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박근혜는 육영수가 아니었다

정밀 진단 - 구멍 난 대한민국 재난관리 시스템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입력2014-05-21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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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과 대한민국을 속이는 자 누구인가
    • ‘Think the Thinkable’도 하지 않는 현실
    • 안행부가 있는데 안전처를 만든다?
    • 제복을 모독한 해경, 책임을 회피한 김장수
    박근혜는 육영수가 아니었다

    4월 17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굳은 표정으로 실종자 가족을 만난 박근혜 대통령. 그는 왜 울지도 못했는가.

    세월(歲月)이 아니라 ‘세월(世越)’이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여객선이 온 나라를 뒤흔들어놓았다. 한자 뜻 그대로 세상을 초월한 사고를 친 것이다. 그로 인해 온 국민이 고통에 빠졌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도 급락했다. 그러나 제대로만 대처해 많은 인명을 구출했다면 국민은 대통령과 정부에 큰 신뢰를 보냈을 것이다.

    이 사건을 키운 양대 주범은 선사(船社)와 선장 등 승무원의 무능과 시맨십(seamanship) 상실,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가 지도부의 리더십 결여다. (주)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승무원의 무능과 무책임, 해양인 정신 실종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의 지적이 있었으니 여기에서는 국가 지도력 붕괴를 분석해보기로 한다.

    위험을 의식하며 국가를 이끌어야 하는 이들은 반드시 ‘Think the Unthin-kable(생각할 수도 없는 일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은 이들이 ‘Think the Thinkable(생각할 수 있는 일도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대책을 세워놓지 않은 ‘전형적인 방심’이다.

    해양경찰은 한두 가지의 위험에만 집중해왔다. 국가적인 관심사이기도 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는 데 전력을 쏟아 부었다.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을 단속하던 해경 요원이 순직하고, 해경이 쏜 고무탄을 맞아 중국 선원이 사망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보니, 다른 것을 등한히 하는 우(愚)를 범했다.

    그 사이 종종 해난 사고가 있었으나 어선과 화물선에 한정됐다(서해페리호 사건 이후). 배의 구조를 꿰뚫고 있는 승무원과 어부들은 대부분 자력으로 빠져나왔다. 사고는 대개 황천(荒天)에 일어났으니 해경 요원들이 배에 들어가 구조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해경은 재난을 당한 배에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복에 대한 모독

    그래서인가? 해경은 중국 어선에 올라가 강제 수색하는 지방해경청의 특공대는 키웠으나, 재난당한 배에 들어가 탑승자를 구하는 수색구조계는 없애버렸다. ‘여객선이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Think the Thinkable’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여객선에서는 배의 구조를 모르는 승객이 절대 다수이니 사고가 일어나면 ‘무조건’ 승무원이 갑판 같은 안전구역으로 승객을 유도해야 한다. 승무원이 하지 못하면 제복 입은 이가 해야 한다. 소방방재청 요원이 화재가 난 건물에 들어가 사람을 구조해내듯, 해경 요원도 여객선에 뛰어올라가 승객을 끄집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연안 여객선의 구조를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연안 항로를 다니는 여객선의 수는 많지 않으니, 해경은 여객선의 구조를 숙지해 승객을 유도하는 훈련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세월호는 북쪽에서부터 인천-평택-보령-군산-목포-완도-제주의 8개 해양경찰서 관할수역을 지난다. 그러나 8개 해경서 모두 세월호 구조를 숙지해 사고 시 승객을 유도해내는 연습을‘전혀’하지 않았다.

    세월호는 유속이 빠른 맹골수도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바다에 뛰어든 이들은 심장마비 등에 걸리지 않은 한 다 살아났다. 목포해경서 소속의 123정이 도착한 뒤에도 세월호는 상당시간 60도 정도로 기울어진 채로 있었다. 따라서 123정 요원들이 배에 올라가, 구명조끼를 입고도 겁에 질려 복도와 선실에 갇혀 있던 승객들을 유도해 바다에 뛰어들게 했다면,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여러 배가 바다에 떠 있는 이들을 대부분 구조했을 것이다.

    그렇게 됐더라면 대한민국은 소수의 희생자를 애도하면서도 123정 요원들이 해낸 인간 승리에 기뻐했을 것이다. 용감한 행동을 한 해경 요원은 줄줄이 ‘영예로운 제복상’ 수상자로 선정되고, 구조에 참여한 배의 선원은 전부 ‘의인(義人)’으로 추대됐을 것이다. 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지지율도 올라가고 애국심도 고양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가가 정한 제복은 아무나 입는 것이 아니다. 제복을 입은 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제복에 대한 모독이다. 군복을 입은 군인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 나라의 안보는 유지될 수 없다. 시맨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제복정신’인데, 해경은 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해경은 얼이 빠진 게 아니라 얼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그것을 몰랐다.

    대통령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니

    초동 대처 미흡으로 세월호가 뒤집혀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다음부터는 해경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때 박근혜 정부는 국무총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해경청을 거느린 해양수산부, 재해재난 발생 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맡게 되는 안전행정부, 해군을 거느린 국방부를 동원하려면 총리가 나서는 것이 좋다는 ‘꾀’를 낸 것이 시발이었다.

    우리나라의 국무총리는 행정부처를 통합 지휘할 수가 없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부처가 권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실종자를 찾아내려면 해군과 국방부를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총리에게는 대통령을 대신해 군 통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지도 않다.

    국무총리의 주 임무는 부처 간의 이견을 ‘조정(調整)’해내고, 대통령의 허물을 뒤집어써주는 ‘방탄(防彈)’을 하며, 대통령을 대신해 행사를 치르는 ‘대독(代讀)’이라는 게 상식인데도,청와대는 총리를 실권도 없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에 지명해 막아보려고 했다. 총리가 책임지고 사임하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려고도 했다.

    이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Think the Thinkable도 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여성이기에 재난에 대한 리더십이 약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참모들의 정확한 보좌가 더욱 필요한데, 이들은 박 대통령 보호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총리 이하 여러 장관이 희생자 가족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희생자 가족이 청와대로 행진하고, 종북·친북 세력이 그에 편승해 선동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다음에는 해수부와 안행부 간의 갈등이 계속됐다. 해수부는 해경청을 거느린 이유로 전면에 나섰으나, 법적으로는 중대본을 이끄는 안행부가 중심이 돼야 한다. 이 문제는 세월호 사건 내내 해결되지 못해 계속 어정쩡한 상태에 있다. 이는 박 정부의 행정 개혁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다 일을 한다’는 것에만 주목해 해경청을 해수부에 두게 한 박 대통령의 결정은 잘못됐다고 본다.

    미국은 지방자치를 중시하기에 오랫동안 재난은 주정부, 안보는 중앙정부가 맡는 체제를 유지해오다, ‘재해와 재난이 전쟁만큼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고 1978년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만들었다. 1991년 유럽 냉전이 끝난 다음에는 군을 ‘전통적인 안보’인 군사작전에만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테러나 국제범죄 등 초국가적 범죄와 재난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보고, 그것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군을 바꿔나가기로 한 것.

    그때부터 군은 ‘전쟁 아닌 상태에서도 작전(military operation other than war)해야 한다’며, ‘MOOTW(‘무트와’로 읽음)’란 말이 유행했다. MOOTW는 표현이 생소해서 그렇지 사실 색다른 것은 아니다. 우리 군이 수해(水害)지역에 들어가 민간인을 돕거나 농번기 모심기 등을 지원하는 것이 바로 MOOTW에 해당한다. 미국은 ‘포괄적 안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군을 전쟁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안보에만 투입하는 게 아니라 테러와 재난 발생시에도 투입한다는 것이 바로 포괄적 안보다.

    충언(忠言) 없는 충성(忠誠)

    이러한 준비를 해놓았는데도 9·11을 당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준비가 돼 있었기에 바로 대(對)테러전인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국내 안전을 총괄하는 국토안보부를 만들어 FEMA는 물론이고 우리의 해경청과 비슷한 연안경비대(Coast Guard) 등 여러 정보·안전기관을 거느리게 했다. 국방부는 MOOTW를 포함한 포괄적 안보를 맡고, 국토안보부는 안전기관을 동원해 안전업무를 맡게 한 것이다.

    국토안보부와 비슷한 것이 우리의 안행부이고 박대통령은 안전을 중시하겠다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고치게 했으니, 해경청은 안행부 소속으로 해놓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부활한 해수부는 과거의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을 주축으로 한다. 육지에 비유해 설명한다면 해운항만청은 국토교통부, 수산청은 농림축산식품부와 비슷하다. 해수부는 경제부처인 것이다. 경제부처와 안전을 다루는 부서를 한데 묶어놓을 수 없는 것은 상식인데, 박 대통령은 그것을 무시했다.

    이는 안행부 장관이 중대본부장을 맡아 종합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규정해놓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의 제정 정신을 무시한 조처이기도 했다. 해양 사고 발생시 해경청은 물론이고 소방방재청, 경찰청도 함께 대응해야 하니 해경청은 안행부 밑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박 대통령에게 ‘참말’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충언(忠言) 없는 충성(忠誠)만 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행정 체계가 잘못돼 있어도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큰 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안기부가 통제를 해줬기 때문이다. 안기부는 모든 부처와 공공조직에 IO(정보관)를 보내놓고, 내부에는 각 부처 이상으로 상황판단을 잘하는 전문가가 있어 정확히 진단할 수 있었다. 안기부장은 부총리급이고 실세였으니 총리실을 포함한 모든 부처를 일사불란하게 통제 지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이후 ‘음지의 대통령(안기부)’에 대한 비난이 거듭되면서, 국정원은 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 헌법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상화에 관심이 쏠렸다. 사실 민주국가에서는 정보기관이 아니라 NSC가 모든 위기 대응의 중심탑이 돼야 한다.

    미국의 NSC는 ‘국가정보국’으로 번역되는 DNI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DNI는 CIA 등 미국 내 모든 정보기관이 판단한 정보를 종합 정리하는 곳이다. NSC는 DNI로부터 받은 정보를 토대로 포괄적 안보 개념에 따라 군을 비롯한 안전 관련 부서를 종합 지휘한다.

    꼿꼿장수, 회피장수

    노무현 정부는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등을 겪은 후 NSC 기능을 강화했다. 포괄적 안보 개념에 따라 북핵을 포함한 모든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게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문제에 주력했다는 이유로 NSC를 무력화하고, 법적 근거도 없는 안보장관회의로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처하는 무능을 보였다.

    이를 재정비한 것이 박근혜 정부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과 동급으로 국가안보실을 만들어, 국가안보실장을 NSC 상임위원장, 국가안보실 1차장을 NSC 사무처장으로 지정했다. 이는 안보실장을 포괄적 안보의 컨트롤타워로 삼겠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4월 16일 박 대통령은 김장수 안보실장으로부터 세월호 사건을 처음 보고받고 김석균 해경청장과 전화통화를 하는 등의 최초 조치를 취했다.

    박근혜는 육영수가 아니었다

    4월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시작되기 전 속이 타는지 물을 마시는 김장수 안보실장. 그는 세월호 사건 대응을 회피했다. 꼿꼿장수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다.



    안전처 신설은 책임 회피 수단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자 김 실장은 “(우리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뺌했다. 이에 대해 안행부와 해수부 등이 위기 매뉴얼 등을 공개하며 “안보실이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 혼란이 일었다. 여기서 전문가들은 김장수 실장을 맹비난한다. 전통적인 안보만 하고 포괄적인 안보는 하지 않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회피라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그의 민낯은 꼿꼿장수가 아니라 회피장수다. 그는 자기가 살기 위해 대통령을 위기에 빠뜨리는 참모다”라고 비판했다.

    세월호 사건에 놀란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전처 신설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는 “안전행정부가 있는데 국가안전처를 만드는 것은 옥상옥이다. 해경청을 안행부 밑으로 옮기고 행정보다는 안전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개혁해 유사시 모든 행정부처가 중대본의 통제를 받도록 정리하는 게 옳다. 부처를 늘리는 것은 비용만 증가시킨다. 박 정부는 ‘국민 세금이 무섭다’는 것과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하며 행정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이러한 지적을 했다.

    “천안함 사건을 경험한 뒤 국방부는 갑자기 3군 지휘부를 통합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군 상부구조가 통합돼 있지 않아 천안함 폭침을 당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사건은 합참과 국방부가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싶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정보 시스템을 제대로 돌리지 않았기에 당한 것이다. 그때 합참과 국방부가 제대로 결심했어도 우리 군은 확실한 보복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하지 않고 군 상부구조 개편이라는 엉뚱한 카드를 내놓았다.

    군 상부구조 통합은 해·공군이 결사반대해온 주제이기에 성사될 수 없는 일이었다. 되지도 않을 일을 꺼냈기에 적전(敵前) 분열만 극대화했다. 그 결과 책임 소재 규명과 추궁 분위기는 슬쩍 사라져버렸다. 엉뚱한 것을 들고 나와 관심을 돌려버림으로써 ‘진짜로’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살아난 것이다. 근원을 해결하지 않고 무마만 했기에 8개월 뒤 또 연평도 사건을 당했다. 연평도 사건 때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만드는 것으로 관심을 돌려 마무리 짓지 않았는가.”

    공무원 세계를 아는 이들은 부처 간의 장벽은 3군 이상으로 높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부’도 아닌 ‘처(국가안전처)’로 타 부처를 통제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이들은 “NSC는 헌법 기관이기에 대통령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한 NSC가 컨트롤타워가 돼 큰 방향을 정하고, 그 지침을 받아 중앙에서는 중대본, 현장에서는 현장지휘부가 전권을 행사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국가안전처 신설을 거론한 것은, 그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누군가에 의해 휘둘린다는 증거”라고까지 지적했다.

    대형 사고에서는 중앙 지휘부보다 현장 지휘부가 더 중요한 구실을 한다. 현장은 법과 다른 현실 세계이니, 현실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 미국은 현장을 아는 사람을 현장 책임자로 정한다. 시골 군(郡)에서 대형 화재가 일어나면, 그곳 소방서장이 가장 잘 안다고 보고 그를 현장 지휘관에 임명한다. 경찰이나 FEMA, FBI 등 중앙기관 요원들은 그의 통제를 받아 지원하는 일만 한다.

    현장 지휘관도 없었다

    세월호 침몰 현장에서는 가라앉는 배 안에 들어가 실종자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는 (심해) 잠수사를 투입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사고 수역을 관할하는 남해지방해경청의 잠수사는 11명에 불과했다. 다른 지방해경청의 잠수사를 불러온다고 해도 그 수는 20명을 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가운데 상당수가 지원 요원이었으니, 해경은 민간 잠수회사인 ‘언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간 잠수회사가 보유한 잠수사도 소수다.

    해군은 전쟁이라고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기에 다수의 잠수사를 보유한다. 5전단 55전대 소속의 해난구조대(SSU) 요원이 그들이다. SSU 부대에서 실제로 물에 들어가는 요원은 100여 명이다. 그러나 세월호는 5층에 길이가 145m에 달하는 큰 구조물이라 더 많은 잠수사를 투입해야 했다. 민관군 잠수사 세력을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맹골수도에 대해서는 해경과 해군이 아는 수준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현장 지휘는 가장 많은 장비와 인원을 내놓은 해군 5전단장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5전단은 청해진함 등 구조함정을 갖고 있고, UDT로 불리는 해군특전단과 현장 지휘소 역할을 할 수 있는 독도함을 배속 받아 지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 지휘권은 5전단으로 통일되지 않았다. 해군이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가운데 민관군이 따로 움직이고, 발표는 해경이 했으니 엇박자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불러만 놓고 써보지도 못한 크레인

    제대로 된 현장 지휘부의 부재는 엄청난 왜곡과 낭비를 가져왔다. 세월호는 사건 다음 날부터 선수 부분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그러자 갑자기 ‘에어 포켓’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이는 생존자가 있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와 희망이 반영된 것인데, 피해자가 너무 많은 탓인지 온 나라가 따라가버렸다.

    골든타임은 허송해 버리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자 실낱같은 기적에 목을 매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에어포켓은 많은 격실이 있고, 격실마다 수밀(水密)이 되는 해치가 있는 군함이 침몰했을 때나 생길 수 있다. 그것도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승조원들이 재빨리 해치를 닫아야 만들어진다. 여객선은 내부 공간이 커 격실이 없고 해치도 없어 에어포켓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절박감에 휩싸인 희생자 가족들이 에어포켓에 희망을 걸면서 누구도 바른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사건 발생 사흘 후 세월호의 침몰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에서 여러 기관이 각 조선소에서 가동 중인 크레인을 5척이나 불렀다. 중간 크기 크레인의 하루 이용료가 1억2000만 원이니 하루 6억 원을 지출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잠수사들의 수색이 용이하도록 크레인으로 세월호 선수 부분을 들어 올리도록 했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

    ‘선수부를 물위로 올리면 에어포켓이 상실돼 살아 있는 이들이 희생될 수 있다’와 ‘배가 들리는 과정에서 실종자들이 배 밖으로 떨어져 나올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크레인들은 4월 28일까지 대기하다가 차례로 철수했다. 60여억 원을 증발시킨 것이다.

    결국 잠수사들이 오랜 노력끝에 배 안으로 ‘인도(引導)줄’을 걸고, 잠수사들이 인도줄을 잡고 들어가 손으로 실종자 시신을 찾는 가장 위험하고 비싸고 더딘 방법으로 수색하게 되었다.

    그때 국방부도 보여주기 MOOTW를 했다. 세월호가 침몰하자 국방부는 야간 수색이 용이하도록 공군 수송기를 띄워 조명탄을 투하하게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누군가 밝은 집어등(集魚燈)을 켜놓은 오징어 채낚기 어선을 끌고 오는 것이 낫겠다는 아이디어를 내, 채낚기 어선이 투입됐다. 충분한 조명이 확보된 것이다. 그런데 공군은 계속 조명탄 투하 작전을 했다.

    SSU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긴 했지만 해군 참모총장이 현장에 있는 독도함에 날아가 상주한 것도 쓸데없는 일이었다. 천안함 사건 때 해군 총장은 격려 차원의 방문은 했지만, 현장 지휘는 교육사령관에게 맡기고 그는 보다 큰일을 했다. 해군은 현장에 투입할 수도 없는 장비를 끌고 오는 전시행정도 펼쳤다. 소식통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과 총리, 여러 부처의 장관이 현장에 달려가자 국방부 장관도 뭔가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 분명하다. 그의 지시로 해군 총장이 현장에 상주하고, 그럴듯하지만 현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장비를 끌고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조명이 확보된 다음에도 공군이 조명탄을 계속 투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현장 지휘권이 유지될 수가 없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간다.”

    잠수는 강인한 체력과 함께 높은 집중도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그러한 현장에 높은 사람이 자주 나타나 ‘의전’에 신경을 쓰면 집중도가 깨져버린다.

    세월호 사건 대응은 엉망진창이었다. 현장 지휘권과 중앙 지휘권이 정리되지 않았고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없었기에 돈을 쏟아 붓고 사람을 불러놓았는데도 일이 엉켜버리는 혼란이 거듭됐다.

    육영수와 박근혜

    박근혜는 육영수가 아니었다

    한센인들이 있는 성나자로 병원을 찾은 육영수 여사. 그는 진심으로 한센인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두 번이나 현장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도 회복하기 힘든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그의 방문이 상황 타개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희생자 가족이 “대통령하고 이야기하겠다”고 주장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더욱 복잡해지는 빌미가 됐다. 많은 전문가는 박 대통령이 굳은 얼굴로 희생자 가족을 대면한 것에 주목한다. 한 정치 평론가의 의견이다.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기대한 것은 아버지의 능력에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1970년대 육영수 여사는 한센인촌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손을 덥석 잡아주었다. 그때마다 한센인들은 ‘국모(國母)께서 문둥이의 손을 잡아주시다니’ 하며 감격했고, 국민은 감동했다. 국민은 진도에 간 박 대통령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희생자 가족을 다독여 하나가 돼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인기가 높았던 것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국민의 관점에서 정부와 공무원을 야단쳤기 때문이다. 이는 한쪽의 닭을 잡아들이는 대신 다른 편의 닭은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일은 자신이 야단 친 공무원과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왜 모르는 것일까. 그가 진도에 가서 희생자 가족을 붙잡고 엉엉 울었더라면, 가족은 그래도 위안을 받았을 것이고, 공무원은 미안해서라도 더 소신껏 일했을 것이다. 그 많은 참모가 박 대통령에게 ‘우셔야 합니다’란 말을 하지 못한 것이 진짜 문제다.”

    전속+전타를 해도 쓰러지지 않아야

    국민은 언론을 통해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기에, 언론보도는 국민 여론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언론의 무책임하고 선정적인 보도로 악화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몇몇 언론이 이종인 씨의 다이빙 벨을 크게 보도한 것을 보면 이런 지적은 상당부분 타당하다. 세월호 사건에서 정부는 언론의 협조를 전혀 얻지 못했다. 청와대와 중앙, 현장에 지휘부가 없으니 누구도 그 일을 하지 못한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국가의 검증 리더십 부분이다. ‘전쟁에 나갈 때는 한 번, 배를 타고 나갈 때는 두 번, 결혼을 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 사람이 살지 못하는 바다에서는 풍랑이 예측 못할 정도로 급변하니, 많은 준비를 하고 항해에 나서라는 뜻이다. 이는 황천 시에도 침몰하지 않는 배를 만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월호는 맹골수도에서 방향을 틀다 전복됐는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배는 ‘전속(全速)’으로 항해하다 키를 완전히 돌려 방향을 급격히 바꾸는 ‘전타(全舵)’를 해도 전복되지 않도록 제작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런 복원력은 오뚝이 기능을 보장함으로써 확보한다. 즉 배 밑을 무겁게 해 45도 정도 기울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한다.

    서해 항로를 아는 이들은 인천항을 나올 때 ‘변침(變針)’이라고 하는 방향 전화를 가장 많이 한다고 말한다. 급격한 변침을 ‘하드 변침’이라고 하는데, 인천 앞바다는 간만의 차가 커 세월호처럼 큰 배가 다닐 수 있는 항로가 한정돼 있다. 이 항로는 굽은 곳이 많은 데다 어선이 횡단하는 경우도 잦아 세월호는 하드 변침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먼 바다로 나오면 진도까지는 변침을 거의 하지 않는 쉬운 항로를 달리다, 맹골수도에서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변침을 한다. 선장들은 “맹골수도에서의 변침은 하드 변침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런데도 세월호가 전복됐으니 이는 세월호의 복원력 부실이 첫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원래부터 약했던 복원력에 부실한 화물 고박, 사고 직전 36초간의 정전(停電)을 초래한 정비 불량이 보태져 사고가 났다는 추측이다.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의 허점

    (주)청해진해운은 세월호 도입 후 상부 공간을 증설해 187t의 하중을 더했다(이를 전문용어로 ‘개조개장’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면 무게중심이 올라가므로 배 복원력에 문제가 없는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검사는 배의 수준(급수)을 평가하는 것이라 ‘선급(船級)’이라고 한다. 다중의 여객이 탑승하는 여객선에 대한 선급은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한국은 거꾸로 갔다.

    국제적으로는 영국이나 미국선급협회가 발행한 선급을 최고로 친다. 한국은 여러 나라 항구에 들어가는 무역선은 미국이나 영국선급협회에서 선급을 받게 한다. 그런데 많은 국민이 타는 연안여객선은 한국선급에 평가받게 했다. 한국선급은 개조개장으로 복원력이 약해진 것을 감안해 평형수를 더 싣는 조건으로 세월호의 운항을 허가했다.

    그러나 이 배가 지정한 대로 평형수를 더 싣고 다니는지 지켜보지 않았다. 하나마나한 검사를 한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한국선급의 안전검사 합격률은 항상 99% 이상을 기록한다.

    세월호는 평소에도 복원력이 위태위태했기에 선원들이 집단으로 사표를 내 승선 거부까지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주)청해진해운은 이 배를 필리핀에 팔기로 해놓고 사고를 당했다. 그렇다면 복원력을 약화시키는 과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224번의 총운항 중에 단 2번만 과적을 덜해 한계흘수를 지켰다고 한다.

    세월호는 여객·화물 겸용선이기에 컨테이너와 함께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도 싣는다. 화물은 항구에 있는 해운조합이 실어준다. 그러나 해운조합 측은 이들을 철저히 고박하지 않았다. 이는 세월호 전복 후 컨테이너가 떨어져 나온 데서 확인된다. 컨테이너는 배가 완전 전복돼도 배에서 떨어지지 않게 고박돼 있어야 한다.

    자동차도 철저히 고박하지 않았다. 주차 브레이크를 잡고 바퀴에 쐐기목을 끼웠을 뿐이다. 그렇게 해야 목적 항구에 도착해 빨리 차를 빼낼 수 있다.

    복원력이 약했던 세월호는 인천항 출항 직후부터 위태위태하게 갔는데, 그때의 하드 변침으로 화물칸의 자동차들이 한쪽으로 쏠렸을 가능성이 높다. 서해 먼바다를 직선 항해할 때는 문제가 없다가 맹골수도를 지나면서 변침을 하자 자동차들이 쏠린 쪽으로 외방경사가 작용해 전복됐을 수 있다. 검찰은 한국선급과 함께 화물 고박을 담당한 해운조합 측도 엄격히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 있다. 정치권과 선사, 관료들과 선사 간의 관계다. 한국해운조합의 조합원은 전부 여객선사다. 한국선급은 회원의 절반이 해운이나 조선업체 대표나 임원이다. 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의 대표자로는 퇴직 관료가 임명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수년간 해양 문제를 다루는 국회의원들은 한국선주(船主)협회의 지원을 받아 해외시찰을 반복해왔다. 그러니 엄격한 선박 검사와 철저한 고박은 무시될 수밖에 없다.

    해피아 관피아를 양산한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수많은 이를 숨지게 한 참사를 불렀다. 해수부나 감사원이 이들의 비리를 제대로 감사했다면 세월호 같은 어이없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지상정에 가려 Think the Thinkable도 하지 않은 게 결정적인 원인인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간단한 조치만 취했어도 희생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사전에 (주)청해진해운이 탑승자 휴대전화 번호를 받아놓았더라면, 사고가 났을 때 해경이 ‘탈출하라’는 단체문자만 보냈어도, 선내 방송을 믿고 있던 많은 승객이 탈출했을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방안을 찾을 수 있었는데, 누구도 Think the Thinkable을 하지 않았다.

    2006년산 방독면

    공군 출신의 김유규 씨는 “사고가 난 후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거나 엉뚱한 조직을 만들지 말고 공군처럼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는 사고가 나도 잠시 떠 있을 수 있지만 항공기는 바로 추락한다. 그래서 사전 검사와 예방정비에 전력을 기울인다. 여객선사도 공군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헤어진 그는 지하철역에 있다며 이런 내용의 전화를 걸어왔다.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이 있은 뒤 모든 지하철역에 방독면이 배치됐다. 그런데 제조연도를 보니 2006년이다. 방독면은 5년이 지나면 기능이 상실되는데 이러한 방독면을 계속 진열해놓는 것이 우리 행정의 실상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나.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를 타고 있는 것이다.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이러한 허점을 정신 차리고 찾아내 고쳐가야 한다. 야단만 치고 확인하지 않으면, 야단맞은 곳만 바뀌고 나머지는 그대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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