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5회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51년 만에 우승한 이봉주가 월계관을 쓰고 우승컵에 키스하고 있다(2001.4.18).
봉달이는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넷. 그는 종일토록 별 말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 뛰고 아침 먹고 뛰고, 점심 먹고 한숨 잔 뒤 또 뛰고 뛸 뿐이다. 누가 힘드냐고 물으면 배시시 한번 웃고는 그만이다. 요즘 컨디션이 어떠냐고 물어도 “그냐앙~” 하며 말꼬리를 길게 뺄 뿐 한참을 기다려도 말이 없다.
목소리도 작고 힘이 하나도 안 들어 간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용이’처럼 용해 빠졌다. 그래서 별명도 ‘용이’ 비슷한 ‘봉달이’인지도 모른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도 그냥 ‘봉달이’ 하고 가만히 소리내어 불러보면 그 ‘울림’이 그윽하고 편안하다.
짝발에 평발
원래 ‘봉달이’라는 별명은 이봉주가 서울시청에 있을 때 당시 오재도 코치가 지어준 것이다. 이름 ‘봉주’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자연스럽게 ‘봉지→봉투→봉달이’로 변했다. 이봉주는 처음엔 ‘봉달이’란 별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하도 봉달이, 봉달이 하면서 좋아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좋아져버렸다”며 또 배시시 웃는다. 이럴 땐 꼭 서산 마애불이 웃는 것 같다. 마침 서산은 그의 고향 천안 성거와 가깝다.
봉달이는 마라토너에게는 치명적인 짝발이다. 왼발이 248mm, 오른발이 244mm. 게다가 거의 평발에 가깝다. 발 안쪽에 뼈가 하나 더 있다. 보통 사람들의 발바닥은 대개 둥근 아치 모양이다. 이것은 몸무게의 압력을 분산하고 충격을 흡수해줘 발에 무리가 오는 것을 막아준다. 신발의 바닥 안쪽 부분과 뒤꿈치 부분이 동시에 지나치게 많이 닳으면 평발이기 쉽다. 평발인 사람은 발목 관절염에 잘 걸린다. 봉달이가 ‘특수 맞춤신발’을 신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봉달이는 지난해 부산아시아 경기와 올 4월 런던마라톤대회에서 아식스가 제작한 신발을 신고 뛰었다. 이 신발은 시드니올림픽 여자마라톤 우승자 일본의 다카하시 나오코의 마라톤화를 제작했던 일본의 미무라 히토시 박사가 만들었다. 제작비만도 자그마치 7만7000달러(약 9200만원). 봉달이는 “원래 255mm를 신었는데 미무라 박사님이 내 발 구조상 더 좋은 기록을 내려면 260mm를 신는 게 좋다고 권유해 요즘은 좀더 넉넉한 신발을 신고 달린다”고 말한다.
봉달이는 1999년 런던마라톤에서 낭패를 본 적이 있다. 런던마라톤 코스는 대부분 아스팔트로 돼 있지만 도심 곳곳에 딱딱한 로마시대 대리석 길이 있다. 당시 평발인 봉달이는 무릎에 충격을 많이 받아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고 2시간12분11초(12위)의 저조한 기록을 내는 데 그쳤다. 아스팔트에 적합한 얇은 신발을 신고 뛰었기에 돌길을 달릴 때는 그 충격이 더했다. 봉달이가 올 4월 4년 만에 두 번째로 런던마라톤에 출전해 2시간8분10초의 비교적 좋은 기록으로 7위를 차지한 것은 신발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물론 스포츠 스타 중에서 평발의 불리함을 극복한 것은 봉달이만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단거리선수 칼 루이스나 축구국가대표 박지성(PSV 아인트호벤)도 평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