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문화체험 주간을 맞아 소고를 배우며 즐거워하는 울산 현대외국인학교 어린이들.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체제의 태동을 앞두고 있다. 20세기 사람들이 굳건히 신봉해온 민족국가 단위의 국제사회 기능은 쇠퇴하고 있으며 민족·국가·주권 개념은 재고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는 나라마다 생성된 다양한 외국인 군집지역이다. 다양한 이문화의 유입으로 국가는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자생적 외국인 군집지역
오랫동안 단일민족국가의 명맥을 이어온 한국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외국인 군락이 본격 형성되기 시작해 경기 안산·남양주·용인, 서울 가리봉동, 인천 등지에 출신국별로 외국인이 모여들었고, 그들을 위한 상권도 형성됐다. 이 지역은 그들의 말로 된 간판, 그들의 색채와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그들의 거주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부동산업자, 고용주와의 교섭집단도 등장했다. 이 외국인 공동체는 모국과의 연락 거점으로 자리잡으며 한국 땅에 자생적 지역사회로 뿌리내렸다.
특히 외국인 인권단체와 종교단체 등은 당국에 ‘다문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단일민족국가 개념에 익숙한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거듭나려면 무엇보다 의식 변화와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외국인 수민(受民)에 대한 온정적 접근은 오히려 혼란과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외국인 인력정책과 체류정책을 긴 호흡으로 살펴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정부는 2004년 8월17일 외국인 인력 수민을 체계화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실시했다. 30만명을 상회하던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는 합법화 조치를 취했다. 한편 불법체류자를 철저히 단속해 매달 3000여명의 불법체류 외국인을 강제 출국시켰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정부 차원의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도 불법체류자는 한 달에 8000여명씩 증가하고 있다. 주변 저개발국 국민이 유입되는 인구이동 압력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연 한국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할 준비가 돼 있을까. 먼저 현행 외국인 노동자 수민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수민정책은 선진국이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5가지 원칙 아래 이뤄진다.
첫째, 노동시장 보완의 원칙이다. 국내에서 해당 분야에 필요한 노동자가 없는 경우에만 외국 인력을 받아들여서 우리 국민의 취업경쟁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산업구조조정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 하이테크와 친환경을 지향하면서 경쟁력 없는 업체는 도태시키고 한정된 수의 외국인 노동자만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셋째, 외국인 노동자의 정주를 불허하고 정해진 계약기간 동안만 일하게 한 뒤 출국시킨다는 원칙이다.
넷째, 이 맥락에서 외국인 노동자 수민은 순환원칙에 따른다. 계약이 만기된 사람은 출국시키고 새로운 인력을 받아들임으로써 외국인의 정주도 막고 우리의 기술과 상품을 해외로 진출시킬 교량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자는 것이다.
다섯째, 외국인 노동자와 우리 노동자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국제사회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
“노동력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한마디로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우리 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하지만, 일시 노동력 이상은 아니므로 그들을 한국에 정주시키지 않겠다는 것. 한국 국민이 주인이고 외국인은 잠시 불러들였다가 내보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원칙이다.
그러나 막스 프리시가 “독일은 노동력을 받아들였는데 들어온 것은 인간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외국인 노동자 수민은 원칙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독일은 1960년대부터 ‘게스트 워커(Guest Worker) 정책’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30여년이 지난 1990년대 초,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800만명의 외국인이 독일에 거주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게르만 민족의 혈통주의에 근거한 단일민족국가에서 이민국가, 다문화국가로 정체성을 전환한 독일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이 다문화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은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