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전 치매에 걸린 어머니(당시 78세)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아들(55)이 최근 자수를 했다. 아들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단둘이 살다 모시기 힘들어지자 베개로 자고 있던 어머니의 얼굴을 눌러 숨지게 했다고 한다. 경찰 조서에 남긴 아들의 말은 “이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싶다”였다. 이 사건이 알려진 날, 장기간 치매를 앓아온 노모를 폭행해 숨지게 한 아들(62)이 징역 6년형을 받았다. 아들은 10년간 치매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보살피다 순간적으로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치매에 의한 존속살해의 비극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2050년이면 노인 7명 중 1명 이상이 치매환자가 된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치매국가책임제’를 주요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앞으로 어떤 정책이 나올지 기대를 모으는 상황에서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이 지난 30년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월 27일 일본 교토에서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 국제회의(인지증 국제회의)가 열렸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치매 대신 ‘인지증(認知症)’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이 국제회의는 인지증 환자나 가족 등 당사자들이 모여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격려하고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일본에서는 이처럼 인지증 관련 국제 활동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고령화율 25%를 훌쩍 넘어선 전대미문의 초고령사회인 일본. 인지증 문제는 개인이나 가정을 넘어 사회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60년 고령화율 39.9%

일본의 연금보험급부비, 고령자의료급부비, 노인복지서비스급부비, 고연령고용계속급부비를 합친 사회보장급부비를 보면 2013년 760조 원으로 전체 사회보장급부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육박했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고령화율은 12.7%로 일본의 26%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2015년 일본의 닛세이 기초연구소가 예상한 2060년 한국과 일본의 고령화율은 양국 모두 39.9%였다. 즉 2060년 무렵엔 한국과 일본이 유사한 인구구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고령자 문제는 일본을 참고로 하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초고령사회가 필연적으로 안고 있는 고민거리 중 하나가 바로 인지증이다.
흔히 치매로 불리는 인지증은 뇌 및 신체 질환으로 인해 기억력과 판단력의 현격한 저하, 환각, 망상, 야간배회 같은 증상이 나타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지증은 질병(인지장애라고도 함)이며 건망증과는 구분된다.
알츠하이머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치매 인구는 2050년 271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2013년 57만여 명에 비해 4.7배나 급증하는 것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치매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치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2013년 11조7000억 원에서 2050년 43조2000억 원(GDP의 1.5%)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서 치매 환자 한 사람을 돌보는 데는 연간 약 20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노인복지 인력 동남아에서 수입
일본은 2012년에 462만 명이던 인지증 고령자가 2025년까지 700만 명에 이르러 고령자 7명 가운데 1명꼴로 인지증 환자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자연히 인지증 고령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문제는 일본 사회의 큰 이슈이며 적지 않은 사회적,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다. 노인시설 등에서 이들을 돌보는 데 많은 인력이 투입돼 있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최근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국가로부터 케어 인력을 받아들이고 있다.앞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인지증 문제는 본인뿐만 아니라 온 가족을 고통으로 몰고 간다. 일본에서는 인지증 환자인 배우자나 부모를 살해한 사건이 종종 사회적 이슈가 되곤 한다. 즉 인지증 환자를 돌보던 사람(주로 가족)이 자신이 돌보던 환자를 살해하는 것. 일본에서는 이를 ‘케어살인’이라 하는데 1년에 20건 안팎으로 발생하고 있다. 대개 이런 사건은 재판 과정에서 정성을 다해 환자를 돌보다 한계에 부딪혀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눈물겨운 사연이 공개되곤 한다.
‘케어살인’의 원인으로 돌봄과 간호에서 오는 피로를 꼽을 수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이런 이유를 꼽는 고령자가 20%가량 되는 반면, 젊은 층은 3%도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봐야 하는 ‘노노케어’의 부담이 케어살인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불면, 식욕부진, 돌보미 자신의 건강악화도 케어살인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미 일본에서는 2013년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노노케어’ 세대가 5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75세가 넘은 후기고령자가 배우자를 돌봐야 하는 경우도 25%를 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돌보미 자신이 인지증 환자인데 인지증 배우자를 돌봐야 하는 소위 ‘인인케어’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고령자 역주행 사고 급증
일본에서는 최근 들어 고령운전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인지증 문제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지난 3년간 고속도로 역주행 사고 570여 건 가운데 약 70%는 운전자가 65세 이상 고령자였고, 이 가운데 37%가 인지증 환자인 것으로 조사됐다.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3월 12일부터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에서 75세 이상 후기고령운전자를 대상으로 인지기능 검사를 실시해 치매가 의심되면 의사의 진단하에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할 수 있도록 법 규정을 강화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인지기능 저하 가능성이 있는 운전자는 실제 차를 운행하면서 실시하는 지도와 개별지도를 포함해 3시간의 고령자 강습을 받아야 면허 갱신이 가능하다. 또 인지증 위험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임시적성검사 또는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인지증 판정을 받으면 면허는 정지 또는 취소된다. 신호를 무시하거나 통행금지된 도로를 주행하거나 유턴금지 지역에서 유턴을 하는 등 20여 항목에 가까운 ‘특정위반 행위’를 했음에도 임시인지기능검사 및 고령자 강습을 받지 않거나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곧바로 운전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된다.
이처럼 지자체별로 고령운전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고령자 스스로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도록 유도하는 정책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령운전자가 경찰서에 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바로 지자체와 연결해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포괄지원센터에서 직접 고령자를 방문해 생활상담을 해서 자가 이동수단을 포기한 데 대한 대체수단을 찾아주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홋카이도 나요로시의 경우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한 고령자가 택시를 탈 경우 일정금액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고 있다. 또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 홈페이지에 인지증의 원인이 되는 질병 종류에 따라 운전행동의 차이 등을 상세히 설명해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가족이 인지증일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인지증 대응 국가전략 ‘오렌지플랜’

‘오렌지플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5년부터 일반인의 인지증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이해를 높이고자 인지증 증상 및 상황에 따른 대응법 등을 알려주는 무료강좌(90분간)를 개설하고 이를 수강한 사람들에게 ‘인지증 서포터’ 자격을 부여한다. 올해 말까지 인지증 서포터 800만 명 양성을 목표로 했으나 이미 9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자격을 취득했다.
인지증 상태에 따라 적시에 적절한 의료 및 케어를 제공하고자 의료 및 케어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연수도 실시하고 있다. 인지증 환자에 대한 빠른 대응을 위한 ‘인지증 초기 집중 지원팀’과 지역 내 의료 및 케어를 연계하는 ‘인지증 지역지원 추진원’으로, 2018년까지 이들을 모든 지자체에 배치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인지증 환자의 조기 진단과 조기 대응을 위해 고령자인구 600명당 주치의 한 명꼴로 ‘주치의 인지증대응력 향상 연수’도 실시하고 있는데 2017년 말까지 5만 명 수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2015년부터 인지증에 걸린 사람과 가족이 익숙한 지역에서 안심하고 지속적으로 생활하도록 지원하고 의료 및 케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안내하는 가이드북 ‘인지증 케어패스’를 지자체가 3년마다 의무적으로 작성하는 ‘개호보험사업계획’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오렌지플랜은 일반 국민의 인지증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의료 및 케어 영역에서 전문인을 양성하며, 인지증 환자를 지원하는 연계 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다.
새 대통령이 나서서 ‘치매는 국가가 책임진다’고 선언한 만큼 한국도 이제 체계적 대책 마련과 실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때 인지증 전문의 같은 전문 의료진 양성, 인지증 서포터 등 인지증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돕는 활동 전개, 고령운전자 면허증 자진반납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보호장치 마련, 다양한 노인성 인지증 예방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 등 지금까지 일본이 실시해온 정책과 제도가 많은 참고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여 영국 브래드퍼드 대학에 마련된 인지증 연구자 및 복지시설 및 기관종사자 재교육을 위한 양성 코스와 같은 고등교육기관에서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한국 사회에 닥쳐올 고령화 쇼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황 경 성
● 1961년 전북 김제 출생
● 원광대 체육교육학과 졸업,
● 도쿄대학 보건학 석사, 박사,
● King's College London 객원교수,
● 현 나요로시립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 저서 ‘노인대국 일본의 고령자 보건복지제도와 정책’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