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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인간을 못 버린 정의의 여신

가족 같은 별 목동자리·처녀자리

끝내 인간을 못 버린 정의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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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의 별자리인 목동자리와 처녀자리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목동자리는 곰 사냥꾼이자, 쟁기를 발명한 사내다. 처녀자리는 지하로 끌려간 미녀 페르세포네, 정의의 여신, 농사의 여신 등 여러 얼굴을 가졌다. 봄철 밤하늘에서 오렌지색이나 흰색으로 밝게 빛나는 별을 찾았다면 당신은 이미 봄꽃처럼 흐드러지게 핀 신화의 세계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끝내 인간을 못 버린 정의의 여신

킬리만자로 은하수.

우리나라에도 별 보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 꽤 많아진 것 같다. 회원수가 수만 명이 넘는 인터넷 동호회도 생기는 걸 보니 말이다. 별 보는 ‘맛’을 모르는 분들은 ‘날마다 똑같은 별인데, 뭘 그리 열심히 보느냐’며 궁금해할 것이다. 사람마다 별 보는 마음은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우주의 신비에 빠져 별을 볼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별하늘이 주는 낭만이 좋아 별을 볼 수도 있다. 별 자체의 아름다움에 빠진 이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왜 별을 보느냐고 물으면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내게 별은 믿음이다”라고. 사람은 변한다.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은 항상 그대로다. 별은 최소한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별만큼 사람도 좋아했는데, 사람이 아니라 별을 믿음으로 여기게 된 것은 대학시절 술집에서 만난 어느 노인 때문이다.

어느 노인의 詩

대학 4학년 때 서울 신림동의 한 술집에서 선배와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다리를 저는 노인이 퉁소를 들고 술집으로 들어왔다. 노인은 멋들어지게 퉁소를 불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노인을 옆자리에 앉게 하고 맥주 한 잔을 권했다. 노인은 단숨에 맥주를 들이켜더니 술값이라며 시 한 수를 읊었다.

길 아래 돌부처



홀로 벗고 서서

일 년내 바람, 비, 눈, 서리를 맞을망정

평생에 이별 없으니 나는 그를 좋아하노라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이 시를 기억한다. 노인은 70년 넘게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이별을 겪었을까. 사람이 변하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봐왔을까. 하지만 길 아래 돌부처만큼은 늘 같은 모습으로 당신을 대해줬다는 그 구절을 듣는 순간 나는 밤하늘의 별을 떠올렸다. 별이 내게 그런 존재가 아닐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늘 너머에 내가 아는 그 별이 언제나 있음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 별들을 보면서 나는 한결같은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5월은 가족의 달이다. 가족만큼 변치 않는 믿음을 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이웃도 친해지면 가족이 되고, 친구도 가족만큼 변치 않는 존재일 것이다. 태양 같은 별이 1000억 개쯤 모여 있는 것이 은하계다. 그리고 우주에는 그런 은하계가 또 1000억 개쯤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주에는 1000억×1000억 개, 즉 100해(垓·10,000,000,000, 000,000,000,000) 개만큼이나 많은 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 하나인 태양의 100만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행성 지구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최근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쯤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인류의 역사는 길어야 수만 년, 그리고 우리는 겨우 100년도 안 되는 삶을 산다.

먼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찰나도 되지 않는 삶을 사는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변치 않는 사랑을 간직한 가족이 소중한 이유다. 5월에 만날 별자리는 가족을 생각나게 하는 처녀자리와 목동자리다.

불타는 심장을 가진 목동

학창시절에 많이들 읽는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별’을 알 것이다. 이 소설에는 양치기 소년이 스테파네트 아가씨에게 목동들의 별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목동들이야말로 밤하늘 별자리를 만들어낸 ‘원조’들이다.

봄의 밤하늘에는 커다란 도깨비 방망이가 걸려 있다. 이것이 바로 목동자리다. 언뜻 넥타이나 연처럼 보이기도 한다. 별자리 이름은 목동자리지만 신화 속에서는 이 별자리의 주인공을 곰 사냥꾼으로 본다.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고 왼손엔 가죽 채찍을 쥐고 있는 용감한 사냥꾼이 바로 이 별자리의 주인공이란다. 별자리 그림을 보면 소를 모는 목동보다는 곰을 쫓는 사냥꾼이 더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북두칠성을 세 마리의 소가 끄는 수레의 모습으로 본다면, 이 별자리 그림을 소를 모는 목동으로 보는 것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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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형 | 우주천문기획 대표 byeldul@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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