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입학 에세이 4개 1000만원… 불붙는 超고액 과외시장 ‘영어논술’

  • 조인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ij1999@donga.com

    입력2006-10-04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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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학 에세이만 잘 쓰면 아이비 리그 간다는데…”
    • 영어 에세이, SAT 필수과목 되고 토플에선 비중 높아져
    • 특목고생, 상위권 초중생, “우린 2개 국어 논술 준비 중”
    • “수강료 1000만원 넘어 계좌이체로만 받아”
    • ‘암기영작’은 한계, ‘나만의 콘텐츠’ + ‘향기’ 없으면 실패
    • 서울대 입시에도 토플·토익 반영?…떠오르는 ‘영어 특기자’ 시장
    • 대입 에세이 작성 위해 인턴, 봉사활동까지 알선하는 ‘섀도 튜터’
    입학 에세이 4개 1000만원… 불붙는 超고액 과외시장 ‘영어논술’
    9월초 서울 강남역 부근의 유학생 대상 어학학원. 미국 유학생 2000여 명이 한국에 들어와 과외수업을 받고 간다는 ‘여름방학 특수(特需)’가 끝났지만 학부모들의 발길은 여전히 길게 이어졌다. 가을부터는 특목고생, 특목고 진학 희망 중학생, 국제중학교 진학 희망 초등생들이 유학생들이 떠난 빈 자리를 메운다.

    학원 로비 중앙에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 소개 자료가 빼곡히 걸려 있고, 한켠에는 각종 국제중학교, 외국어고, 대학 국제학부 및 영문학부 등의 특별 전형, 특기자 전형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Q·A 방식으로 정리해 붙여놨다. 지난해 합격한 학원 선배들이 작성한 수기에는 “시험 점수는 지원자 대부분이 비슷하고…, 영문 에세이의 고득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더라”는 충고가 빠지지 않았다.

    상담을 마친 한 40대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미국 사립고교 3학년인 자녀가 최근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 필수과목으로 포함된 영어 논술(에세이)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SAT가 우리 수능시험과는 영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필수 교재에 나오는 것 외우고, 문제를 계속 풀다보면 ‘끝’이 보이는 시험이라는 거죠. 그래서 SAT를 한 번도 치러보지 않은 한국 선생님들이 더 잘 가르친다는 말도 있잖아요. 아무튼 ‘멀티플(객관식)’은 시키면 다 되는데, 에세이는 정말 쉽지 않은가 봐요. 이 다음에 애플리케이션(원서접수) 때도 어차피 지도받아야 하니까 미리 선생님들과 호흡을 맞춰볼 필요도 있지요.”

    이 학부모의 자녀는 지난 여름방학 때 귀국해 에세이 지도를 받고 갔고, 9월부터 올해 10월 시험 직전까지는 인터넷 카페와 e메일 등을 통해 원격지도를 받고 있다. 두 달치 온라인 에세이 과외비만 200만원. 일주일에 한 번씩 첨삭을 해주고, 글의 구조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는게 대부분이지만, 그는 “여기에서 배우고 점수가 오른 학생이 많아 기대가 크다”고 했다.



    “미국 유학생이면 미국 학교 선생님들에게 배우는 게 낫지 않냐”고 물었더니, “‘마인드셋(mindset·사고방식)’에 차이가 있어서 한국 선생님들이 지도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아이들 얘기가, 그 쪽 선생님들은 때로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만 해서 답답하다고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자녀가 내년 초에 미국 대학에 지원할 예정이라 입학원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상담하러 왔다고 했다. 4개 학교를 기준으로 원서를 쓰는 게 기본인데, 학교별로 필요한 에세이와 자기소개서 등을 써주고 자질구레한 서류전형을 대행해주는 비용이 대개 1000만원부터라고 했다.

    리더십 경험, 봉사활동 경험, 기본 가치관, 인생설계 등을 묻는 항목으로 이뤄진 에세이를 얼마나 잘 쓰느냐가 한국에서 논술시험을 잘보는 것보다 입시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A외고 유학반에서 SAT 2300점대(만점 2400점)를 받은 학생은 컬럼비아대 입시에서 떨어지고, 다른 학생은 1900점대를 받았으나 입학 에세이를 잘 써서 합격했다’는 식의 얘기를 학원가에선 귀가 따갑도록 들을 수 있다. 입학 에세이는 그만큼 중요한 데다 사전에 준비가 가능한 부분이어서 이름난 ‘에세이 튜터’들의 수입은 상상을 초월한다.

    에세이 학원 관계자는 “특히 ‘입시철’이라 할 수 있는 여름방학부터 다음해 2월까지는 한 달에 수천만원씩 버는 강사가 여럿인 것으로 안다. 그나마 몸이 따라가지 못해 더 못 벌 뿐이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시장

    영어 에세이 혹은 영어 논술이 사교육 시장의 핫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들어 각종 영어 시험은 물론 대학 영어권 학부 및 대학원 유학, 심지어 한국 대학 입학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

    올해 미국 대학 입학생부터 에세이가 필수과목으로 추가된, 개정된 SAT(2005년 3월부터 시행) 점수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은 불에다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기존의 SAT에선 어느 정도 공부량만 채우면 실제 영어 실력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다. 그런데 에세이가 추가되면서 사정이 달라지자 많은 유학생과 유학 준비생이 ‘에세이 족집게 과외’에 몰리게 된 것.

    ‘국제화’ ‘글로벌 스탠더드’란 이름 아래 국내 대학입시가 미국 입시 경향을 따르는 동조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영문 에세이 수요를 부추겼다.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이 경쟁적으로 도입한 국제학부 입시는 물론, 토플·토익·텝스 등 공인 영어시험 성적을 위주로 뽑던 수시모집 특기자 전형에서도 영어 논술 변별력을 높여가는 추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부모들은 ‘high risk, high return(고위험 고수익)’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돈은 많이 들어도 잘만 되면 ‘대박’이 난다는 것이다. 학원에서는 영어 논술 시장을 ‘블루 오션’으로 보고 있다. 강사가 1대 1 첨삭지도에서부터 상황에 따라서는 컨설팅, 대필 실력까지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라 과외 단가도 100만원 단위 밑으로는 ‘거래’가 형성되지 않는다. 학생이 쓴 에세이의 단순 ‘에디팅(영어적으로 어색한 표현과 스펠링 등을 잡아주는 작업)’만 맡기면 편당 수십만원대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3∼4개를 한꺼번에 맡기는 게 보통이다.

    그 대상은 고소득 전문직 학부모를 둔 상위권 학생이 주류이다. 이들의 성향상 초(超)고액 과외시장이 형성되면서도 ‘알음알음’ 조용히 움직이기 때문에 좀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 않는다. 학원측에는 고무적인 일이다. 실제로 대입 영어 에세이를 지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영어 실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학원과 강사진도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소수이다.

    워낙 소수의 고가시장이기 때문일까. 과외비 납부행태도 독특하다. 선릉역 부근의 유명 학원에 전화를 걸어 학부모라고 하면서 수강료가 대략 얼마인지 물어봤지만 학원측은 “내원해서 상담하라”고 정중하게 답했다. 전화로는 절대 액수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마침 교육청의 SAT학원 고가·변칙 과외 단속기간이어서인지 꽤나 몸조심을 하는 눈치였다.

    강남의 한 에세이 학원 원장은 “SAT나 토플 종합반 수강료는 월 단위로 받지만, 에세이는 개인별로 지도 과목이나 범위가 다양하고 ‘애프터서비스’도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촉박하게 정하지 않는다. 수강료는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내는데 액수가 1000만원대를 넘는 경우가 많아 주로 인터넷 뱅킹이나 폰 뱅킹으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학원가에서는 서울 강남에서만 메이저 7, 8곳을 포함해 오피스텔형, 한 칸 사무실형까지 합쳐 약 50곳 정도가 ‘고액 학원’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목동, 분당, 송파권을 합치면 100곳을 훌쩍 넘을 것이라고 한다.

    “영어 논술이 당락 가른다”

    대학별로 수시모집에서 정원의 10∼20%를 선발하는 영어 특기자 입시는 주로 토익이나 토플 점수, 학생부(내신), 자기소개서, 영어 에세이, 구술 면접으로 이뤄진다. 2002학년도에 이 같은 특기자 전형이 처음 도입된 이래 지금껏 꾸준히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강의를 모두 영어로 하고, 외국 기업이나 유엔 등 외국 공공기관에 취업이 잘 된다고 알려져 인기를 끌고 있는 대학 국제학부도 대개 이런 틀 안에서 전형을 실시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려대 이화여대 경희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이 국제학부의 이름을 걸고 해마다 20∼120명을 선발한다. 고려대 이화여대를 뺀 나머지 대학들은 대부분 최근 1, 2년새 학부를 신·증설했다.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학부는 올해부터 영어 에세이를 시험에서 제외하고 서류전형을 강화하기로 했다. 에세이의 비중이 높던 지난해 입시에서 합격생 85명 중 62명이 강남권 모 학원에서 배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전형방법이 바뀌었다는 풍문도 들린다.

    입학 에세이 4개 1000만원… 불붙는 超고액 과외시장 ‘영어논술’
    상위권 대학 특기자 전형이나 국제학부의 경우 지원자들이 대부분 토플은 300점 만점에 290점대, 토익은 990점 만점에 960점 이상을 받기 때문에 당락을 에세이와 면접이 가르는 수가 많다.

    또한 2008학년도 입시부터 대입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고, 서울대가 해외 중·고교에서 3년 이상 수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원의 2% 내에서 선발하던 ‘재외국민 특별전형’, 이른바 특례입시를 완전 폐지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영어 특기자 입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특례 입학 대상자가 정시에 지원하기에는 국내 상위권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게 부담스럽지만, 회화나 듣기의 영어 경쟁력은 한국 학생들보다 한 수 위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이 특기자 전형에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송파구에서 ‘이동우 영어 특기자 학원’을 운영하는 이동우 원장은 “수능제도가 바뀌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보험용’으로라도 영어 특기자 전형에 응시해 보려는 학생이 늘고 있다. 정시 대입에서 국어 논술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처럼, 수시에서는 영어 에세이의 비중과 변별력이 커지고 있어 요즘 상위권 학생들은 국문·영문 논술을 함께 대비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또 “서울대가 특례입학을 폐지함에 따라 고려대 연세대 등도 조만간 지원 기준을 강화하거나 장기적으로 폐지 쪽으로 갈 공산이 커졌다. 특례 대상이 됐던 학생들도 특기자 입시 쪽을 선호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기초적인 듣기나 읽기에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영어 논술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뜩이나 달아오른 영어 특기자 시장을 더욱 부추긴 것은 9월8일 서울대가 발표한 2008학년도 대입 전형안이다. 서울대는 정원의 3분의 1을 뽑는 정시모집에서 학생부 반영분 50% 중 10%를 비(非)교과 평가에 배정(나머지 40%는 교과성적)했다. 학생부에 기록된 출결사항,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외에도 어학능력을 비교과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것. 서울대측은 토플, 토익과 서울대에서 주관하는 영어능력시험인 텝스 점수등을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토플·토익, ‘실력 커버’ 난망

    서울대는 ‘사교육 조장’ 여론이 불거지자 일주일 만인 15일 “2008학년도 입시에서는 ‘공인어학능력시험’을 반영하지 않겠다”며 한 발 물러서긴 했다. 그러나 많은 학부모들은 이미 서울대에서 ‘운’을 뗀 만큼, “몇년 지나면 결국 반영될 것”으로 예상한다. 과거에 학생부에서 봉사활동을 평가한다고 할 때도 당초에는 대학측이 ‘참고’라고 했지만 이내 모든 학교 학생이 ‘의무조항’으로 받아들인 전례가 있다.

    분당 지역 학원강사 C씨는 “이제부터는 정시, 수시 할 것 없이 대입수험생들이라면 공인 영어시험을 의무적으로 봐둬야 할 것 같다. 학부모들도 어차피 대입이나 취업에서 한 번은 부딪쳐야 하는 만큼 어릴 때 끝내놓는 게 낫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토플, 토익에서 에세이 영역이 강화된 것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9월부터 시행 중인 인터넷 방식(IBT) 토플의 쓰기 영역에서는 기존의 방식, 예컨대 ‘학교에서 학문적인 것만 가르치는 게 좋은지, 매일매일 체육활동도 시키는 게 좋은지 자신의 생각을 논하시오’ 같은 독립형 에세이와 별도로 환경이나 역사 자연과학 등 특정한 학문영역 주제의 지문과 강연을 접한 뒤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통합형 문제가 추가됐다.

    반영비율도 종래의 CBT 토플 체제에서 300점 만점에 60점으로 5분의 1이던 것이 120점 만점에 30점으로 4분의 1로 높아졌다. 통합형 문제의 경우 듣기와 읽기를 한 다음 이를 요약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고난도 논술이기 때문에 점수의 반영비율 자체는 물론, 실질적인 변별력도 CBT 시절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게 입시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토익도 사진을 보고 상황을 묘사하거나 비즈니스 e메일을 받고 답장을 보내는 등의 쓰기 영역과 말하기 영역이 추가된 개정 시험을 12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토플의 경우 그동안 평가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듣기와 독해부분에서는 인터넷에 가지런히 정리돼 떠도는 이른바 ‘후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 영어 실력과 명확한 정비례 없이 상당부분 점수를 높이는 게 가능했다는 뜻이다. 듣기 300지문, 읽기 200지문 등 해당 달에 나오는 시험범위와 기출문제에 대한 한국말 해석본이 떠돌기 때문에 이것을 보고 시험을 치면 ‘실력 커버’가 웬만큼 가능했다. 이는 토플이 문제은행식으로 출제되는 데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네티즌들의 이심전심 공유의식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후기’ 덕을 보기 어려운 에세이 파트의 반영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영어 특기자 특별 전형은 외국어고, 영재고, 국제고 등 특목고에서도 실시하기 때문에 초·중학생들도 상위권의 경우에는 영어 에세이를 대비한다. 일례로 올해 개교한 청심국제고는 일반전형에서 학생부 성적 50%, 학업적성검사 20%, 영어 듣기 15%, 영어 에세이 15%로 학생을 선발한다. 민족사관고와 쌍벽을 이룬다는 외대부속외고의 영어 우수자 전형에서도 영어 에세이는 영어 듣기와 함께 60점씩 배정돼 있다. 학교측에 따르면 올해 영어 듣기의 합격자 커트라인은 60점 만점에 57점이었으나, 에세이는 54점으로 상하위권 점수차가 더 컸다.

    지난해 목동, 일산 지역 중학생 587명을 특목고에 합격시킨 것으로 자체 추산하는 글맥학원은 2008학년도부터 영훈중, 대원중 개교로 활성화할 것으로 보이는 국제중 입시에 대비하기 위해 최근 초등학생 특별반을 만들었다. 여기에 들어가려면 영어 듣기, 수학과 함께 영어 쓰기 시험을 별도로 치러야 한다. ‘유명 학원’ 입학시험에도 영문 에세이가 필수과목으로 등장한 것이다.

    ‘암기’ 대신 ‘향기’

    영어 에세이 시장의 저변이 확대된 첫 번째 계기는 2000년 10월 토플 시험방식이 지필형(PBT)에서 컴퓨터 형식(CBT)으로 바뀌며 영문 에세이가 필수과목으로 보태진 것이다. 그러나 출제문제 185개가 무엇인지 공개돼 있는 탓에 학원가에서는 ‘암기 작문’ 혹은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문장, 문구 등을 지칭하는 ‘패턴’(예를 들면 ‘서론은 문제에 나온 문장 바꿔쓰기 1문장, 주의환기 1문장, 자기 의견 1문장 등 3개 문장으로 구성하고 본문은 3가지 논거를 들어야 하며, 결론에서는 요약 1문장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식의 유형)을 가르치게 됐고, 이러다보니 ‘붕어빵 영작’이 양산되어 영어 에세이가 암기과목이 돼버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시간이 갈수록, 콘텐츠보다는 영어의 기능적인 면을 강조한 토플 에세이 스타일로는 해외 유학은 물론 국내 대학 국제학부나 외국어고 특기자 전형에 합격하기도 어렵다는 회의론이 등장했다. 이어 지난해 5월 SAT에서 에세이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부터는 ‘콘텐츠가 있는 에세이’ ‘창의력과 향기가 있는 에세이’를 내세우는 학원들과 강사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개정된 SAT에서 에세이는 시험점수 전체의 9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주제는 대부분 인생을 살아가는 가치관에 대한 것인데 가령 ‘언제나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안 그러면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낫기도 한가?’ ‘우리는 성공했을 때 더 많이 배우는가, 아니면 실패했을 때 더 많이 배우는가?’ 따위를 묻는다.

    SAT를 주관하는 미국 대학위원회(College Board)가 내놓은 채점기준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와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된 사례를 들어 논리적인 표현을 하는가’이다. 위원회측은 지난해 미국 언론에 내부 채점기준을 브리핑하며 “쓰기 기술보다는 내용이 우선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작가)는 한 원고에서 7단어 연속 스펠링을 틀렸지만 당대 미국 문단에서 가장 위대한 글을 썼다”고 설명했다. 이는 몇 가지 패턴을 활용한 도식적인 ‘서론-본론-결론’ 형식으로는 고득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세민 ‘영타임스’ 교육이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을 써보라’고 하면 대다수의 한국 우등생은 ‘학교 성적이 떨어져서 부모님한테 혼났을 때’라고 쓴다. 그러나 SAT에서는 자신의 인생철학, 미래의 꿈을 성찰하는 자세 등을 깊이 있게 표현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것은 국내 대학 국제학부나 특기자 전형 입시도 마찬가지다. 이제 기계적 영어 논술로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힘들다. 에세이를 제대로 쓰려면 문법, 어휘 등 ‘영어기술’ 외에도 진솔성(Sincerity), 주제성(Topicality), 구성(Organization), 화법(Storytelling), 객관성(Objectivity), 겸손(Humility), 구체성(Detail), 보편적 합리성(Rationality), 차별화(Differentiation), 통찰력(Intuition) 등의 요소가 고루 담겨 있어야 한다.”

    일부 영어 에세이 학원들은 이에 따라 영문 독서교육도 함께 실시한다. 3∼5명씩 팀을 짜서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교양서적 10여 권을 읽고 영어로 짧은 독후감을 쓰게 하고, 에세이에 쓰일 만한 논지 거리를 찾기 위한 토론회를 마련한다. 또 ‘가치 판단’의 문제가 나왔을 때 섣불리 좌나 우로 경도되지 않게, 좌나 우로 치우치더라도 학생다운 온정적 시각이 들어 있는 일종의 ‘정치적 모범답안(Politically Correct Answer)’을 찾을 수 있는 시각도 키워준다. 채점관들이 다양한 배경을 지닌 미국 현지 교사들이란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정도로 수준 높은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강사 자원이 얼마나 될까. 이동우 원장은 “1990년대 초중반에 유학을 다녀온 20대 후반∼30대 초반 중 미국 일류대 출신이면서 취업 대신 이런저런 이유로 학원가에 남은 강사가 꽤 여럿 있다. 학부모에게 ‘낯선 대학’ 출신 강사를 소개하긴 어렵다”고 귀띔했다.

    대학 제출용 에세이는 ‘종합예술’

    미국 대학 입시철에 제출하는 ‘입학 에세이’는 한국 학생들이 가장 넘기 힘든 벽이다. 2400점 만점의 SAT에서 200, 300점쯤은 손쉽게 ‘업어치기’를 할 수 있다. 2008학년도부터 정시모집에서 30%가(서울대 기준) 반영될 한국 입시의 국문 논술 위상과 비슷하다. 대원외고 해외유학준비반 학생들은 입학 에세이에 대비하기 위해 2학년 때부터 주 1시간씩 별도의 글쓰기 수업을 받을 정도다. 학생들은 에세이를 돌려보며 서로의 관점에 대해 토론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유학원에서 ‘대리 작성’해주는 사례도 간간이 있었으나 아이비 리그나 톱 20위권 대학의 경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지 않은 에세이를 제출하면 100% 떨어진다고 한다.

    서울 역삼동 ‘에세이라인’의 제리 박 원장은 “필요한 영어 점수는 우리가 만들어줄 수 있고 에세이 작성도 상당부분을 코치해줄 수 있지만, 에세이 작성에 필요한 본인의 경험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털어놨다.

    예전에는 강사가 ‘창의력’을 발휘해 에세이를 대신 써주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해당 강사의 스타일이 짙게 녹아든 원서가 몇 부만 더 발견되면 여지 없이 1차 전형에서 탈락한다. 따라서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경험을 되새기게 해서 그것을 글로 쓸 수 있게 해주는, 매우 복잡한 맞춤 지도가 불가피해졌다.

    이 때문에 유명 에세이 학원의 ‘드림팀’에는 아이비 리그급 대학 혹은 대학원 출신의 현직 경영 컨설턴트나 경제연구소 연구원, 심리학과 교수, 전문 카운슬러 등이 ‘섀도 튜터(Shadow tutor)’로 등장한다. 학원 전단지에는 ‘뉴욕대 출신 김 선생, 현직 컨설턴트’ 식으로, 적당한 익명을 내세워 소개한다.

    섀도 튜터들은 별도의 1대 1 특강 형태로 학생들을 만난다. 특강비는 ‘3회 상담에 200만원’ 식으로 책정된다. 에세이 학원 관계자는 “살아오면서 공부 아니면 게임밖에 할 이야기가 없는 게 요즘 학생들 같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게 아니다. 자신의 경험을 글로 조직화하고 독창적으로 마케팅하지 못하는 게 더 문제다. 몇 번만 컨설팅을 받으면 확 좋아지는 사례를 여럿 봤다”고 말했다.

    글을 쓰기도 전부터 수백만원의 돈이 드는 셈이다. 그렇지만 학부모들은 “해마다 난이도가 높아지는 미국 명문대 에세이 준비를 위해서는 필수과정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입학사정관들을 한눈에 사로잡을 ‘킬러 콘텐츠’가 문제이지, 콘텐츠가 정해졌을 때 이를 영어로 맛깔나게 포장하는 작업은 현재 한국의 학원 인프라로 볼 때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입시에서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대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에세이를 쓰시오’라는 평범해 보이지만, 차별화하기 힘든 주제를 택해 학생들을 괴롭혔다.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을 1년 준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300쪽짜리 자서전을 썼다고 가정하고 그중 217쪽을 써라’ 같은, 짓궂어 보이는 질문도 단골메뉴다. ‘리더십 경험’을 물었을 때 “중3때 반장을 했는데…수업 분위기를 좋게 이끌었다” 같은 진부한 소재로는 입학사정관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

    학생의 ‘경험’이 부족한 경우 각종 경시대회 참가를 추천하거나 심지어 인턴까지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섀도 튜터의 몫이다. 이 경우 당연히 사례비가 추가된다. 섀도 튜터들은 예를 들어 경제학 전공 희망자에게는 재정경제부나 경제인협회 등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모의투자 대회에 참가토록 한 뒤 투자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에게는 서울의 특1급 호텔에서 인턴을 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주거나 실무자에게 청탁한다.

    에세이에 기울이는 한국 학생들과 학부모, 학원의 ‘종합예술 3중주’ 덕분일까.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한국인 재학생 수는 최근 1, 2년 사이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늘고 있다. 하버드대 국제사무국에 따르면 2005학년도 가을학기 학부생 기준 외국인 학생 수는 캐나다 137명, 영국 36명에 이어 한국이 29명으로 인도, 일본, 독일을 제치고 3위를 차지했다. 또 예일대 국제업무국에 따르면 한국인 재학생 수가 26명으로 캐나다(84명)에 이어 2위였다.

    성인 시험시장으로 확대

    영문 에세이의 영역은 성인들의 입사시험시장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이른바 ‘금융고시’라고 하는 은행권 입사 시험에서는 산업은행이 지난해부터, 수출입은행은 올해부터 영어 에세이 시험을 보고 있다. 산업은행측은 “금융산업이 글로벌화하고, 국제투자은행을 지향하는 은행 방침으로 인해 행원들의 영어 서신 및 문서 작성 능력이 꼭 필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요즘 채용되는 행원의 토익 점수가 평균 900점 이상인 상황에서 좀더 고급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직원들을 선발하겠다는 복안이다.

    대학생 및 성인 대상 외국어학원들도 영작전문반을 따로 개설하고 있다. 영문 e메일이나 서류 작성을 매일같이 해야 하는 회사원은 물론, 외국 대학에서 논문을 작성해야 하는 유학생 수요가 많기 때문. 특히 논문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영국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은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아카데믹 라이팅’에 공을 들여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다 보니 온라인 원격지원 방식으로 컨설팅을 해주거나, 완성된 논문을 교정봐주는 업체도 늘고 있다. 준(準) 네이티브 스피커이면서 영어권 명문대학 졸업생들이 교정에 나서는 1급 업체에서는 교정만 봐주는 데도 마이크로소프트 워드프로세서 기준 100단어에 1만원 정도를 받는다. 학기 중에 과제물로 수시로 내는 아주 간단한 페이퍼도 분량이 2000단어(20만원)가 넘기 때문에 액수가 만만치 않다.

    해외 MBA 유학의 경우 영어 에세이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 이 분야 또한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때로는 경영대학원 수학능력시험(GMAT) 점수를 뒤엎을 만큼 영어 에세이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게 수험생들의 말이다.

    강남에만 10여 개의 MBA전문 에세이 학원이 있고, 개인적으로 인터넷 블로그를 개설하고 한 번의 입학 라운드별로 10명 안팎씩 고객을 받아 에세이 코치 및 공저(共著)에 나서는 전문적인 인력도 수십여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MBA 학원가에 따르면 최근 5∼6년간 한국인 지원자 수는 매년 2000여 명선. 1명이 기본적으로 3, 4개 학교에 지원하는데다, 경쟁이 심한 톱10 스쿨을 노리는 경우 10개 이상의 학교에 원서를 내는 지원자도 적지 않다.

    일반 대학원과 달리 경영대학원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반드시 돈 잘 버는 경영인이 된다’는 법칙이 통용되지 않으므로 에세이만 잘 쓰면 통과되는 경우가 흔하다.

    서울 역삼동 JCMBA 학원 관계자는 “GMAT 상위 12%인 670점(800점 만점)을 받고 세계 랭킹 1, 2위로 평가받는 스탠퍼드대에 붙고, 2%인 740점을 받고도 20위권으로 평가받는 모 대학 입시에 떨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입학사정관들이 한국인의 GMAT 점수나 학점을 액면 그대로 신뢰하지 않을 때도 있어, 영어 에세이가 당락을 결정짓는 최우선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MBA 입학사정관들이 ‘버벌(Verbal·일종의 경영영어)’과 수학 및 별도로 점수를 매기는 ‘AWA(Analytical Writing Assessment·일종의 에세이)’로 이뤄진 GMAT 과목 중에서 갈수록 에세이를 비중 있게 보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얼마 전 한국에서 설명회를 연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분교(UCLA)의 앤더슨 스쿨(MBA) 입학담당관은 “AWA 6.0 만점에 4.0 미만인 경우는 버벌과 수학 점수가 700점이 넘어도 입학이 어렵다”고 공언했을 정도다. 그러나 토플 에세이에서 6.0 만점에 5.5 이상을 받은 학생들도 AWA에서 3.0∼3.5점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GMAT 에세이에 발목을 잡히는 사례 또한 늘고 있다.

    MBA 컨설팅 업체들은 입학 에세이를 작성해주면서 학교당 300만원을 기본으로 받으며, 보통 3, 4개 학교를 묶어 700만∼1000만원을 받는다. 톱20위권 이하 학교의 경우 입학담당관과 면접 인터뷰를 하지 않아 들통날 염려가 없기 때문에 아예 에세이를 100% 대필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합격 여부에 따라 편당 1000만원 정도로 값이 뛴다. 한 에세이 컨설팅 업체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리더십이나 창업 경험, 장래 목표와 단기 인생 목표, 윤리적인 딜레마에 빠졌을 때의 해결방법 등이 MBA 입시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질문인데, 지원자의 커리어와 조화를 이루는 말들을 만들어내고, 또 그것들이 다른 질문지의 답변과 어긋나지 않는 일관성을 갖추면서 창의성도 보여야 하는, 매우 힘든 작업이다. 영어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지원자가 혼자 감당하려면 몇 달씩 끙끙거려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격으로 인해 시비가 붙는 경우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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