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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지옥에서 지루한 천국으로

행복한 지옥에서 지루한 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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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각은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인간은 애초부터 착각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착각은 애교 수준이다. ‘사람 보는 눈이 있다’거나 ‘내가 나서야 일이 된다’는 착각은 중증이다. 가장 큰 착각은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일 것이다. 일상 속 선택의 순간에 직면할 때 착각하지 않고 바른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허태균 교수의 새 연재 ‘선택의 심리학’은 인간이 빠지기 쉬운 착각, 그리고 착각에 따른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게 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편집자>
행복한 지옥에서 지루한 천국으로

사람 다니기도 비좁은 시장통을 경적을 울려대며 비집고 드나드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룬 1989년 서울의 어느 날.

지루한 천국과 행복한 지옥. 20여 년 전 젊은 유학생의 눈에 비친 미국과 한국의 모습이다. 필자가 미국 유학을 떠난 1990년대 초의 대한민국은 지금과 비교하면 부족한 것이 참 많았다. 아파트와 자가용은 국민 대다수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겨울에는 난방이 제대로 안 됐고 여름에는 에어컨이 드물었다. 기본적인 생계 말고는 지출할 여력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청바지를 사거나 냉장고를 살 때, 외식을 하거나 심지어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을 때도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의 문제가 부각됐다.

그때 미국은 모든 면에서 풍족한 사회였다. 웬만한 생활필수품과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물건들은 국민 대부분이 소유하고 있었다. 아무 수입이 없어 미국 사회에서 빈민층에 속했던 유학생마저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고, 많은 경우에 한국에서의 삶보다 풍족했다. 그런데도 나는 유학 시절에 한국이 그렇게도 그리웠다.

예측가능성 vs 이중성

부모님과 친구들이 살고 있고, 한국말로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조국이 그리웠다. 25년을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뼛속까지 한국 사람인 내게 미국 사회는 너무나 지루했다. 풍부한 물자와 잘 갖춰진 인프라, 사회적 합의와 명시된 규칙에 따라 예측가능하게 돌아가는 미국 사회는 스트레스가 적고 평화롭고 편안했다. 그런 환경을 찾아 한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평화와 평온은 곧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주택가엔 해만 지면 돌아다니는 사람이 드물어 조용하다. 저녁과 주말에는 가족들이 잔디구장이 완비된 공원에서 운동과 피크닉을 즐겼다. 차선을 바꾸려고 방향지시등을 켜면 차 대부분은 길을 내줬고, 널찍한 주차장에서 서로 양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공공기관, 학교, 식당,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서로 친절하고 배려하며, 그 관계들은 대부분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합리적으로 이뤄졌다. 미국이 대표하는 서구 사회의 키워드는 예측가능성이었고, 일관성과 합리성이 중요한 덕목이자 평가의 기준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예측가능성이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한국에선 낮엔 진지하고 올곧고 점잖던 사람도 밤엔 폭탄주를 강권하고 만취해서 추태를 부리는 이중성을 갖고 있었다. 방향지시등을 켜면 오히려 속도를 높여 달려오는 차와 치열하게 경쟁하며 끼어들어야 했다. 주차장에서는 안내원의 지시를 무시했다. 공공기관, 병원, 학교, 일상에서 순서와 원칙보다는 각종 연결고리와 변칙이 통했다. 같은 사람이 가정에서는 아버지로, 집 밖에선 친구로, 직장에선 상사와 직원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나 달라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예측가능성, 일관성, 합리성은 지루하고 ‘유토리(융통성)’가 없는 고지식함으로 받아들여졌다. 규칙을 준수하고, 교통법규를 따르고, 원리원칙대로 일처리를 하고, 누구에게나 늘 같은 모습으로 대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하고 속 터져 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사회적으로 그리 성공하지도 못하고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않은 사회였다.

이런 한국 사회가 나는 너무 그리웠다. 삶 자체의 질은 낮고, 어렵고, 힘들고, 고될지언정 그 삶은 역동적이고 재미있고, 말 그대로 ‘사람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토종 한국인인 내게 미국은 지루한 천국, 한국은 행복한 지옥이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그랬던 한국이 지금 표면적으로는 행복한 지옥에서 지루한 천국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제 한국인들은 예측 가능한 사회, 즉 법리와 규범, 원칙이 지배하는 합리적인 사회를 원한다. 우리 사회의 옛 모습을 비합리성, 부패, 혼란, 무질서로 인식하며 좀 더 합리적이고 원칙대로 운영되는 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이상적인 사회는 어떻게 이뤄질까. 답은 하나다. 사회 구성원, 즉 우리들 하나하나가 모두 원칙과 규범을 따르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합리적이고 일관되게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면 그런 사회가 이뤄진다.

그럼에도 구성원 대부분은 사회적 문제를 얘기할 때 자신은 예외로 간주하고, 제3자의 관점에서 매우 점잖고 중립적인 논평을 내놓는다. 우리 사회에선 ‘문제가 많다’ ‘원칙이 없다’ ‘편법이 난무한다’ ‘부패했다’는 식의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때로는 한국인에 대해 ‘질서 의식이 없다’ ‘학연·지연에 연연한다’ ‘이중적이다’며 자학적으로 단죄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실제로 그런 인식을 갖고 있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데, 동시에 우리 사회가 그런 현실을 보일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질서를 지키는 무질서한 사회가 가능할까. 모든 사람이 원칙과 규범을 따르는 예측 불가능한 사회가 존재할까. 모든 사람이 소신을 지키며 사는 일관성 없는 사회가 있을까.

대개는 자신은 안 그런데, 일부 사회지도층, 일부 나쁜 사람들이 사회를 망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지속적으로 너무 자주 일어나고, 더구나 국민 대부분의 일상에서 경험할 만큼 광범위한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일부나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가정에서는 좋은 남편과 아버지인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가 집 밖에서는 성매수를 하고, 뇌물을 받고, 탈세를 하고, 비리를 저지른다.

일부가 아닌 운전자 대부분이 양보를 하지 않고, 가끔 신호를 위반하고, 불법주차를 하고, 그러면서 서로를 욕한다. 정치인, 검찰, 경찰과 같은 권력의 비리를 욕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느낌이 들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가족, 친척, 친구, 심지어 친구의 친구를 찾는다. 이런 모순은 착각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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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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