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첫 팀이라 골프장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카트를 내주었다. 덕분에 이동할 때마다 다른 골퍼들로부터 성탄축하 인사가 끊이질 않았다.
호놀룰루 컨트리클럽은 1977년 아놀드 파머와 프란시스 듀엔이 함께 디자인해 만든 18홀 파72, 백티 기준 6615야드의 프라이빗 코스다. 비교적 거리가 짧은 코스이지만 페어웨이가 좁고 코스 전체가 물로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그린이 작고 기복이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1번 티에서 티샷을 한 후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된 카트를 타고 달리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지나가는 골퍼들이 “알로하! 메리크리스마스!”를 연발하면서 손을 흔들어준다. 이런 흥분된 분위기에서 플레이를 해서인지 네 번째 홀까지 보기의 연속이다. 파(par) 잡기가 수월치 않았다.
페어웨이가 좁다보니 드라이브 샷이 정중앙을 향해 똑바로 나가지 않고 조금만 벗어나도 공은 워터해저드나 숲 속으로 떨어진다.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직접 겨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빠져 나오기조차 어렵다. 그린은 벙커로 무장돼 있고 화산 지대라 지면이 딱딱하기 때문에 그린에 직접 공을 올려놓으면 튕겨 넘어가기 일쑤다. 여기에다 수시로 방향을 바꾸며 불어대는 코나(Kona·하와이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일컫는 말)는 그린까지의 거리와 방향 측정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70야드 전후의 어프로치는 정말 어렵다. 그린을 오버할 것 같아 짧게 치면 그린 앞 벙커에 떨어지고 중앙에 직접 떨어뜨리면 튕겨 넘어가버린다. 반면, 내려치는 칩샷은 공이 굴러가는 것이 너무 느려 항상 컵 앞에서 멈춘다. 그린 또한 모두 바다로 향하는 오션 브레이크(ocean break)의 미묘한 퍼트 흐름이 있어 스리 퍼트, 포 퍼트하는 게 예사이다.
골프가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 속에선 화가 치밀어오르지만 새들의 아름다운 노래소리와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 기이한 아열대 나무들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풀어진다. 18홀을 돌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하와이도 제주도처럼 산에서 바다를 향해 잔디가 누워 있기 때문에 샷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산이 어디 있는지를 확인하고 거리를 계산한 후 클럽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산의 위치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바람과 각 홀의 방향이 교차되기 때문에 골프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6번홀은 150야드 파3 홀로 왼쪽이 워터해저드인데 티샷한 공이 왼쪽으로 감겨 수풀 속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하와이의 숲엔 뱀이 없어 안심이다. 잠정구를 치고 공을 찾으러 수풀을 헤치니 서너 마리의 흰 오리가 놀라 물속으로 들어간다. 오리가 떠난 둥지를 보니 흰 오리알과 골프공이 함께 있다. 오리알을 만져보니 따끈따끈하다. 이렇게 골프공을 찾는 데 신경을 쓰는 사이 이곳에 서식하는 몽구스와 새들이 번갈아 골프 카트를 습격해 핫도그와 바나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숲 속으로 달아났다. 점심을 건너뛰는 수밖에 없었다.
각 홀에는 스포츠맨, 정치가, 연예인 등 하와이 주와 관련된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6번홀(구 15번홀)은 ‘이승만 대통령 홀’이다. 골프장 매니저는 “30년 전 골프장 오픈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와 가장 연관이 많은 화제의 인물이었다”라고 설명해준다.
세계 곳곳의 골프장은 인간이 각각 다른 얼굴에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곳이 처한 지형과 연관돼 나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와이처럼 지반이 현무암인 곳은 물을 저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하로 통과시키기 때문에 그린이 딱딱하다. 또한 늘 바람이 분다. 이런 지형과 환경을 고려해 그에 맞게 샷을 구사하는 골퍼가 정말로 골프를 잘 치는 골퍼다. 이런 여건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샷을 치는 분과 함께 라운드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