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광주광역시 북구 직원들이 도로명주소로 새로 인쇄된 건물 번호판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정부는 새 주소를 사용하면 길 찾기가 더 쉽다고 한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도로명주소를 쓰므로 국가경쟁력은 물론이고 국가 이미지도 제고된다고 한다. 도로명주소 도입에 따른 사회경제적 효과도 연간 3조4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 절대 다수는 새 주소를 여전히 잘 모른다. 알아도 선뜻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정부는 강제적으로 시행하다보면 언젠간 ‘몸에 맞는 옷’같이 편해질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오래 준비해왔다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는 주소 체계로 다듬는 시간은 분명 충분치 않았다. 강제 시행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도로명주소로 바꾸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지번주소가 불편하고 후진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1910년대 일제가 세금을 걷기 위해 토지를 나누면서 번호를 붙인 게 지번주소다. 따라서 지번은 처음부터 사람이나 건물의 위치를 찾기 위한 게 아니라 땅의 자리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필지별로 일련의 번호를 붙였기에 지번은 당초엔 일정한 방향과 순서를 가졌다. 또한 개별 필지는 개별 건물의 자리이기 때문에 지번주소는 건물주소의 의미도 함께 지녔다.
그러나 급격한 도시화를 겪는 동안 나눠지고 합쳐진 필지 위에 여러 건물이 들어서면서 붙여진 지번은 더는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가령 1번지 다음에 2번지가 아니라 5번지 혹은 6번지가 붙으면 위치 정보로서의 지번주소는 ‘체계성’이나 ‘예측 가능성’을 잃게 된다. 그로 인한 국가행정 및 일상생활의 불편과 비용도 덩달아 커진다.
1970년대부터 여러 차례 전환 시도
정부 차원의 새 주소 전환 검토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1971~73년 일본의 구역방식 주소 체계를 도입하려고 전국 6대 도시에 시범 적용했고, 1980년엔 ‘신주소 표시제도 실시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자 1995년 폐지됐다. 이후 도입 시도가 본격화한 건 1995년 청와대 국가경쟁력기획단이 주소제도 개선을 정책추진 과제로 채택하면서부터다. 1996년 7월 정부는 ‘도로명 및 건물번호 추진 방안’을 발표한 후 1997년 1월 서울 강남구와 경기 안양시에 1차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이듬해엔 경기 안산시 등 4개 도시로 확대했다. 1999~2003년 2단계 시범사업이 전국 135개 도시에서 시행됐다. 이때까지는 지번주소를 법적주소로 하면서 생활주소란 이름으로 도로명주소가 병행 사용됐다. 그러나 도로명주소 사용은 기대만큼 확산되지 못했다. 부정적 평가와 함께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사업이 존폐 위기에 처했다. 강제력이 부족해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판단한 정부는 ‘도로명주소의 입법화’를 대안으로 내놨다. 이렇게 해서 ‘도로명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이 2005년 발의되고 2006년 제정된 후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법정사업으로 위상이 강화된 도로명주소는 2011년부터 지번주소와 병용하다 2012년부터 전면 시행토록 돼 있었다. 정부는 ‘도로명주소통합센터’를 설치하고, 도로명판 등 관련 시설물을 전국적으로 설치하는 일을 2010년 10월까지 완료했다. 대국민 홍보도 실시했다. 그럼에도 새 주소에 대한 국민의 인지나 수용 정도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드러나자, 전면 시행을 2014년 이후로 2년간 미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