라면서 욕을 했다.

‘신동아’가 2005년 2월 보도한 육군본부의 ‘사조직 관련자 진출관리’ 문건(인사참모부 작성)에 따르면 추○○ 전 국장은 육군 내 사조직 ‘알자회’ 출신이다. 알자회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배출한 ‘하나회’의 후신 격이다. 육사 출신 A씨의 설명은 이렇다.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된 후 하나회를 없앴다. 박지만 회장의 한 기수 위인 36기까지만 하나회가 있다. 끊어진 것을 기점으로 37기의 3년 선배인 34기 처지에서는 후배가 없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알자회를 만들었다. 34, 35, 36기에 하나회, 알자회가 중복되는 이유다. 진급에서 불이익을 받은 사조직 연루자가 성공한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



눈엣가시 박지만

조현천 국군기무사령관(38기)은 추○○ 전 국장의 알자회 3년 선배다. 기무사와 국정원 국내 파트는 동선이 일부 겹친다. 기무사령관 인사에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정보당국 관계자는 “조현천 씨가 기무사령관이 된 데는 친박 핵심 C의원의 후원회장 추천이 작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 기무사령관은 C의원의 대구고 3년 후배다.    

TV조선은 11월 8일 “최순실 씨의 수족 역할을 한 정호성 전 비서관이 추 국장과 함께 군 인사에도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면서 “추 국장의 승승장구는 추 국장의 누나와 최씨의 두터운 친분 관계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국군 내 인사 농단은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령부가 감독할 사안이다. 조현천-추○○ 관계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까닭이다.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이 ‘특정 고교 인맥이 군 인사에 전횡을 휘두른다’고 청와대에 보고한 후 취임 6개월 만에(2013년 10월) 해임된 것과 비교된다.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의 후임은 박지만 회장의 육사 동기인 이재수(37기) 전 기무사령관이다. 군 관계자는 “이재수 장군이 기무사령관이 된 것은 박지만 씨의 영향력이 미친 게 아니라 군이 알아서 긴 것이다. 생도 때 박 대통령을 ‘누나’라고 불렀다는 인연이 도대체 언젯적 얘기냐. 생도 때 이후로는 박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1년 만에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좌천된 배경에도 최순실 그룹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전 기무사령관 후임이 알자회 출신의 조현천 기무사령관이다.

최순실 그룹에 박지만 회장 쪽은 눈엣가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전 경정, 고○○ 국정원 전 국장 등 박 회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인사들은 하나같이 찍혀 나갔다.

국정원 전직 고위 인사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에게 뻣뻣하던 남재준 전 원장이 경질되고 이병기 전 원장이 취임한 후 비선실세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고 말했다.



‘고추전쟁’ 내막

채널A는 지난 11월 14일 “추 국장이 국정원장을 무시하고 우병우 전 수석에게 직보했다” “국정원장이 교체될 때마다 살생부를 내밀었다”는 등의 의혹을 보도했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2014년 8월 국정원 인사와 관련해 “내 뜻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급 간부 인사 때 청와대가 특정 인물을 지목해 교체하라고 요구했다는 것. 국정원 1급 인사가 1주일 만에 뒤집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청와대가 교체를 요구한 인물은 총무국장으로 발령받은 고○○ 전 국장이다.

고○○ 전 국장은 추○○ 전 국장과 마찬가지로 국내 정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국내보안국장을 맡게 되리라던 고 전 국장이 총무국장으로 발령받은 것은 “국내 정보 업무에서 배제하라”는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것. 결국 이 자리엔 추 전 국장이 임명됐다. 전직 국정원 인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병기 전 원장 청문회 준비 멤버로 추○○ 전 국장이 못 들어갔다. 친박 핵심 C의원이 이 전 원장에게 천거해 추 전 국장이 뒤늦게 청문회 준비 멤버가 됐다. 추 전 국장은 이 원장에게도 남 전 원장한테 보인 것과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원장님 이래야 합니다, 저래야 합니다’ 하니, 이 전 원장이 기가 막혀 했다. 그래서 결국 추 전 국장을 쳐내고 활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인사가 뒤집혀버린 것이다.”

국정원 안팎에서는 2014년 8월의 이 인사 파동을 추○○, 고○○ 전 국장의 성(姓)을 따 ‘고추전쟁’이라 일컫는다. 추 전 국장이 승리하면서 고 전 국장은 국정원에서 쫓겨났다. 추 전 국장은 2016년 2월 인사에서 국정원 2차장 물망에도 올랐으나 우병우 전 민정수석 사단으로 분류되는 최윤수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에게 밀렸다. 우 전 수석과 최 차장은 대학 동기다.

고○○ 전 국장은 조응천 전 비서관이 김성호 국정원장(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장 특보로 일할 때 국정원장 정보비서관으로 호흡을 맞췄다. 조 전 비서관은 1994년 박지만 회장이 마약 투여 혐의로 구속됐을 때 피의자와 담당 검사로 인연을 맺었다. 박지만-조응천-고○○으로 연결되는 인맥은 알려졌듯 최순실 비선 그룹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



‘검증’ ‘감찰’ 장악한 禹

고 전 국장이 찍혀 나간 것은 정윤회 씨 쪽과 각을 세워서다. 3인방과 관련한 부정적 보고서도 작성했다. 고 전 국장은 ‘내가 정윤회, 박지만 씨 등과 연결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언론에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추○○ 전 국장은 12월 14일 국정원 부대변인을 통해 “언론에서 제기하는 의혹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국정농단을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김 전 실장은 비선실세와 박 대통령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3인방과 타협했다. 다만 최순실 씨의 존재를 한동안 몰랐다는 발언은 사실일 수도 있어 보인다. 다음은 국정원 전직 고위 인사의 설명이다.

“김 전 실장은 처음엔 3인방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응천 전 비서관에게 비서실장 교체설의 실체를 알아보라고 지시해 ‘정윤회 문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김 전 실장도 이런저런 일에서 3인방에게 황당한 꼴을 당했다. 결국 김 전 실장은 스스로를 배신했다. 비선실세 그룹의 힘을 알게 된 후 타협한 것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비선실세 그룹은 ‘공생 관계’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찍혀 나간 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검증, 감찰 권한을 민정비서관실이 가져갔다. 민정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의 균형추가 사라진 것이다.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온 우 전 수석은 2015년 1월 민정수석으로 영전했다.

이렇듯 비선실세의 암약을 견제할 만한 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국정농단에 타협하거나 공생하거나 묵인, 방조한 이들만 남은 상황에서 2015년 10월 미르재단, 2016년 1월 K스포츠가 설립됐다.  






신동아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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