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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

“내용 좋은데 흥행 안 된 작품? 그건 ‘마스터베이션’이죠”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무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윤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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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도 무릎 밑으로 다리가 들여다보이는 소재였다. 그녀는 블라우스를 여민 손을 풀고 가끔 치마를 끌어내렸다. 카디건을 놓고 무릎을 가리면 가슴이 보이고, 가슴을 가리기 위해 카디건을 여미면 무릎이 비쳤다.

그가 마치 한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인터뷰’라는 모노드라마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연극 대사처럼 톤의 높낮이를 조절하며 빠른 어조로 말했다.

‘닭 모가지에 새 다리’

윤석화는 서울 금란여고 재학 시절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해 인기 ‘짱’이었다. 자전거도 타고 탁구도 치고 노래도 불렀다. 성적도 꽤 좋은 편이었다.

가수 조영남은 30여 년 전 금란여고 채플시간에 초대돼 성가를 부른 적이 있다. 초록색 교복의 여학생들이 가득 찬 강당에서 똘망똘망한 여학생이 사회를 보고 있었다. 재담이 뛰어났다. 조영남은 행사가 끝난 뒤 그 여학생을 따로 불러내 “나중에 너는 뭐가 돼도 크게 될 애야” 하고 예언했다. 그 여학생 MC가 바로 윤석화다.



“조 선생님은 원래 성가를 한 곡만 부르기로 돼 있었죠. 제가 MC를 맡아 분위기를 띄워 여러 곡 부르게 했어요. 조 선생님이 ‘너 같은 MC는 처음 만났다. 네가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구나’라고 하더군요.”

이화여대 생활미술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가서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다들 미팅하고 땡땡이 칠 궁리만 하고 공부를 소홀히 했다.

“대학이 재미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오로지 유학만 생각했어요.”

그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했다. 초등학교 때도 교단에 불려나가 노래를 부른 적이 많았다. 중·고교 때는 음악선생님이 새 노래를 가르쳐주고 나서 가장 먼저 그에게 부르게 했다. 선생님들이 지루한 수업시간에 “누가 나와 노래 한 곡 해봐라”고 하면 여기저기서 “윤석화요, 윤석화요!” 하고 소리질렀다.

대학 1학년 때부터 CM송을 불렀다. 첫 작품은 ‘맛좋은 다시다.’ 1977년에 부른 ‘오란씨’는 ‘국민가요’처럼 애창됐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필자는 오란씨 CM송 가사를 지금도 기억한다. CM송을 거의 혼자 싹쓸이했다. 방송을 탄 CM송이 약 300곡, 녹음만 하고 끝난 것까지 합하면 1000곡쯤 된다. 한 곡 부를 때마다 5만원씩 받았다. 보통 직장인 한 달 봉급에 가까운 돈이었다. 그때 번 돈은 연극할 때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

CM송 녹음을 하는 사무실 옆에 ‘민중극단’이 있었다. 극단 사람들이 기막히게 노래 잘하는 윤석화에게 연극도 해보라고 권유했다. 추억거리를 만드는 기분으로 워크숍 작품 ‘미운 오리새끼’에 조연으로 참여했다. 안데르센의 동화를 각색해 올린 아마추어들의 무대였다. 연극과의 첫 만남을 안데르센으로 시작해 그의 탄생 200주년 홍보대사까지 했으니 묘한 인연이다.

연극 출연은 재미있었지만 CM송처럼 돈벌이는 되지는 않았다. 다시 CM송을 부르며 유학자금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출가 정진수씨가 찾아와 작품을 하자고 했다. 정씨는 안 하겠다고 버티는 그에게 세 번씩이나 찾아와 “대본이나 한번 읽어보고 얘기하자”며 셸라 딜래니의 ‘꿀맛’을 던져줬다. 정씨는 원래 주연을 당시 최고의 인기 탤런트이던 김영애에게 주려던 참이었다고 넌지시 흘렸다. 그 시절 김영애는 지금의 이영애보다 더 유명했다. 김영애에게 갈 것을 내게 준다? 치기어린 도전의식이 생겨났다.

윤석화는 중학교 2학년 때 단테의 ‘신곡’을 읽었을 정도로 책벌레였다. 그때까지 읽은 문학작품이 안개 같은 거라면 ‘꿀맛’은 소낙비를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CM송과 연극에 빠져 있는 동안 대학에는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는 언니들이 있는 미국에서 유학 하고 싶었지만, 언니들이 “한국에서 언더(학부)를 마치고 오라”고 말렸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를 졸업한 아버지의 동기동창이 일본 메이지(明治)대 이사장으로 있었다. 그는 메이지대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일본 비자를 받고 여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즈음 신문에 일부 부유층 자제들이 외국유학을 하며 호화사치 생활을 한다는 기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일보 ‘두꺼비’ 만화가 롤스로이스를 탄 유학생을 그렸다. 얼마 안 가 외국유학 전면 금지령이 내려졌다. 일본 비자를 세 번 연장하며 기다렸지만 유학금지 조치는 풀리지 않았다.

“유학을 잊고 연극을 열심히 했는데, 제가 연극영화과를 나오지 않았잖아요. 제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기가 힘든 거예요. 다른 배우들이 ‘윤석화 네가 연극에 대해 뭘 알아’ 하면 저는 속으로 ‘너네들 공부 못했으니까 드라마센터 갔지. 나는 그래도 이대 출신이야’ 했지만 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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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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