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참상 마주한 소년, 평화에 천착하다
4월 22일은 지구의 날…‘개인의 각성’이 핵심
‘불성(佛性)’ 지닌 인간, 사회 안정되게 해
시민이 연대할 때 평화·지속가능발전 가능
“유엔 목적은 연대의 우산 만드는 일”
각국에서 꽃피는 이케다의 평화사상

“한 사람의 내면적 변혁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케다 다이사쿠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의 인간혁명 철학은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에 거대한 변화를 유발했다. 세이쿄신문
‘녹색경제’라는 개념을 축으로 새로운 성장전략이 논의되는 가운데 다른 곳을 바라본 이가 있었다. 이케다 다이사쿠(1928~2023)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이다. 그는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동력이 경제모델의 전환이 아닌 ‘개인의 각성’에 있음을 역설했다. 각국 정상에게 “자원은 유한하나 인간의 가능성과 그가 창조하는 가치는 무한하다”며 “이 가치가 서로를 고양하고 미래를 향해 환원될 때 지속가능성의 진가가 드러난다”고 제언한 것이다. 인간의 잠재력에 주목한 그의 통찰은 오늘날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불성’ 지닌 인간, 사회 안정되게 해
4월 22일 ‘지구의 날’을 앞두고 국제사회가 환경문제에 대한 해답을 인간에게서 찾고 있는 가운데 반세기 전부터 이를 강조해 왔던 이케다 회장이 재조명받고 있다. 지구의 날은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세계적인 환경 기념일이다. 이케다 회장은 불교철학자이자 평화운동가로 지구촌 연대의 밑그림을 그려온 인물이다. 전 세계 24개국에서 국가훈장을 받을 만큼 국제적 신망이 두텁다. 그가 몸담았던 SGI는 전 세계 192개 국가·지역에 약 1200만 명의 회원을 두고 평화·문화·교육 운동을 펼치는 대승불교 단체로, 국내에도 150만 명이 소속돼 있다.이케다 회장의 사상은 13세기 일본 승려 니치렌의 불법(佛法)에 뿌리를 둔다. 니치렌은 모든 인간이 불성(佛性·누구나 본래 지니고 있는 부처의 가능성)을 지닌 존엄한 존재라고 설파하며, 생명 존엄과 인간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상은 정법(正法)을 세워 나라를 평화롭게 한다는 ‘입정안국(立正安國)’ 사상으로 연결된다. 불성을 지닌 개개인이 내적으로 각성할 때 사회가 안정된다는, 인간 내면과 사회의 상호 연관성을 중시한 사상이다.
이 사상은 이후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창가학회 초대 회장에 의해 교육 철학으로 구체화됐다. 여기서 ‘창가(創價)’란 ‘가치를 창조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제2대 회장인 도다 조세이는 이러한 사상을 ‘인간혁명’이라는 철학으로 정립했는데, 이는 “한 사람의 내적 변혁이 전 인류의 변화를 이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창가학회는 세계 각지로 확산됐고, 1975년 전 세계 창가학회를 연계하는 국제기구인 SGI가 결성됐다. 이때 이케다 회장이 SGI 회장으로 추대됐다.
이케다 회장은 스승들의 사상을 계승하되 이를 현대적 관점에서 더욱 발전시켰다. 그의 철학적 행보는 ‘평화’라는 화두로 수렴된다. 그에게 평화는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전쟁의 경험에서 비롯된 절박한 과제였다. 그는 10대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의 화마 한복판에서 공습을 겪었다. 쏟아지는 포탄과 불길을 피해 몸을 숨긴 채,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공포 속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이러한 기억은 “전쟁만큼 잔혹하고 비참한 것은 없다”는 평화사상의 뿌리가 됐다. 무엇보다 그의 평화관에 깊은 흔적을 남긴 이는 어머니였다.
“나의 평화 활동의 출발점은 역시 어머니다. 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차례차례로 4명의 아들을 전쟁터에 빼앗겼다. 그러나 어머니는 용감하고 의연하셨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장남의 전사 소식을 통보받았을 때는 달랐다. 비통해하는 어머니의 모습, 그 순간 어머니가 느낀 고통과 슬픔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전쟁의 기억은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실천의 동력이 됐다. 그 연장선에 있는 대표적 행보가 SGI 창립일인 1월 26일마다 발표해 온 ‘평화제언’이다. 1983년 시작해 이케다 회장이 별세하기 직전 해인 2022년까지 이어진 평화제언에서 그는 핵 군축과 인권, 환경, 교육 등 당대의 주요 의제를 꾸준히 다뤘다. 이케다 회장이 거듭 강조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평화를 만드는 주체는 정부나 국제기구가 아닌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내면적 각성에서 출발한 시민들의 연대가 이뤄질 때 평화도, 지속 가능한 발전도 가능하다는 믿음이었다.
특히 ‘대화’와 ‘세계시민성’은 이케다 회장의 평화사상을 떠받치는 핵심 개념이다. 그는 대화를 상호 이해를 심화하는 창조적 소통의 장으로 봤고, 세계시민성은 인류에 대한 공감과 책임의식의 일환으로 정의했다. 신뢰와 협력 역시 앞선 둘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2015년 9월 유엔은 ‘우리 세계의 변혁: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2030 어젠다’를 채택하며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를 골자로 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발표했다. 유엔
“유엔 목적은 연대의 우산 만드는 일”
이케다 회장의 철학적 지평은 자연스레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문제로 향했다. 그는 2015년 평화제언에서 “유엔(UN)이 2030년을 목표로 추진하는 새로운 범세계적 활동의 주요 목적은 모든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온갖 위협과 비참에서 지키기 위해 연대의 우산을 만드는 일”이라며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문제에 대처하려면 교훈과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그해 9월 유엔은 ‘우리 세계의 변혁: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2030 어젠다’를 채택하며 거대한 전환을 예고했다.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를 골자로 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발표한 것이다. 이는 2000년 출범한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계승하는 동시에 혁신한 결과물이었다. MDGs가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와 보건 개선 등 ‘원조’에 치중했다면, SDGs는 모든 국가에 책임을 부여하는 ‘보편적 목표’로 설계됐다. 기후 위기와 불평등,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 방식까지 포괄하는 등 의제의 범위도 한층 확대됐다.
SDGs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이분법적 구분을 허물고 ‘보편적 실천 목표’로 설계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SDGs는 단순한 국제적 이행 로드맵이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개개인의 인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 구성원 모두에게 소비와 생활 습관 등을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케다 회장은 ‘보편적 인간주의’라는 철학적 토대 위에서 이러한 관점을 일관되게 설파해 왔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자비와 연대의 마음에서 인류 발전의 동력을 찾은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근저에는 앞서 언급한 입정안국(立正安國) 사상이 놓여 있다. 개인의 내적 변혁이 선행될 때 나라와 세계가 안정될 수 있다는 철학이다.
개인의 내적 각성과 일상에서의 실천을 중시하는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유엔이 주도하는 지구촌 담론도 이케다 회장이 제기해 온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유엔은 ‘액트 나우(Act Now·지금 행동하라)’ 캠페인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170개의 행동 지침을 발표했다. 지역 농산물 구매나 수돗물 마시기, 음식물 쓰레기의 퇴비화 같은 일상 속 실천을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핵심 동력으로 제시한 것이다. 개개인의 행동이 지닌 파급력에 주목한 셈인데, 이케다 회장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각국에서 꽃피는 이케다의 평화사상

말레이시아 창가학회(SGM)는 2005년부터 격년으로 ‘평화의 달리기(Run for Peace)’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 대회는 누적 참가자가 40만 명에 달한다. 세이쿄신문
말레이시아 창가학회(SGM)가 2005년부터 격년으로 개최해 온 ‘평화의 달리기(Run for Peace)’ 역시 주목할 만한 행사다. 이 대회는 누적 참가자가 40만 명에 달하는 등 말레이시아 최대 평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다민족·다종교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수많은 이들이 어우러져 함께 달리는 풍경은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줬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개된 2023년 대회에서는 “SDGs를 위해 지금 행동하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실천을 촉구하기도 했다.
싱가포르 창가학회(SGS)는 현지 주요 대학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08년 싱가포르경영대학교(SMU)와 공동 제정한 ‘SGS-이케다 평화상’은 교실에서 배운 평화의 가치를 삶에서 실천하고 창의성과 책임감을 발휘한 학생을 발굴해 시상한다. 또한 SGS는 2020년부터 싱가포르국립대(NUS)와 ‘싱가포르 소카교육장학금’을 운용하고 있다. 경제적 취약계층 가운데 자질이 뛰어난 학부생을 선발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한 사람의 내면적 변혁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케다 회장의 인간혁명 철학은 국제사회에 거대한 변화를 유발했다. 안와룰 초두리 전 유엔 사무차장은 “이케다 회장처럼 오랜 기간 일관되게 유엔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해 온 인물은 드물다”며 “그가 역설해 온 민중의 ‘임파워먼트(empowerment)’는 국제사회가 주목해야 할 가장 의미 있는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개개인의 변화와 연대에서 지구촌의 미래를 찾는 그의 철학은 기후 위기와 불평등이 심화하는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다. 다시 이케다 회장의 사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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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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