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호

특별기획 | 박정희 시대 100년

“55년 유신왕조 끝장 박정희주의도 소멸”

박정희와 맞선 인명진 목사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6-12-22 17: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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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농단 덕에 역사 한 단원 막 내려
    • 유신 왕조 주축 지금껏 이어졌다
    • ‘박근혜의 혼’이 한 품게 해선 안 돼
    인명진(70) 목사는 사회에 참여한 목회자다. 1979년 YH무역 노동자 신민당사 농성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YH사건은 부마항쟁으로 확산되면서 20년 가까이 이어진 박정희 정권이 종식되는 과정에 단초가 됐다. 긴급조치 위반,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도 투옥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을 맡았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냈다. 2016년 11월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나 ‘인간 박정희’와 박정희 패러다임에 대해 들었다.  

    ▼ 박정희는 누구인가.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누가 뭐래도 박정희의 공(功)은 경제 발전 아니겠나. 경제 발전 방향은 옳았다. 경제 발전도 때가 있다. 중화학공업 육성도 옳았다. 대기업 중심 발전도 단기간에 나라를 성장시키려면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 하루 세끼 밥 못 먹고 가난하게 살았다. 요즘만큼 풍요를 누리는 것은 단군 이래 처음이다. 박정희의 공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삼은 권위주의 독재였다는 게 박정희의 아픈 부분이다. 경제개발 과정이 남긴 상처가 노동자 인권유린이다. 약점인 노동자 문제에 각을 세운 사람이니 박정희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다.”





    ‘박정희 왕조’의 끝

    ▼ 과(過)가 없었다면 공(功)도 없지 않았을까.

    “박정희의 공이 큰 만큼 그늘도 깊고 짙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어느 단계에서는 해결했어야 한다. 재벌 중심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지만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했어야 한다. 유신을 통해 독재한 것은 큰 잘못이다. 3선쯤 하고 끊었어야 한다. 박정희의 잘못이 우리에게 짐으로 남아 있다.”

    그는 “박정희의 그늘에 맞선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이 매우 옳았다는 점을 산업화 세력이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작가 김훈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땅을 덮는 업적, 하늘을 찌르는 죄악’이라고 표현했다.

    “딱 적절한 표현이다.”

    ▼ 2017년 시점에서 본 박정희는.

    “2016년 벌어진 국정농단 사태의 역사적 의미가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왕조’ ‘55년 유신왕조’가 끝장났다. 역사의 한 단원이 막을 내린 것이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1979년 YH사건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됨으로써 유신이 끝난 줄로 잘못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박정희 왕조를 뒷받침한 토대가 지금껏 이어졌다.”

    ▼ 박정희 패러다임을 지금껏 지탱한 토대가 뭔가.

    “경제 발전 신화가 그것이다. 산업화의 바탕 또한 지속됐다. 쉽게 말해 박정희 왕조를 지탱한 토대를 산업화 세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겉으로는 박정희가 사라졌으나 왕조의 주축은 굉장히 온전하게 지금껏 이어졌다.”

    ▼ 부연해달라.  

    “박정희 왕조의 기반을 이룬 주축 세력이 고스란히 남아 박정희를 붙잡고 있었단 얘기다. 박정희 왕조는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졌다. 6월 항쟁 때 우리는 왕조가 끝난 것으로 잘못 알았다. 군사독재가 마무리됐다거나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착각했으나, 노태우가 박정희 왕조의 주축 세력을 바탕으로 집권했다.



    박근혜의 ‘큰 업적’

    YS(김영삼)는 주축 세력과 손을 잡는 3당 합당으로 대통령이 됐다. DJ(김대중) 또한 주축 세력의 한 축인 JP(김종필)와 연합해 집권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것은 세력 교체가 아니었다. 노무현이 판을 뒤집어보려 했으나 왕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은 노무현은 역사 쿠데타를 꿈꾼 사람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일탈로 인해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저평가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이뤄낸 공적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번에 유신왕조 55년을 정리하는 큰 업적을  남긴 것이다. 이번 사태가 생기기 전 아무 업적도 없는 정권을 후대가 어떻게 평가할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박정희 왕조의 마지막 정리를 하는 업적을 남겼다.”

    ▼ 박정희 패러다임은 살아남을까.

    “박정희 패러다임, 박정희주의도 끝장났다. 이명박, 박근혜 9년을 거치면서 박정희 패러다임이 오히려 강화됐으나 이번 사태로 소멸될 것이다. 재벌 체제가 박정희 왕조 55년을 뒷받침해온 단단한 하부구조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재벌은 다시 태어나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재벌 개혁이 화두가 되지 않았나. 국정농단에 연루된 재벌 총수 면면을 보면서 그들의 아버지가 겹쳐 보이지 않던가. 국민은 박정희 패러다임, 박정희주의를 더는 원치 않는다.”

    ▼ 박근혜 대통령의 일탈 탓에 보수 정치도 위기다.

    “역설적이지만, 최순실이 역사에 굉장히 큰 공헌을 했다고 본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뮤지컬을 만든다는 둥 동상을 짓는다는 둥 하던 것이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농단 사태로 말미암아 박정희 우상화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최순실이라는 무당이 박정희와 노무현의 망령을 광화문으로 불러내 춤추는 촛불 위에서 결투를 붙인 것이다. 목사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비유로 이해해달라. 두 망령이, 아니 두 정신이라고 해두자. 두 정신이 마지막 다툼을 벌였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근본적으로 변화하리라고 본다. 보수 정치도 일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결투 이후엔 어떻게 될까.

    “국민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가 중요하다.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한 시민의 문제 제기가 이어질 것이다. 일상의 부조리에 대한 시민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보수 정치 일신될 것”

    촛불집회에 나가 보면 시위에 나온 이유가 제각각이다. 정유라에게 준 특혜에 분노한 이가 있는가 하면, 비정규직 문제나 불평등 구조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한목소리를 냈지만 각자가 서로 다른 불만을 품고 광장에 나온 것이다.

    박정희 왕조 55년의 후유증이 클 것이다. 박근혜가 물러나더라도 왕조의 유산에 대한 강력한 분노와 문제 제기가 이어질 것이다. 정치권이 이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면 나라가 불행한 방향으로 갈 것이다. 혼란, 갈등, 파괴적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 박정희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는 그간 진영 다툼의 한 축이었다.

    “한국 사회의 심각한 진영 다툼도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다.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이 있었기에 경제개발과 동시에 민주화를 이뤄낸 것이다. 앞서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이 옳았다고 평가한 것처럼 산업화 세력은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과 헌신을 존중해야 한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박정희도 그 당시에는 옳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세력도 옳았는데, 되돌아보면 우리가 잘못 대처했다. 노동자 문제, 빈부격차 등 박정희 경제개발의 부작용을 민주화 이후 등장한 정부가 해결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국민 분노 잘 수렴해야”

    1987년 6월 항쟁을 이끈 세력이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기존 정치권에 결과물을 넘겨주는 실수를 저지른 게 특히 후회된다. YS, DJ가 같은 편인 줄 잘못 안 것이다. 두 사람은 정권 획득에만 관심이 있었지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는 일에는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자기 권력만 얻으려는 이들이 100만 촛불에 편승해 이해관계를 채운다면 우리 사회에 엄청난 불행과 부담이 될 것이다. 반대로 정치권이 국민의 분노를 수렴해 잘 대응하면 역사의 한 계단을 뛰어오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정희 왕조 이후의 국가 체제에 걸맞은 형태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현행 헌법대로라면 누가 집권하더라도 앞선 대통령들처럼 불행한 운명에 처할 것이다.”

    ▼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합이 가능할까.  

    “산업화 세력이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삼성 같은 재벌을 봐라. 어느덧 3대째다. 아버지 업적에 기대 잘 먹고 잘사는 건 좋은 일이나 ‘내 기업’이란 생각을 그만둬야 한다. 박정희 시대의 사고를 버리란 얘기다.

    유능한 경영인에게 기업을 맡기는 게 옳은 방향이다. 주주로서 배당받아 자가용 비행기 타고 예쁜 색시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도 누가 뭐라 안 한다. 오너 중심의 재벌식 경영이 경제를 견인하는 패러다임은 끝났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지 않은 재벌 오너가 몇이나 있나. 세상이 바뀌었는데 능력도 없으면서 버티면 한진해운 며느리처럼 망신당한다.”

    ▼ 민주화 세력의 수권 능력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촛불집회에서 젊은이들을 보면서 놀란 게 있다. 양희은이 ‘상록수’와 ‘아침이슬’을 부르는데 많은 젊은이가 두 노래를 모르더라. 세상이 바뀌었다. 민주화 세력 또한 과거에 매몰돼 있다. 독선, 아집 덩어리다. 그 사람들도 박정희 왕조와 함께 뒤로 물러날 때가 됐다. 촛불집회에 편승한 야당의 행태를 봐라. 제정신이라면 ‘부역자’라는 식의 언사를 해선 안 된다. 박근혜도 싫지만, 문재인도 싫다는 정서를 야권이 잘 들여다봐야 한다.”

    ▼ 박정희의 유산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혁명적 상황을 비혁명적 상황으로 잘 마무리해야 한다. 훗날 박근혜의 혼까지 광화문에 나오게 해선 안 된다. 박근혜의 혼이 노무현의 혼처럼 한을 품게 해선 안 된다. 원한이 남아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뽑은 대통령 아닌가. 불명예스럽게 끌어내리는 게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나. 엄중하게 수사하고 철저하게 수사받은 후 사면해야 한다고 본다. 넉넉하게 품어주는 게 나라를 평안케 하는 동시에 갈등을 줄이고 55년 왕조를 바람직한 방식으로 끝내는 길이다.”



    “메시아는 없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초인(超人)이나 철인(哲人)을 기다리는 심리와도 연결된 듯싶다.

    “국민은 그동안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렸다. 메시아 역할을 할 인간은 없다는 사실을 이젠 깨달은 것 같다.

    6월 항쟁 때는 국민운동본부라는 단일 지도체제가 지휘했다. 촛불집회는 그렇지 않다. 광장에서 저마다 모여 각자 행사를 한다. 이렇듯 세상이 바뀌었다. 집단 지성의 리더십이 대안이다. 정치권은 뒤늦게라도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라를 어떻게 이끌지 고민해야 한다. 55년 왕조가 끝장났다. 새로운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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