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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나 같은 줄 알았다”

구성(composition)의 오류

“다 나 같은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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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에선 많은 집단과 연계를 맺게 된다.
  • 우리가 속한 집단마다 역사가 있으니 그만큼 우리 인생의 역사는 겹겹이 쌓이는 것이다.
  • 이런 중첩성 때문에 역사를 구성할 때 종종 오류가 발생한다.
나를 둘러싼 역사들

“다 나 같은 줄 알았다”

영화 ‘황산벌’에서 신라 군사들이 백제 군사들에게 욕을 하고 있다. 쌍방 군사들이 욕을 해서 승부를 겨루는 장면의 일부다. 나는 이럴 수 없었다고 짐작한다. 아마 서로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전주대학교 역사문화학과 학생이기도 하고,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고, 절이나 교회의 신자이기도 하고, 전라북도 도민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배운 ‘국사’ 속 ‘국민’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복수(複數)의 역사를 산다. 뭔가의 집단에 속한 복수의 역사. 떠오르는 대로 그 집단의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문화집단 : 공동체, 문명,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공동사회)

-사회집단 : 환경단체, 인권연대, 게젤샤프트(Gesellschaft·이익사회, 즉 계급, 계층, 카스트 등)

-정치집단 : 민족, 국가, 왕국, 공화국, 정당, 정파, 의회



-경제집단 : 회사, 소비조합, 투자집단, 컨소시엄, 상인회, 농장, 플랜테이션

-종교집단 : 교회, 절, 사원

-교육집단 : 초등학교, 중등학교, 대학, 학생회, 교수회

-친족집단 : 가족, 종친회, 부족

-거주집단 : 동, 면, 군, 도, 시

-직업집단 : 직업, 길드, 기능

-군사집단 : 군대, 향군회

-자발집단 : 촛불집회, 밴드, 클럽, 취미집단

물론 이는 특정 기준을 가지고 나눈 분류라기보다 필자가 떠오르는 대로 정리해본 분류에 불과하다. 이처럼 잠깐만 훑어봐도 우리 인생은 많은 집단과 연계돼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속한 집단마다 역사가 있으니 그만큼 우리 인생의 역사는 겹겹이 쌓이고, 이런 중첩성 때문에 역사를 구성할 때 종종 구성(composition)의 오류가 발생한다. 각 집단의 성격을 혼동하는가 하면, 중첩성을 단순하게 처리하다가 오류를 내기도 한다. 해당 집단과 그에 속한 개체인 인간을 혼동하기도 한다.

대구, 마산이 얼마나 다른데!

요즘 ‘응답하라 1994’라는 TV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사는 부부(경상도 아내+전라도 남편) 집에 빙그레(충북 옥천 출신), 해태(전남 순천 출신), 삼천포(경남 삼천포 출신), 칠봉이(서울 토박이) 등의 별명을 가진 하숙생이 모여 산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각 지역 언어의 맛깔스러움을 전한다. 서로 말을 못 알아듣는 일도 다반사다.

나도 그랬다. 나는 충남 천안 출신이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정서는 외할머니 댁에서 만들어졌다. 언어도 그렇다. 방학해서 내려가면 곧장 말투가 바뀐다. 동네 어른을 만나면 “진지 잡쉈슈?” 소리가 절로 나오고, “네”라는 대답 대신 “야~”라는 충청도 말이 나온다.

“다 나 같은 줄 알았다”

올해 1월 1일 대전에서 홍성군 홍북면 ‘내포 신도시’로 이전한 충남도청 청사. 4개 건물은 한성, 웅진, 사비 등 과거 3개 백제 도읍지와 현재의 도청을 상징한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공주는 대전에 도청을 ‘빼앗겼다.’ 현재 충남도청은 홍성에 있지만, 대전과 공주의 규모는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와서 부산, 마산 친구들을 만났다. 솔직히 나, 그들 대화 거의 못 알아들었다. 경상도 말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대구, 부산, 마산 말이 똑같다고 하자, 친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처구니없다면서, 예의 그 경상도 억양으로 말했다. “대구 말, 마산 말이 얼매나 다른데~.”

예전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삼국시대를 묘사할 때, 고구려에 간 신라 사신이 외교 담판을 벌이면서 통역자를 대동하는 장면이 있었다. 난 그게 그 당시 현실이었다고 믿는다. 매스컴이 없고 표준어 개념도 없었기에 지금보다 서로의 언어를 훨씬 접하기 어려웠을 그때, 고구려, 백제, 신라는 사신이 오갈 때 통역이 필요했을 것이다.

‘충청도 양반’의 오류

친구들 말이 옳았다. 부산, 마산이 다르고 순천, 광주가 다르다. 경상도, 전라도에 속해 있다고 다 같을 순 없다. 나는 경상도 지역의 언어가 모두 같다고 오해했다. 경상도를 하나의 동일성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처럼 어떤 집단에 대해 갖고 있던 정보를 가지고 그 집단의 성원 역시 그럴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을 ‘배분(할당)의 오류’라고 한다. 역으로 어떤 집단의 일부분 또는 개체가 갖는 속성을 가지고 집단 전체의 속성을 추론하는 오류를 ‘구성의 오류’라고 한다.

필자의 고향이 충청도라고 밝혔으니 충청도 양반 얘기를 해보겠다. 충청도엔 양반이란 말이 따라다닌다. 점잖다는 의미도, 느리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충청도라고 다 같은 충청도가 아니다. 천안은 직산, 평택으로 이어지는 육로 교통의 요지다. 임금이 온양 온천에 갈 때도 천안을 거쳤다. 반면 아산은 해안지역과 교섭한다. 당진, 안면도와 가깝다. 예산, 홍성 등의 내포 지역은 해안 지역과 연계되기도 하지만, 독립적인 경제권,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서천, 한산은 또 어떤가. 여기는 장항을 거쳐 전북 군산과 연계되던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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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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