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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가 명택

천문과 풍수 녹아든 녹색의 장원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古宅

  • 조용헌 원광대 사회교육원 교수 cyh062@wonkwang.ac.kr

천문과 풍수 녹아든 녹색의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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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는 그의 자화상으로 유명하다. 극사실주의적인 수법으로, 하도 정밀하게 그려서 한국 최고의 초상화라고도 한다. 280년 전에 붓과 먹으로 그린 그림이 라이카로 찍은 사진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준다. 특히 자신의 눈과 수염을 그린 부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렬한 느낌이 오도록 하는 그 무엇인가가 깃들어 있다.

관상학에서는 남자의 관상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눈을 본다. 눈에는 그 사람의 정기가 어려 있기 때문이다.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면 눈에서 정기가 품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눈을 부시게 하는 빛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그림이 살아 있다고 하는 경우가 바로 이를 두고 말하는 듯싶다. 40대 남자의 수염 한올한올을 일일이 그려놓은 모습도 그렇다. 그 한올한올에서 굽히지 않는 야성과 아울러 정제된 섬세함이 느껴진다.

윤두서의 미술적 자질은 그의 손자인 윤용(尹溶, 1708∼1740년)에게까지 이어진다. 윤선도에서 윤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150년 가량 예맥(藝脈)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집의 사랑채에 걸린, ‘예업(藝業)’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나무 현판은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징표다.

이 집안은 남도의 예술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실학사상의 요람이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은 주로 사색당파 중 남인들에 의해서 발전되었는데, 해남윤씨 집안이 전라도 남인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납득이 간다.

먼저 윤두서와 밀접한 인간관계를 맺었던 인물이 옥동(玉洞) 이서(李, 1662∼1723년)다. 이서는 실학의 대가이자 ‘성호사설’을 쓴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년)의 차형(次兄)이다. 이서는 윤선도 고택에 걸려 있는 ‘녹우당(綠雨堂)’이라는 당호와 이 글자를 새긴 현판을 직접 만들어준 사람이다.



녹우당이라는 현판 글씨는 실학과 예술의 결합을 나타내는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는데, 집 뒤의 비자나무숲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마치 비오는 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당호는 참으로 운치있게 지어진 이름같다.

이 두 사람은 형제들끼리도 친해서 윤두서의 실형(實兄)으로 묘갈명을 썼던 윤흥서(尹興緖, 1662∼1733년), 이익과 이서의 장형인 이잠(李潛, 1659∼1706년) 등이 단짝이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윤두서의 부인인 전주이씨도 실학과 관련이 깊다. 부인은 바로 실학의 선구자이며 ‘지봉유설’의 저자인 이수광(李光, 1563∼1628년)의 증손녀다. 이 집안의 실학과의 관련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실학의 완성자라고 일컬어지는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이 윤두서의 외증손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정약용의 어머니는 윤두서의 다섯 번째 아들인 덕렬(德烈)의 따님이다.

다산이 체계적이면서도 조선조를 통틀어 가장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외갓집의 영향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아마도 다산은 강진 유배생활 중에 외가인 녹우당에 비치되어 있던 수많은 장서들을 열람했을 가능성이 높다. 외갓집에 온축되어 있던 학문적 토양 위에서 조선 후기 사상계의 거인인 다산이 배출되었다고 한다면, 녹우당은 다산의 학문적 젖줄이었던 셈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윤선도 고택, 즉 녹우당은 조선 후기 호남을 대표하는 예술적 성취와 실학사상의 산실이었음을 부인키 어려울 듯하다. 평지돌출은 어렵다. 한시대를 이끌 수 있는 사상가가 배출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 바탕이 윤선도 고택, 즉 녹우당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사신사(四神砂)가 완비된 집터

윤선도 고택이 동양적 의미의 녹색 장원이라 불릴 수 있는 입지적 특징은 서두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무엇보다도 사신사가 아주 훌륭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사신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녹우당이 지닌 특징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고 본다.

사실 서구의 건축이론을 가지고 녹우당을 왔다갔다해봐야 별로 건질 만한 것이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에 이 집터를 잡은 사람의 머릿속에는 서구의 건축이론이 전무한 대신 사신사라고 하는 풍수적 원리가 깊이 박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언급은 서구이론에 의존해서 자신의 건축을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동양의 건축가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자신의 커뮤니티에 대한 인지방식이 없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방식으로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인식하는 사회는 결국 다른 사람들의 사회를 위한 종속체와 기생체가 되고 만다”(‘중국 고전건축의 원리’)

전통 건축분야에선 자신의 커뮤니티에 대한 인지 방식이 바로 풍수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전통건축을 이해하려면 풍수를 알아야만 종속체와 기생체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풍수적인 안목에서 볼 때 윤선도 고택 터는 먼저 뒷산인 현무에 해당하는 산부터가 아주 잘생겼다. 뒷산은 덕음산(德陰山)이라고 불린다. 집터에서 바라볼 때 대략 200m 높이의 산이라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이다. 해남 대흥사가 자리잡고 있는 두륜산에서 내려온 맥이다.

왜 이름이 덕음산일까? 여기서 음(陰) 자는 그늘로 해석되기 때문에 덕음산은 ‘덕의 그늘’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팔십리’라고 했듯이, 윤선도 고택은 덕의 그늘에 쌓여 있는 집이 된다.

산 이름에 굳이 덕(德) 자를 집어넣은 이유도 풍수적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덕음산은 토체(土體)의 형상을 하고 있다. 산의 정상 부분이 한 일(一) 자처럼 평평한 산을 풍수에서는 토체라고 부른다. 흔히 두부를 잘라놓은 것 같다고 한다.

그런데 음양오행에서 토(土)는 덕을 상징한다. 수(水)의 느긋함과, 화(火)의 정열, 목(木)의 고집, 금(金)의 결단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토다. 토는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으므로 균형감각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토를 덕이라고 표현한다. 무조건 후하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균형 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게 덕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 급함과 느림, 미와 추, 이타(利他)와 이기(利己)의 중간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동양의 제왕학에서는 이러한 균형감각을 제왕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았고 그 상징이 토다.

그래서 풍수가에서는 집 뒤의 현무에 해당하는 산인 내룡(來龍)이나, 또는 집 앞의 주작에 해당하는 안대(案帶)가 평평한 두부 모양의 토체 형상일 경우 이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이른바 말하는 ‘일자문성(一字文星)’이 이것이다.

내가 보기에 덕음산은 완전한 토체의 모습은 아니지만 돌출된 바위나 울퉁불퉁한 기복이 없는 산이다. 전체적으로 단정함과 깔끔함이 돋보이는 산이다. 덕음산에서 풍겨오는 이미지는 중후하고 세련된 신사의 인품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먹을거리 풍부한 노적봉

현무 다음으로는 좌청룡(左靑龍)과 우백호(右白虎)의 맥을 살펴보아야 한다. 좌청룡의 좌측이라는 방향은 집을 등지고 보았을 때의 왼쪽이다. 그러니까 집을 마주보는 방향에서는 우측에 해당한다. 우백호는 좌청룡과 반대 방향이다.

좌청룡·우백호의 실질적인 기능은 바람을 막는 역할에 있다. 그러니까 좌측과 우측에서 불어오는 바람인 라이트 훅과 레프트 훅을 막아주는 역할이 좌청룡, 우백호다. 만약 이게 시원찮으면 좌우에서 바람이 몰아쳐 마침내 레프트·라이트 훅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좌우의 바람을 막지 못하면 그 터는 오래 가지 못한다고 본다.

특히 종교적 수행을 위주로 하는 불교사찰이라면 몰라도 사람이 거주하는 일반 양택의 경우 좌우 방풍(防風)은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이다.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면 기운이 흩어진다. 울타리가 없으면 폭풍의 언덕처럼 되고, 막아주면 온화하며 어린아이의 요람처럼 아늑하다.

더욱 좋은 경우는 청룡 백호가 겹겹이 막아주는 경우다. 한 겹보다는 두 겹이, 두 겹보다는 세 겹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청룡 백호가 여러 겹으로 둘러쌀수록 좋다. 이럴 때 두껍다고 표현한다. 윤선도 고택의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덕음산에서 내려온 청룡 백호가 세 겹으로 집터를 둘러싼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두꺼운 형세의 터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여기서 백호에 관한 여담 하나를 소개하고 넘어가자. 전북 고부의 두승산(斗升山)에 올라가면 해발 500m 정상 부근에 유선사(遊仙寺)라는 고찰이 있는데, 이 절의 우백호 쪽에는 석고로 만든 3m 정도의 호랑이 상이 산을 내려오는 모습으로 조성돼 있다. 백호의 맥(脈)이 아주 약해서 인위적으로 호랑이 상을 만들어 보비(裨補)한 것이다. 이것은 방풍기능은 물론 주술적인 효과까지를 염두에 둔 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쪽의 주작을 살펴보자. 주작에 해당하는 산은 보통 안산(案山)라고 부른다. 안산은 좌정하고 앉아 있을 때 정면에 마주 보이는 산이다. 안산의 기능을 비유하자면 마치 볼록렌즈와 같다. 볼록렌즈는 집터를 향해 빛을 반사해주는 작용을 한다. 반사한다는 것은 집을 향해 기(氣)를 쏘아 보내준다는 의미다. 1∼2년을 쏘아 보내준다면 그 효과가 미미할지 몰라도 수십년을 계속해서 쏘아 보내주면 그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인체의 바이오 리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안산은 너무 높아도 안 되고 너무 낮아도 안 된다. 적당한 높이가 좋다. 툇마루에 앉아 있을 때 눈높이 정도 되거나 그보다 약간 낮아도 좋다. 안산이 너무 높으면 위압감이 들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반대로 너무 낮으면 허한 감이 들어서 안정감이 적다. 뿐만 아니라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차단하는 기능이 약해진다. 녹우당의 안산 높이는 적당하다. 높지도 낮지도 않다. 더구나 그 생긴 모습도 나락을 쌓아놓은 노적봉처럼 생겨서 더욱 좋다. 노적봉은 먹을 것이 풍부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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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원광대 사회교육원 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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