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린’의 한 장면.
미국의 역사가 250년이 채 안 되지만 미국은 전 세계에서 온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답게 블록버스터의 소재를 자국 사회와 역사로부터만 발굴하진 않는다. 종종 다른 대륙의 문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우선 주류 백인 미국인의 고향인 유럽이 영화의 무대로 자주 등장한다.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태평양 등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렇게 할리우드는 미국의 문화를 대표할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풍속을 현시하는 국제적인 성격을 띤다. 차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어벤져스2’가 서울에서 촬영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영화계는 할리우드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공간적으로 한국에 거의 한정되는 경향이다. ‘도둑들’ 같은 액션 어드벤처, ‘웰컴 투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전쟁이야기, ‘베를린’ ‘의형제’ ‘용의자’ 같은 분단 상황을 바탕으로 한 스파이 이야기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대종을 이뤘다. 이들 영화는 사실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사회와 역사로부터 소재를 취하는 경향이 짙다. 할리우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 영화가 국제적 성격을 드러내는 경우가 없진 않다. 그러나 이런 영화의 대다수는 다른 나라의 작품을 번안, 각색해 만든 영화다. ‘화차’ ‘용의자X’는 일본 소설을 각색한 것이고 ‘내 아내의 모든 것’ ‘표적’은 유럽이나 남미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이들 영화는 그 원작 국가를 엔딩 크레딧에 밝힌다.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할리우드에 비해 소재의 폭이 좁은 상황에서 최근엔 사극이 그 한 자락을 차지한다. 사극 영화는 1950년대부터 국내에서 꾸준히 만들어져왔다. 고전적인 풍취, 화려한 볼거리, 진중한 주제의식을 보여주기에 추석·설 명절에 자주 개봉되곤 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요즘 사극이 훨씬 각광받는다. 2000년대 초반에는 6·25전쟁과 분단을 다룬 블록버스터가 많이 만들어졌다. 2010년대엔 탈북자 영화와 스파이 액션영화로 변모했다. 이러는 동안 사극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서 블록버스터의 주요 하부 장르로 재부상한 것이다.
최근 사극은 ‘평양성’(2010),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처럼 왕조시대 허구적 이야기를 코믹하게 전개하는 내용이나 ‘방자전’(2010), ‘후궁: 제왕의 첩’(2012)처럼 기존 사극을 재해석하면서 주로 성(性)적 코드를 활용하는 내용이 이목을 끌었다. 이들 퓨전사극이나 성애사극은 사극 장르의 고리타분한 인상을 불식시켰고 사극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정조 vs 수구대신
그런데 관객 동원 면이나 화제성 면에선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관상’(2013) ‘역린’(2014)처럼 왕을 다룬 사극이 주목을 받았다. 조선 광해군, 세조, 정조를 각각 다룬 이들 작품은 대체로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영화 속 당시 정치 상황은 오늘날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이들 작품은 대체로 의로운 왕과 그의 신하들이 탐욕스러운 기득권 세력과 맞서는 갈등구조를 그린다. 특히 ‘광해’와 ‘역린’은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다루되 선악의 이분구도를 뚜렷하게 만들어낸다.
또한 이들 영화는 왕의 시각에서보다는 왕 주변에 신분이 낮은 인물을 배치해 이 인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점에선 광해와 관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광해는 임금과 얼굴이 거의 똑같은 광대가 임금이 사라진 동안 왕 노릇을 대신한다는 이야기다. 관상은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으로부터 왕권을 찬탈한 계유정난을 관상가(점쟁이)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역린’은 정조 즉위 1년, 왕에 대한 시해 시도가 있던 하루를 다룬다. 이 영화에선 광해나 관상처럼 왕을 바라보는 화자에 해당하는 인물이 없다. 영화는 어두운 실내에서 자기를 감시할지 모르는 정적(政敵)의 눈을 피해 팔굽혀펴기를 하며 신체를 단련하는 정조(현빈)의 모습을 보여준다. 왕의 이러한 사적이고 인간적인 측면은 왕을 수행하는 내시 상책(정재영)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이어 아침이 되어 왕의 일과가 시작되자 왕은 노론의 수장인 대왕대비 정순왕후(한지민)에게 문안인사를 올린다. 이 자리에서 왕과 대왕대비의 갈등이 암시된다. 대왕대비로부터 아들 정조를 지키려고 먼저 어설프게 독살을 시도한 혜경궁 홍씨(김성령)는 오히려 대왕대비에게 발각된다.
이후 영화는 왕을 암살하려는 대왕대비 측 계략과 이 계략에 맞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의 대응으로 전개된다. 암살과 관련된 음모를 다루는 ‘궁정 스릴러’가 되니 영화는 화려한 의상과 대비되는 어두운 조명을 많이 사용한다. 왕은 궁내 인물들과 소통하지만 궁 밖 인물들과 접촉하지 않는다. 대신 왕을 암살하려는 세력, 그들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살수 집단의 우두머리 광백(조재현), 이 음모에 희생되는 살수인 을수(조정석)의 이야기가 삽입된다. 이러한 배치는 왕의 선한 동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정조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첫 영화는 이인화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영원한 제국’(1995)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추리소설인 ‘장미의 이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영화는 정조시대 규장각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쫓는 추리극 형식이다. 이 영화는 정조 독살설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07~2008년 텔레비전 드라마 ‘이산’(MBC)을 통해 정조는 영조에 이어 많은 개혁을 시도했으나 조선 후기 붕당정치의 폐해를 해결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팔굽혀펴기’ 하는 개혁가
정조 치세는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등 유명한 실학자가 활발하게 활동한 조선 후기 문예부흥기였다. 정조 사후 조선은 급격하게 쇠락했다. 우리 사회는 불과 48세에 세상을 떠난 정조를 아쉬워하는데 정조 관련 영화들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적극 반영한다. 이와 관련해 정조 관련 영화들에서 정조는 실존하지 않는 어떤 이상적 개혁 정치인을, 수구대신들은 이러한 개혁을 가로막는 21세기의 낙후된 한국 정치세력을 상징한다. 이에 따라 정조 관련 영화들은 3류 한국 정치에 대한 냉소를 담아낸다고 할 수 있다.
정조는 어린 시절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모습을 지켜봤다. 왕이 된 후 사도세자에 대한 지극한 효심으로 수원 화성을 조성했다. 정조와 사도세자를 죽게 한 세력과의 갈등은 정조라는 인물의 비극성을 강화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인지하는 한국인 관객은 정조에게 쉽게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낀다.
‘역린’은 이전의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형성된 이러한 정조의 고정 이미지에 의존한다. 동시에 이 이미지를 확장한다. 이 영화 속 정조는 육체적인 매력을 갖춘 인물인 동시에 경연장에서 신하들을 이론으로 논파하는, 지적으로도 뛰어난 인물로 묘사된다. 동정심을 일으키는 비련의 인물이면서 성(性)적으로도 어필하는 인물로 그려진 셈이다. 보통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영화에서 태조 이성계, 태종, 세조는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정조는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서 활을 쏘는 장면을 통해 무인의 성격이 강조된다. ‘영원한 제국’에서는 정조(안성기)가 활쏘기 연습을 하는 장면으로, ‘역린’에서는 정조가 궁에 침입한 살수들에게 화살을 쏘아 제압하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적폐와 좌절감’ 투영
‘역린’의 클라이맥스는 정조를 지키려는 금위영 무사들과 정조를 암살하려는 자객들 간의 격전 장면이다. 이후 대왕대비의 계략이 무산되는 과정이 약하게 그려졌다. 이 때문에 이야기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이 영화의 약점이다. 정조와 정적인 대왕대비 정순왕후, 병권을 쥔 구선복(송영창) 간 갈등이 뚜렷하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용두사미처럼 보이는 것이다. 정조는 암살기도가 발생하기 전 금위영 호위무사 몇 명만을 데리고 구선복의 군대로 달려가 구선복을 설득한다. 그러나 구선복이 설득되는 과정이 불분명하다. 정조를 위기로 몰아넣는 정순왕후는 영화 내내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팜파탈로 묘사된다. 그러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정순왕후는 너무 나약한 인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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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약점에도 ‘역린’은 개봉 11일 만에 300만 관객을 끌어들였다. 많은 한국인이 ‘역린’에 호감을 갖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정조라는 정의로운 소수의 개혁가가 다수의 부조리한 세력에 맞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점이 관객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어난 여러 사건, 만연한 사회적 적폐에 한국인은 좌절과 무기력을 느낀다. 그래서 이들은 비슷한 시련을 겪은 정조에게 쉽게 감정이입한다. 적어도 정조는 얼마동안은 불의와 싸워 살아남았고 일부나마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 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